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신학의 미래
1. 시작하며 :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는 운동가를
술보다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전문
최영미라는 시인이 있다. 아마도 81이나 82년도에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에서 그녀는 역사를 공부했다. 그 당시 대학을 다녔던 대부분의 인문 학도들이 그랬듯이 그녀 역시 맑스와 레닌에 심취하여 '강좌철학'이니 '세계철학사'니 같은 책들을 옆에 끼고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가·투가 있을 때면 택시 뒷자리에 앉아 가슴을 두근거리며 가방에 들어 있는 꽃병의 숫자가 몇 개 였는지를 몰래 읊조리던, 이제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꽤나 예뻤던 여학생 이었을 것이다. 나는 최영미라는 시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금 언급한 그녀에 대한 나의 상상은 어느 정도는 정확하리라 확신한다. 1994년에 '창작과 비평사'를 통해 그녀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하나 냈다. 시인 황지우는 그녀의 시집을 '도발적이고 황당하다'라고 평한다. "잔치는 끝났다"라고 말하는 이 시집은 이념의 대홍수 이후 그것의 범람에 가담했던 세대의 기록으로서,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어떤 것, 즉 이념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것이 사라져 버린 그 빈자리를 섬뜩하게 끄집어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바로 그 사라져 버린 빈자리에 대한 확인으로부터 출발한다.
사람들은 지금 시대의 특징을 그 빈자리에서 일어나는 해체성과 해체된 것들의 새로운 조합이라고 표현한다. 과학, 철학,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의 관계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각기 나름대로 변화하는데 그것이 서로 긴밀한 음모 하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현장의 분위기를 익히고 새로 등장한 낯선 말들이 지닌 어법에 익숙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접근 역시, 기존의 문법, 기존의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각기 떨어져 존재하는 개별 주체들이 지닌 새로운 독법을 익혀 가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리라 본다.
이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 번째 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발생하기 前단계에 대한 부분이다. 물리학의 변천사를 중심으로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포스트모더니즘 발생 이전의 지배적 관계였던 근대성의 제 법칙과 그것의 붕괴 과정에 대해 다룬다. 두 번째 이야기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체적 현상과 관계된 부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세계사의 전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 사회 내에서 형성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위상을 90년대에 등장한 소설과 연관시켜 풀어나가려 한다. 마지막에 가서는 구약성서를 중심으로한 성서 연구 방법론의 변화와 새로운 성서 읽기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 글의 도입부에 소개했던 최영미씨의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원래 이 글의 결론부에 가서 실으려 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단상을 비교적 담담하게 표현하였고, 이 글 전체에 대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 앞으로 끌어올렸음을 밝혀 둔다.
2. Post-modernism의 태생적 배경
(1) Paradigm Shift
새로움이란 기존의 것, 낡은 것을 전제로 한 상대적 개념이며, 새로움은 또한 현 상태를 유지하는 최선의 길이다. 엔트로피 법칙은 "새로워지지 않으면 끊임없이 무질서와 혼돈에 이를 수밖에 없다" 고 밝히고 있다. 결국, 새로움, 즉 혁명이란 일정 단계를 밟으며 서서히 점진적으로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내적 자양분이 쌓이는 기간이 분명 상존하나 혁명 자체를 따로 떼어 보면 성경에 언급된 것처럼 도둑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과학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점진적 변화 말고, 사상체계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대대적인 변화가,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에 있음을 '토마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패러다임이란 동시대를 사는 사람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일반적인 감수성으로, 예컨대 대부분의 과학은 당대의 과학자 모두가 공유하는 패러다임 안에서 주어진 수수께끼를 푸는 일상적인 새로움이다. 그러나 기존의 감수성과 사유 방식을 뒤엎고 새롭게 등장하는 패러다임이 있을 때 그것은 사회 전반에 혼란과 반발, 그리고 물의를 일으키는 문화적인 사건이 된다.
이제부터 접근할 내용은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는 과학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부분이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우리는 과학 자체에 내포된 이론적 특징이 어떻게 사상 일반의 법칙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와는 어떤 함수 관계가 있는지 파악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근대 물리학을 대표했던 패러다임이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해체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날 지구 문명 전반을 지배하는 과학은 17세기 서구에서 발생한 이른바 '신 과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은 중세의 암흑기를 헤쳐 나와 왜곡된 종교의 이름으로 탄압 받던 인간의 상상력을 해방시켰고 근대 과학 혁명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는데, 그 밑바탕에는 학문은 절대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순수 이성'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었다.
'뉴우튼 식'이라고 불리는 17세기 '신 과학'은 오늘날 '고전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그는 힘을 두 물체의 상호작용에서 파악하고 물체에서 중량 이외의 속성은 모두 무시하였다. 그리고 질량의 개념을 추상화하여 힘에 의하여 생긴 가속도로부터 힘과 질량의 관계를 명백히 밝혔으며 그 결과로 F=ma 라는 일반적인 운동 방정식이 도출되게 된다. m은 질량(대상)을 뜻하며 a는 가속도(단위 시간당 움직인 거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질량이란 좌표로 계산 가능한 구체적 공간에 위치함을 의미하며 속도란 시간성이 내포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뉴우튼은 시간을 흐르는 강물이 다리를 스쳐 지나가는 절대적인 흐름으로 생각했고 공간 역시 그 속에 물체가 여하히 배열되어 움직여 변하든 간에 공간 자체는 변동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하였다. 즉 공간과 관계없는 시간, 시간과 관계없는 공간, 이것이 뉴우튼의 절대시간, 절대공간 이다. 그는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탕으로 모든 자연현상(물리적 양)을 통일적으로 기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자연현상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는 초기 조건을 알기만 하면 앞으로의 상태는 물론, 과거에 선행되었던 상태도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는 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전기 현상에 대한 발견과 더불어, 열역학 이론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고전 물리학의 내용은 점차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물질세계는 모두 열역학의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엔트로피(무질서)를 늘려 가다가 결국은 열사망(모든 질서가 사라진 최대의 혼돈)이라는 최종 단계에 이르고 말 것이라는 결론은 19세기 과학자들을 몹시 불안하게 하였는데,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거대한 기계 장치인 우리의 우주는 언젠가는 활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불가피 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톱니바퀴로 구성된 기계인 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던 결정론, 즉 특정 원인과 일정 결과로 이어지던 인과율의 엄격성이 조금씩 완화되면서, 뉴우튼이 주장했던 딱딱한 물질은 대신 율동과 형상 그리고 추상적인 질서의 꼴을 드러내는 것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결국, 뉴우튼의 고전 물리학은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의 원리>,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등 새로운 이론의 등장으로 인해 그것이 지닌 한계성들을 하나 둘씩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인쉬타인에게 있어서 시간은 관측자의 입장에 따라 서로 달라지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시간 규정은 상대적인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시간은 언제나 어떤 입각지(장소), 즉 공간상의 시간이 되는 것이므로, 공간은 시간을 포함한 공간, 그리고 공간을 포함한 시간으로서, 여기에는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이 있게된다. 물체가 지닌 직접적 형태의 고정성이나 불변성은 유지되지 못하고, 언제나 관측자에 있어 상대적, 상관적으로 규정되며, 이러한 사고의 결과는 결국, 중력, 에너지, 질량등 일반적인 물리적 양도 그 자체로서 독립되며 고정된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상대적이며 동일한 본질의 서로 상이한 상태로 규정된다. 이 새로운 세계관은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것은 그 동안 우리를 지배해 온 자연관, 세계관의 변화를 시사한다.
하이젠베르크 역시 미시 물리학 연구를 통해 고전 물리학의 모순을 지적하였다. 속도를 측정하려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고, 위치를 가늠하려면 속도를 제대로 잴 수 없다는 이른바 '불확정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주체 그리고 그 관찰자와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벌어지는 사건 혹은 관찰되는 객체라는 식으로 선명히 구분되었던 근대 과학의 주체/객체의 이분법은 무너지게 된다.
프리고진은 화학반응에서 흩어지는 구조의 연구를 기초로 '힘찬 요동을 통해 생겨나는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라는 물질 생성의 기본 원리를 발견하였다. 혼돈의 기본 상태를 일컫는 흩어지는 구조란 에너지와 물질이 끊임없이 무질서하게 흐르며 유지되는 힘찬 요동의 상태로서, 이러한 혼돈의 극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물질의 원리'이며, 자연현상 전반에 깔려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더욱이 프리고진이 발견한 '흩어지는 구조'의 원리는 화학반응의 차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원자의 세계, 은하계, 생명체의 세포 단위, 우리의 몸, 심지어는 방대한 사회나 문화권에서도 모두 적용된다. 이 이론은 '스스로 짜집는 우주'의 개념으로 요약된다.'스스로 짜집기'란 개념은 고전 물리학이 확립한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20세기 신 과학의 핵심어이다.'주체가 제어하는 객체'라는 식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스스로를 조절하여 자기 모습을 만들고 또 유지'하는 생기론 쪽으로 대자연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추세는 물리학뿐만이 아니라, 사상체계 전반에 걸쳐 커다란 파문을 던져 주고 있다.
(2) 근대성의 문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를 다루기 이전에, 우선 '모더니티'라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모더니티'는 르네상스를 통해 극복된 '중세'와는 축을 달리하는 '근대'라는 시대구분의 문제와 산업혁명 이전의 수공업에서 산업혁명 이후의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이행되는 시기에 파생된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과 연관된다. 전자를 '해방의 근대성'이라고 하고 후자를 '기술의 근대성'이라 명명할 때, 이 두 가지 근대성은 어느 지점까지는 협력 관계였으나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유럽이 민족국가로 재편되는 과정을 겪고 난 후 두 가지 근대성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점이 드러나게 된다.
즉,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의 근대성'에 '인간 해방의 근대성'이 종속되고, '기술의 근대성'이 진행되는 한도 내에서 '해방의 근대성'이 유보되는 형태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서구 사회에 퍼진 식민지 쟁탈 경쟁은 세계곳곳으로 번져나가 제3세계 국가 거의 대부분을 그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또한 산업 혁명과 더불어 파생된 초기 자본주의는 식민지 경영의 방향을 설정하여 원료의 공급지와 제품의 소비지로서의 식민지가 지닌 가치를 자본가들에게 각인 시켜 주었다. 그 결과 자본가들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데 이에 대한 문제점을 가장 잘 지적한 사람이 맑스였다.
맑스는 '근대성의 문제'란 '근대적인 생활 방식의 문제'라고 표현한다. 맑스가 말하는 생활양식이란 소비유형이니 이른바 '라이프 스타일'과 같은 단어가 아니라, '물질적 생활 자체의 생산'을 뜻한다 하겠다. 그는 자본과 노동의 분업으로 특징 지어지는 당시의 자본주의 질서를 노동의 소외 개념으로 분석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제관계에 놓여 있는 현실적 인간의 문제를 다를 수 있는 철학적 토대를 쌓으려고 노력하였다. 맑스는 소외된 노동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였고 인간의 본질과 연관시켜 자본과 노동과 분업의 성격을 규명하였다. 그는 노동의 소외가 근원적으로 생산 수단의 사유와 노동간의 분리에서 연유하므로 소외의 폐기는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제도의 폐지와 더불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맑스가 주장하는 '생활양식의 근대성'이란 사람들의 생활이 특정한 형태로 반복되는, 혹은 반복되게 하는 조건의 문제, 즉, 조직 내에서 사람들의 삶과 양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진행 될 때, 거기에는 분명 커다란 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나아가 이 질적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를 추적해야 함을 뜻한다. 이러한 맑스의 주장은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공감을 형성하였고, 이는 레닌에 의한 러시아 공산화로 연결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산화는 인류에게 또다시 새로운 갈등과 선택을 요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러시아 공산화 이전까지의 근대적 사회는 계약 이론에 입각하여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하였다. 한쪽에는 개인간의 상호성이, 그 반대편에는 사회 전체의 중심성이, 그 중간에 개개인의 연합이 상존 하였는데, 러시아 공산화를 계기로 근대화는 두 가지 얼굴로 변화 된 것이다. 하나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이는 자유주의적 양상으로, 개인의 상호성이 시장에서의 교환 관계로 바뀌면서 동시에 시장 관계가 일상화되는 반면, 다른 하나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보듯이, 사회의 중심성이 숭배되면서 국가주의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운동이야말로 끔찍한 삶이 지겹도록 반복되는 자본주의의 왜곡된 근대성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요, 대안이라는 공감을 쌓아 가게 된다.
그러나,68세대의 패배와 체코 자유화 운동의 좌절을 겪은 후, 그들이 생각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과 꿈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견되는 것과 동일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후 점점 진보 세력의 결집은 둔해지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측 모두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주체의 해체'에 입각하여 이전까지 인간의 삶을 지배했던 양식들, 즉, 목적론이나 계몽주의적 유토피아 이념에 따른 동일성과 획일성, 그를 지탱하는 사회 체제를 부정한다. 결국, '주체의 해체'라는 구호는 자유로운 개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추상적으로만 한정하고 현실적으로는 억압당했던 주체에 관한 논리를 해체하여, 자유롭고 구체적인 개인이 역사 전면에 등장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라 하겠다.
3.포스트모더니즘 증후군
(1) 변방에서 중심으로
1917년 레닌은 러시아 공산화에 성공한다. 그로부터 1989년까지 20세기 지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시험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양 체제는 심각한 대립을 전개한다. 20세기 내내 서구 사회가 지속적으로 진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체제의 발전은 냉전으로 인해 얼어붙어 있었고, 이는 결국 변혁을 담보할 담론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등장한다.
이 시기의 민주주의를 '뉴튼적 민주주의'라 부른다. 이는 마치 시계처럼 폐쇄된 시스템 내부에서, 인과관계라는 단순한 기계적 법칙에 의거하여 구성된 체제를 의미한다. 즉, 소수의 재산 소유자 집단이 군대와 안정된 통화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해 줄 정부를 국민 국가라는 테두리 내에서 선출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소련 붕괴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차차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냉전 시대를 지배한 대중 정당과 그 동안 자신들의 다양한 이해가 무시당했다고 느낀 대중들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상극이 상존 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제는 더 이상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가 통하지 않음을 뜻한다. 주체가 하나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세계는 점점 다원화되어 가고 있고, 그 움직임은 단일하고 강력한 리더십에 의존하지 않는다.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조정과 타협의 역학 관계 속에서 사회변동의 벡터는 결정된다. 따라서 한 개인이 속하는 집단은 중층적일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정체성도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지구 곳곳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모델 형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미숙하고도 대중적인 첫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 시도들은 전통적 뉴우튼 모델의 국가에서 묵살되었던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전시대의 체제나 이념에 의해 구속되었던 개별 문화와 개별 주체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부각이 그것이다. 연방으로 묶여 있었던 국가들이 독립하고, 그 국가들은 민족으로 다시 나뉘고 심지어는 부족으로까지 세분화되는 세포 분열을 해나간다. 이러는 과정에서 중앙의 문화가 해체되고 변방의 문화가 부각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는 자본주의 출범 이후 근대를 특정 지어 온 '국민 국가'의 해체로까지 이어진다. 과거 2백년간 굳건히 유지되어 온 국경은 다국적 자본과 상품의 급속한 이동으로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북미자유무역지대(NAFTA)같은 전대미문의 국가합병, 지역통합의 움직임도 왕성하다. 과거 한나라의 독자성을 규정했던 고유문화 역시 방송, 통신위성, 광통신망을 통한 정보의 홍수로 인해 급속히 국적성을 상실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최근의 '지구화'의 움직임 뒤편에는 '신 국가주의', '제1세계 중심주의'로 상징되는 쌍생아의 얼굴이 발견된다. 이들 제1세계의 정치 세력과 자본은 급속히 안정성을 잃어 가는 기득권 고수를 위해 '국가 경쟁력 강화', '국가 총력 체제'같은 캐치프레이즈 아래, '신 국가주의'를 자국민에게 주입하고 있다. 동시에 2/3세계에 대해서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경제 국경 완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개도국은 개도국대로 시장경제와 수출 드라이브를 주 정책으로 채택하여, '부국강병'의 명분 아래 국가주의 개발 독재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촌에서는 두 가지 판이한 움직임이 상호 대립, 갈등하며 쌍방향으로 동시 역진행중이다. 과연 어느 움직임이 도도한 역사의 본류이고, 어느 쪽이 역사진행을 거부하는 탁류인가? 대다수의 미래 학자들은 경제 국민 국가의 몰락을 불가항력의 대세로 파악하면서도, 과연 이 같은 국민 국가 몰락, 초 국가 시대의 출현이 인류에게 복이 될지, 흉이 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21세기를 위한 준비>의 저자 폴. 케네디는 권력과 부, 지식의 집중화로 빈부 격차와 사회 불안이 증폭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린다. 반면,<제3의 물결>로 유명한 엘빈·토플러는 중앙 국가권력의 도태와 이에 따른 권력 분산, 초국가 시민사회의 출현, 정보복지 혁명 등을 이유로 희망 섞인 전망을 하고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초국가나 탈국가, 지구화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 자체가 지닌 모호성이다. 어쩌면 이런 '모호성'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보편적인 정서일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 모호성에 끊임없이 현혹되어 끌려가지만 모호성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에 원래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 '주체적 개인'이라는 것이 진정 이 시대에 존재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주체적'이어야 한다고 떠드는 '개인' 역시, '가공된 실재'가 이룩한 모호한 개념은 아닌지? 어쩌면, 허구에 의해 리얼리티가 제거 당한 채, 내 삶과 내가 자유자재로 통제해야 할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허구적 대상(매체)을 통해야만 비로소 획득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누리는 것은 개인성의 대리물로서의 연속들일 뿐이고 진정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개인성'이라는 환상을 주입하고 있는 다양한 배후들이다. 베일에 가려진 그 '다양한 배후'들이 바로, 우리를 지배하는 '다수'와 '평균'으로 자리잡는다. 이것은 숫자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수적이다'라는 개념은 언제나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권력과 결부되어 우리를 억압하는 지배적인 가치이고, 지배적인 관계이며, 지배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는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의혹과 마주선다. 어떤 일정 수순을 밟으며 이 모든 절차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그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지만 거대 자본과 거대 제국을 꿈꾸는 어떤 힘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감춰진 힘은 다양성의 확산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으며, 다양성의 공유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하나의 틀 안에 가두려한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언급되는 진정한 해체의 의미는 이런 다수에 의해 얽혀진 관계구조, 즉 그것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얼개를 풀어헤치는 일일 것이다. 해체론에 대한 부분은 뒤에 가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2) 90년대 소설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포스트모더니즘 단상
한국 사회 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구 사회주의 붕괴와 때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맑시즘을 해체하는 형식으로 한국 내에서 수용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작가들, 뭉뚱그려 90년대 소설가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대들 - 다시 말해 광주에 대한 원죄 의식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동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이념의 확신을 주었던 시대를 살아온 세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이념의 불꽃을 안내판으로 삼았던 세대, 한국전쟁 이후 가장 뜨겁고 감동적인 역사가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것을 직접 목도한 세대 - 이들은 80년대에 우리 모두가 그랬듯이 한때 정치적 환상의 포로가 되었었던 사람들이며, 그런 만큼 90년대의 무력감에 휩싸인 현실에 직면하여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정치적 좌절과 비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좌절과 비애는 외면적으로는 그들을 신경질적인 인간으로 만들며, 내면적으로는 집단의 가치를 신뢰치 않는 외로운 실존적 개인으로 만든다. 그래서 과거의 열정적 시기를 살던 때와 비교할 때 그들의 지금 모습은 외롭고 쓸쓸하다. 그럼 여기서 80년대와 90년대라는 첨예한 칼날이 맞부딪치던 시점에 등장했던 두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90년대 소설이 지닌 상실과 비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지난 연대 내내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환상에 뜨겁게 사로잡혀 있었고, 이제 그것은 빈틈없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그 깨어진 환상 속에 우리들의 현실, 우리들의 새로운 연대라는 게 던져져 있을 뿐이다......새로운 연대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제 우리들에게 있어 정치란 그저 혐오의 대상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당하고 있으니까......혐오의 대상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침을 밷어주는 그 일밖에 달리 더는 아무것도 없다.
-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내일 말이야, 내일......정말 가두로 나올까......시청 앞에, 종로 3가 그 넓디넓은 대로에, 인천시민회관 앞에서처럼 사람들이 몰려나올까.....그때 난 거기 있었거든......팔팔했었지.....두 김씨 보러 갔었거든......하지만 사정이 많이 달라졌어......요즘 사람들 말야......학생 하나 두들겨 맞았다고 눈꺼풀도 꿈쩍하지 않더라구......형, 내일 거기 갈 거야......그러면서 P는 여관 앞으로 성큼 들어가 숙박계를 쓰고, 온돌로 주슈,라고 말했었다.
- 하창수의 <담배와 창문>에서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하창수의 <담배와 창문>은 이들의 소설적 출발점이 80년대적인 신념의 상실 뒤에 남은 실존적 외로움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들은 모두 90년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제멋대로의 다양성이 나타나게 된 이유를 이념의 불꽃이 사그라진 뒤의 적막감에서 찾고있다. 그들의 작품에 의하면 90년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실존적 고립이란 80년대의 정치적 열정이 사라진 폐허 위에 밀려온 정적과 같은 것이다. 80년대가 '우리'라는 대명사로 함께 행동하던 시대였다면 90년대는 '나'라는 대명사로 흩어져 나가는 시대이다. 이 흩어진 개인들의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다양성, 그것이 - 비록 광기의 시대였다고 할지라도-80년대의 '우리'라는 대명사의 견고한 연대감에 대한 지울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의 "그래도 우리는 아직 둘이쟎아. 아니 둘이니까 아직 우리쟎아. 안 그래?" 라는 말은 눈물겹다.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 할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남겨진 마지막 두 사람. 그 마지노선을 지키려는 두 사람의 안타까운 몸부림이 이 말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박상우와 박창수의 소설이 보여주는 두 사람이 이루는 '우리',혹은 두 사람마저 이루지 못하는 우리 속에는 이미 중심성이란 존재치 않는다.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번민과 좌절은 점차 숙성되어 가는 듯하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우리는 신경숙을 꼽는다.
열 아홉의 나는 서울에서 영등포밖에 알질 못한다. 영등포 바깥이라고는 서울역과 큰오빠가 크리스마스 때 데리고 갔던 명동 성당과 코리아 극장과 전철을 타고 종각에서 내리면 되었던 종로 서적과 외사촌이 살고 있는 용산의 그 골목밖에......열 아홉의 나, 창과 여자애와 헤어져 외딴방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불을 끄고 오래 누워있다. 가슴이 사무친다.
- 신경숙,<외딴방>에서
신경숙.<풍금이 있던 그 자리>,<깊은 슬픔>,<외딴방>으로 이제 그녀는 그 이름만으로도 책이 팔린다는 작가군에 합류했다고 평가받는다. 평론가들에 의하면 그녀의 소설은 독자들의 내면에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지나온 한 시절의 깊고도 내밀한 어둠 속에서 스쳐 갔던 풍경이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동안 홀연히 재생되어 섬광처럼 눈앞에 떠오른댄다.그것을 '처연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존재들이 자아내는 '눈부신 연민'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신경숙의 글에는 이상한 패배 의식과 허무주의를 동반한다. 착하고 예쁜 꿈을 꾸지만 언제나 역사라는 굴레 앞에서 그 꿈을 박탈당하고 소멸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무한대로 확산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 무한소로 수렴되어야만 하는, 그래서 나중에 자신들의 왜소함에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신경숙 특유의 글쓰기와 분위기에 녹아들어 독자들을 몰아쳐간다. 소설<외딴방>역시 그런 식이다. 절대권력과 절대 권력 사이의 공백기에 공장에 다녔던, 나중에 소설가로 성공한 소녀의 차분한 고백이다. 일하다 잠시 옥상에 올라와 겨우 햇빛을 쬐는 공장의 소녀들, 그 무렵 어느 한구석에 창백하게 존재하였던 희재언니, 자기보다 세살 많았고 자기와 함께 학교를 다녔지만 대학을 못 가고 대학간 자기를 보며 부러워하던 외사촌, 낮에는 방위병으로 아침, 저녁으로는 학원 강사로 가난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큰오빠,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이 아주 질서 있게 구성해 놓은 막막하고 삭막한 공간에서 결코 예외 일수 없는 자신, 여기서 작가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폭력의 실체에 대응하지 않고 자기 속에 외딴방을 만들어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칩거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문제를 회피하려한다. 이는 결국 우리가 함께 보듬어가야할 공동체에 대한 허무를 암시한다. 어쩌면 그녀는 철저하고도 순수한 자아에로의 도피밖에는 특별히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작가 신경숙은 90년대 한복판이 지닌 그 공허함을 가장 객관적으로 꿰뚫고 있는 작가이고, 그 현장이 지닌 참담함을 가장 잘 지적하고 있는 작가임이 틀림없다.
요약하면,90년대 작가들을 통해 본 한국 사회는 80년대 진보적 변혁 운동의 좌절과 소련 붕괴라는 역사적 배경에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시대사조가 맞물려 체제 비판 세력을 해체하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던 거대 담론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누구도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보수주의의 전횡에 대해, 비합리적인 관행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두들 입만 굳게 다문 채 침묵만 지키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적 참여 자체가 이제는 아무런 의미 없는 과격한 행위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사회 내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분명 또 다른 동일성과 획일성을 강요하는 억압이며, 그 본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 사회가 지닌 학문의 풍토성에 대해 잠시 언급하려 한다. 가령 외국에서 어떠한 사조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고민 없이 무턱대고 번역만 했지, 더 이상의 이론 전개를 스스로 이루어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우리의 언어로 다듬는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의미이며, 우리의 문제와 모순, 그리고 여러 가지 변동 상황에 대한 주체적 정리가 결여된 데서 유래한다. 과거 80년대 맑스주의의 수용에 있어 근본적인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판적인 의식이 결여된 채 맹신적인 종교적 의식의 수준에서 수용된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와 똑같은 현상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 문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발생할 수 있었던 원인들과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분명한 것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세계는 전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틀로 엮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들이 21세기를 4년 앞둔 오늘의 신학도들에게 던지는 물음은 무엇이겠는가?
4. Post-modernism시대의 새로운 해석학
(1) 새로운 성서 이해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성서 이해를 요구한다. 종전까지의 성서 교육은 지식 추구를 위한 과거 지향적인 내용 파악에 치중했었다. 폰라드로부터 시작된 구약 해석의 연구 방법은 이스라엘의 구원사에 초점을 맞춘,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져 가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즉,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한 분에 대한 철저한 신앙을 강조한 신앙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방법을 '통시적 연구 방법'이라 하는데, 이는 수직적이고 부분 분석적이며 역사를 축으로 하는 역사검증방법이다.문서비평,양식비평,전승비평,편집비평등이 다 이에 속하는 연구방법이다. 통시적 연구 방법이 '드러난 역사'에 대한 집착이라면, 공시적 연구 방법은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발굴이라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즉, 공시적 성서 연구 방법에서는 성서의 역사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인 역사가 아니라, '역사 같은 이야기'라고 본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이 '역사'와 '이야기'에 대한 구분이다. 역사가 어떤 거대한 '틀'내지는 '주제'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일종의 수단적 의미로서 서술 방법에 해당한다. 이 말은 역사에 대한 진위를 fiction 또는 non-fiction이라는 잣대로 규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역사와 이야기의 구분 기준이 '역사적'이어야 하고'비역사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탈피해야 진정 자유롭게 성서와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객관적 사실은 있으나 순수 객관적 역사는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바아는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계시하신다'는 주장에 의의를 제기하고 성서의 설화는 역사라기 보다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서의 역사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인 역사가 아니라,'역사 같은 이야기'라고 보았다. 이런 이유로 바아는 폰라드의 구원사 개념에 대해 열띤 비판을 가한다. 구약성서가 구원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같은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중심한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상층구조의 역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하층구조, 이른바 민초들의 역사라는 또 하나의 선을 상정해볼 수 있다. 상층구조의 역사관은 공식적인 재배 체제의 역사로서, 하나님은 선하시며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으로 찬양한다. 그러나, 하층구조의 역사관은 하나님의 무관심과 사회의 구조적인 억압을 경험하는 이들의 삶에 주목한다. 이들에게는 야훼가 멀리 떨어져 있으며, 불러도 대답 없는 무관심한 분이다. 부르그만은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하거나 이스라엘의 역사시를 다시 읽는다면 변두리에 쳐져 있는 사람들의 소외와 울분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층 구조의 세속사도 상층구조의 구원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인 아담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과 해체론의 상관성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의 틀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이러한 관습들에 대한 반항으로 파악한다. 즉, 기초를 흔들어 놓는 것(antifoundational),전체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것(antitotolizing),신화화를 반대하는 것(demistifying)등이 그 구체적 예이다. 기초를 흔들어 놓는다는 것은 어느 진리를 설정하는 기본적인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며, 전체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어느 진리도 전체를 다 망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신화화를 반대하는 것은 어떤 가정이나 진리가 이념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사고 체제는 더 이상의 절대적인 진리나 전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해체론이 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해체론에 따르면, 구조주의는 말과 의미 사이에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나 해체론은 그 관계를 부정한다. 그리고 구조주의는 남자와 여자, 빛과 어둠 같은 대칭 구조로 앞의 것(예: 남자, 빛)을 선호하는 인위적인 구조를 구축하지만 해체론은 이같은 인위적 구조 자체를 거부한다. 즉 구조주의는 '이것은 저것이 아님'(예: 남자는 여자가 아님)이란 상관관계에서 그 의미를 찾지만, 해체론은 절대적 존재를 부인하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대칭을 이루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해체론의 입장에서 성서를 해석한다는 것은 기초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므로, 해석을 유도할 수 있는 절대적인 본문, 저자, 의미, 실질적인 역사적 사건, 절대적 권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체론은 풀린 실을 잡아당김으로 옷 전체를 다 헤쳐 버리는 것처럼 본문이 주장하는 권위적인 정체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렇듯, 포스트모던시대는 우리에게 화석화된 성서해석에서 벗어나 본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한다.
(2) 새로운 성서읽기
부르그만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색을 "문서에서 구전으로, 범 우주적인 데서 개체적인 데로, 일반적인 데서 지역적인 데로, 무시간대에서 시간대로의 이동이라 보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처한 상황(context)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이 범 우주적이거나 절대적일 수 없고 단지 우리가 처한 상황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이제는 교리나 체계를 내세워 '위대한 구원 역사'의 교훈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위한 '작은 이야기'의 상상력으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작은 드라마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의미는 본문 그 자체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본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던시대 성서의 주제는 과거의 회상, 현재의 계약, 미래의 소망을 통한 '또 다른 세계'를 제시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같은 성서 읽기는 있는 그대로의 본문, 즉 본문의 애매성과 복합성, 모순성 등을 그대로 수용함을 의미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본문의 애매성은 하나님의 애매성과 삶 자체의 애매성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부르그만은 이집트에 내린 장자 재앙 이야기(출 11장)본문에서 어느 누가 하루 아침 자고 일어났을 때 바로는 울며 히브리 노예들이 춤추리라고 상상했겠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늘 자고 깨고 똑같은 태양이 뜨고 우리의 현 상태가 계속되리라고 생각하지만 성서 본문은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해 다윗에게 기름 붓는 이야기(삼상16장)본문에서 사무엘은 '사울이 자기를 죽일 터이니 어떻게 갈 수 있느냐?'고 반문하니 야훼는 사무엘에게 거짓말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놀랍게도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신다. 그리고 혁명을 사주하기도 하신다. 하나님의 거짓말은 현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 체제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르그만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성서 해석은 작은 본문 하나 하나가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추구할 때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본다. 부르그만이 예로 든 본문들은 우리의 기존 생각들을 뒤엎는 것들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상상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부르그만은 전통적 권위주의 체계 하에서 익숙해 있던 세계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내닫는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도, 이스라엘의 백성이 하나님의 새로움을 느끼며 동행했듯이 새로운 또 다른 세계를 열어 줄 것이라는 확신을 성서 본문은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제 우리는 성서 주변에 머물렀던 존재들이 중앙으로 편입해 들어오는 과정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는 변두리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체제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 간 여인들을 일으키고, 가난한 민초들, 거절당하고 소외당한 존재들이 자아내는 절망감에 귀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는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에서가 아니라 변두리였던 갈릴리의 초라한 어부들에서부터 번져나갔고,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철옹성 여리고는 강력한 남성적 지배력이 아닌 아주 소박하고 초라한 창녀 라합에 의해 무너져 내렸으며(숫2장), 삭개오가 지녔던 장애의 아픔과 좌절은 하늘나라의 징표로 승격된다(눅19). 또한, 성령의 역사는 '노아의 방주'설화에도 나타나듯이, 새 역사 창조의 대열에 부정한 짐승 2쌍도 포함시켜, 아웃사이드에서 방황하는 존재들에 대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한 집착과 애정을 드러내 보인다(창7장).
지금까지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새로운 성서 이해가 chronos적인 통시적 방법에서 kairos적인 공시적 방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전자가 단선적이고 화석화된 성격이라면, 후자는 동시적(synchronous)이고 자유로운 구조를 지닌다. 그만큼 우리에게 부여되는 선택의 폭이 증가하였다는 의미인데, 그 증폭된 여유가 자칫 우리가 지닌 성서에 대한 편견을 부각시키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를 둘러싼 편견과 관성으로부터의 탈피 !
5. 에필로그 : 너와 나. 새로운 접속, 새로운 연대를 꿈꾸며...
90년대 후반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니다. 아니라기보다는 '우리'이기를 거부한다. 우리로 묶이는 것을, 그렇게 이름 불리는 것을 거절하려고 한다. '우리'라는 말이 당연히 자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다 돌연 자신이 그 우리 속에서 소리소문 없이 실종되었다고 느낄 때, 우리라는 말을 내뱉고 있는 사람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때 우리는 '우리'라는 말이 음모하는 수많은 차이들 - 예를 들면 性,계급, 지역, 연령, 인종적 차이들에 대해 깨닫는다. 그리고 역으로 바로 그 차이들 때문에 자신이 그 '우리'속에서 '인지'되거나 '승인'되지 못함을 깨닫는다. 그 결과 막연한 우리가 아닌 구체적인 수많은 '나'와 '너'가 생겨나게 된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의 역학 구조는 '우리'라는 전체성에서 이탈해 나오는 그토록 수많은 '나'와'너'에 대한 관심과 배제, 집착과 무관심, 접촉과 일탈이라는 상반된 대응 사이에서 무엇을 획득할 것인가에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그 대안으로 다수에서 이탈해 나오는 소수자들의 접속과 횡적인 연대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접속과 횡적인 연대란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위한 창조 내지 생성으로서의 역동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수의 횡포로부터 탈피하려는 모든 소수자들은 각자가 갖고 있는 견해 상의 차이를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여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연대와 우정어린 비판을 통해 서로 접속하면서 새로운 것을 생성해 내야 한다. 설사 그 과정에서 답변이 당장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로운 길에 대한 실험이 중단되어서도 안되고, 증대하는 차이들과 갈등의 복합성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합리성,주체형성,인과관계,과학,실천등을 적절히 배치시키는 작업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의차이,세대차이,지역차이,계급차이,노선차이등 무수한 차이들이 자아내는 관계 속에서 그들이 자아내는 일정한 방식으로 엮어져 왔다. 그러나 그 차이를 하나로 엮었던 방식은 이제 그 기능적인 면에 있어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새로운 얼개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는 일사불란한 통제가 아니라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즉 타자의 타자다움을 인정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 얽혀지는 새로운 통합 방식을 추구해야 할 때이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의 신학이란 갈수록 개체화되어 가는, 전체에서 일탈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 소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탈출해 나오는 사람들을 다시 하나의 깃발 아래 헤쳐 모이도록 하는 음모를 꾸며서는 안된다. 기독교 이 천년 역사 동안 계속 전개된 주류와 비주류의 싸움에서, 전체라는 이름으로 희생된, 전체이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아직까지도 그 전체성에 대한 끈질긴 집착을 보이는 보이지 않는 벽들을 허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교회 전통에 대한 전면 부정이 아니라, 발전적 해체를 통해 새로운 인식의 장을 확보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합쳐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라 할 수 있다.
<참고도서>
1. 폰라드, {구약성서 신학』, 허혁譯, 분도춢판사, 1992
2. 갓월드, {히브리성서 사회·문화적 연구』, 김상기譯, 한국신학연구 소, 1987
3. 장일선, {다윗 왕가 역사 이야기』, 대한기독교서회, 1987
4. 장일선,{구약성서와 현대생활』, 대한기독교서회, 1995
5. 김경재, {문화신학 담론』, 대한기독교서회, 1997
6. 김경재, {解釋學과 宗敎神學』, 한국신학연구소, 1994
7. {신학연구 제38집』, 한신대 출판부, 1997
8.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 {세계철학사 제1-5권』, 이을호譯, 중원문화,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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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J.K.갈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이은우譯, 대일서관, 1982
11.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이성근譯, 서한사, 1983
12. 폴 케네디, {21세기를 위한 준비}, 이일수譯, 한국경제신문사, 1993
13. 박익수, {科學의 反思想}, 과학세기사, 1986
14. F.카프라,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이성범譯, 범양사, 1985
15. 일리야 프리고진, {혼돈으로 부터의 질서}, 신국조譯, 고려원 미디어, 1993
16.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김명자譯, 정음사, 1981
17.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 김명자譯, 동아출판사, 1992
18.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 비평사, 1994
19. 구효서外, {90년대 작가들}, 도서출판 진화, 1991
20.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1995
21. {1985-1995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1. 시작하며 :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는 운동가를
술보다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전문
최영미라는 시인이 있다. 아마도 81이나 82년도에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에서 그녀는 역사를 공부했다. 그 당시 대학을 다녔던 대부분의 인문 학도들이 그랬듯이 그녀 역시 맑스와 레닌에 심취하여 '강좌철학'이니 '세계철학사'니 같은 책들을 옆에 끼고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가·투가 있을 때면 택시 뒷자리에 앉아 가슴을 두근거리며 가방에 들어 있는 꽃병의 숫자가 몇 개 였는지를 몰래 읊조리던, 이제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꽤나 예뻤던 여학생 이었을 것이다. 나는 최영미라는 시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금 언급한 그녀에 대한 나의 상상은 어느 정도는 정확하리라 확신한다. 1994년에 '창작과 비평사'를 통해 그녀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하나 냈다. 시인 황지우는 그녀의 시집을 '도발적이고 황당하다'라고 평한다. "잔치는 끝났다"라고 말하는 이 시집은 이념의 대홍수 이후 그것의 범람에 가담했던 세대의 기록으로서,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어떤 것, 즉 이념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것이 사라져 버린 그 빈자리를 섬뜩하게 끄집어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바로 그 사라져 버린 빈자리에 대한 확인으로부터 출발한다.
사람들은 지금 시대의 특징을 그 빈자리에서 일어나는 해체성과 해체된 것들의 새로운 조합이라고 표현한다. 과학, 철학,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의 관계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각기 나름대로 변화하는데 그것이 서로 긴밀한 음모 하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현장의 분위기를 익히고 새로 등장한 낯선 말들이 지닌 어법에 익숙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접근 역시, 기존의 문법, 기존의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각기 떨어져 존재하는 개별 주체들이 지닌 새로운 독법을 익혀 가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리라 본다.
이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 번째 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발생하기 前단계에 대한 부분이다. 물리학의 변천사를 중심으로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포스트모더니즘 발생 이전의 지배적 관계였던 근대성의 제 법칙과 그것의 붕괴 과정에 대해 다룬다. 두 번째 이야기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체적 현상과 관계된 부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세계사의 전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 사회 내에서 형성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위상을 90년대에 등장한 소설과 연관시켜 풀어나가려 한다. 마지막에 가서는 구약성서를 중심으로한 성서 연구 방법론의 변화와 새로운 성서 읽기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 글의 도입부에 소개했던 최영미씨의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원래 이 글의 결론부에 가서 실으려 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단상을 비교적 담담하게 표현하였고, 이 글 전체에 대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 앞으로 끌어올렸음을 밝혀 둔다.
2. Post-modernism의 태생적 배경
(1) Paradigm Shift
새로움이란 기존의 것, 낡은 것을 전제로 한 상대적 개념이며, 새로움은 또한 현 상태를 유지하는 최선의 길이다. 엔트로피 법칙은 "새로워지지 않으면 끊임없이 무질서와 혼돈에 이를 수밖에 없다" 고 밝히고 있다. 결국, 새로움, 즉 혁명이란 일정 단계를 밟으며 서서히 점진적으로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내적 자양분이 쌓이는 기간이 분명 상존하나 혁명 자체를 따로 떼어 보면 성경에 언급된 것처럼 도둑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과학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점진적 변화 말고, 사상체계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대대적인 변화가,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에 있음을 '토마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패러다임이란 동시대를 사는 사람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일반적인 감수성으로, 예컨대 대부분의 과학은 당대의 과학자 모두가 공유하는 패러다임 안에서 주어진 수수께끼를 푸는 일상적인 새로움이다. 그러나 기존의 감수성과 사유 방식을 뒤엎고 새롭게 등장하는 패러다임이 있을 때 그것은 사회 전반에 혼란과 반발, 그리고 물의를 일으키는 문화적인 사건이 된다.
이제부터 접근할 내용은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는 과학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부분이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우리는 과학 자체에 내포된 이론적 특징이 어떻게 사상 일반의 법칙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와는 어떤 함수 관계가 있는지 파악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근대 물리학을 대표했던 패러다임이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해체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날 지구 문명 전반을 지배하는 과학은 17세기 서구에서 발생한 이른바 '신 과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은 중세의 암흑기를 헤쳐 나와 왜곡된 종교의 이름으로 탄압 받던 인간의 상상력을 해방시켰고 근대 과학 혁명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는데, 그 밑바탕에는 학문은 절대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순수 이성'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었다.
'뉴우튼 식'이라고 불리는 17세기 '신 과학'은 오늘날 '고전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그는 힘을 두 물체의 상호작용에서 파악하고 물체에서 중량 이외의 속성은 모두 무시하였다. 그리고 질량의 개념을 추상화하여 힘에 의하여 생긴 가속도로부터 힘과 질량의 관계를 명백히 밝혔으며 그 결과로 F=ma 라는 일반적인 운동 방정식이 도출되게 된다. m은 질량(대상)을 뜻하며 a는 가속도(단위 시간당 움직인 거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질량이란 좌표로 계산 가능한 구체적 공간에 위치함을 의미하며 속도란 시간성이 내포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뉴우튼은 시간을 흐르는 강물이 다리를 스쳐 지나가는 절대적인 흐름으로 생각했고 공간 역시 그 속에 물체가 여하히 배열되어 움직여 변하든 간에 공간 자체는 변동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하였다. 즉 공간과 관계없는 시간, 시간과 관계없는 공간, 이것이 뉴우튼의 절대시간, 절대공간 이다. 그는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탕으로 모든 자연현상(물리적 양)을 통일적으로 기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자연현상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는 초기 조건을 알기만 하면 앞으로의 상태는 물론, 과거에 선행되었던 상태도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는 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전기 현상에 대한 발견과 더불어, 열역학 이론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고전 물리학의 내용은 점차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물질세계는 모두 열역학의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엔트로피(무질서)를 늘려 가다가 결국은 열사망(모든 질서가 사라진 최대의 혼돈)이라는 최종 단계에 이르고 말 것이라는 결론은 19세기 과학자들을 몹시 불안하게 하였는데,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거대한 기계 장치인 우리의 우주는 언젠가는 활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불가피 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톱니바퀴로 구성된 기계인 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던 결정론, 즉 특정 원인과 일정 결과로 이어지던 인과율의 엄격성이 조금씩 완화되면서, 뉴우튼이 주장했던 딱딱한 물질은 대신 율동과 형상 그리고 추상적인 질서의 꼴을 드러내는 것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결국, 뉴우튼의 고전 물리학은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의 원리>,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등 새로운 이론의 등장으로 인해 그것이 지닌 한계성들을 하나 둘씩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인쉬타인에게 있어서 시간은 관측자의 입장에 따라 서로 달라지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시간 규정은 상대적인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시간은 언제나 어떤 입각지(장소), 즉 공간상의 시간이 되는 것이므로, 공간은 시간을 포함한 공간, 그리고 공간을 포함한 시간으로서, 여기에는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이 있게된다. 물체가 지닌 직접적 형태의 고정성이나 불변성은 유지되지 못하고, 언제나 관측자에 있어 상대적, 상관적으로 규정되며, 이러한 사고의 결과는 결국, 중력, 에너지, 질량등 일반적인 물리적 양도 그 자체로서 독립되며 고정된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상대적이며 동일한 본질의 서로 상이한 상태로 규정된다. 이 새로운 세계관은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것은 그 동안 우리를 지배해 온 자연관, 세계관의 변화를 시사한다.
하이젠베르크 역시 미시 물리학 연구를 통해 고전 물리학의 모순을 지적하였다. 속도를 측정하려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고, 위치를 가늠하려면 속도를 제대로 잴 수 없다는 이른바 '불확정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주체 그리고 그 관찰자와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벌어지는 사건 혹은 관찰되는 객체라는 식으로 선명히 구분되었던 근대 과학의 주체/객체의 이분법은 무너지게 된다.
프리고진은 화학반응에서 흩어지는 구조의 연구를 기초로 '힘찬 요동을 통해 생겨나는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라는 물질 생성의 기본 원리를 발견하였다. 혼돈의 기본 상태를 일컫는 흩어지는 구조란 에너지와 물질이 끊임없이 무질서하게 흐르며 유지되는 힘찬 요동의 상태로서, 이러한 혼돈의 극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물질의 원리'이며, 자연현상 전반에 깔려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더욱이 프리고진이 발견한 '흩어지는 구조'의 원리는 화학반응의 차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원자의 세계, 은하계, 생명체의 세포 단위, 우리의 몸, 심지어는 방대한 사회나 문화권에서도 모두 적용된다. 이 이론은 '스스로 짜집는 우주'의 개념으로 요약된다.'스스로 짜집기'란 개념은 고전 물리학이 확립한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20세기 신 과학의 핵심어이다.'주체가 제어하는 객체'라는 식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스스로를 조절하여 자기 모습을 만들고 또 유지'하는 생기론 쪽으로 대자연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추세는 물리학뿐만이 아니라, 사상체계 전반에 걸쳐 커다란 파문을 던져 주고 있다.
(2) 근대성의 문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를 다루기 이전에, 우선 '모더니티'라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모더니티'는 르네상스를 통해 극복된 '중세'와는 축을 달리하는 '근대'라는 시대구분의 문제와 산업혁명 이전의 수공업에서 산업혁명 이후의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이행되는 시기에 파생된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과 연관된다. 전자를 '해방의 근대성'이라고 하고 후자를 '기술의 근대성'이라 명명할 때, 이 두 가지 근대성은 어느 지점까지는 협력 관계였으나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유럽이 민족국가로 재편되는 과정을 겪고 난 후 두 가지 근대성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점이 드러나게 된다.
즉,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의 근대성'에 '인간 해방의 근대성'이 종속되고, '기술의 근대성'이 진행되는 한도 내에서 '해방의 근대성'이 유보되는 형태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서구 사회에 퍼진 식민지 쟁탈 경쟁은 세계곳곳으로 번져나가 제3세계 국가 거의 대부분을 그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또한 산업 혁명과 더불어 파생된 초기 자본주의는 식민지 경영의 방향을 설정하여 원료의 공급지와 제품의 소비지로서의 식민지가 지닌 가치를 자본가들에게 각인 시켜 주었다. 그 결과 자본가들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데 이에 대한 문제점을 가장 잘 지적한 사람이 맑스였다.
맑스는 '근대성의 문제'란 '근대적인 생활 방식의 문제'라고 표현한다. 맑스가 말하는 생활양식이란 소비유형이니 이른바 '라이프 스타일'과 같은 단어가 아니라, '물질적 생활 자체의 생산'을 뜻한다 하겠다. 그는 자본과 노동의 분업으로 특징 지어지는 당시의 자본주의 질서를 노동의 소외 개념으로 분석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제관계에 놓여 있는 현실적 인간의 문제를 다를 수 있는 철학적 토대를 쌓으려고 노력하였다. 맑스는 소외된 노동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였고 인간의 본질과 연관시켜 자본과 노동과 분업의 성격을 규명하였다. 그는 노동의 소외가 근원적으로 생산 수단의 사유와 노동간의 분리에서 연유하므로 소외의 폐기는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제도의 폐지와 더불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맑스가 주장하는 '생활양식의 근대성'이란 사람들의 생활이 특정한 형태로 반복되는, 혹은 반복되게 하는 조건의 문제, 즉, 조직 내에서 사람들의 삶과 양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진행 될 때, 거기에는 분명 커다란 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나아가 이 질적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를 추적해야 함을 뜻한다. 이러한 맑스의 주장은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공감을 형성하였고, 이는 레닌에 의한 러시아 공산화로 연결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산화는 인류에게 또다시 새로운 갈등과 선택을 요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러시아 공산화 이전까지의 근대적 사회는 계약 이론에 입각하여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하였다. 한쪽에는 개인간의 상호성이, 그 반대편에는 사회 전체의 중심성이, 그 중간에 개개인의 연합이 상존 하였는데, 러시아 공산화를 계기로 근대화는 두 가지 얼굴로 변화 된 것이다. 하나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이는 자유주의적 양상으로, 개인의 상호성이 시장에서의 교환 관계로 바뀌면서 동시에 시장 관계가 일상화되는 반면, 다른 하나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보듯이, 사회의 중심성이 숭배되면서 국가주의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운동이야말로 끔찍한 삶이 지겹도록 반복되는 자본주의의 왜곡된 근대성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요, 대안이라는 공감을 쌓아 가게 된다.
그러나,68세대의 패배와 체코 자유화 운동의 좌절을 겪은 후, 그들이 생각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과 꿈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견되는 것과 동일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후 점점 진보 세력의 결집은 둔해지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측 모두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주체의 해체'에 입각하여 이전까지 인간의 삶을 지배했던 양식들, 즉, 목적론이나 계몽주의적 유토피아 이념에 따른 동일성과 획일성, 그를 지탱하는 사회 체제를 부정한다. 결국, '주체의 해체'라는 구호는 자유로운 개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추상적으로만 한정하고 현실적으로는 억압당했던 주체에 관한 논리를 해체하여, 자유롭고 구체적인 개인이 역사 전면에 등장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라 하겠다.
3.포스트모더니즘 증후군
(1) 변방에서 중심으로
1917년 레닌은 러시아 공산화에 성공한다. 그로부터 1989년까지 20세기 지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시험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양 체제는 심각한 대립을 전개한다. 20세기 내내 서구 사회가 지속적으로 진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체제의 발전은 냉전으로 인해 얼어붙어 있었고, 이는 결국 변혁을 담보할 담론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등장한다.
이 시기의 민주주의를 '뉴튼적 민주주의'라 부른다. 이는 마치 시계처럼 폐쇄된 시스템 내부에서, 인과관계라는 단순한 기계적 법칙에 의거하여 구성된 체제를 의미한다. 즉, 소수의 재산 소유자 집단이 군대와 안정된 통화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해 줄 정부를 국민 국가라는 테두리 내에서 선출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소련 붕괴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차차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냉전 시대를 지배한 대중 정당과 그 동안 자신들의 다양한 이해가 무시당했다고 느낀 대중들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상극이 상존 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제는 더 이상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가 통하지 않음을 뜻한다. 주체가 하나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세계는 점점 다원화되어 가고 있고, 그 움직임은 단일하고 강력한 리더십에 의존하지 않는다.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조정과 타협의 역학 관계 속에서 사회변동의 벡터는 결정된다. 따라서 한 개인이 속하는 집단은 중층적일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정체성도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지구 곳곳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모델 형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미숙하고도 대중적인 첫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 시도들은 전통적 뉴우튼 모델의 국가에서 묵살되었던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전시대의 체제나 이념에 의해 구속되었던 개별 문화와 개별 주체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부각이 그것이다. 연방으로 묶여 있었던 국가들이 독립하고, 그 국가들은 민족으로 다시 나뉘고 심지어는 부족으로까지 세분화되는 세포 분열을 해나간다. 이러는 과정에서 중앙의 문화가 해체되고 변방의 문화가 부각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는 자본주의 출범 이후 근대를 특정 지어 온 '국민 국가'의 해체로까지 이어진다. 과거 2백년간 굳건히 유지되어 온 국경은 다국적 자본과 상품의 급속한 이동으로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북미자유무역지대(NAFTA)같은 전대미문의 국가합병, 지역통합의 움직임도 왕성하다. 과거 한나라의 독자성을 규정했던 고유문화 역시 방송, 통신위성, 광통신망을 통한 정보의 홍수로 인해 급속히 국적성을 상실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최근의 '지구화'의 움직임 뒤편에는 '신 국가주의', '제1세계 중심주의'로 상징되는 쌍생아의 얼굴이 발견된다. 이들 제1세계의 정치 세력과 자본은 급속히 안정성을 잃어 가는 기득권 고수를 위해 '국가 경쟁력 강화', '국가 총력 체제'같은 캐치프레이즈 아래, '신 국가주의'를 자국민에게 주입하고 있다. 동시에 2/3세계에 대해서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경제 국경 완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개도국은 개도국대로 시장경제와 수출 드라이브를 주 정책으로 채택하여, '부국강병'의 명분 아래 국가주의 개발 독재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촌에서는 두 가지 판이한 움직임이 상호 대립, 갈등하며 쌍방향으로 동시 역진행중이다. 과연 어느 움직임이 도도한 역사의 본류이고, 어느 쪽이 역사진행을 거부하는 탁류인가? 대다수의 미래 학자들은 경제 국민 국가의 몰락을 불가항력의 대세로 파악하면서도, 과연 이 같은 국민 국가 몰락, 초 국가 시대의 출현이 인류에게 복이 될지, 흉이 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21세기를 위한 준비>의 저자 폴. 케네디는 권력과 부, 지식의 집중화로 빈부 격차와 사회 불안이 증폭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린다. 반면,<제3의 물결>로 유명한 엘빈·토플러는 중앙 국가권력의 도태와 이에 따른 권력 분산, 초국가 시민사회의 출현, 정보복지 혁명 등을 이유로 희망 섞인 전망을 하고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초국가나 탈국가, 지구화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 자체가 지닌 모호성이다. 어쩌면 이런 '모호성'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보편적인 정서일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 모호성에 끊임없이 현혹되어 끌려가지만 모호성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에 원래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 '주체적 개인'이라는 것이 진정 이 시대에 존재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주체적'이어야 한다고 떠드는 '개인' 역시, '가공된 실재'가 이룩한 모호한 개념은 아닌지? 어쩌면, 허구에 의해 리얼리티가 제거 당한 채, 내 삶과 내가 자유자재로 통제해야 할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허구적 대상(매체)을 통해야만 비로소 획득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누리는 것은 개인성의 대리물로서의 연속들일 뿐이고 진정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개인성'이라는 환상을 주입하고 있는 다양한 배후들이다. 베일에 가려진 그 '다양한 배후'들이 바로, 우리를 지배하는 '다수'와 '평균'으로 자리잡는다. 이것은 숫자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수적이다'라는 개념은 언제나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권력과 결부되어 우리를 억압하는 지배적인 가치이고, 지배적인 관계이며, 지배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는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의혹과 마주선다. 어떤 일정 수순을 밟으며 이 모든 절차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그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지만 거대 자본과 거대 제국을 꿈꾸는 어떤 힘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감춰진 힘은 다양성의 확산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으며, 다양성의 공유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하나의 틀 안에 가두려한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언급되는 진정한 해체의 의미는 이런 다수에 의해 얽혀진 관계구조, 즉 그것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얼개를 풀어헤치는 일일 것이다. 해체론에 대한 부분은 뒤에 가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2) 90년대 소설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포스트모더니즘 단상
한국 사회 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구 사회주의 붕괴와 때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맑시즘을 해체하는 형식으로 한국 내에서 수용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작가들, 뭉뚱그려 90년대 소설가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대들 - 다시 말해 광주에 대한 원죄 의식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동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이념의 확신을 주었던 시대를 살아온 세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이념의 불꽃을 안내판으로 삼았던 세대, 한국전쟁 이후 가장 뜨겁고 감동적인 역사가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것을 직접 목도한 세대 - 이들은 80년대에 우리 모두가 그랬듯이 한때 정치적 환상의 포로가 되었었던 사람들이며, 그런 만큼 90년대의 무력감에 휩싸인 현실에 직면하여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정치적 좌절과 비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좌절과 비애는 외면적으로는 그들을 신경질적인 인간으로 만들며, 내면적으로는 집단의 가치를 신뢰치 않는 외로운 실존적 개인으로 만든다. 그래서 과거의 열정적 시기를 살던 때와 비교할 때 그들의 지금 모습은 외롭고 쓸쓸하다. 그럼 여기서 80년대와 90년대라는 첨예한 칼날이 맞부딪치던 시점에 등장했던 두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90년대 소설이 지닌 상실과 비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지난 연대 내내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환상에 뜨겁게 사로잡혀 있었고, 이제 그것은 빈틈없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그 깨어진 환상 속에 우리들의 현실, 우리들의 새로운 연대라는 게 던져져 있을 뿐이다......새로운 연대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제 우리들에게 있어 정치란 그저 혐오의 대상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당하고 있으니까......혐오의 대상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침을 밷어주는 그 일밖에 달리 더는 아무것도 없다.
-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내일 말이야, 내일......정말 가두로 나올까......시청 앞에, 종로 3가 그 넓디넓은 대로에, 인천시민회관 앞에서처럼 사람들이 몰려나올까.....그때 난 거기 있었거든......팔팔했었지.....두 김씨 보러 갔었거든......하지만 사정이 많이 달라졌어......요즘 사람들 말야......학생 하나 두들겨 맞았다고 눈꺼풀도 꿈쩍하지 않더라구......형, 내일 거기 갈 거야......그러면서 P는 여관 앞으로 성큼 들어가 숙박계를 쓰고, 온돌로 주슈,라고 말했었다.
- 하창수의 <담배와 창문>에서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하창수의 <담배와 창문>은 이들의 소설적 출발점이 80년대적인 신념의 상실 뒤에 남은 실존적 외로움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들은 모두 90년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제멋대로의 다양성이 나타나게 된 이유를 이념의 불꽃이 사그라진 뒤의 적막감에서 찾고있다. 그들의 작품에 의하면 90년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실존적 고립이란 80년대의 정치적 열정이 사라진 폐허 위에 밀려온 정적과 같은 것이다. 80년대가 '우리'라는 대명사로 함께 행동하던 시대였다면 90년대는 '나'라는 대명사로 흩어져 나가는 시대이다. 이 흩어진 개인들의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다양성, 그것이 - 비록 광기의 시대였다고 할지라도-80년대의 '우리'라는 대명사의 견고한 연대감에 대한 지울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의 "그래도 우리는 아직 둘이쟎아. 아니 둘이니까 아직 우리쟎아. 안 그래?" 라는 말은 눈물겹다.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 할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남겨진 마지막 두 사람. 그 마지노선을 지키려는 두 사람의 안타까운 몸부림이 이 말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박상우와 박창수의 소설이 보여주는 두 사람이 이루는 '우리',혹은 두 사람마저 이루지 못하는 우리 속에는 이미 중심성이란 존재치 않는다.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번민과 좌절은 점차 숙성되어 가는 듯하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우리는 신경숙을 꼽는다.
열 아홉의 나는 서울에서 영등포밖에 알질 못한다. 영등포 바깥이라고는 서울역과 큰오빠가 크리스마스 때 데리고 갔던 명동 성당과 코리아 극장과 전철을 타고 종각에서 내리면 되었던 종로 서적과 외사촌이 살고 있는 용산의 그 골목밖에......열 아홉의 나, 창과 여자애와 헤어져 외딴방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불을 끄고 오래 누워있다. 가슴이 사무친다.
- 신경숙,<외딴방>에서
신경숙.<풍금이 있던 그 자리>,<깊은 슬픔>,<외딴방>으로 이제 그녀는 그 이름만으로도 책이 팔린다는 작가군에 합류했다고 평가받는다. 평론가들에 의하면 그녀의 소설은 독자들의 내면에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지나온 한 시절의 깊고도 내밀한 어둠 속에서 스쳐 갔던 풍경이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동안 홀연히 재생되어 섬광처럼 눈앞에 떠오른댄다.그것을 '처연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존재들이 자아내는 '눈부신 연민'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신경숙의 글에는 이상한 패배 의식과 허무주의를 동반한다. 착하고 예쁜 꿈을 꾸지만 언제나 역사라는 굴레 앞에서 그 꿈을 박탈당하고 소멸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무한대로 확산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 무한소로 수렴되어야만 하는, 그래서 나중에 자신들의 왜소함에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신경숙 특유의 글쓰기와 분위기에 녹아들어 독자들을 몰아쳐간다. 소설<외딴방>역시 그런 식이다. 절대권력과 절대 권력 사이의 공백기에 공장에 다녔던, 나중에 소설가로 성공한 소녀의 차분한 고백이다. 일하다 잠시 옥상에 올라와 겨우 햇빛을 쬐는 공장의 소녀들, 그 무렵 어느 한구석에 창백하게 존재하였던 희재언니, 자기보다 세살 많았고 자기와 함께 학교를 다녔지만 대학을 못 가고 대학간 자기를 보며 부러워하던 외사촌, 낮에는 방위병으로 아침, 저녁으로는 학원 강사로 가난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큰오빠,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이 아주 질서 있게 구성해 놓은 막막하고 삭막한 공간에서 결코 예외 일수 없는 자신, 여기서 작가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폭력의 실체에 대응하지 않고 자기 속에 외딴방을 만들어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칩거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문제를 회피하려한다. 이는 결국 우리가 함께 보듬어가야할 공동체에 대한 허무를 암시한다. 어쩌면 그녀는 철저하고도 순수한 자아에로의 도피밖에는 특별히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작가 신경숙은 90년대 한복판이 지닌 그 공허함을 가장 객관적으로 꿰뚫고 있는 작가이고, 그 현장이 지닌 참담함을 가장 잘 지적하고 있는 작가임이 틀림없다.
요약하면,90년대 작가들을 통해 본 한국 사회는 80년대 진보적 변혁 운동의 좌절과 소련 붕괴라는 역사적 배경에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시대사조가 맞물려 체제 비판 세력을 해체하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던 거대 담론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누구도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보수주의의 전횡에 대해, 비합리적인 관행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두들 입만 굳게 다문 채 침묵만 지키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적 참여 자체가 이제는 아무런 의미 없는 과격한 행위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사회 내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분명 또 다른 동일성과 획일성을 강요하는 억압이며, 그 본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 사회가 지닌 학문의 풍토성에 대해 잠시 언급하려 한다. 가령 외국에서 어떠한 사조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고민 없이 무턱대고 번역만 했지, 더 이상의 이론 전개를 스스로 이루어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우리의 언어로 다듬는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의미이며, 우리의 문제와 모순, 그리고 여러 가지 변동 상황에 대한 주체적 정리가 결여된 데서 유래한다. 과거 80년대 맑스주의의 수용에 있어 근본적인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판적인 의식이 결여된 채 맹신적인 종교적 의식의 수준에서 수용된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와 똑같은 현상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 문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발생할 수 있었던 원인들과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분명한 것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세계는 전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틀로 엮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들이 21세기를 4년 앞둔 오늘의 신학도들에게 던지는 물음은 무엇이겠는가?
4. Post-modernism시대의 새로운 해석학
(1) 새로운 성서 이해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성서 이해를 요구한다. 종전까지의 성서 교육은 지식 추구를 위한 과거 지향적인 내용 파악에 치중했었다. 폰라드로부터 시작된 구약 해석의 연구 방법은 이스라엘의 구원사에 초점을 맞춘,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져 가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즉,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한 분에 대한 철저한 신앙을 강조한 신앙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방법을 '통시적 연구 방법'이라 하는데, 이는 수직적이고 부분 분석적이며 역사를 축으로 하는 역사검증방법이다.문서비평,양식비평,전승비평,편집비평등이 다 이에 속하는 연구방법이다. 통시적 연구 방법이 '드러난 역사'에 대한 집착이라면, 공시적 연구 방법은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발굴이라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즉, 공시적 성서 연구 방법에서는 성서의 역사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인 역사가 아니라, '역사 같은 이야기'라고 본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이 '역사'와 '이야기'에 대한 구분이다. 역사가 어떤 거대한 '틀'내지는 '주제'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일종의 수단적 의미로서 서술 방법에 해당한다. 이 말은 역사에 대한 진위를 fiction 또는 non-fiction이라는 잣대로 규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역사와 이야기의 구분 기준이 '역사적'이어야 하고'비역사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탈피해야 진정 자유롭게 성서와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객관적 사실은 있으나 순수 객관적 역사는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바아는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계시하신다'는 주장에 의의를 제기하고 성서의 설화는 역사라기 보다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서의 역사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인 역사가 아니라,'역사 같은 이야기'라고 보았다. 이런 이유로 바아는 폰라드의 구원사 개념에 대해 열띤 비판을 가한다. 구약성서가 구원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같은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중심한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상층구조의 역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하층구조, 이른바 민초들의 역사라는 또 하나의 선을 상정해볼 수 있다. 상층구조의 역사관은 공식적인 재배 체제의 역사로서, 하나님은 선하시며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으로 찬양한다. 그러나, 하층구조의 역사관은 하나님의 무관심과 사회의 구조적인 억압을 경험하는 이들의 삶에 주목한다. 이들에게는 야훼가 멀리 떨어져 있으며, 불러도 대답 없는 무관심한 분이다. 부르그만은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하거나 이스라엘의 역사시를 다시 읽는다면 변두리에 쳐져 있는 사람들의 소외와 울분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층 구조의 세속사도 상층구조의 구원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인 아담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과 해체론의 상관성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의 틀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이러한 관습들에 대한 반항으로 파악한다. 즉, 기초를 흔들어 놓는 것(antifoundational),전체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것(antitotolizing),신화화를 반대하는 것(demistifying)등이 그 구체적 예이다. 기초를 흔들어 놓는다는 것은 어느 진리를 설정하는 기본적인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며, 전체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어느 진리도 전체를 다 망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신화화를 반대하는 것은 어떤 가정이나 진리가 이념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사고 체제는 더 이상의 절대적인 진리나 전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해체론이 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해체론에 따르면, 구조주의는 말과 의미 사이에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나 해체론은 그 관계를 부정한다. 그리고 구조주의는 남자와 여자, 빛과 어둠 같은 대칭 구조로 앞의 것(예: 남자, 빛)을 선호하는 인위적인 구조를 구축하지만 해체론은 이같은 인위적 구조 자체를 거부한다. 즉 구조주의는 '이것은 저것이 아님'(예: 남자는 여자가 아님)이란 상관관계에서 그 의미를 찾지만, 해체론은 절대적 존재를 부인하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대칭을 이루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해체론의 입장에서 성서를 해석한다는 것은 기초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므로, 해석을 유도할 수 있는 절대적인 본문, 저자, 의미, 실질적인 역사적 사건, 절대적 권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체론은 풀린 실을 잡아당김으로 옷 전체를 다 헤쳐 버리는 것처럼 본문이 주장하는 권위적인 정체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렇듯, 포스트모던시대는 우리에게 화석화된 성서해석에서 벗어나 본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한다.
(2) 새로운 성서읽기
부르그만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색을 "문서에서 구전으로, 범 우주적인 데서 개체적인 데로, 일반적인 데서 지역적인 데로, 무시간대에서 시간대로의 이동이라 보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처한 상황(context)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이 범 우주적이거나 절대적일 수 없고 단지 우리가 처한 상황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이제는 교리나 체계를 내세워 '위대한 구원 역사'의 교훈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위한 '작은 이야기'의 상상력으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작은 드라마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의미는 본문 그 자체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본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던시대 성서의 주제는 과거의 회상, 현재의 계약, 미래의 소망을 통한 '또 다른 세계'를 제시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같은 성서 읽기는 있는 그대로의 본문, 즉 본문의 애매성과 복합성, 모순성 등을 그대로 수용함을 의미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본문의 애매성은 하나님의 애매성과 삶 자체의 애매성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부르그만은 이집트에 내린 장자 재앙 이야기(출 11장)본문에서 어느 누가 하루 아침 자고 일어났을 때 바로는 울며 히브리 노예들이 춤추리라고 상상했겠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늘 자고 깨고 똑같은 태양이 뜨고 우리의 현 상태가 계속되리라고 생각하지만 성서 본문은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해 다윗에게 기름 붓는 이야기(삼상16장)본문에서 사무엘은 '사울이 자기를 죽일 터이니 어떻게 갈 수 있느냐?'고 반문하니 야훼는 사무엘에게 거짓말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놀랍게도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신다. 그리고 혁명을 사주하기도 하신다. 하나님의 거짓말은 현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 체제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르그만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성서 해석은 작은 본문 하나 하나가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추구할 때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본다. 부르그만이 예로 든 본문들은 우리의 기존 생각들을 뒤엎는 것들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상상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부르그만은 전통적 권위주의 체계 하에서 익숙해 있던 세계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내닫는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도, 이스라엘의 백성이 하나님의 새로움을 느끼며 동행했듯이 새로운 또 다른 세계를 열어 줄 것이라는 확신을 성서 본문은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제 우리는 성서 주변에 머물렀던 존재들이 중앙으로 편입해 들어오는 과정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는 변두리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체제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 간 여인들을 일으키고, 가난한 민초들, 거절당하고 소외당한 존재들이 자아내는 절망감에 귀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는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에서가 아니라 변두리였던 갈릴리의 초라한 어부들에서부터 번져나갔고,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철옹성 여리고는 강력한 남성적 지배력이 아닌 아주 소박하고 초라한 창녀 라합에 의해 무너져 내렸으며(숫2장), 삭개오가 지녔던 장애의 아픔과 좌절은 하늘나라의 징표로 승격된다(눅19). 또한, 성령의 역사는 '노아의 방주'설화에도 나타나듯이, 새 역사 창조의 대열에 부정한 짐승 2쌍도 포함시켜, 아웃사이드에서 방황하는 존재들에 대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한 집착과 애정을 드러내 보인다(창7장).
지금까지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새로운 성서 이해가 chronos적인 통시적 방법에서 kairos적인 공시적 방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전자가 단선적이고 화석화된 성격이라면, 후자는 동시적(synchronous)이고 자유로운 구조를 지닌다. 그만큼 우리에게 부여되는 선택의 폭이 증가하였다는 의미인데, 그 증폭된 여유가 자칫 우리가 지닌 성서에 대한 편견을 부각시키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를 둘러싼 편견과 관성으로부터의 탈피 !
5. 에필로그 : 너와 나. 새로운 접속, 새로운 연대를 꿈꾸며...
90년대 후반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니다. 아니라기보다는 '우리'이기를 거부한다. 우리로 묶이는 것을, 그렇게 이름 불리는 것을 거절하려고 한다. '우리'라는 말이 당연히 자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다 돌연 자신이 그 우리 속에서 소리소문 없이 실종되었다고 느낄 때, 우리라는 말을 내뱉고 있는 사람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때 우리는 '우리'라는 말이 음모하는 수많은 차이들 - 예를 들면 性,계급, 지역, 연령, 인종적 차이들에 대해 깨닫는다. 그리고 역으로 바로 그 차이들 때문에 자신이 그 '우리'속에서 '인지'되거나 '승인'되지 못함을 깨닫는다. 그 결과 막연한 우리가 아닌 구체적인 수많은 '나'와 '너'가 생겨나게 된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의 역학 구조는 '우리'라는 전체성에서 이탈해 나오는 그토록 수많은 '나'와'너'에 대한 관심과 배제, 집착과 무관심, 접촉과 일탈이라는 상반된 대응 사이에서 무엇을 획득할 것인가에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그 대안으로 다수에서 이탈해 나오는 소수자들의 접속과 횡적인 연대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접속과 횡적인 연대란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위한 창조 내지 생성으로서의 역동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수의 횡포로부터 탈피하려는 모든 소수자들은 각자가 갖고 있는 견해 상의 차이를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여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연대와 우정어린 비판을 통해 서로 접속하면서 새로운 것을 생성해 내야 한다. 설사 그 과정에서 답변이 당장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로운 길에 대한 실험이 중단되어서도 안되고, 증대하는 차이들과 갈등의 복합성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합리성,주체형성,인과관계,과학,실천등을 적절히 배치시키는 작업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의차이,세대차이,지역차이,계급차이,노선차이등 무수한 차이들이 자아내는 관계 속에서 그들이 자아내는 일정한 방식으로 엮어져 왔다. 그러나 그 차이를 하나로 엮었던 방식은 이제 그 기능적인 면에 있어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새로운 얼개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는 일사불란한 통제가 아니라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즉 타자의 타자다움을 인정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 얽혀지는 새로운 통합 방식을 추구해야 할 때이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의 신학이란 갈수록 개체화되어 가는, 전체에서 일탈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 소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탈출해 나오는 사람들을 다시 하나의 깃발 아래 헤쳐 모이도록 하는 음모를 꾸며서는 안된다. 기독교 이 천년 역사 동안 계속 전개된 주류와 비주류의 싸움에서, 전체라는 이름으로 희생된, 전체이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아직까지도 그 전체성에 대한 끈질긴 집착을 보이는 보이지 않는 벽들을 허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교회 전통에 대한 전면 부정이 아니라, 발전적 해체를 통해 새로운 인식의 장을 확보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합쳐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라 할 수 있다.
<참고도서>
1. 폰라드, {구약성서 신학』, 허혁譯, 분도춢판사, 1992
2. 갓월드, {히브리성서 사회·문화적 연구』, 김상기譯, 한국신학연구 소, 1987
3. 장일선, {다윗 왕가 역사 이야기』, 대한기독교서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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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경재, {解釋學과 宗敎神學』, 한국신학연구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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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송주성, {포스트모더니즘은 없다}, 청년문예, 1994
10. J.K.갈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이은우譯, 대일서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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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 김명자譯, 동아출판사, 1992
18.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 비평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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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1995
21. {1985-1995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출처 : 명지새벽이슬
글쓴이 : 임왕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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