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
비판적 성찰과 역동적 혁신을 위하여
- ‘기독교 세계관’의 수용과 확산 과정을 중심으로 -
80년대 초반부터 한국교회의 대학생층을 중심으로 회자(膾炙)되기 시작한 ‘기독교 세계관’(이하, 때때로 ‘기세’로 약칭)이 본격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 . ‘세상을 보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여러 사회현상과 기독인들의 삶을 검증, 비판, 개혁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기독교 세계관’ 그 자체가 이제는 논란의 주제로 등장한 것이다. 논쟁의 층위도 다양해서, 한편으로는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 주장이 ‘명제(propositions)’냐 ‘내러티브(narrative)’냐는 매우 이론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는가 하면, 과연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일으켰느냐는 실천적 측면의 질문까지 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글은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둘러싼 저간의 논의와 맥락을 정리하고, 주요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짚어봄으로써 차후 방향 모색에 기여하려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I.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 들여다 보기
이 글은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의 대상과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우선 우리는 ‘한국’의 논의를 중심에 삼는다. 이것은 ‘기독교 세계관’이란 개념과 주요 논의가 서구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그것이 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고, 이해되었는지 설명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기세’가 한국에서 어떤 면에서 왜곡이 있었는지, 아니면 외연의 확장이 있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또 한국 사회의 어떤 자리에서 이런 수용과 확산작업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수용 그룹의 사회적 위치, 그들의 지적 배경, 특히 한국 교회적 맥락 등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나 지금까지 ‘기세’ 논의에서는 의아스러울 정도로 실종되어 있었다.
둘째, ‘기독교 세계관’ 자체의 이론적 논리적 정합성을 둘러싼 논의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신학적, 철학적 배경과 토론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주된 논의가 서구 학자들의 것인만큼 여기에는 좀더 폭넓게 현재의 기독교 철학이나 신학의 흐름 속에서 이 논의가 차지하는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요청된다.
셋째, 어떤 집단이 목적의식을 갖고 이 일을 행하고 있다면 ‘운동’이라고 일컬어질 만하다. ‘기세’의 이론이나 실천을 추종하고, 동의하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되나, 이들이 소기의 목적을 잘 달성하고 있는지는 한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지향하는 목적이 딱히 ‘기세’를 통해서 가장 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기세’가 그들의 운동이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교회 개혁이나 사회 개혁이 꼭 ‘기세’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측면은 우리가 이제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살펴보는데 기본적으로 견지되어야 할 태도이다. 자세한 평가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80년대 이후의 ‘기세 운동’ 전개를 살펴보도록 한다.
II. 한국에서 기세운동의 시작과 확산
1. 80년대의 기세운동
한국에서 ‘기세’는 80년대 초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부 논의들이 없지 않았겠으나, <기독교 학문연구회>나 IVF 등지에서 원서를 읽으며 ‘기세’ 관련 주요 서적 세미나를 한 것이 이 무렵이다 . 흥미로운 사실은 ‘기독교 세계관’ 관련 논의는 서구권과 시기적으로 그다지 큰 편차를 보이지 않고 진행형의 논의가 수용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 영서의 출간과 번역서의 출간이 5년 안팎으로 이루어졌고, 어떤 경우는 2-3년만에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의욕적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기학연>의 경우는 대학원생들이 원서를 읽으면서 세미나와 번역을 함께 진행하고,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쓰는 등 ‘기세’가 당대의 고민에 대한 한 대안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이후는 ‘기세’를 위한 주요 서적들이 속속 번역출판 됨으로써, IVF나 <기학연>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자생적인 ‘기세’ 커리큘럼이 개인 단위나 교회 청년대학부 단위에서 시행될 수 있었고, ‘기세’는 소위 ‘의식 있는 기독 청년’의 교양 필수로 자리를 잡게 된다. 왜 이 시기에 ‘기세’가 도입되고, 확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정교한 분석이 요구되겠으나, 대체로 80년대 초반 기독 대학생들이 사로잡혀 있던 지적 열등감의 해소책으로 크게 호소력을 가졌다는 평가가 많이 제출되었다. 70년대 이래로 날로 덩치가 커져 ‘천만 성도’를 운위하던 한국교회가 그 규모에 걸맞지 않은 저열한 사회의식과 내부 윤리 속에 함몰 되어 있는 것을 ‘기독교적 관점’ 형성의 실패로 진단해내는 ‘기세’의 논의는 청년들에게 충분히 매력이 있었다. 당시 ‘운동권’이 80년 광주의 폭압적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맑시즘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의 논리를 치열하게 다듬어가던 상황 속에서 적절한 ‘기독교적 사회의식’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져있던 복음주의권의 대학생들에게 ‘기세’는 나름대로는 대안적 이론으로 기대감을 줄 수 있었다 .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내세지향적 종교성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향해 발언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는 이론적 토대를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당시 국내의 ‘기세’에 실천적 모델을 결합시킨 상징적 인물로 손봉호 교수를 꼽을 수 있겠다 . 목사가 아니지만 교회에서 설교자로 사역했고, 서울대 교수로 가르치는 분야뿐 아니라 기독교수 모임을 통해 198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창립을 주도하면서, 복음주의권에 시민운동의 한 사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공정선거감시운동’을 주창해 그 해 대통령선거와 이후의 선거에 복음주의권 교회 청년들이 대거 참여하는 길을 트기도 했다. 한국사회에 본격적인 시민사회의 도래를 알린 시민운동 단체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창립에도 깊게 관여함으로써 종교운동의 범주를 넘어서 시민사회와 결합하는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 .
2. 90년대의 기세운동
90년대 넘어서면서 ‘기세’ 운동은 약간의 정체 경향을 보이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기학연>을 일으킨 주축 세대들이 대체로 유학, 취업 등으로 흩어지게 됨으로써 예전만한 팀웍을 갖기 힘들어졌다는 측면이 있다. ‘기세’ 입문서들은 대체로 다 번역이 되었으니, 이제는 그 원론에 값하는 각론이 나올 때가 되었으나, 이 지점에서 ‘기세’ 논의는 계속 지체되고 말았다. 학문세계에서 각축할 만한 ‘기독교적’ 이론이 제출되거나, 현실세계에서 뚜렷한 차별성과 성과를 올리는 ‘기독교적’ 실천양식이 제시되었어야 할 터인데, 한국사회의 각 분야가 신속하게 전진해 나가는 동안 계속 ‘기세’ 세미나를 통한 인식의 전환만을 붙잡고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80년대 사회와 대학가를 붙잡고 있던 시대적 긴박감은 전반적으로 해소되었고, 사회변혁을 위한 토대나 대안 논리로서 ‘기세’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나 매력은 급속히 반감되고 있었다. 또한 정작 ‘기세’를 가지고 사회변혁을 시도해 보려던 그룹들은 ‘기세’ 원론만으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절감했다 .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도 ‘정치적 사회변혁’에서 ‘문화를 통한 사회변혁’이란 코드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세’ 논의도 상당부분 문화분석이나 문화관 논의의 형태를 띄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기세’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권의 문화관 혹은 문화분석은 한국 사회 전체가 문화적 폭발을 경험하는 동안 거의 방어적으로 일관해왔다. 한국 사회는 90년대 초반 ‘신세대’ 담론의 등장과 이를 문화현상으로 폭발시켜버린 서태지의 등장을 목도했다. 또한 1995년을 기점으로 대학가에서는 ‘동성애 해방운동’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왕년에 운동했던 이들은 대거 문화판으로 몰려갔고, 90년대 중반이후 이들은 한국 영화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기세’의 이름을 걸고 나온 문화평들은 대부분 해당 장르의 작업공정이나 매체적 미학에 무지한 ‘인상비평’, ‘주제비평’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보다 더 자주 ‘영적 비평’의 형태로 비약했다. 이를테면, ‘이 작품은 영적으로 유해하다, 아니다’는 식으로 검열관을 자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비평의 근거로는 ‘기세’가 동원되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그런 결론이 나온다’는 식이었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누군가가 ‘기세’를 자의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막기 힘들 정도로 ‘기세’는 대중화 되었고, 저마다 나름의 의미부여와 적용이 이루어졌다. ‘기독교 세계관’과 ‘영적전쟁’이 어우러졌고, ‘사탄이 장악한 문화’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되찾아와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3. 90년대 기세운동에 대한 평가
이 시기 ‘기세 운동’의 맥락은 최소한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기세운동’이 화란 개혁주의 전통(Dutch Reformed tradition)을 향해 급속히 재정렬 하는 현상이다. ‘기세’ 입문서를 보았으니, 이제 본격적 저작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를 읽기 시작하고,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나 알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 같은 개혁주의 인식론자들의 논의를 붙들게 된다. 이제 ‘기세’는 ‘개혁주의’ 철학이나 신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등치되고 만다. <기학연>에서도 ‘기독교 세계관’의 일환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는 커리큘럼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고신이나 총신을 그 신학적 배경으로 하는 이들에게서 상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다.
둘째는 ‘기세운동’을 대중문화 비평이나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여기는 경우이다. 사실상 이 흐름이 첫번째와 크게 괴리될 이유는 없다. 예를 들면, 미국 칼빈대학교의 로마노프스키 교수의 책은 개혁주의자의 관점에서 써낸 훌륭한 대중문화 비판서이다 . 여기에는 연예산업 전반에 대한 비판적 고찰도 들어있고, 문화 자체에 대한 상당히 적극적 평가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미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경직된 가치평가가 선행되고 있고(대중문화는 악하다, 혹은 위험하다), 왜 그런가에 대한 원인분석은 부차적으로 따라붙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기에, 문화 현상에 대해 과거에는 그것이 ‘뉴 에이지’ 였기에 나빴으나, 이제는 ‘기독교 세계관’에 충실하지 않으므로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비평에서 ‘취향의 문제’일 수 있는 부분이 ‘원칙의 문제’로 침소봉대 되기도 하고, ‘실험’으로 봐야 할 영역을 ‘본질’인양 오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기세’란 단순히 이론적 치장(theoretical decoration)효과 밖에는 하는 역할이 없다. 기독교권의 하위문화(Christian sub-culture)를 설명하는 논리 정도로나 통용될 수 있을 뿐이다. 해당 분야의 현실이나 이론적 흐름과 긴밀히 교감하는 것 없이 ‘기세’만으로는 실천을 위한 넉넉한 토대가 마련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세번째는 주로 대학 고학년생들과 대학원생들 혹은 전문인 집단 가운데 ‘기독교 학문’의 가능성에 미련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 학문세계에서 ‘기독교적’ 학문이 과연 가능한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구성될 것인지를 묻는 이들이다. 이들의 질문은 단순하다. ‘기독교적 정치학’은 가능한가? 어떤 사람들은 ‘신정(神政, theocracy)’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수학’은 가능한가? 그냥 기독교인이 수행하는 학문을 ‘기독교 학문’이라고 부르는 것이 현실은 아닌가? 스스로를 ‘기독교적’이라고 생각지 않는 어떤 학문적 입장이 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이기를 추구하는 입장보다 더 ‘기독교적’일 수도 있는가? 이런 류의 질문들은 엄밀히 따라가보면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과연 ‘기독교적’이란 것이 무엇인가란 근본적 규정 없이는 이 논의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기세’논의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줄 것인지를 묻는 이들이 90년대 ‘기세’운동의 또 다른 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
90년대 ‘기세운동’은 실천적 측면에서도 매력을 잃어갔다. 앞서 들었던 80년대 ‘기세운동’의 대표적 모델들이 사회 일반의 반발 내지는 대안 모델로 인해 빛이 바래가는 현상 때문이다. <기윤실>이 ‘문화소비자 운동’을 통해 초창기부터 꾸준히 펼쳐온 ‘스포츠신문 음란성 고발 캠페인’은 상당히 호응을 받고 있었으나, 이와 더불어 진행해온 대중문화 공연이나 음반, 영화 등에 대한 캠페인은 적잖은 반발을 수반했다.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반대(1995), 싸이, 박지윤, 박진영 등의 음반 방송금지 혹은 불매운동, 영화 ‘거짓말’, ‘죽어도 좋아’ 등의 장면 삭제 혹은 상영제한 캠페인 등은 다른 문화운동 단체들과 상당한 논란을 빚었고, <기윤실> 문화정책을 한국 사회 보수집단의 전형적 문화취향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교회개혁 문제에 있어서 <기윤실>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교회개혁 실천연대>가 <기윤실>에서 분리해 나간 것에서도 드러나듯 ‘목회 세습 문제’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미온적 자세를 보임으로써 현실인식의 긴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윤실>은 그 활동 전반이 갖고 있는 건강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협소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은 정치판의 기본적인 룰인 선거에 있어서 공정성을 바로잡자는 취지가 80년대적 상황에서는 큰 울림이 있었으나, 90년대 접어들면서 기독인의 정치색을 무색무취로 포장하게 한다는 점에서 점차 매력을 잃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개진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 내에 강화되었고, 이런 흐름의 극적인 표출이 참여연대 등의 ‘낙선운동’이나 지난 대선의 ‘노사모’ 활동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세’는 이미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 혹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까지도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당연한 원칙론을 설파하는 이상의 발언을 할 입지를 마련하지 못했다.
<경실련>의 경우도 김현철 비디오 파문을 비롯해서 몇 번에 걸친 지도부의 신뢰성 문제로 시민 운동계에서 힘을 많이 잃었고, 지금은 <참여연대>가 대표적 시민단체로 입지를 굳힌 가운데 시민운동의 중심이동 내지는 패러다임의 변모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시민운동 자체가 곧 ‘기세’적 실천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대표 모델들이 선도성을 잃어가는 현상은 ‘기독교적 실천’의 부름에 단일대오로 나서는 일이 점차 더 어려워짐을 보여준다. 기독교 기업으로 자처하던 이랜드(E-Land)가 납세의무 성실히 이행하는 기업에서 신앙심을 빌미로 노동자들 착취하는 종교기업으로 이미지를 까먹은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90년대의 ‘기세’는 원론의 반복적 강조 외에 이론적 측면에서나 실천적 측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어놓지 못했고, ‘기세’의 효용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III. 한국의 기세운동 비판
이 글이 다루려고 하는 주제는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란 서구교회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기독교 세계관’을 국내에 의식적으로 소개하고, 전파하고자 노력했던 이들의 활동을 의미한다. 필자는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말하기 위해서는 ‘기세’의 이론과 실천을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상(thought, theory)과 실천(praxis)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건 사상보다 유연한 실천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사상의 내적 역량은 여유가 있으나, 그 실천 양상은 매우 앙상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우리가 다루는 주제처럼 상당 부분이 외국서 수입된 개념과 맥락을 갖는 경우는 더욱더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에 주목해야 한다. 단지 그것이 개념의 번역(translation)과 이식(plantation)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인지, 아니면 개념과 사고의 틀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한계를 안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또한 이론적으로는 더 여유가 있는 사상이 그 실천 집단에 의해서 충분히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도 찾아보아야 하겠다. 대체로 수행성취도(performance)는 실천 집단의 능력(ability)과 연관성이 높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상은 그 집단의 신학적(theology), 계급적(class), 사회적 요인들(social factors)로 인해 이론의 어떤 측면은 부각되고, 어떤 측면은 외면되는 취사선택(selective acceptance)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외래 사상인 경우에는 특히나 이런 분석이 긴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인식이다. 현재 국내에서 쟁점으로 부각되는 사안들을 짚어보자.
1.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에 경도(傾倒)됨
‘기세운동’이 사실상 개혁주의 신학에 경도되었다는 비판은 여러 종류의 함의를 갖는다. 일차적으로 ‘기세’ 자체가 화란 개혁주의 신학 전통(Dutch reformed theology tradition)에서 발원하는 것임은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다. ‘기세’ 관련 서적의 저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개혁주의 계열의 신학자들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런 경향은 유지된다. 화란 개혁주의 노선은 고신파 교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가 따르고 있으나, 이는 ‘신칼빈주의(Neo-Calvinism)’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하면서 국내 개신교의 다수파인 총신계열의 장로교회들에서는 친화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듯 ‘기세’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지만, 한국의 신학적 풍토에서는 친화성을 발휘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첫째,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기독교 세계관’ 혹은 ‘성경적 세계관’이란 명칭을 ‘개혁주의 세계관’과 별다른 구별 없이 쓰고 있는 경향이다. 최근의 ‘기세 비판’에서는 이런 명칭 자체에 스며들어 있는 권력성에 대한 논의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영어로 써진 책들에서는 예외없이 ‘a Christian worldview’, ‘a biblical worldview’ 등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이 번역되면서는 마치 ‘the Christian worldview’, ‘the biblical worldview’로 인식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 물론 ‘기독교’ 세계관이나 ‘성경적’ 세계관이 단순히 타종교와의 대비를 위해 서술적(descriptive statement)으로 사용된 것일 수도 있다. 대체로 외국 저자들은 그런 정도 선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상황이 달라지는데, 어떤 입장이 ‘기독교적’이라고 말하거나, ‘성경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많은 경우 권위적 진술(authoritative statement)이 되고 만다.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내용적으로는 ‘개혁주의 세계관’인 것을 ‘기독교 세계관’ 혹은 ‘성경적 세계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기독교 내의 수많은 다른 신앙적, 신학적 전통을 무시하고 ‘개혁주의’가 유일한 기독교 대표선수를 자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개혁주의자들이 아닌 이들을 ‘기세’ 논의에서 주변인으로 몰아내는 이유가 되고 만다. 거꾸로 이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기독교적 진리에 대한 독점의식을 과도하게 갖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금의 ‘기세’는 정확히 말해 ‘개혁주의 세계관’으로 이름을 바꾸던지, 다른 신학적 사조도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의 룰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 지금의 논의 지형은 마치 ‘공부 잘하는 아이’와 ‘운동 잘 하는 아이’를 데려다 놓고서 ‘공부 잘 하는 아이’에게 유리한 규칙 아래서 경쟁 시켜놓고선 ‘누가 더 착한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누가 더 공부 잘하는가’에 대한 경쟁이라고 밝히든지, 아니면 ‘누가 더 착한지’에 적합한 규정과 게임의 법칙을 제대로 만들어야 옳다.
둘째, 이런 개혁주의에 대한 경도현상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개혁주의적 경도의 결과는 다시 원인으로 순환하면서 다른 신학이나 신앙 전통에 대한 습관적 폄하로 이어진다. 이는 리차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를 읽어내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니버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와 문화가 관계 맺는 방식을 각각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Christ against Culture)’, ‘문화 위의 그리스도(Christ above Culture)’, ‘문화의 그리스도(Christ of Culture)’, ‘문화와 긴장관계 속의 그리스도(Christ and Culture in Paradox)’,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Christ the reformer of Culture)’의 다섯 가지 모델로 정리해내었다. 니버가 마지막의 ‘문화 변혁자로서의 그리스도’ 모델을 가장 우월한 것으로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었느냐, 아니면 좀더 병렬적으로 모델들을 보여주었는가는 토론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지만, 적어도 각 모델이 역사적으로 수행한 역할에 대한 적극적 평가에 인색치는 않다. 그러나, 국내 기세논의에서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니버를 인용해서 ‘변혁자 그리스도’상을 가장 우월한 입장으로 전제한다. 그럼으로써, 두 왕국 이론을 전개한 루터(M Luther)나 어거스틴(Augustine)의 ‘긴장관계 속의 그리스도와 문화’ 입장이나 ‘대립자 그리스도’ 모델에 속하게 되는 재세례파(Anabaptist) 전통은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것은 매우 관행화된 텍스트 오독(habitual misreading)에 해당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재세례파나 루터란 전통이 세상의 변혁에 더 효과적이냐 개혁주의 신학이 더 효과적이냐는 물음은 그런 방식으로 대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 윤리 분야에 재세례파 전통의 학자들이 약진하고 있는 현상을 보라 . 그동안 기독교 윤리학을 지배하다시피 하던 니버 류의 입장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란의 식민지였던 남아공에 인종차별 정책이 기승을 부렸던 반면, 평화주의 전통은 재세례파를 통해서 구현되었다는 점은 되씹어볼 부분이 많다.
이렇게 ‘개혁주의 세계관’이 ‘기독교 세계관’과 등치 되는 현상은 사실상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 신학이 주류인 한국교회의 신앙적 양태와 신학적 경향성에 대한 내부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무디게 한다. 중세교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 세력으로 출발했던 수도원 운동을 교황청이 그 체제 내부로 편입시킴으로써 제압효과를 얻었던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기세’의 ‘개세’화는 스스로 동원가능한 신학적 자원을 협소화 함으로써 ‘대안적 비전’ 제시에 태생적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혐의를 갖게 된다.
2. ‘기독교적’이란 신기루?
어떤 사람에게 100평의 땅을 주고 집을 지어보라고 했을 때, 누구는 100평 꽉 차게 구조물을 지어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5평짜리 천막치고 나머지 95평은 마당으로 쓸 수도 있는 문제이다. 개발과 근대화가 시대의 대세이던 경우라면, 용적율 크게 집짓는 것이 미덕이었겠지만, 요즘처럼 생태친화적 관심이 드높아가는 경우라면 후자에 점수를 많이 주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느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더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단지 누가 더 ‘기독교적 용어’와 ‘이론’을 잘 빌어와 자기 논리를 치장해내느냐에 좌우되지 않고 판단할 어떤 근거를 우리는 갖고 있는 걸까?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분석하면서, 서구는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비서구(Orient)로 투사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명하려고 했다는 말을 한다 . 서구 사회에 ‘합리성(rationality)’을 부여함으로써, 비서구(non-western world)는 신비스럽거나(mysterious), 야만적이거나(barbarian) 한 것이 되고 만다. 이 논리는 문명충돌론(the clash of civilizations)을 썼던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에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 ‘당신의 적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고 그는 말한다. 아(我)와 피아(彼我)를 갈라내는 작업이 곧 정체성 규명의 노력인 것이다. 이런 방식의 정체성 규명작업이 갖는 난점은 특정 맥락에서 ‘적’으로 규정했던 것들이 다른 맥락에서는 ‘우군’이 될 수 있으나, 이미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분을 이루는 속성을 부정하거나 수정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변화를 내부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낯선 대상에 대해서는 과도한 대결의식을, 낯익은 대상에 대해서는 지나친 온정주의가 발동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
대부분의 ‘기세’ 서적은 ‘성경적 기세’의 얼개를 ‘창조-타락-구속-(완성)’이란 성경의 내러티브(narrative) 구조를 통해 설명한다. 그러나, 이 구조는 사실상 매우 느슨한 것으로 여백이 많이 있는 개념틀이다. 이 뼈대에 살과 신경을 채워넣는 작업은 여러 신학적-철학적 자원들이 동원되는 일이다. 이 작업에 동원가능한 자원이 빈약하면, 앙상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국내에서 ‘기독교적 XX’를 말할 때 나타나는 문제는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대중음악 논의에서 잘 드러난다 . 과거의 찬송가 위주의 교회 음악에 반기를 들고, 동세대와 교감하는 음악을 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던 CCM 가수나 그룹들은 결국 무엇이 ‘기독교적’ 대중음악 이냐는 데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어놓지 못했다. 물론 가장 안전한 것은 ‘기독교적 가사’를 쓰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연주음악이나, 기독교적 소재나 표현을 쓰지않는 경우는 우리가 ‘기독교적’이라고 부를 적절한 판단기준이 없게 된다. 또, ‘기독교적 가사’를 사용하더라도 그 가사를 전혀 엉뚱한 맥락에 배치시킴으로써 ‘반기독교적’ 효과를 얻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은 진정한 ‘기독교 대중음악’이란 허공 중에 뜬 개념이 되거나,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특정한 소재나 표현을 구사하는 하위 장르로 자리를 잡고 만다. 그 결과 미국의 대중음악 챠트인 빌보드 차트(Billboard Chart)에는 CCM이란 구분이 있고, 이는 어떤 음악적 내용과 스타일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통용된다. ‘기독교적 학문’이란 것도 어쩌면 기독교와 관련된 소재를 다루거나, 기독교인이 수행하거나, 특정한 기독교적 함의를 수반하는 학문적 활동 정도로 고착되고, 궁극적으로는 학계의 하위 장르(sub-genre)나 집단 정도로 – 예를 들면, ‘기독교학문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수행하는 학문활동 – 인식되고, 자리매김될 수도 있다. 이것은 ‘기세 운동’이 내건 목표와는 거의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장 일어나기 쉬운 현상이다. 한국의 ‘기세운동’은 이런 결과를 피해갈 어떤 전략이나 의식적 노력이 있는 걸까?
사실상 서구에서 제출된 ‘기독교적 학문’, ‘기독교적 예술’ 등은 엄밀히 보면 자신들이 딛고선 지반의 복잡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기독교적’이란 용어가 겸허하게 묘사적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 용어가 ‘신앙고백적’ 권위주장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짙다. 그러기에, 누군가가 ‘기독교적 경제학’ 혹은 ‘성경적 경제사상’을 주장하면 거기에 대한 반대는 곧 기독교나 성경에 대한 불철저한 신뢰로 치부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 경우 논쟁은 곧 해당 학문 분야의 쟁점에 대한 문제해결능력보다는 성경의 해석에 대한 상이한 입장으로 치닫기 마련이고, 한국적 상황에서 이는 곧 ‘성경의 영감’이나 ‘문자적 해석’에 대한 헌신도를 묻는 쪽으로 사안이 변질되기 십상이다.
다원성에 대한 수용도도 중요한 쟁점이 된다. 다원성(plurality)에 대한 국내 기독교권의 관행적 거부 정서는 ‘기세’를 통해 더 증폭되지, 감소되지 않는다 . ‘기세’가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하게 옳은’ 기독교적 관점이란 태도를 배양하는 한, 기독교 내의 다른 ‘세계관’보다도 ‘개혁주의 세계관’을 더 나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 다원적 사회 내의 가치 조정을 말하기 힘들어 진다. 이미 사회는 단극 사회(mono-polar society)가 아니고, 다원적 가치(plural society)로 굴러가고 있다. ‘기세 운동’이 다른 대안에 비해 이런 다원적 사회에 대응하는 더 나은 입장을 갖게 하는가? 필자는 매우 유사한 강조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기독교 세계관’이란 용어나 개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존 스토트나 레슬리 뉴비긴의 작업이 이런 면에서 더 유연한 대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세 운동’이 세상을 설명해주는 단일한 관점을 천착하면서 다원성의 문제를 적극 수용하지 못하는 사이에 레슬리 뉴비긴(Leslie Newbigin) 같은 이는 현상황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이 더 나은 ‘타당성 구조(plausible structure)’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해 놓고 있다 .
3. ‘세계관(Worldview)’은 자명하지 않다
이제 우리는 정작 의문시 하지 않았던 ‘세계관’에 대한 의문에 도달하게 된다. 대부분의 세계관 책들은 이를 간략히 정의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사실상은 ‘세계관’이란 개념 자체가 이렇게 느슨하게 정의되어 있어서 빚어내는 오해나 왜곡이 꽤 있다.
첫째, ‘세계관’이 어느 정도 엄밀하게 정의되고 사용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 월터스에 따르면, 세계관이란 ‘전(前)철학적’, ‘전(前)신학적’, ‘전(前)과학적’, 즉 ‘전(前)이론적’이라고 한다 . 그것은 무의식적 층위에서 작동하기도 하고, 늘 일관적인 것도 아니다 – 비록 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은 있다고 하지만 . 그렇다면, 어떤 세계관을 견지하느냐는 것은 매우 규정하기 어려운 작업임에 분명하다. 월터스는 이 용어가 독일어 Weltanschauung에서 온 것이며,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고자 했던 것이며, ‘가치 체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딜타이(Dilthey) 이래로 철학자들이 ‘세계관’ 개념에 부여한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오늘날 ‘기세’는 이 가운데 과연 어떤 의미로 ‘세계관’을 말하는 것인지 규명될 필요가 있다.
‘세계관’의 내용이 늘 의식적(conscious)인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기세’ 논의는 이런 무의식적 층위(unconscious level)가 존재함을 간략히 언급 하고선 바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논할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한다. ‘세계관’을 지적구조(noetic structure)로 바라보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 그 논의가 지니는 함의를 극단적으로 밀고 가보면 실증주의적 인식론(positivistic epistemology)으로 흘러갈 수 있다. 세계관은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rationally known)는 시사를 지닌다. 이는 상당수 세계관 관련 서적들이 여러 종류의 세계관을 몇 개의 명제적 입장으로 도식화해서 비교설명 하는 방식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 필자는 서로 다른 세계관은 명제(proposition)적 입장 차이에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받아들이는 내러티브(basic narrative)의 차이에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느냐,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느냐는 해묵은 논란을 상기시켜 본다면, ‘기세’를 논한다는 것은 결국 관념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된다. 의식의 층위에서 ‘세계관’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바꾸면 그 존재의 심연에 있는 세계관 구조가 기독교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암시를 갖는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세계관’이란 것이 단선적으로 바뀌는 것인가? 과연 ‘세계관’을 규명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세계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작업이냐는 점이다. 아무리 세계관이 철학이나, 신학 이전의 것이라 하더라도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했듯 ‘세계 내적 존재(Sein-in-der-Welt)’인 인간이 순수하게 전(前)이론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는 해석학적 나선(hermeneutical spiral)을 통해 우리 자신을 파악할 뿐이다.
‘세계관’ 논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묘사적(descriptive) 측면에서는 성과가 있었지만, 우리가 어떤 세계관을 가져야 하는가하는 처방적(prescriptive) 측면에서는 자주 무기력했다 . 국내의 ‘기세운동’에서 자주 제기되던 이야기들, ‘이론은 그만하고, 이제 실천을 해야하지 않느냐?’는 말은 사실상 이론 자체가 실천지향적(praxis-oriented)이기 보다, 분석지향적(analysis-oriented)이었다면 그 이론의 추종자들에게 유사한 경향성을 심어주게 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어설픈 구호이다 . 이것은 음식을 놓고 ‘맛이 있나, 없나’를 말해줄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해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한번 마르크스를 인용한다면, ‘기세’는 세상을 분석하는 철학이긴 했으나, 세상을 변혁하는 철학은 못되었다는 비유가 가능하겠다.
Appendix
1. <복음과 상황>에 실린 관련 글들
박총, “기독교 세계관을 확 뜯어고쳐라” 복음과 상황 (2002.2)
양희송, “기독교 세계관: 담론, 운동, 혹은 논란 (I)” 복음과 상황 (2002.3).
-----, “기독교 세계관: 담론, 운동, 혹은 논란 (II)” 복음과 상황 (2002.4).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복음과 상황 (2002.3)
-----, “성서해석의 정치학” 복음과 상황 (2002.4)
-----,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관해 묻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복음과 상황 (2002.6)
최태연, “기독교 세계관을 고개들게 하라” 복음과 상황 (2002.3)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복음과 상황 (2002.4)
김종희, 양세진, 이진오, 황병구, “당신들의 세계관이 뭔지 궁금하다” 복음과 상황 (2002.5)
박총, 양희송, 정정훈,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과연 실천만 남았는가?” 복음과 상황 (2002.6)
김기현, “명제신학 vs 이야기 신학" 복음과 상황 (2002.5)
-----, “다시 생각해보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 복음과 상황 (2002.10)
2. <복음과 상황>의 ‘기세’ 논의를 간접적으로 코멘트 하는 글
신국원, “권두 대담: 세계관은 안경이다” 복음과 상황 (2002.8)
강영안, “지유철의 저자와의 대화/ 인격에 스민 지식을 찾아: 서양철학 전공자로 한국철학사를 쓴 강영안 교수” 뉴스앤조이 (2002.5.3)
비판적 성찰과 역동적 혁신을 위하여
- ‘기독교 세계관’의 수용과 확산 과정을 중심으로 -
80년대 초반부터 한국교회의 대학생층을 중심으로 회자(膾炙)되기 시작한 ‘기독교 세계관’(이하, 때때로 ‘기세’로 약칭)이 본격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 . ‘세상을 보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여러 사회현상과 기독인들의 삶을 검증, 비판, 개혁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기독교 세계관’ 그 자체가 이제는 논란의 주제로 등장한 것이다. 논쟁의 층위도 다양해서, 한편으로는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 주장이 ‘명제(propositions)’냐 ‘내러티브(narrative)’냐는 매우 이론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는가 하면, 과연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일으켰느냐는 실천적 측면의 질문까지 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글은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둘러싼 저간의 논의와 맥락을 정리하고, 주요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짚어봄으로써 차후 방향 모색에 기여하려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I.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 들여다 보기
이 글은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의 대상과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우선 우리는 ‘한국’의 논의를 중심에 삼는다. 이것은 ‘기독교 세계관’이란 개념과 주요 논의가 서구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그것이 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고, 이해되었는지 설명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기세’가 한국에서 어떤 면에서 왜곡이 있었는지, 아니면 외연의 확장이 있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또 한국 사회의 어떤 자리에서 이런 수용과 확산작업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수용 그룹의 사회적 위치, 그들의 지적 배경, 특히 한국 교회적 맥락 등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나 지금까지 ‘기세’ 논의에서는 의아스러울 정도로 실종되어 있었다.
둘째, ‘기독교 세계관’ 자체의 이론적 논리적 정합성을 둘러싼 논의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신학적, 철학적 배경과 토론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주된 논의가 서구 학자들의 것인만큼 여기에는 좀더 폭넓게 현재의 기독교 철학이나 신학의 흐름 속에서 이 논의가 차지하는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요청된다.
셋째, 어떤 집단이 목적의식을 갖고 이 일을 행하고 있다면 ‘운동’이라고 일컬어질 만하다. ‘기세’의 이론이나 실천을 추종하고, 동의하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되나, 이들이 소기의 목적을 잘 달성하고 있는지는 한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지향하는 목적이 딱히 ‘기세’를 통해서 가장 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기세’가 그들의 운동이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교회 개혁이나 사회 개혁이 꼭 ‘기세’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측면은 우리가 이제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살펴보는데 기본적으로 견지되어야 할 태도이다. 자세한 평가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80년대 이후의 ‘기세 운동’ 전개를 살펴보도록 한다.
II. 한국에서 기세운동의 시작과 확산
1. 80년대의 기세운동
한국에서 ‘기세’는 80년대 초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부 논의들이 없지 않았겠으나, <기독교 학문연구회>나 IVF 등지에서 원서를 읽으며 ‘기세’ 관련 주요 서적 세미나를 한 것이 이 무렵이다 . 흥미로운 사실은 ‘기독교 세계관’ 관련 논의는 서구권과 시기적으로 그다지 큰 편차를 보이지 않고 진행형의 논의가 수용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 영서의 출간과 번역서의 출간이 5년 안팎으로 이루어졌고, 어떤 경우는 2-3년만에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의욕적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기학연>의 경우는 대학원생들이 원서를 읽으면서 세미나와 번역을 함께 진행하고,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쓰는 등 ‘기세’가 당대의 고민에 대한 한 대안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이후는 ‘기세’를 위한 주요 서적들이 속속 번역출판 됨으로써, IVF나 <기학연>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자생적인 ‘기세’ 커리큘럼이 개인 단위나 교회 청년대학부 단위에서 시행될 수 있었고, ‘기세’는 소위 ‘의식 있는 기독 청년’의 교양 필수로 자리를 잡게 된다. 왜 이 시기에 ‘기세’가 도입되고, 확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정교한 분석이 요구되겠으나, 대체로 80년대 초반 기독 대학생들이 사로잡혀 있던 지적 열등감의 해소책으로 크게 호소력을 가졌다는 평가가 많이 제출되었다. 70년대 이래로 날로 덩치가 커져 ‘천만 성도’를 운위하던 한국교회가 그 규모에 걸맞지 않은 저열한 사회의식과 내부 윤리 속에 함몰 되어 있는 것을 ‘기독교적 관점’ 형성의 실패로 진단해내는 ‘기세’의 논의는 청년들에게 충분히 매력이 있었다. 당시 ‘운동권’이 80년 광주의 폭압적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맑시즘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의 논리를 치열하게 다듬어가던 상황 속에서 적절한 ‘기독교적 사회의식’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져있던 복음주의권의 대학생들에게 ‘기세’는 나름대로는 대안적 이론으로 기대감을 줄 수 있었다 .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내세지향적 종교성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향해 발언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는 이론적 토대를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당시 국내의 ‘기세’에 실천적 모델을 결합시킨 상징적 인물로 손봉호 교수를 꼽을 수 있겠다 . 목사가 아니지만 교회에서 설교자로 사역했고, 서울대 교수로 가르치는 분야뿐 아니라 기독교수 모임을 통해 198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창립을 주도하면서, 복음주의권에 시민운동의 한 사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공정선거감시운동’을 주창해 그 해 대통령선거와 이후의 선거에 복음주의권 교회 청년들이 대거 참여하는 길을 트기도 했다. 한국사회에 본격적인 시민사회의 도래를 알린 시민운동 단체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창립에도 깊게 관여함으로써 종교운동의 범주를 넘어서 시민사회와 결합하는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 .
2. 90년대의 기세운동
90년대 넘어서면서 ‘기세’ 운동은 약간의 정체 경향을 보이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기학연>을 일으킨 주축 세대들이 대체로 유학, 취업 등으로 흩어지게 됨으로써 예전만한 팀웍을 갖기 힘들어졌다는 측면이 있다. ‘기세’ 입문서들은 대체로 다 번역이 되었으니, 이제는 그 원론에 값하는 각론이 나올 때가 되었으나, 이 지점에서 ‘기세’ 논의는 계속 지체되고 말았다. 학문세계에서 각축할 만한 ‘기독교적’ 이론이 제출되거나, 현실세계에서 뚜렷한 차별성과 성과를 올리는 ‘기독교적’ 실천양식이 제시되었어야 할 터인데, 한국사회의 각 분야가 신속하게 전진해 나가는 동안 계속 ‘기세’ 세미나를 통한 인식의 전환만을 붙잡고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80년대 사회와 대학가를 붙잡고 있던 시대적 긴박감은 전반적으로 해소되었고, 사회변혁을 위한 토대나 대안 논리로서 ‘기세’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나 매력은 급속히 반감되고 있었다. 또한 정작 ‘기세’를 가지고 사회변혁을 시도해 보려던 그룹들은 ‘기세’ 원론만으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절감했다 .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도 ‘정치적 사회변혁’에서 ‘문화를 통한 사회변혁’이란 코드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세’ 논의도 상당부분 문화분석이나 문화관 논의의 형태를 띄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기세’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권의 문화관 혹은 문화분석은 한국 사회 전체가 문화적 폭발을 경험하는 동안 거의 방어적으로 일관해왔다. 한국 사회는 90년대 초반 ‘신세대’ 담론의 등장과 이를 문화현상으로 폭발시켜버린 서태지의 등장을 목도했다. 또한 1995년을 기점으로 대학가에서는 ‘동성애 해방운동’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왕년에 운동했던 이들은 대거 문화판으로 몰려갔고, 90년대 중반이후 이들은 한국 영화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기세’의 이름을 걸고 나온 문화평들은 대부분 해당 장르의 작업공정이나 매체적 미학에 무지한 ‘인상비평’, ‘주제비평’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보다 더 자주 ‘영적 비평’의 형태로 비약했다. 이를테면, ‘이 작품은 영적으로 유해하다, 아니다’는 식으로 검열관을 자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비평의 근거로는 ‘기세’가 동원되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그런 결론이 나온다’는 식이었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누군가가 ‘기세’를 자의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막기 힘들 정도로 ‘기세’는 대중화 되었고, 저마다 나름의 의미부여와 적용이 이루어졌다. ‘기독교 세계관’과 ‘영적전쟁’이 어우러졌고, ‘사탄이 장악한 문화’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되찾아와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3. 90년대 기세운동에 대한 평가
이 시기 ‘기세 운동’의 맥락은 최소한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기세운동’이 화란 개혁주의 전통(Dutch Reformed tradition)을 향해 급속히 재정렬 하는 현상이다. ‘기세’ 입문서를 보았으니, 이제 본격적 저작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를 읽기 시작하고,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나 알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 같은 개혁주의 인식론자들의 논의를 붙들게 된다. 이제 ‘기세’는 ‘개혁주의’ 철학이나 신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등치되고 만다. <기학연>에서도 ‘기독교 세계관’의 일환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는 커리큘럼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고신이나 총신을 그 신학적 배경으로 하는 이들에게서 상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다.
둘째는 ‘기세운동’을 대중문화 비평이나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여기는 경우이다. 사실상 이 흐름이 첫번째와 크게 괴리될 이유는 없다. 예를 들면, 미국 칼빈대학교의 로마노프스키 교수의 책은 개혁주의자의 관점에서 써낸 훌륭한 대중문화 비판서이다 . 여기에는 연예산업 전반에 대한 비판적 고찰도 들어있고, 문화 자체에 대한 상당히 적극적 평가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미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경직된 가치평가가 선행되고 있고(대중문화는 악하다, 혹은 위험하다), 왜 그런가에 대한 원인분석은 부차적으로 따라붙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기에, 문화 현상에 대해 과거에는 그것이 ‘뉴 에이지’ 였기에 나빴으나, 이제는 ‘기독교 세계관’에 충실하지 않으므로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비평에서 ‘취향의 문제’일 수 있는 부분이 ‘원칙의 문제’로 침소봉대 되기도 하고, ‘실험’으로 봐야 할 영역을 ‘본질’인양 오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기세’란 단순히 이론적 치장(theoretical decoration)효과 밖에는 하는 역할이 없다. 기독교권의 하위문화(Christian sub-culture)를 설명하는 논리 정도로나 통용될 수 있을 뿐이다. 해당 분야의 현실이나 이론적 흐름과 긴밀히 교감하는 것 없이 ‘기세’만으로는 실천을 위한 넉넉한 토대가 마련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세번째는 주로 대학 고학년생들과 대학원생들 혹은 전문인 집단 가운데 ‘기독교 학문’의 가능성에 미련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 학문세계에서 ‘기독교적’ 학문이 과연 가능한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구성될 것인지를 묻는 이들이다. 이들의 질문은 단순하다. ‘기독교적 정치학’은 가능한가? 어떤 사람들은 ‘신정(神政, theocracy)’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수학’은 가능한가? 그냥 기독교인이 수행하는 학문을 ‘기독교 학문’이라고 부르는 것이 현실은 아닌가? 스스로를 ‘기독교적’이라고 생각지 않는 어떤 학문적 입장이 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이기를 추구하는 입장보다 더 ‘기독교적’일 수도 있는가? 이런 류의 질문들은 엄밀히 따라가보면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과연 ‘기독교적’이란 것이 무엇인가란 근본적 규정 없이는 이 논의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기세’논의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줄 것인지를 묻는 이들이 90년대 ‘기세’운동의 또 다른 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
90년대 ‘기세운동’은 실천적 측면에서도 매력을 잃어갔다. 앞서 들었던 80년대 ‘기세운동’의 대표적 모델들이 사회 일반의 반발 내지는 대안 모델로 인해 빛이 바래가는 현상 때문이다. <기윤실>이 ‘문화소비자 운동’을 통해 초창기부터 꾸준히 펼쳐온 ‘스포츠신문 음란성 고발 캠페인’은 상당히 호응을 받고 있었으나, 이와 더불어 진행해온 대중문화 공연이나 음반, 영화 등에 대한 캠페인은 적잖은 반발을 수반했다.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반대(1995), 싸이, 박지윤, 박진영 등의 음반 방송금지 혹은 불매운동, 영화 ‘거짓말’, ‘죽어도 좋아’ 등의 장면 삭제 혹은 상영제한 캠페인 등은 다른 문화운동 단체들과 상당한 논란을 빚었고, <기윤실> 문화정책을 한국 사회 보수집단의 전형적 문화취향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교회개혁 문제에 있어서 <기윤실>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교회개혁 실천연대>가 <기윤실>에서 분리해 나간 것에서도 드러나듯 ‘목회 세습 문제’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미온적 자세를 보임으로써 현실인식의 긴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윤실>은 그 활동 전반이 갖고 있는 건강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협소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은 정치판의 기본적인 룰인 선거에 있어서 공정성을 바로잡자는 취지가 80년대적 상황에서는 큰 울림이 있었으나, 90년대 접어들면서 기독인의 정치색을 무색무취로 포장하게 한다는 점에서 점차 매력을 잃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개진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 내에 강화되었고, 이런 흐름의 극적인 표출이 참여연대 등의 ‘낙선운동’이나 지난 대선의 ‘노사모’ 활동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세’는 이미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 혹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까지도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당연한 원칙론을 설파하는 이상의 발언을 할 입지를 마련하지 못했다.
<경실련>의 경우도 김현철 비디오 파문을 비롯해서 몇 번에 걸친 지도부의 신뢰성 문제로 시민 운동계에서 힘을 많이 잃었고, 지금은 <참여연대>가 대표적 시민단체로 입지를 굳힌 가운데 시민운동의 중심이동 내지는 패러다임의 변모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시민운동 자체가 곧 ‘기세’적 실천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대표 모델들이 선도성을 잃어가는 현상은 ‘기독교적 실천’의 부름에 단일대오로 나서는 일이 점차 더 어려워짐을 보여준다. 기독교 기업으로 자처하던 이랜드(E-Land)가 납세의무 성실히 이행하는 기업에서 신앙심을 빌미로 노동자들 착취하는 종교기업으로 이미지를 까먹은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90년대의 ‘기세’는 원론의 반복적 강조 외에 이론적 측면에서나 실천적 측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어놓지 못했고, ‘기세’의 효용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III. 한국의 기세운동 비판
이 글이 다루려고 하는 주제는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란 서구교회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기독교 세계관’을 국내에 의식적으로 소개하고, 전파하고자 노력했던 이들의 활동을 의미한다. 필자는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말하기 위해서는 ‘기세’의 이론과 실천을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상(thought, theory)과 실천(praxis)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건 사상보다 유연한 실천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사상의 내적 역량은 여유가 있으나, 그 실천 양상은 매우 앙상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우리가 다루는 주제처럼 상당 부분이 외국서 수입된 개념과 맥락을 갖는 경우는 더욱더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에 주목해야 한다. 단지 그것이 개념의 번역(translation)과 이식(plantation)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인지, 아니면 개념과 사고의 틀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한계를 안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또한 이론적으로는 더 여유가 있는 사상이 그 실천 집단에 의해서 충분히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도 찾아보아야 하겠다. 대체로 수행성취도(performance)는 실천 집단의 능력(ability)과 연관성이 높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상은 그 집단의 신학적(theology), 계급적(class), 사회적 요인들(social factors)로 인해 이론의 어떤 측면은 부각되고, 어떤 측면은 외면되는 취사선택(selective acceptance)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외래 사상인 경우에는 특히나 이런 분석이 긴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인식이다. 현재 국내에서 쟁점으로 부각되는 사안들을 짚어보자.
1.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에 경도(傾倒)됨
‘기세운동’이 사실상 개혁주의 신학에 경도되었다는 비판은 여러 종류의 함의를 갖는다. 일차적으로 ‘기세’ 자체가 화란 개혁주의 신학 전통(Dutch reformed theology tradition)에서 발원하는 것임은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다. ‘기세’ 관련 서적의 저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개혁주의 계열의 신학자들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런 경향은 유지된다. 화란 개혁주의 노선은 고신파 교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가 따르고 있으나, 이는 ‘신칼빈주의(Neo-Calvinism)’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하면서 국내 개신교의 다수파인 총신계열의 장로교회들에서는 친화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듯 ‘기세’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지만, 한국의 신학적 풍토에서는 친화성을 발휘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첫째,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기독교 세계관’ 혹은 ‘성경적 세계관’이란 명칭을 ‘개혁주의 세계관’과 별다른 구별 없이 쓰고 있는 경향이다. 최근의 ‘기세 비판’에서는 이런 명칭 자체에 스며들어 있는 권력성에 대한 논의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영어로 써진 책들에서는 예외없이 ‘a Christian worldview’, ‘a biblical worldview’ 등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이 번역되면서는 마치 ‘the Christian worldview’, ‘the biblical worldview’로 인식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 물론 ‘기독교’ 세계관이나 ‘성경적’ 세계관이 단순히 타종교와의 대비를 위해 서술적(descriptive statement)으로 사용된 것일 수도 있다. 대체로 외국 저자들은 그런 정도 선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상황이 달라지는데, 어떤 입장이 ‘기독교적’이라고 말하거나, ‘성경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많은 경우 권위적 진술(authoritative statement)이 되고 만다.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내용적으로는 ‘개혁주의 세계관’인 것을 ‘기독교 세계관’ 혹은 ‘성경적 세계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기독교 내의 수많은 다른 신앙적, 신학적 전통을 무시하고 ‘개혁주의’가 유일한 기독교 대표선수를 자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개혁주의자들이 아닌 이들을 ‘기세’ 논의에서 주변인으로 몰아내는 이유가 되고 만다. 거꾸로 이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기독교적 진리에 대한 독점의식을 과도하게 갖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금의 ‘기세’는 정확히 말해 ‘개혁주의 세계관’으로 이름을 바꾸던지, 다른 신학적 사조도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의 룰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 지금의 논의 지형은 마치 ‘공부 잘하는 아이’와 ‘운동 잘 하는 아이’를 데려다 놓고서 ‘공부 잘 하는 아이’에게 유리한 규칙 아래서 경쟁 시켜놓고선 ‘누가 더 착한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누가 더 공부 잘하는가’에 대한 경쟁이라고 밝히든지, 아니면 ‘누가 더 착한지’에 적합한 규정과 게임의 법칙을 제대로 만들어야 옳다.
둘째, 이런 개혁주의에 대한 경도현상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개혁주의적 경도의 결과는 다시 원인으로 순환하면서 다른 신학이나 신앙 전통에 대한 습관적 폄하로 이어진다. 이는 리차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를 읽어내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니버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와 문화가 관계 맺는 방식을 각각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Christ against Culture)’, ‘문화 위의 그리스도(Christ above Culture)’, ‘문화의 그리스도(Christ of Culture)’, ‘문화와 긴장관계 속의 그리스도(Christ and Culture in Paradox)’,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Christ the reformer of Culture)’의 다섯 가지 모델로 정리해내었다. 니버가 마지막의 ‘문화 변혁자로서의 그리스도’ 모델을 가장 우월한 것으로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었느냐, 아니면 좀더 병렬적으로 모델들을 보여주었는가는 토론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지만, 적어도 각 모델이 역사적으로 수행한 역할에 대한 적극적 평가에 인색치는 않다. 그러나, 국내 기세논의에서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니버를 인용해서 ‘변혁자 그리스도’상을 가장 우월한 입장으로 전제한다. 그럼으로써, 두 왕국 이론을 전개한 루터(M Luther)나 어거스틴(Augustine)의 ‘긴장관계 속의 그리스도와 문화’ 입장이나 ‘대립자 그리스도’ 모델에 속하게 되는 재세례파(Anabaptist) 전통은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것은 매우 관행화된 텍스트 오독(habitual misreading)에 해당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재세례파나 루터란 전통이 세상의 변혁에 더 효과적이냐 개혁주의 신학이 더 효과적이냐는 물음은 그런 방식으로 대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 윤리 분야에 재세례파 전통의 학자들이 약진하고 있는 현상을 보라 . 그동안 기독교 윤리학을 지배하다시피 하던 니버 류의 입장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란의 식민지였던 남아공에 인종차별 정책이 기승을 부렸던 반면, 평화주의 전통은 재세례파를 통해서 구현되었다는 점은 되씹어볼 부분이 많다.
이렇게 ‘개혁주의 세계관’이 ‘기독교 세계관’과 등치 되는 현상은 사실상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 신학이 주류인 한국교회의 신앙적 양태와 신학적 경향성에 대한 내부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무디게 한다. 중세교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 세력으로 출발했던 수도원 운동을 교황청이 그 체제 내부로 편입시킴으로써 제압효과를 얻었던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기세’의 ‘개세’화는 스스로 동원가능한 신학적 자원을 협소화 함으로써 ‘대안적 비전’ 제시에 태생적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혐의를 갖게 된다.
2. ‘기독교적’이란 신기루?
어떤 사람에게 100평의 땅을 주고 집을 지어보라고 했을 때, 누구는 100평 꽉 차게 구조물을 지어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5평짜리 천막치고 나머지 95평은 마당으로 쓸 수도 있는 문제이다. 개발과 근대화가 시대의 대세이던 경우라면, 용적율 크게 집짓는 것이 미덕이었겠지만, 요즘처럼 생태친화적 관심이 드높아가는 경우라면 후자에 점수를 많이 주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느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더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단지 누가 더 ‘기독교적 용어’와 ‘이론’을 잘 빌어와 자기 논리를 치장해내느냐에 좌우되지 않고 판단할 어떤 근거를 우리는 갖고 있는 걸까?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분석하면서, 서구는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비서구(Orient)로 투사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명하려고 했다는 말을 한다 . 서구 사회에 ‘합리성(rationality)’을 부여함으로써, 비서구(non-western world)는 신비스럽거나(mysterious), 야만적이거나(barbarian) 한 것이 되고 만다. 이 논리는 문명충돌론(the clash of civilizations)을 썼던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에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 ‘당신의 적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고 그는 말한다. 아(我)와 피아(彼我)를 갈라내는 작업이 곧 정체성 규명의 노력인 것이다. 이런 방식의 정체성 규명작업이 갖는 난점은 특정 맥락에서 ‘적’으로 규정했던 것들이 다른 맥락에서는 ‘우군’이 될 수 있으나, 이미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분을 이루는 속성을 부정하거나 수정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변화를 내부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낯선 대상에 대해서는 과도한 대결의식을, 낯익은 대상에 대해서는 지나친 온정주의가 발동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
대부분의 ‘기세’ 서적은 ‘성경적 기세’의 얼개를 ‘창조-타락-구속-(완성)’이란 성경의 내러티브(narrative) 구조를 통해 설명한다. 그러나, 이 구조는 사실상 매우 느슨한 것으로 여백이 많이 있는 개념틀이다. 이 뼈대에 살과 신경을 채워넣는 작업은 여러 신학적-철학적 자원들이 동원되는 일이다. 이 작업에 동원가능한 자원이 빈약하면, 앙상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국내에서 ‘기독교적 XX’를 말할 때 나타나는 문제는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대중음악 논의에서 잘 드러난다 . 과거의 찬송가 위주의 교회 음악에 반기를 들고, 동세대와 교감하는 음악을 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던 CCM 가수나 그룹들은 결국 무엇이 ‘기독교적’ 대중음악 이냐는 데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어놓지 못했다. 물론 가장 안전한 것은 ‘기독교적 가사’를 쓰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연주음악이나, 기독교적 소재나 표현을 쓰지않는 경우는 우리가 ‘기독교적’이라고 부를 적절한 판단기준이 없게 된다. 또, ‘기독교적 가사’를 사용하더라도 그 가사를 전혀 엉뚱한 맥락에 배치시킴으로써 ‘반기독교적’ 효과를 얻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은 진정한 ‘기독교 대중음악’이란 허공 중에 뜬 개념이 되거나,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특정한 소재나 표현을 구사하는 하위 장르로 자리를 잡고 만다. 그 결과 미국의 대중음악 챠트인 빌보드 차트(Billboard Chart)에는 CCM이란 구분이 있고, 이는 어떤 음악적 내용과 스타일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통용된다. ‘기독교적 학문’이란 것도 어쩌면 기독교와 관련된 소재를 다루거나, 기독교인이 수행하거나, 특정한 기독교적 함의를 수반하는 학문적 활동 정도로 고착되고, 궁극적으로는 학계의 하위 장르(sub-genre)나 집단 정도로 – 예를 들면, ‘기독교학문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수행하는 학문활동 – 인식되고, 자리매김될 수도 있다. 이것은 ‘기세 운동’이 내건 목표와는 거의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장 일어나기 쉬운 현상이다. 한국의 ‘기세운동’은 이런 결과를 피해갈 어떤 전략이나 의식적 노력이 있는 걸까?
사실상 서구에서 제출된 ‘기독교적 학문’, ‘기독교적 예술’ 등은 엄밀히 보면 자신들이 딛고선 지반의 복잡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기독교적’이란 용어가 겸허하게 묘사적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 용어가 ‘신앙고백적’ 권위주장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짙다. 그러기에, 누군가가 ‘기독교적 경제학’ 혹은 ‘성경적 경제사상’을 주장하면 거기에 대한 반대는 곧 기독교나 성경에 대한 불철저한 신뢰로 치부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 경우 논쟁은 곧 해당 학문 분야의 쟁점에 대한 문제해결능력보다는 성경의 해석에 대한 상이한 입장으로 치닫기 마련이고, 한국적 상황에서 이는 곧 ‘성경의 영감’이나 ‘문자적 해석’에 대한 헌신도를 묻는 쪽으로 사안이 변질되기 십상이다.
다원성에 대한 수용도도 중요한 쟁점이 된다. 다원성(plurality)에 대한 국내 기독교권의 관행적 거부 정서는 ‘기세’를 통해 더 증폭되지, 감소되지 않는다 . ‘기세’가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하게 옳은’ 기독교적 관점이란 태도를 배양하는 한, 기독교 내의 다른 ‘세계관’보다도 ‘개혁주의 세계관’을 더 나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 다원적 사회 내의 가치 조정을 말하기 힘들어 진다. 이미 사회는 단극 사회(mono-polar society)가 아니고, 다원적 가치(plural society)로 굴러가고 있다. ‘기세 운동’이 다른 대안에 비해 이런 다원적 사회에 대응하는 더 나은 입장을 갖게 하는가? 필자는 매우 유사한 강조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기독교 세계관’이란 용어나 개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존 스토트나 레슬리 뉴비긴의 작업이 이런 면에서 더 유연한 대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세 운동’이 세상을 설명해주는 단일한 관점을 천착하면서 다원성의 문제를 적극 수용하지 못하는 사이에 레슬리 뉴비긴(Leslie Newbigin) 같은 이는 현상황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이 더 나은 ‘타당성 구조(plausible structure)’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해 놓고 있다 .
3. ‘세계관(Worldview)’은 자명하지 않다
이제 우리는 정작 의문시 하지 않았던 ‘세계관’에 대한 의문에 도달하게 된다. 대부분의 세계관 책들은 이를 간략히 정의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사실상은 ‘세계관’이란 개념 자체가 이렇게 느슨하게 정의되어 있어서 빚어내는 오해나 왜곡이 꽤 있다.
첫째, ‘세계관’이 어느 정도 엄밀하게 정의되고 사용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 월터스에 따르면, 세계관이란 ‘전(前)철학적’, ‘전(前)신학적’, ‘전(前)과학적’, 즉 ‘전(前)이론적’이라고 한다 . 그것은 무의식적 층위에서 작동하기도 하고, 늘 일관적인 것도 아니다 – 비록 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은 있다고 하지만 . 그렇다면, 어떤 세계관을 견지하느냐는 것은 매우 규정하기 어려운 작업임에 분명하다. 월터스는 이 용어가 독일어 Weltanschauung에서 온 것이며,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고자 했던 것이며, ‘가치 체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딜타이(Dilthey) 이래로 철학자들이 ‘세계관’ 개념에 부여한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오늘날 ‘기세’는 이 가운데 과연 어떤 의미로 ‘세계관’을 말하는 것인지 규명될 필요가 있다.
‘세계관’의 내용이 늘 의식적(conscious)인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기세’ 논의는 이런 무의식적 층위(unconscious level)가 존재함을 간략히 언급 하고선 바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논할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한다. ‘세계관’을 지적구조(noetic structure)로 바라보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 그 논의가 지니는 함의를 극단적으로 밀고 가보면 실증주의적 인식론(positivistic epistemology)으로 흘러갈 수 있다. 세계관은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rationally known)는 시사를 지닌다. 이는 상당수 세계관 관련 서적들이 여러 종류의 세계관을 몇 개의 명제적 입장으로 도식화해서 비교설명 하는 방식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 필자는 서로 다른 세계관은 명제(proposition)적 입장 차이에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받아들이는 내러티브(basic narrative)의 차이에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느냐,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느냐는 해묵은 논란을 상기시켜 본다면, ‘기세’를 논한다는 것은 결국 관념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된다. 의식의 층위에서 ‘세계관’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바꾸면 그 존재의 심연에 있는 세계관 구조가 기독교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암시를 갖는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세계관’이란 것이 단선적으로 바뀌는 것인가? 과연 ‘세계관’을 규명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세계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작업이냐는 점이다. 아무리 세계관이 철학이나, 신학 이전의 것이라 하더라도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했듯 ‘세계 내적 존재(Sein-in-der-Welt)’인 인간이 순수하게 전(前)이론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는 해석학적 나선(hermeneutical spiral)을 통해 우리 자신을 파악할 뿐이다.
‘세계관’ 논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묘사적(descriptive) 측면에서는 성과가 있었지만, 우리가 어떤 세계관을 가져야 하는가하는 처방적(prescriptive) 측면에서는 자주 무기력했다 . 국내의 ‘기세운동’에서 자주 제기되던 이야기들, ‘이론은 그만하고, 이제 실천을 해야하지 않느냐?’는 말은 사실상 이론 자체가 실천지향적(praxis-oriented)이기 보다, 분석지향적(analysis-oriented)이었다면 그 이론의 추종자들에게 유사한 경향성을 심어주게 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어설픈 구호이다 . 이것은 음식을 놓고 ‘맛이 있나, 없나’를 말해줄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해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한번 마르크스를 인용한다면, ‘기세’는 세상을 분석하는 철학이긴 했으나, 세상을 변혁하는 철학은 못되었다는 비유가 가능하겠다.
Appendix
1. <복음과 상황>에 실린 관련 글들
박총, “기독교 세계관을 확 뜯어고쳐라” 복음과 상황 (2002.2)
양희송, “기독교 세계관: 담론, 운동, 혹은 논란 (I)” 복음과 상황 (2002.3).
-----, “기독교 세계관: 담론, 운동, 혹은 논란 (II)” 복음과 상황 (2002.4).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복음과 상황 (2002.3)
-----, “성서해석의 정치학” 복음과 상황 (2002.4)
-----,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관해 묻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복음과 상황 (2002.6)
최태연, “기독교 세계관을 고개들게 하라” 복음과 상황 (2002.3)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복음과 상황 (2002.4)
김종희, 양세진, 이진오, 황병구, “당신들의 세계관이 뭔지 궁금하다” 복음과 상황 (2002.5)
박총, 양희송, 정정훈,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과연 실천만 남았는가?” 복음과 상황 (2002.6)
김기현, “명제신학 vs 이야기 신학" 복음과 상황 (2002.5)
-----, “다시 생각해보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 복음과 상황 (2002.10)
2. <복음과 상황>의 ‘기세’ 논의를 간접적으로 코멘트 하는 글
신국원, “권두 대담: 세계관은 안경이다” 복음과 상황 (2002.8)
강영안, “지유철의 저자와의 대화/ 인격에 스민 지식을 찾아: 서양철학 전공자로 한국철학사를 쓴 강영안 교수” 뉴스앤조이 (2002.5.3)
출처 : 명지새벽이슬
글쓴이 : 임왕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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