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의

[스크랩] 기독교 강요와 캘빈의 성령 은사 이해

향기나무 김성휴 2008. 2. 19. 13:36

 

 

기독교 강요와 캘빈의 성령은사 이해

 

 

윤원환 목사(피닉스 한인장로교회)

 

 

 

   16세기 교회 개혁가들 중에서 쟌 캘빈은 성령에 대해 가장 많은 언급과 이해를 가진 인물로 평가된다.  미국 웨스턴 신학교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I. John Hesselink는 캘빈의 성령론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 뒤, "캘빈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성령의 사역에 의존된다."라고 평하였다(개혁주의 신자론, 1988. p.71).

 

   사실 캘빈의 주된 신학내용이 성령에 중심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캘빈이 성경의 일부 은사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현재까지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에 성령의 은사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자세를 갖는 것에 대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이점에 대해 Hesselink는 "개혁주의 전통이 성령의 능력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과 경험에 대해 특히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의 나타냄에 대해 언급이 전무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p.153)

 

 

 캘빈의 교회 직분론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 이해

 

캘빈의 은사론을 그의 책 기독교 강요에서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그의 교회 직분론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교회 직분론이 성령의 은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먼저 캘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성도의 어머니"로 정의되면서, 성도의 연약성 때문에 존재해야 한다."하나님은 또한 이와 같은 조력(외적도움)을 우리의 연약 때문에 부여하셨다"(기독교 강요 IV.I.1.1011)

 

  하나님은 그에게로 그의 백성을 불러모으는 장치로서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자신이 우리의 능력에 적응코자 하는 놀라운 섭리 안에서, 그에게로 가까이 이끌고자 우리를 위하여 한길(교회)을 제시하셨다." (기강 IV.I.1.1012).

 

  이점에 있어서 교회의 기능은 믿는 자들을 양육하고 인도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품으로서 이해되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모으시려고 기뻐하심은 또한 성도들이 신앙의 목표에 성숙하여 도달할 때까지 교회의 모성적 배려로써 인도 되고자함에있다" (기강 IV.I.1.1012)

 

  캘빈은 개신교회의 전통에 따라 두 가지 종류의 교회 즉 유형교회와 무형교회인 모든 하나님의 택자로 나누는데, 무형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자까지도 포함하였다(기강 IV.I.2.1013). 물론 택자의 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나님께서만 유일하게 그의 비밀스런 선택으로 이루어진 그의 교회를 아신다." (기강 IV.I.1.1013)

 

  캘빈의 교회론은 중세교회의 계급구조주의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지만, 아직도 그의 교회관은 역동적이지 못하고 고정적이며 정체적일 뿐 아니라, 구심적 개념에 빠져있다.  즉 교회를 성도가 모여서 말씀을 듣고 성례에 참여하는 고정된 장소로 이해하지 교회가 살아 움직임이 공동체 그 자체이며 흩어져서 복음을 전파하는 성격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정적인 교회 관에 대해 John H. Piet는 캘빈의 정적 교회관은 콘스탄틴 시대이래 지속된 "기독교 왕국" 개념에 기인하는 것으로 지적하였다.

 

  캘빈에게 있어서 교회사역은 외향적 선교사역은 사도시대로 종료되고 이제는 내향적이고 관리적 필요만이 지속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먼저 교회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전제하고 이것이 인간사역자에게 위임되었다고 본다: "그(그리스도)는 그의 뜻을 우리에게 입으로 선언케 하도록 일종의 위임된 사역으로서 사람들의 사역을 사용하시는 데, 이것은 마치 목수가 그의 일을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기강 IV.III.1.1053)

 

  물론 캘빈에게 있어서 주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주된 사역은 예배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캘빈은 말씀의 선포직을 매우 귀하게 여기는데 바울 사도를 인용하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그(바울)는 복음의 사역보다도 더 교회 내에서 귀하거나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은 성령과 의와 영생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기강 IV.III.3.1056)

 

  에베소서 4장 11절에 근거하여 캘빈은 교회직분을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그리고 교사로 구분하고 이중에서 목사와 교사만을 "일상 직분"(ordinary office)으로 이해하였다.

 

  여기서 사도의 기능의 본질은 교회 창립시에 복음을 전 세계까지 전파하는 것이었고, 그 목적은 그리스도에게  세계를 복종시키는데 있다고 보았다(기강 IV.III.4.1058),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캘빈은 이제 사도직에서 처음에 나타난 선교적 기능은 복음이 이미 전파되고 교회가 설립된 이상 그것은 종료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사도들은 세계를 본래 반역에서 하나님께로의 진실된 순종으로 인도하도록 보내어졌고,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모든 곳에 세우기 위해 다시 말하면 온 세계에 그 기초를 놓기 위해 보내어졌다."(기강 IV.III.4.1057).  그래서 캘빈은 이제 사도 선지자 전도자 등은 이미 이천년전에 복음 전파사역이 종료되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이 세 기능(사도 선지자 전도자)은 항존적인 의미의 교회직분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며 교회가 없던 곳에 교회가 세워지는 그 기간만을 위해 존재케 되었다." (가강 IV.III.4.1057).  

 

  이제 캘빈은 이 세 직분을 항존직이 아닌 일시직분(extraordinary office)으로 불렀다. "나는 이 직분을 '일시직분'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미 교회가 구성된 곳에서는 더 이상 이런 직분이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기강 IV.III.4.1057)

 

  이와 같이 캘빈은 교회직분에 대한 임시직 그리고 항존직이라는 이원구조를 가지고 사도 선지자 전도자는 임시직으로서 이제 사라졌고, 항존직으로 이해된 목사와 교사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기강 IV.III.5.1057-8)

"다음으로 오는 목사와 교사는 교회가 이것들 없이는 지속 될 수 없는 직분들이다."(기강 IV.III.4.1057).

 

  이런 인식구조속에서, 캘빈은 로마서 12장 7-8절과 고린도전서 12장 28절을 인용하면서 교회의 임시기능으로 이해된 "능력들"과 "치유의 은사"를 교회직분에서 누락시켰다. 나는 이 두 가지 것들(능력들과 치유은사)을 임시적인 것으로 이해하고(교회 이 직분)에서 누락시키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에(우리가)매달리는 것이 가치 있다고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행정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 이 두 가지는 항구적인 것이다." (기강 IV.III.8.1061)

 

  지금까지 살핀 대로, 캘빈의 이원 구조적 교회직분이해-항존직과 임시적을 근거로 하면, 초자연적 비범한 은사들을 수반하고 또 시행한 사도직이나 선지자직 및 전도자직은 일시적인 직분으로서 초대교회의 설립의 사명을 완수하는데 쓰여졌고, 또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캘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 즉 방언이나 신유은사나 능력 등은 더 이상 사도시대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이와 같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세대주의적 편견은 그 이후 개혁주의 전통에서 성령은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내지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출처 : 포도나무 - Vitis
글쓴이 : Joh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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