성경연구

[스크랩] 요일2:12-14 - 그리스도인의 본질 - 존 맥아더 목사

향기나무 김성휴 2011. 1. 12. 17:24

요한일서 2:12-14

3. 그리스도인의 본질

 

 


서론


요한일서 2장 12-17절은 사랑이란 주제에 관해 논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사랑이 아니라 그분이 싫어하시는 사랑이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15절)라고 했다. 문맥상 "세상"이라는 용어는 이 땅을 지배하는 악의 체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그 체계를 사랑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그 체계가 성부께 대한 그들의 사랑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5장 19절은, 세상은 전적으로 사악한 자의 지배하에 있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보모가 아이를 요람에 넣고 어르는 장면을 생각케 한다. 사단은 온 세상을 자기 품안에 안고 어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시민이 아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이다(빌 3:20). 비록 인간의 사회를 지배하는, 사단의 뜻을 받드는 체계 내에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썩었고(벧후 1:4), 경건치 못하기(요일 2:16) 때문이다.


교회가 끊임없이 당면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진리를 말하는 자와 진리를 왜곡하는 자를 분별하는 문제이다. 요한 서신은 거짓으로부터 진리를 구별해 내는 기준으로 삼을 만한 몇 가지 사항을 제시한다. 당신은 그 사람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행하는가를 보고 거짓 그리스도인과 참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다. 교리적 측면의 시금석은 그가 자기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시인하는가의 두 가지로 되어 있고, 도덕적 측면의 시금석 역시 그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가의 두 가치로 되어 있다.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형제로서의 그리스도인은 사랑하지만 세상은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참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체계를 계속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어느 한 편만을 택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마 12:30)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 6:24)라고도 말씀하셨다. 당신은 영적인 정신분열증 환자가 될 수 없다. "나는 하나님과 형제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세상의 사단적 체계 또한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서로 반대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기는 하지만 세상과 더불어 재미를 누리는 경우는 가끔씩 있다. 세상 사랑하기를 그치라는 15절의 현재 명령형의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바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상으로도 그리고 신분상으로도 습관적으로 세상의 체계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 세상과 더불어 재미를 누려서도 안 된다. 구약성경은 말한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수 24:15).

 

 

 

복습


요한은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 네 가지를 제시한다.


세상은 이런 것이기 때문에(15절)

 

 

 


교훈


그리스도인이란 이런 것이기 때문에(12-14절)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두번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15절은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한다. 그 두 가지 사랑은 상호 배타적이다. 요한복음 8장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말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39-41, 44절)라고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했으나 행동은 아브라함같지 않았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가계(家系)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가족이고 또 하나는 사단의 가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나 인간의 형제됨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시고 모든 사람이 다 우리의 형제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거나 사단의 자녀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요한일서 2장 12-14절은 말한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가족 내에 있는 서로 다른 류(類)의 신자들에 대해 서술한다. 모두 다 그분의 자녀들이지만 어떤 이들은 영적인 어린아이이고 어떤 이들은 청년이며 또 어떤 이들은 아비들이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단의 체계를 사랑하지 않으며 그것에 충성을 바치지도 않는다. 요한은 하나님의 가족과 가족 구성원들이 각각 처한 성숙성의 정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참 그리스도인은 죄사함받았고, 하나님을 알며, 사단의 체계를 극복했다. 하나님의 가족에게는 바로 그 본질에 의해 하나님과 사단의 체계를 동시에 사랑할 가능성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자녀를 향해 확산된 자비(12절)
"자녀들아[헬라어 「테크니아」(teknia)]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 상술
「테크니아」라는 말은 특정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태어난 자들"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요한은 편지의 수신인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분의 자녀로서 그들의 죄는 그분의 이름을 위해 용서되었다. 이는 참으로 엄청난 말이다. 우리의 죄는 우리가 용서되기를 구했기 때문에 용서된 것이 아니다(어떤 의미에서는 그 말이 맞을지라도).

 

기본적으로 우리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용서되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그 자비의 행위가 그분에게 영광이 되기 때문에 용서하신 것이다. 그분께서 당신과 나를 용서하신 것은 그분의 이름을 위해서였다. 우리에게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 그리된 것은 아니다. 당신과 내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운 성품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비를 나타내기로 하셨고 우리는 단순히 그 수혜자(受惠者)가 됐을 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기를 바라신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성경이 주로 강조하는 바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서 인간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을 나타내 보이기 원하셨다. 당신이 은혜롭게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세상에 설 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은혜로우시고 관대하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을 구속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실제로, 에베소서 3장 10절은 그분께서 천사들 앞에 교회를 자랑스럽게 내보이심으로써 천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혜를 찬양케하려 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의 기본적인 이유이다. 자신의 자비를 나타내 보이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바램을 보여 주는 성경 구절 몇 가지를 검토해 보자.

 

 

2) 성경상의 근거

 

(1) 미가서 7장 18-19절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수사학적인 질문을 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얼마나 너그러운 하나님이신가 ! 그분은 자신의 자비로운 품성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죄를 용서하신다.

 

(2) 시편 32편 2절
다윗은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한다.


(3) 시편 86편 5절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받느냐 못받느냐의 판단 기준은 그분께 부르짖는가의 여부이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은 신약 시대의 하나님과 다르다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은 늘 여전하시다. 그들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풍성한 증거를 보지 못하고 있다.

 

(4) 이사야서 43장 25절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시는 주된 이유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 자신을 위해서이다. 이 우주의 주된 주제는 그 창조자가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인간을 용서하신 크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고원(高遠)한 모습을 필요로 한다.

 

(5) 누가복음 24장 47절
예수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사명을 제자들에게 맡기셨다.

 

(6) 에베소서 1장 4-6절
성부께서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하셨다.


(7) 시편 25편 11절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다윗은 "주여,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제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했다. 당신도 이와 같은 기도를 해본 적이 있는가?

 

 

 

온전한 기도

 

"주여 00를 구원하셔서 당신의 이름에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00가 병이 났으니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를 고쳐주소서", "주여 00가 병이 나서 이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시든 당신께 가장 영광이 될 일로 하소서" 당신은 이러한 기도를 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이 기도의 방법이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곧잘 우선 순위를 뒤바꿔 놓는다.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을 위해 기도할 때는 결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십시오, 하나님"이라고 기도했다면, 정말 올바른 기도를 드린 셈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한다. 너무 원하는 것이 많아서 그것이 쉽지 않을 때도 가끔씩 있다. 만일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기도한다면 당신은 이기적인 사람이고, 또 하나님 영광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고 말씀하셨다. 바꿔 말해 "내 이름을 위해 너희가 무엇을 구하면 - 나에게 영광이 될 만한 어떤 것을 구하면 -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고 그분은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아버지여,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일인 줄 제가 믿사오니 이것을 행하소서."


이런 식으로 일관성있게 기도하는 사람은 곧 자신의 영적 성숙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늘 마음판에 새겨 놓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데 곤란을 느낀다면, 영적 성숙함에 도달하는 데도 곤란한 문제를 갖게 될 것이다.

 

(8) 시편 79편 8절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

 

(9) 시편 106편 8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그 큰 권능을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여호와는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또 우리도 구원하신다.

 

(10) 시편 109편 21절
다윗은 기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할 수있었다.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선대하시며 주의 인자하심이 선함을 인하여 나를 건지소서."

 

(11) 예레미야 14장 7절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자기 자신에 관해 하는 일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많이 염려한다면 그것이 바로 영적 성숙함이다.

 

(12) 이사야 48장 9, 11절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사람은 죄사함을 받았다. 그분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나는 그분의 용서의 사실성(寫實性)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분이 정말 나를 용서하시는 건지 의심스러워요"라고 말한다. 그분이 자신을 위해 당신을 용서하기로 정하신다면 그 은혜로움을 받아들이라. 당신은 노력해서 그분의 용서를 얻는 것이 아니고 또 그렇게는 얻을수도 없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용서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적 체계에 속한 것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2.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숙 과정(13-14절)

 

 

1) 영적 성숙이란 무엇인가 ?
성경은 사람마다 영적 성숙의 정도가 다르다고 가르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성숙함에 있어 다 같은 수준에 있지는 않다. 그렇지 않다면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권면하지 않았을 것이며,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에서 영적 성숙의 과정이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마가복음 4장 28절
예수께서는 영적 성숙의 신비를 보여 주시기 위해 곡식이 자라나는 단계의 비유를 사용하셨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 요한복음 21장 15-16절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물어 보실 때 그에게 자신의 어린양(lambs)뿐만 아니라 양(sheeps)도 먹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는 영적 성숙에 최소한 두 가지 다른 단계가 있음을, 즉 성숙한 양의 단계와 어린 양의 단계가 있음을 알고 계셨다. 나는, 목양(牧洋)을 하려는 설교자라면 자신이 치는 양떼 중에 어린 양도 있고 성숙한 양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말 속에 그 두 부류의 신자 각각을 위한 멧세지를 늘 담고 있어야 한다.

 

(3) 로마서 14장 1절, 15장 1절
보다 약한 형제에 대한 바울의 논의는 신자마다 영적 성숙의 수준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해 준다.

신령함(spirituality)은 성숙함과는 다르다. 신령함은 각일각(刻一刻)마다의 확정된 「절대」이고, 성숙은 하나의 과정이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은 육체 안에서 행하는 반면,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안에서 행한다. 당신은 성장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든 늘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분명히 될 수 있다. 그 반면, 육체 안에서 행함으로써 그 신령함을 상실할 수도 있다. 심지어 영적인 아버지의 수준에까지 이른 사람도 여전히 육체 안에서 행할 수 있다. 신령함의 여부는 그 사람에게 주어진 어떤 순간에서라도 그가 성령께 굴복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반면, 성숙함은 보다 더 신령한, 그리고보다 덜 육적인 사람으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성숙의 과정은 신령함이라는 전체 배경 내에서만 진행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앙의 기초밖에 모르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성령 안에서 행함으로써 영적인 청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육체 안에서 행하기 시작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그의 성장은 멈춰 버린다. 그러나 성령께 굴복하면 그는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역사하시도록 허용할 때에만 당신은 성장할 수 있다.

 

 

2) 영적 성숙에의 권면
영적인 갓난아이들이 모두 자동적으로 청년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영적인 청년이 자동적으로 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은 영적인 갓난아이일지 모르지만, 2년만 시간을 주어 보시오. 그러면 청년이 되어 있을 테니"라고 당신은 말한다. 하지만 영적 성숙은 단지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갑자기 사망하거나, 실족하거나 혹은 말씀 공부를 게을리한 탓에 영적인 유아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영적인 갓난아이들은 모두 청년과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4절에서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만약 성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은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대하시는 것의 바로 그 핵심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20절은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혜에 있어서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영적 성장 수준은 나이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3) 영적 성숙 여부의 검토

 

(1) 아이들(14상반절)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 아이들의 특성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영적인 아이의 단계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야 한다. 14절에서 "아이들"로 번역된 헬라어는 「파이디아」(paidia)로서 12절에서 하나님께로서 태어난 사람(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 「테크니아」(teknia)와는 다르다. 「파이디아」는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말로서 무지(無知)와도 관련이 있다. 영어에서 교육을 의미하는 단어인 「페더고지」(pedagogy)는 바로 그 헬라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여기서의 아이들은 영적으로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이다. 그들의 지식은 구원의 기초에 한정되어 있다. 즉, 그들은 성부만을 알 뿐이다.


자연의 영역에서 볼 때, 갓난아이가 제일 처음 찾는 것은 그 부모이다. "엄마"와 "아빠"가 갓난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말들이다. 이와 비슷하게 영적인 영역에서도 갓난아이 그리스도인의 뚜렷한 특징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자기 아버지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애착을 보인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며 그분께 의지한다. 갈라디아서 4장 6절과 로마서 8장 15절의 바울의 말에 의할 때, 영적인 갓난아기는 하나님을 "아바"("아빠"를 의미하는 아람어)로 부른다고 했다.


거의 예외없이, 어린아이들은 지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에 따라 행동한다. 그들은 사물을 이성적으로 추론하지 않는다. 단지 체험되는 일을 즐길 뿐이다. 그들은 쉽게 흥분하고 쉽게 두려워한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아이들은 자기가 정말 구원받았는지, 사단과 마귀가 자기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있는지 의심한다. 예언에 관한 말을 들으면, 자기도 휴거되어갈 수 있을지를 염려한다. 그들은 이성적인 기초 위에서라기보다 감정적인 기초 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기 때문에 곧잘 그런 종류의 두려움과 씨름한다. 성경 전체를 통해, 어린아이라는 개념이 영적인 의미에서 쓰일 때는 영적인 무지함을뜻한다.

 

 

- 아이들의 특성이 나타난 예


(1) 고린도전서 3장 1-2절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린도인들은 보다 깊은 영적 진리에 무지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기초적인 것만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유아기에 머문 까닭은 그들이 육에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 영적인 성장은 그리스도인이 성령 안에서 행할 때에만 있을 수 있다.

 

(2) 에베소서 4장 14절
어린아이 그리스도인은 구원받기는 했지만 참 교리에 대한 한정된 지식 때문에 거짓 교리에 쉽사리 휩쓸린다. 이단 교리를 가진 사교(邪敎)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은 거의 예외없이 영적인 어린아이들이다.

 

(3) 마태복음 11장 25절
예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문장의 대조적인 표현법은 "어린아이들"은 무지하다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제자들은 순진한 영적 어린아이들이었다.

 

 

2) 청년들(13, 14중반절)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 그들의 성경 지식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수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것을 두 번 설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악한 자, 즉 사단을 이기려면 강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강해지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 안에 거하게 함으로써이다. 그렇게하면 당신은 영적인 청년이 된다. 영적인 갓난아이는 무지하지만 청년에게는 지식이 있다. 그는 더 이상 감정에 근거하여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신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영적인 교만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 대부분 이 시기이다. 영적인 청년은 자기가 모든 해답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것은 자연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안다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10대가 되면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0대 후반이 되면 자기가 한때 생각했던 것 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10대 때 생각됐던 것 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자기가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오면, 영적 교만이라는 걸림돌에 걸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청년들의 힘의 사용
청년들은 교리적인 면에서 강하다. 그래서 그들은 악한 자를 이긴다. "난 사단을 이긴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어요"라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난 사단에 대해서는 결코 재고하지 않는다. 사단에 관한 책을 읽을때조차도 나는 그것을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하여 그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만을 생각한다.


마귀에 대해 너무 염려를 하는 나머지 그에 관한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영적인 청년이라면 당신은 사단을 이긴 것이다. 영적 청년은 교리적인 면에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기 때문에 더 이상 감정에 이끌려 행동하지 않는다.

영적 청년이 되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거짓 교리가 당신에게 흥미를 주는 게 아니라 당신을 분격케 할 때, 당신은 자신이 성숙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라고 누군가가 물을 때 그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고 또 성경으로 그 대답을 뒷받침할 수 있다면 당신은 영적 청년이다. 청년은 감정과 정서의 지배를 받는 단계를 벗어나 말씀의 인도를 바란다. 영적 갓난아이들은 주로 자기 자신의 필요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만 청년은 그렇지 않다. 자기 형이나 누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를 본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란 본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적 청년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건전한 교리 위에 굳건히 서는 일이다.

 

 

- 사단에 대한 그들의 지식


(1) 사단의 전략
교리를 아는 것이 악한 자를 이기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간단히 말해서, 사단은 그릇된 교리의 영역 내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죄를 지으면 나는 "마귀가 날 이렇게 만들었소"라고 말하지 않는다. 죄를 짓는 데는 마귀가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내 육체가 제 스스로 그런 짓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은 육체의 일에 관하여 말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죄를 두고서 이 귀신, 혹은 저 귀신 탓으로돌리려고 한다. 마귀가 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긴 하겠지만 문제는 우리의 죄악된 육체이다.
사단과 그 무리들은 사람들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이봐, 더러운 생각 좀 해봐", "저 돈을 훔쳐라", "세금액을 좀 속여 보라구"라고 말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마귀의 군대들은 할 일이 따로 있다. 사단은 우리의 육체가 세상으로부터의 충동을 받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세상의 체계를 통해 우리를 간접적으로 유혹하고 있다.

 

 

(2) 사단의 전략에 대한 성경상의 근거
- 고린도후서 11장 14-15절 : 사단은 자기를 "광명의 천사"(14절)로 가장한다. 그는 거짓 종교 체계 내에서 바삐 일한다(마찬가지로 "의의 일군으로 가장"한 그의 종들도 역시 그렇다.) 그들이 그렇게 바쁜 것은 세상에 거짓 종교와 사교(邪敎)가 그만큼 많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 레위기 17장 7절 : "그들은 전에 음란히 섬기던 수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종교 영역에 있어서의 사단의 활동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교도들이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실 그것은 마귀에게 바치는 제사였다고 구약성경은 말한다.

 

- 신명기 32장 17절 :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반역하여 거짓 신에게 제사지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이었다. 사단은 모든 거짓 종교에 직접 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닌 어떤 성물(聖物)에 절하는 자는 모두 마귀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이라 하겠다.


- 시편 106편 36-37절 :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


그들이 말하는 궤변의 수준에 관계없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단에 의해 계획된 것이며 마귀에게 조종을 받는다. 사단은 그런 활동 무대에서 작용하고 있으므로 당신은 진리의 교리안에 견고히 설 때에 그를 이길 수 있게 될 것이다.

 

- 디모데전서 4장 1절 : 성경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거짓 교리는 귀신의 권세가 아주 잘 작용하는 영역이다.

 

- 요한일서 4장 1절 : 요한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경계시킨다. 그러한 선생들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다.(요일 2:18).

 

- 고린도전서 10장 20-21절 :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주님과 교제하는 동시에 이방인의 제사를 지냄으로써 귀신과도 교제하려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성경적인 기독교를 벗어난 종교는 모두 귀신의 영향을 받는 것들이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자신을 위장한다. 그것이 그의 주된 기능이다. 따라서 건전한 교리를 알면 사단을 이길 것이다. 구원받았을 때 당신은 세상을 이겼다(요일 5:4).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지식을 갖게 될 때 당신은 사단을 이긴다. 그리고 나면 남은 적(敵)은 육체뿐이다. 안타깝게도 그 문제를 제거하려면 하늘에 올리워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영적인 청년에게 사단 같은 것은 문제가 될 리 없다.


(3) 영적인 아비들(13상반절, 14중반절)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영적 갓난아이들은 체험을 즐거워하고, 영적 청년들은 자신의 지식을 즐거워하지만 영적 아비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영적 청년으로서 말씀을 아는 것과 영적 아비로서 말씀 뒤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영적 아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깊은 곳까지 탐사를 했다. 그는 단지 교리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안다. 그는 말씀을 알고 또 그 말씀 속에 계시된 분과 교제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기도에도 말씀 공부에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영적 아비는 하나님에 관해 개인적이고 체험적이며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알려 하여"(빌 3:10)라고 말했을 때 그도 그러한 종류의 지식을 마음에 두고 말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심도있게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

 

 

 

 

결론

 

 


1. 영적 성장에의 권고
하나님의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적 성숙 수준은 각각 다 다르다. 이 책의 독자들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을 것이고 청년도 있을 것이며 아비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현재 어떤 수준에 있든지 영적으로 장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신약성경은 영적성숙의 과정에 관해 여러 가지 용어로 이야기를 한다.

 

1. 디모데전서 6장 11절은 "의를 좇아야 한다"고 말한다.
2. 로마서 6장 4절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3. 로마서 12장 2절은 계속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4. 고린도후서 7장 1절은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5. 에베소서 4장 15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6. 빌립보서 3장 14절은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7. 골로새서 2장 7절은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고 말한다.
8. 베드로후서 3장 18절은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9. 골로새서 3장 16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2. 영적 성장을 위한 요소
영적 성장은 신비적이거나 심리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함이 낳은 결과일 뿐이다. 말씀을 공부하고 거룩한 삶을 살면서 그 말씀에 복종함으로 행하면 자연히 성숙하게 된다. 어떤 비결같은 것은 없다. 영적 성장은 즉석에서의 눈속임이 아니다.

 

 

1)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성장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그 성장 과정을 "성화"(聖化)라 칭한다.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32절에서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라고 말한다. 또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그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한다. 성숙은 말씀에서 비롯된다. 어떤 형식적인 비결같은 것은 없다.

 

 

2) 거룩한 삶
거룩함은 영적 성장의 두번째 필수 요소이다. 모든 알려진 죄를 비켜가면서, 모든 알려진 계명에 순종하면서 성령 안에서 행할 때 당신은 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 애쓰고 성령께 굴복할 때 당신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 하지만 거룩함조차도 말씀의 결과이다. 요한복음 15장 3절에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가족이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지금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라면 청년이 되도록 하자. 지금 청년이라면 아비들이 되도록 하자.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본성 때문에, 즉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본성 때문에, 즉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확인 질문


1.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되는 첫번째의 두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2. 영적인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형제인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영적인 아버지이신가?

3. 하나님 자녀의 죄가 용서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4.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드셨는가?

5. 죄를 사하실 때 하나님은 자신의 어떤 속성을 나타내 보이시는가?

6. 구약 시대의 하나님과 신약 시대의 하나님은 같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과해 버리는 진리는 무엇인가?

7. 그리스도인의 기도 제목이 어떻게 그 사람의 영적 성숙 수준을 드러낼 수 있는지 설명하라.

8.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사실성(寫實性)에 대해 염려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9. 요한복음 21장 15-16절은 영적 성숙의 수준이 신자마다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지적해 주고 있는가?


10. 신령함과 성숙함의 차이를 밝히라. 신령함의 여부는 무엇에 달려 있는가? 성숙함의 정도는 무엇에 달려 있는가?

11. 영적인 어린아이는 자동적으로 청년이 되고 영적인 청년은 자동적으로 아비가 되는가?

12.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4절에서 왜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아이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는가?

13. 영적인 어린아이의 지식은 어느 것에 한정되는가?

14. 청년은 어떻게 사단을 이기는가?

15. 영적 청년이 당면하고 있는 잠재적인 문제점은 무엇인가?

16. 자신이 영적으로 청년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7. 우리가 짓는 죄의 책임은 대부분 마귀에게 있는가? 사단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유혹하는가?

18. 사단과 그 무리들은 어디에 힘을 집중하고 있는가? 성경에 근거하여 대답하라.

19.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사단을 일단 이기고 나면 정복해야 할 적(敵)으로 유일하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 완전히 정복되는가?

20. 영적인 아비의 특성을 서술하라.


21. 영적 성장은 무엇 무엇의 결과인가?

22. 모든 알려진 _____ 를 _____ 고, 모든 알려진 _____ 에 _____ 하면서 성령 안에서 행할 때 당신은 성장한다.

 

 

 

 

원리에 대한 재확인

 

 


1. 시편 86편을 읽고 5절 말씀을 암기하라. 그분께서 개인적으로 당신을 향해 펼치신 큰 자비를 인해 그분을 찬양하라.

 

 

 

2. 기도할 때 당신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아니면 당신 자신의 욕구인가? 야고보서 4장 3절을 읽으라. 다음 일 주일 동안 기도할 때에는 당신의 기도의 동기를 의식하라. 당신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라 알고 있는 것에 일치되는 일에 기도의 목표를 두라. 요한일서 5장 14-15절 말씀에 의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확신은 무엇인가?

 

 

 

3.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에서의 바울의 말을 숙고해 보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3:2).
당신은 영적인 영양을 공급받는 데 도움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의 독특한 배경, 개성, 성숙성에 민감한가? 당신은 그들의 영적 성숙 수준에 비해 볼 때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하겠는가? 기독교 서점이나 선교회에서 구할 수 있는 제자 훈련 자료들을 다양하게 공부하라. 그것들에 익숙해져서 훌륭한 품성을 함양시켜 줄 가르침을 성장의 특정 단계에 있는 신자들에게 줄 수 있도록 하라.

 

 

 

4. 영적 성장은 쉽게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적(사단, 세상, 육체)들은 그리스도를 닮는 일을 힘든 싸움으로 만들고 있다. 영적 성장은 결단과 일관성을 요하는 일이다. 당신의 생활에는 그 두 가지 요소가 있는가? 당신은 영적 아비들이 소유한, 하나님에 대한 보다 심오한 지식을 갖기 바라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을 견고히 세우시게 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전념하라. 그러면 그분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을 지금 있는 곳에서 이끌어 내셔서, 보다 높은 영적 성숙 수준에 이르게 해주실 것이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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