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의
[스크랩] 아시아 신학의 현 주소(이문장 교수, 한국신학정보연구원)
향기나무 김성휴
2006. 11. 15. 17:00
아시아 신학의 현 주소 (이 문장)
1. 아시아 신학, 한국신학의 필요성
이 글은 "아시아 신학의 전반적 진단과 한국 신학의 나아갈 방향"이라는 큰 주제의 첫 번째 부분이다. 한국 신학의 나아갈 방향을 아시아 신학이라는 보다 넓은 맥락을 염두에 두고 검토해 보는 것은 매우 적절한 시도라 생각된다.
그동안 한국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부분의 신학자들에게조차 "한국신학" 이란 명칭은 다소 거북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한편으로는 "한국신학"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신학"이 마치 신학의 보편성을 훼손시키는 불순한 시도로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이면 기독교 신학이지 구태여 '한국' 혹은 '아시아' 같은 한정사를 그 앞에 붙일 필요가 있는가"하는 생각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한국신학"은 신학의 보편성을 손상시키면서 신학의 특수성 내지 지역성을 부각시키려는 왜곡된 시도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신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공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실 특수성이 보편성의 근거요 보편성이 특수성을 요청한다는 인식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국신학"의 담론이 한국 신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모색되고 논의되지 못한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신학이 소위 토착화 신학이나 상황화 신학, 혹은 민중신학이나 문화신학, 종교간 대화 신학 등 다소 급진적인 신학적 입장과 동의어처럼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비록 진지한 학문적 담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학 저널리즘에 가까운 글이지만) "예수는 없다."(오강남)와 같은 글이 나와서 기독교의 상대화를 주장하는 것이 마치 최첨단 아시아 신학 내지 한국신학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신학을 거론하기가 애매한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아시아 신학 혹은 한국신학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아시아 신학, 한국 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교회와 한국 성도들의 영적 에토스(ethos)를 토대로 올라오는 그런 신학작업을 해야 할 계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작업을 통해 기존의 한국신학 담론들이 기독교 신학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는 현상에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성도 있다. "한국신학"이란 용어의 사용권이 일부 급진적 신학자들의 전유물인 양 여길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적이요 한국적인 신학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그것을 통해 한국 교회의 장점인 영적 활력을 되살릴 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의 활성화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한국 교회와 신학계가 세계 기독교의 흐름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 신학계가 감당해야 할 도전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한국신학이 단지 우리의 목소리를 내서 서구 신학계의 주목을 끌고 인정을 얻어 보려는 지엽적이고 국수적인 발상에서 시작하려는 것이라면 차라리 논의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의 거시적 흐름을 배경으로 세계 기독교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신학계를 준비시키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러한 시세 판단에 영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민감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아시아 신학 현황
우리가 한국신학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고 할 때, 우선적으로 그동안 아시아 신학 또는 한국신학의 이름을 표방하고 전개된 신학적 결과물들에 대한 점검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검과 진단은 필연적으로 필자 나름대로의 평가 기준을 잣대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의 개인적인 판정 근거를 드러내는 것이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한다. 필자가 지난 97년 초 에딘버러 대학 신학부 교수직을 놓고 면접을 가졌을 때 일이다. 영국 대학의 교수 채용 과정이 다 그렇듯이, 첫날 모든 후보자들이 공개 강연을 가지고, 둘째날 강연 내용을 토대로 여러 명의 선발위원들과 지원자들이 개별적으로 토론하는 면접을 가진다. 필자가 받은 첫 번째 질문은 "무엇이 아시아 신학입니까?"라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아직 아시아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신학은 현재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고, 앞으로 진정 아시아 신학이라 불릴 수 있는 신학이 형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 기독교와 아시아 성도들을 대변하는 그런 차원의 아시아 신학은 아직 없습니다." 필자는 면접위원들의 표정에서 '아시아 신학 교수를 뽑는 면접에서 아시아 신학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라는 반응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필자의 견해에 변동이 없다. 현재로서도 아시아 신학은 앞으로 만들어져야 할 미래의 신학이다. 한국신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현존하는 아시아 신학에 대한 점검과 한국신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것은 기존 형태의 아시아 신학과 진정 아시아를 대변할 수 있는 아시아 신학 사이의 간격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아시아 및 한국 신학의 현실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앞에서 언급되었지만, 현재 아시아에 있는 신학은 두 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째, 아시아에서 전수되고 연구되는 신학들과 신학교육은 대부분 서구 신학의 연장이다. 지금까지 신학교육은 대부분 선교사 혹은 미국과 유럽에서 서구 신학을 배운 사람들에 의해 가르쳐졌다. 신학생들이 읽는 신학서적들은 거의 모두가 서구 신학자들이 쓴 책들이다.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교들은 서구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책을 읽었고, 진보적 성향의 신학교들은 서구의 진보적 신학자들의 책을 읽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쨌든 한국과 아시아 다른 지역의 신학교육은 서구 신학의 수요자였고, 서구 신학자들의 기독교 이해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 왔음이 사실이다.
한국 신학자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서구 신학을 배우고 가르쳤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진리에 관한 것인 한 보편적 효용성을 가지지 않는가? 서구로부터 신학을 배웠어도 한국의 교회는 성장하지 않았는가?" 신학의 보편성과 현장 적실성의 문제는 우리가 별도로 진지하게 논의할 주제인데, 여기에서는 한 가지 측면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즉, 처음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한국에 소개되어 가르쳐진 신학들은 사실 처음부터 한국인의 심성 및 영성과 거리가 있는 것이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목회 현장 사이에는 애시당초 거리가 있었다. 최근에 들어와서 신학과 현장의 괴리 현상을 반성하고 있지만 사실 그러한 괴리는 한국 기독교 역사 시작부터 존재했다는 말이다. 단지 그것이 최근에 문제로 인식되고 새삼 부각된 것일 뿐이다. 현장에서 설교되고 가르쳐진 내용들은 사실 신학교에서 가르쳐진 내용들과 차이가 있었다. 교회에 가서 성도들에게 신학 서적에 쓰여 있는 내용들을 전달했을 때 은혜 받는 성도는 극히 드물다. 신학이 한국 교회 성장에 미친 영향 내지 역할도 사실 검토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한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아시아 다른 지역으로 시야를 돌려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아시아 다른 지역에도 서구 신학은 널리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서구 신학의 전수와 교회의 성장과 별 관련이 없다는 느낌이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같은 교회 성장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선교 현장에서 서구 신학을 전수하려고 할 때 서구 신학이 현장 적용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서구 선교사들이 먼저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 풀러(Fuller) 신학교의 찰스 크래프트(Charles Craft)는 타문화권에 선교사로 갔을 때 자신이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이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그는 "문화안의 기독교"(Christianity in Culture)라는 책을 저술했다. 기독교 문화 인류학자로 한국에 잘 알려진 폴 히버트(Paul Hiebert) 역시 영적인 감수성을 잃은 서구의 세계관과 그 안에서 전개되는 서구 신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고 아시아 현실을 배경으로 가지고 올라오게 될 다른 형태의 신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파키스탄의 구즈라왈라(Gujrawala) 신학교에서는 기존 서구식 교과과정을 가지고는 아시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신학교 교과과정을 전면 개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서구 신학자들이 먼저 서구 신학 자체의 한계와 서구 신학이 아시아 및 다른 비 서구 세계의 문화적 상황에 적용성(relevancy)이 적음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서구식 교과과정으로는 아시아의 종교적 정서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자각을 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신학교육의 갱신을 위해 나름대로의 모색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대부분의 신학교는 서구식 교과과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교과과정에서 구약신학, 신약신학, 조직신학, 교회사, 실천신학 및 선교학 등의 분과로 나누어져 각 분야의 서구 신학자들의 서적들을 읽고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서구 신학을 배우고 소화하고 그것을 어느 만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가 하는 측면도 우리가 검토해야 할 부분이다. 어쨌든 이 시리즈에서는 소위 주류(mainline)에 해당하는 서구적 신학 활동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둘째, 그동안 아시아 신학의 이름으로 제출된 신학들은 사이비 아시아 신학(pseudo-Asian theology)이다. 기존 아시아 신학을 사이비 아시아 신학으로 함부로 매도할 수 있겠는가 반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아시아 신학은 대부분이 서구 신학계에서 올라 온 질문들에 대해 아시아 재료를 가지고 답변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사이비 아시아 신학이라 부를 수 있다. 그동안 전개된 아시아 신학 혹은 한국신학을 상황화 신학 내지 토착화 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화 내지 토착화를 시도하는 그들 신학들이 한국과 아시아 현장의 기독교적 정서와 동떨어지고 오히려 교회들에 의해 배격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즉, 상황화 신학 자체가 상황화에 실패했고 토착화 신학 자체가 토착화에 실패한 것이다.
종교 간 대화를 주도하는 신학자들 가운데 한 명인 인도 신학자 스탠리 싸마르타(Stanley Smartha)는 "두 문화 사이에서"(Between Two Cultures)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자기 친구 목사 가운데 한 명이 자기에게 와서 종교간 대화를 교회에서 가르치려고 하다가 교인들의 반대에 부딪혔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물은 적이 있다고 했다. 사마르타가 그 친구 목회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적고 있다.
"어느 시대고 선각자들은 박해와 따돌림을 당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말은 아시아 현장에 책임 있는 신학을 전개하는 사람의 진솔한 고백으로 받기 어렵다. 오히려 일종의 신학적 궤변이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이러한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이들 그룹에 속하는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즉, 아시아에 (in Asia) 많은 아시아 신학자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아시아 독자적인 목소리를 제시하려고 했던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주요 검토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3. 아시아 신학 분류 기준
기존 아시아 신학을 분류하고 개괄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1) 신학적 성향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이다. 아시아 신학을 혼합주의 신학, 적응신학, 상황신학 및 복음주의 신학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1) 이것은 오래 된 입장이기도한데 이러한 분류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분석 대상이 되는 신학자나 신학작업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이나 평가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이러한 분류는 신학적인 분류이기 때문에 신학적 입장이 앞서게 되어, 다소 편협한 분석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신학자들의 관심과 주장을 진지하게 읽어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을 수 있다.
(2) 관심 영역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이다.2) 즉, 정치, 경제적 영역에 관심을 가지는 신학과 문화, 종교적 영역에 관심을 가지는 신학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전자는 아시아의 정치적 압제, 경제적 착취, 특히 가난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후자는 아시아의 제 종교들 혹은 종교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전자의 예로는 한국의 민중 신학, 인도의 달릿(Dalit) 신학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토착화 신학, 종교 간 대화 신학 및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종교 신학 등의 그룹들이 속한다. 이러한 분류 설명은 유용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아시아 신학자들의 작업이 두 영역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만 출신의 송천성(C. S. Song), 스리랑카의 알로이시우스 피에리스(Aloysius Pieris) 등의 신학 작업은 위의 두 영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어느 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3) 나라별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아시아 각 나라마다 독자적인 신학적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신학자들을 추적해서 정리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방법이 아시아 신학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4) 주제별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아시아 신학의 담론에서 현안 이슈로 대두되어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각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황화, 기독론, 아시아 성경해석, 성경관, 타종교에 대한 입장, 종교다원, 종교간 대화, 선교 등 다양한 이슈들에 관한 아시아 신학자들의 견해들을 검토해 보는 것이다. 다음 호부터 주제를 중심으로 아시아 신학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4. 아시아 신학 개관
필자는 아시아 신학을 개괄하는데 나라별로 검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홍콩, 필리핀, 대만, 한국 및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신학과 신학자들을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을 연구의 차원에서 충실하게 할 수 있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야 마땅하다. 일부 아시아 신학자들의 신학을 제대로 읽고 검토할 수 있으려면 어쩌면 소책자 분량의 글을 써야 그들의 신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가능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소개하는 수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개관을 통해 의도하는 바는, 신학적인 입장에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아시아 신학자들이 아시아 신학자들을 읽고, 한국 신학자들이 다른 한국 신학자들의 글들을 진지하게 읽고 대화하는 학적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시아 신학자들이 다른 아시아 신학자들의 글을 읽지도 않고 신학적 대화도 기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 될 것이다. 아시아 신학자들이 서로 무시하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만일 "당신도 서구신학 베끼고 나도 서구 신학 베끼는 마당에 서로 읽어줄 가치가 어디 있냐. 그런 시간이 있으면 서구 신학자들의 앞선 이론을 읽겠다." 이런 발상으로 서로의 학문적 노력을 무시한다면 아시아 신학의 발전은 요원한 일이다. 한국 신학자들이 한국 신학자들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고 서로 읽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비판하는 진지한 토론을 벌이게 될 때 한국신학의 장이 서서히 마련될 것이다.
1) 인도
인도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영어로 출판된 인도 신학자들의 저술은 많고 다양하다. 한국 교회는 인도가 선교지요 복음의 불모지 가운데 하나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인도 기독교는 역사도 깊을 뿐 아니라 신학적 역량도 탁월하다. 복음주의 진영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에큐메니칼 진영에서의 인도 신학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인도 기독교 지도자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사두 썬다 씽(Sundar Singh. 1889-1929)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중적 전기가 출판된 이외에 그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의외로 별로 없다.
20세기 초에는 인도 기독교 다시 생각하기를 주창하는 신학자 그룹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데바싸하얌(D.M Devasahayam)과 순다리싸남(A.N. Sundarisanam)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도에서 기독교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Christianity in India)를 저술하기도 했다. 복음전도와 국가재건의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았던 엠 엠 토마스(M. M. Thomas. 1916- )가 있고, 종교다원사상으로 잘 알려진 라이문도 파니카(Raimundo Panikkar. 1918- )가 있다.
보다 최근에 에큐메니칼 진영에 속한 신학자들의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특히 WCC 활동을 중심으로 종교간 대화 및 종교 다원 신학을 주도해 오고 있다. 스탠리 사마르타 (S. J. Samartha), 웨슬리 아리아라자 (Wesley Ariarajah), 크리스토퍼 두라씽 (Christopher Durasingh) 등이 있다. 사마르타는 WCC의 종교간 대화 분과를 책임 맡아 오래 활동했다. 두라씽은 에딘버러 세계 선교 대회 이후 창간되었던 계간 선교 저널인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IRM)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파울로스 그레고리오스 (Paulos Gregorios) 및 가톨릭 신학자 소아레스-프라부 (G. Soares-Prabhu) 등이 성경해석 분야에 인도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아자라야 (M. Azariah) 주교 등을 중심으로 달릿(Dalit) 신학이 전개되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의 인도 신학자들도 다수 있지만, 인도의 관점에서 신학 담론을 이끄는 작업을 하고 있는 신학자로는 비네이 사무엘(Vinay Samuel)을 꼽을 수 있다.
2) 스리랑카
스리랑카 신학자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디 티 나일즈(D. T. Niles. 1908-1970)이다. 린 데 실바(Lynn de Silva)가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대화를 추진하는 신학작업을 했다. 최근에는 가톨릭 신부요 신학자인 알로이시우스 피에리스 (Aloysius Pieris. 1934- )가 아시아 해방 신학에 관한 책을 저술을 했으며 또한 그는 스리랑카의 불교 현실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을 주선하는 신학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보다 최근에는 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기싸라자 (R.S. Sugirtharajah)가 있다. 그는 후기-식민주의적 관점과 종교 다원주의의 입장에서 다소 과격한 신학을 전개한다.
3)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회교국으로 기독교 신학의 역량이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말레이시아 신학자로는 이웃 신학(Neighbourology)을 주장하는 바뚜말라이(S. Batumalai)와 복음주의적 선교 신학을 전개하는 화융(Hwa Yung) 등이 있다.
4) 필리핀
복음주의적 아시아 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신학자로는 로드리고 타노(Rodrigo Tano)가 있다. 까를로스 아베씨모스(Carlos H. Abesimos)는 필리핀의 정치 경제적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정의와 해방을 주제로 지속적인 신학작업을 해오고 있다.
5) 대만
토착화라는 용어 대신에 상황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쇼키 코이(Shoki Koe)가 있다. 그의 후임자였던 송천성 (C. S. Song)은 대만 출신 신학자로 미국에 거주하면서 신학작업을 하고 있으며, 서구 신학계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많은 글을 쓴 신학자이다. 아시아 신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뒤를 이어 최근에 왕 셴 치(Wang H냐두-chih)가 "고향신학"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음이 주목된다.
6) 홍콩
홍콩의 대부분 신학교들은 현장 목회를 위한 신학훈련에 집중을 한다. 이러한 관찰은 서구 신학계에 알려진 아시아 신학자들의 작업과 홍콩 교회의 현실 사이에 거리감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홍콩 신학자로는 죠나단 차오(Jonathan Chao)가 복음주의의 관심을 대변하고 있고 피터 리(Peter K. H. Lee), 아치 리(Archie C. C. Lee) 및 유 추 락(Yeow Choo Lak) 등이 주목된다. 그 가운데 피터 리는 기독교와 유교의 만남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아치 리는 아시아 성경해석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종교다원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콱 푸이 란(Kwok Pui-Lan)이 성경해석 분야에서 유사한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다.
7) 중국
20세기 중국 기독교의 역사는 굴곡이 많았고 특히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의 중국 기독교는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독자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현재 가정교회와 삼자교회를 중심으로 중국 기독교와 신학의 정체성을 암중모색하는 단계에 있다. 중국교회가 박해를 받던 시절 기독교 지도자들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로는 왕 밍 다오(Wang Ming Dao), 위치만 니(Watchman Nee) 및 존 성(John Sung) 등이 있다. 가정교회의 대부분은 이들의 영향을 받고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오 추 쳰 (T. C. Chao. 1888-1979) 및 우 야오 충 (Wu Yao-Tsung. 1893-1979) 등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활동이 주목되고, 특히 삼자교회를 이끌어 온 팅 광훈 주교 (K. H. Ting)의 신학 상상이 연구되고 있다.
8) 일본
20세기 초 코베 지역의 빈민촌 사역을 했던 토요히꼬 카가와(Toyohiko Kagawa. 1888-1960) 목사가 일본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가 쓴 여러 권의 책들이 이미 1930년대에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신학자로 우찌무라 간조 (Uchimura Kanzo)가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 서구 신학계에 널리 알려진 일본 신학자로는 코스케 코야마 (Kosuke Koyama)가 있다. 그는 태국 북부에서 선교사를 지냈고 그 후 미국에 거주하며 신학작업을 했다. 일본 신학계에서는 일본 신학자로 인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어쨌든 국제 신학계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신학자로 여겨진다.
9) 한국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기독교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서구 신학을 흡수하고 한국 교회 나름대로의 신학을 모색해 온 동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초창기 척사 최병헌(1858-1927)의 종교신학이 있고 윤성범의 성의 신학, 유동식의 풍류신학 등 토착화 신학이 있다. 안병무, 서남동, 현영학 및 김용복 등이 민중신학을 전개했고, 변선환의 종교다원주의 신학 및 최근에 이정배의 한국적 신학 모색이 주목된다. 이 밖에도, 김경재, 정양모, 정희수, 최기복, 이제민, 권진관, 박종천, 김광식, 송기득 등의 신학자들이 한국 신학 모색과 관련하여 글을 발표했다.
맺는 말
이 글에서 우리는 아시아 신학을 점검하는 기본 입장과 각국의 아시아 신학자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에 언급된 이름들이 아시아적 신학을 모색하려는 사람들의 전부가 아니다. 아시아 신학자들에 대한 개괄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한국 신학은 대부분이 국내용에 머물렀다. 국내용이라서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교회 성장에 걸맞게 세계 신학계에 기여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쉬운 것이다. 한국 신학이 아시아 신학계의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관심과 감각의 결여로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한동안 한국신학이 민중신학과 동일시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민중신학의 생명력도 다 했다. 한국 신학계가 아시아 신학계를 이끌 수 있는 신학적 의제(agenda)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와 신학,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을 영어권에 소개하는 작업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한국 교회와 한국 신학을 소개하는 영어 자료들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아시아 다른 지역의 기독교가 출판한 영어 서적과 비교한다면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 교회 역사조차 영어로 소개할 수 있는 책이 한 권 변변히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 교회와 신학은 (서구 교회는 차치하고) 아시아 다른 교회들에 의해서도 무시당하는 현상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스스로 한국 교회의 성장과 신학의 발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한국 교회와 신학은 동남아시아 교회들에 의해서 조차 변방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싱가폴 트리니티 신학교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영문학(B.A.)을 동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총신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 후, 예일대학교 신학부에서 STM을 마친 후 영국 에딘버러대학 신학부에서 아시아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97년 에딘버러대 신학부 교수를 역임했으며 주요연구분야는 아시아신학으로 복음과 문화 및 아시아 성경 해석학 등이다.
1) 노봉린, "Contextualization: Asian Theology," in The Bible and Theology in Asian Contexts. An Evangelical Perspective on Asian Theology, Bong Rin and Ruth Eshenaur, eds, (Taichung: ATA, 1984), 63-78.
2) Simon Chan, "The Problem of Transcendence and Immanence in Asian Contextual Theology," Trinity Theological Journal, Vol. 8, 1999, 5-18.
3) "Diet"이란 용어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으로, "깨진, 짓밟힌"이란 뜻이다. 이 용어는 인도 4개 카스트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그야말로 천대받는 그룹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 달릿은 인도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약 90%가 시골에 거주하며, 달릿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절대빈곤에 허덕이며 살고 있다. Cf. John Parratt, "Recent Writing on Dalit Theology. A Bibliographical Essay."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LXXXIII, No 329, 1994, 329-337.
1. 아시아 신학, 한국신학의 필요성
이 글은 "아시아 신학의 전반적 진단과 한국 신학의 나아갈 방향"이라는 큰 주제의 첫 번째 부분이다. 한국 신학의 나아갈 방향을 아시아 신학이라는 보다 넓은 맥락을 염두에 두고 검토해 보는 것은 매우 적절한 시도라 생각된다.
그동안 한국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부분의 신학자들에게조차 "한국신학" 이란 명칭은 다소 거북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한편으로는 "한국신학"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신학"이 마치 신학의 보편성을 훼손시키는 불순한 시도로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이면 기독교 신학이지 구태여 '한국' 혹은 '아시아' 같은 한정사를 그 앞에 붙일 필요가 있는가"하는 생각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한국신학"은 신학의 보편성을 손상시키면서 신학의 특수성 내지 지역성을 부각시키려는 왜곡된 시도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신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공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실 특수성이 보편성의 근거요 보편성이 특수성을 요청한다는 인식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국신학"의 담론이 한국 신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모색되고 논의되지 못한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신학이 소위 토착화 신학이나 상황화 신학, 혹은 민중신학이나 문화신학, 종교간 대화 신학 등 다소 급진적인 신학적 입장과 동의어처럼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비록 진지한 학문적 담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학 저널리즘에 가까운 글이지만) "예수는 없다."(오강남)와 같은 글이 나와서 기독교의 상대화를 주장하는 것이 마치 최첨단 아시아 신학 내지 한국신학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신학을 거론하기가 애매한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아시아 신학 혹은 한국신학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아시아 신학, 한국 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교회와 한국 성도들의 영적 에토스(ethos)를 토대로 올라오는 그런 신학작업을 해야 할 계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작업을 통해 기존의 한국신학 담론들이 기독교 신학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는 현상에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성도 있다. "한국신학"이란 용어의 사용권이 일부 급진적 신학자들의 전유물인 양 여길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적이요 한국적인 신학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그것을 통해 한국 교회의 장점인 영적 활력을 되살릴 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의 활성화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한국 교회와 신학계가 세계 기독교의 흐름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 신학계가 감당해야 할 도전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한국신학이 단지 우리의 목소리를 내서 서구 신학계의 주목을 끌고 인정을 얻어 보려는 지엽적이고 국수적인 발상에서 시작하려는 것이라면 차라리 논의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의 거시적 흐름을 배경으로 세계 기독교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신학계를 준비시키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러한 시세 판단에 영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민감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아시아 신학 현황
우리가 한국신학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고 할 때, 우선적으로 그동안 아시아 신학 또는 한국신학의 이름을 표방하고 전개된 신학적 결과물들에 대한 점검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검과 진단은 필연적으로 필자 나름대로의 평가 기준을 잣대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의 개인적인 판정 근거를 드러내는 것이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한다. 필자가 지난 97년 초 에딘버러 대학 신학부 교수직을 놓고 면접을 가졌을 때 일이다. 영국 대학의 교수 채용 과정이 다 그렇듯이, 첫날 모든 후보자들이 공개 강연을 가지고, 둘째날 강연 내용을 토대로 여러 명의 선발위원들과 지원자들이 개별적으로 토론하는 면접을 가진다. 필자가 받은 첫 번째 질문은 "무엇이 아시아 신학입니까?"라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아직 아시아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신학은 현재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고, 앞으로 진정 아시아 신학이라 불릴 수 있는 신학이 형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 기독교와 아시아 성도들을 대변하는 그런 차원의 아시아 신학은 아직 없습니다." 필자는 면접위원들의 표정에서 '아시아 신학 교수를 뽑는 면접에서 아시아 신학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라는 반응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필자의 견해에 변동이 없다. 현재로서도 아시아 신학은 앞으로 만들어져야 할 미래의 신학이다. 한국신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현존하는 아시아 신학에 대한 점검과 한국신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것은 기존 형태의 아시아 신학과 진정 아시아를 대변할 수 있는 아시아 신학 사이의 간격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아시아 및 한국 신학의 현실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앞에서 언급되었지만, 현재 아시아에 있는 신학은 두 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째, 아시아에서 전수되고 연구되는 신학들과 신학교육은 대부분 서구 신학의 연장이다. 지금까지 신학교육은 대부분 선교사 혹은 미국과 유럽에서 서구 신학을 배운 사람들에 의해 가르쳐졌다. 신학생들이 읽는 신학서적들은 거의 모두가 서구 신학자들이 쓴 책들이다.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교들은 서구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책을 읽었고, 진보적 성향의 신학교들은 서구의 진보적 신학자들의 책을 읽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쨌든 한국과 아시아 다른 지역의 신학교육은 서구 신학의 수요자였고, 서구 신학자들의 기독교 이해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 왔음이 사실이다.
한국 신학자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서구 신학을 배우고 가르쳤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진리에 관한 것인 한 보편적 효용성을 가지지 않는가? 서구로부터 신학을 배웠어도 한국의 교회는 성장하지 않았는가?" 신학의 보편성과 현장 적실성의 문제는 우리가 별도로 진지하게 논의할 주제인데, 여기에서는 한 가지 측면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즉, 처음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한국에 소개되어 가르쳐진 신학들은 사실 처음부터 한국인의 심성 및 영성과 거리가 있는 것이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목회 현장 사이에는 애시당초 거리가 있었다. 최근에 들어와서 신학과 현장의 괴리 현상을 반성하고 있지만 사실 그러한 괴리는 한국 기독교 역사 시작부터 존재했다는 말이다. 단지 그것이 최근에 문제로 인식되고 새삼 부각된 것일 뿐이다. 현장에서 설교되고 가르쳐진 내용들은 사실 신학교에서 가르쳐진 내용들과 차이가 있었다. 교회에 가서 성도들에게 신학 서적에 쓰여 있는 내용들을 전달했을 때 은혜 받는 성도는 극히 드물다. 신학이 한국 교회 성장에 미친 영향 내지 역할도 사실 검토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한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아시아 다른 지역으로 시야를 돌려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아시아 다른 지역에도 서구 신학은 널리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서구 신학의 전수와 교회의 성장과 별 관련이 없다는 느낌이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같은 교회 성장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선교 현장에서 서구 신학을 전수하려고 할 때 서구 신학이 현장 적용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서구 선교사들이 먼저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 풀러(Fuller) 신학교의 찰스 크래프트(Charles Craft)는 타문화권에 선교사로 갔을 때 자신이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이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그는 "문화안의 기독교"(Christianity in Culture)라는 책을 저술했다. 기독교 문화 인류학자로 한국에 잘 알려진 폴 히버트(Paul Hiebert) 역시 영적인 감수성을 잃은 서구의 세계관과 그 안에서 전개되는 서구 신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고 아시아 현실을 배경으로 가지고 올라오게 될 다른 형태의 신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파키스탄의 구즈라왈라(Gujrawala) 신학교에서는 기존 서구식 교과과정을 가지고는 아시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신학교 교과과정을 전면 개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서구 신학자들이 먼저 서구 신학 자체의 한계와 서구 신학이 아시아 및 다른 비 서구 세계의 문화적 상황에 적용성(relevancy)이 적음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서구식 교과과정으로는 아시아의 종교적 정서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자각을 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신학교육의 갱신을 위해 나름대로의 모색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대부분의 신학교는 서구식 교과과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교과과정에서 구약신학, 신약신학, 조직신학, 교회사, 실천신학 및 선교학 등의 분과로 나누어져 각 분야의 서구 신학자들의 서적들을 읽고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서구 신학을 배우고 소화하고 그것을 어느 만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가 하는 측면도 우리가 검토해야 할 부분이다. 어쨌든 이 시리즈에서는 소위 주류(mainline)에 해당하는 서구적 신학 활동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둘째, 그동안 아시아 신학의 이름으로 제출된 신학들은 사이비 아시아 신학(pseudo-Asian theology)이다. 기존 아시아 신학을 사이비 아시아 신학으로 함부로 매도할 수 있겠는가 반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아시아 신학은 대부분이 서구 신학계에서 올라 온 질문들에 대해 아시아 재료를 가지고 답변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사이비 아시아 신학이라 부를 수 있다. 그동안 전개된 아시아 신학 혹은 한국신학을 상황화 신학 내지 토착화 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화 내지 토착화를 시도하는 그들 신학들이 한국과 아시아 현장의 기독교적 정서와 동떨어지고 오히려 교회들에 의해 배격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즉, 상황화 신학 자체가 상황화에 실패했고 토착화 신학 자체가 토착화에 실패한 것이다.
종교 간 대화를 주도하는 신학자들 가운데 한 명인 인도 신학자 스탠리 싸마르타(Stanley Smartha)는 "두 문화 사이에서"(Between Two Cultures)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자기 친구 목사 가운데 한 명이 자기에게 와서 종교간 대화를 교회에서 가르치려고 하다가 교인들의 반대에 부딪혔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물은 적이 있다고 했다. 사마르타가 그 친구 목회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적고 있다.
"어느 시대고 선각자들은 박해와 따돌림을 당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말은 아시아 현장에 책임 있는 신학을 전개하는 사람의 진솔한 고백으로 받기 어렵다. 오히려 일종의 신학적 궤변이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이러한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이들 그룹에 속하는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즉, 아시아에 (in Asia) 많은 아시아 신학자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아시아 독자적인 목소리를 제시하려고 했던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주요 검토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3. 아시아 신학 분류 기준
기존 아시아 신학을 분류하고 개괄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1) 신학적 성향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이다. 아시아 신학을 혼합주의 신학, 적응신학, 상황신학 및 복음주의 신학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1) 이것은 오래 된 입장이기도한데 이러한 분류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분석 대상이 되는 신학자나 신학작업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이나 평가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이러한 분류는 신학적인 분류이기 때문에 신학적 입장이 앞서게 되어, 다소 편협한 분석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신학자들의 관심과 주장을 진지하게 읽어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을 수 있다.
(2) 관심 영역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이다.2) 즉, 정치, 경제적 영역에 관심을 가지는 신학과 문화, 종교적 영역에 관심을 가지는 신학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전자는 아시아의 정치적 압제, 경제적 착취, 특히 가난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후자는 아시아의 제 종교들 혹은 종교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전자의 예로는 한국의 민중 신학, 인도의 달릿(Dalit) 신학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토착화 신학, 종교 간 대화 신학 및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종교 신학 등의 그룹들이 속한다. 이러한 분류 설명은 유용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아시아 신학자들의 작업이 두 영역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만 출신의 송천성(C. S. Song), 스리랑카의 알로이시우스 피에리스(Aloysius Pieris) 등의 신학 작업은 위의 두 영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어느 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3) 나라별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아시아 각 나라마다 독자적인 신학적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신학자들을 추적해서 정리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방법이 아시아 신학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4) 주제별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아시아 신학의 담론에서 현안 이슈로 대두되어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각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황화, 기독론, 아시아 성경해석, 성경관, 타종교에 대한 입장, 종교다원, 종교간 대화, 선교 등 다양한 이슈들에 관한 아시아 신학자들의 견해들을 검토해 보는 것이다. 다음 호부터 주제를 중심으로 아시아 신학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4. 아시아 신학 개관
필자는 아시아 신학을 개괄하는데 나라별로 검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홍콩, 필리핀, 대만, 한국 및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신학과 신학자들을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을 연구의 차원에서 충실하게 할 수 있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야 마땅하다. 일부 아시아 신학자들의 신학을 제대로 읽고 검토할 수 있으려면 어쩌면 소책자 분량의 글을 써야 그들의 신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가능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소개하는 수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개관을 통해 의도하는 바는, 신학적인 입장에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아시아 신학자들이 아시아 신학자들을 읽고, 한국 신학자들이 다른 한국 신학자들의 글들을 진지하게 읽고 대화하는 학적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시아 신학자들이 다른 아시아 신학자들의 글을 읽지도 않고 신학적 대화도 기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 될 것이다. 아시아 신학자들이 서로 무시하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만일 "당신도 서구신학 베끼고 나도 서구 신학 베끼는 마당에 서로 읽어줄 가치가 어디 있냐. 그런 시간이 있으면 서구 신학자들의 앞선 이론을 읽겠다." 이런 발상으로 서로의 학문적 노력을 무시한다면 아시아 신학의 발전은 요원한 일이다. 한국 신학자들이 한국 신학자들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고 서로 읽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비판하는 진지한 토론을 벌이게 될 때 한국신학의 장이 서서히 마련될 것이다.
1) 인도
인도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영어로 출판된 인도 신학자들의 저술은 많고 다양하다. 한국 교회는 인도가 선교지요 복음의 불모지 가운데 하나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인도 기독교는 역사도 깊을 뿐 아니라 신학적 역량도 탁월하다. 복음주의 진영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에큐메니칼 진영에서의 인도 신학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인도 기독교 지도자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사두 썬다 씽(Sundar Singh. 1889-1929)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중적 전기가 출판된 이외에 그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의외로 별로 없다.
20세기 초에는 인도 기독교 다시 생각하기를 주창하는 신학자 그룹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데바싸하얌(D.M Devasahayam)과 순다리싸남(A.N. Sundarisanam)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도에서 기독교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Christianity in India)를 저술하기도 했다. 복음전도와 국가재건의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았던 엠 엠 토마스(M. M. Thomas. 1916- )가 있고, 종교다원사상으로 잘 알려진 라이문도 파니카(Raimundo Panikkar. 1918- )가 있다.
보다 최근에 에큐메니칼 진영에 속한 신학자들의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특히 WCC 활동을 중심으로 종교간 대화 및 종교 다원 신학을 주도해 오고 있다. 스탠리 사마르타 (S. J. Samartha), 웨슬리 아리아라자 (Wesley Ariarajah), 크리스토퍼 두라씽 (Christopher Durasingh) 등이 있다. 사마르타는 WCC의 종교간 대화 분과를 책임 맡아 오래 활동했다. 두라씽은 에딘버러 세계 선교 대회 이후 창간되었던 계간 선교 저널인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IRM)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파울로스 그레고리오스 (Paulos Gregorios) 및 가톨릭 신학자 소아레스-프라부 (G. Soares-Prabhu) 등이 성경해석 분야에 인도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아자라야 (M. Azariah) 주교 등을 중심으로 달릿(Dalit) 신학이 전개되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의 인도 신학자들도 다수 있지만, 인도의 관점에서 신학 담론을 이끄는 작업을 하고 있는 신학자로는 비네이 사무엘(Vinay Samuel)을 꼽을 수 있다.
2) 스리랑카
스리랑카 신학자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디 티 나일즈(D. T. Niles. 1908-1970)이다. 린 데 실바(Lynn de Silva)가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대화를 추진하는 신학작업을 했다. 최근에는 가톨릭 신부요 신학자인 알로이시우스 피에리스 (Aloysius Pieris. 1934- )가 아시아 해방 신학에 관한 책을 저술을 했으며 또한 그는 스리랑카의 불교 현실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을 주선하는 신학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보다 최근에는 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기싸라자 (R.S. Sugirtharajah)가 있다. 그는 후기-식민주의적 관점과 종교 다원주의의 입장에서 다소 과격한 신학을 전개한다.
3)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회교국으로 기독교 신학의 역량이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말레이시아 신학자로는 이웃 신학(Neighbourology)을 주장하는 바뚜말라이(S. Batumalai)와 복음주의적 선교 신학을 전개하는 화융(Hwa Yung) 등이 있다.
4) 필리핀
복음주의적 아시아 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신학자로는 로드리고 타노(Rodrigo Tano)가 있다. 까를로스 아베씨모스(Carlos H. Abesimos)는 필리핀의 정치 경제적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정의와 해방을 주제로 지속적인 신학작업을 해오고 있다.
5) 대만
토착화라는 용어 대신에 상황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쇼키 코이(Shoki Koe)가 있다. 그의 후임자였던 송천성 (C. S. Song)은 대만 출신 신학자로 미국에 거주하면서 신학작업을 하고 있으며, 서구 신학계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많은 글을 쓴 신학자이다. 아시아 신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뒤를 이어 최근에 왕 셴 치(Wang H냐두-chih)가 "고향신학"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음이 주목된다.
6) 홍콩
홍콩의 대부분 신학교들은 현장 목회를 위한 신학훈련에 집중을 한다. 이러한 관찰은 서구 신학계에 알려진 아시아 신학자들의 작업과 홍콩 교회의 현실 사이에 거리감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홍콩 신학자로는 죠나단 차오(Jonathan Chao)가 복음주의의 관심을 대변하고 있고 피터 리(Peter K. H. Lee), 아치 리(Archie C. C. Lee) 및 유 추 락(Yeow Choo Lak) 등이 주목된다. 그 가운데 피터 리는 기독교와 유교의 만남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아치 리는 아시아 성경해석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종교다원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콱 푸이 란(Kwok Pui-Lan)이 성경해석 분야에서 유사한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다.
7) 중국
20세기 중국 기독교의 역사는 굴곡이 많았고 특히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의 중국 기독교는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독자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현재 가정교회와 삼자교회를 중심으로 중국 기독교와 신학의 정체성을 암중모색하는 단계에 있다. 중국교회가 박해를 받던 시절 기독교 지도자들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로는 왕 밍 다오(Wang Ming Dao), 위치만 니(Watchman Nee) 및 존 성(John Sung) 등이 있다. 가정교회의 대부분은 이들의 영향을 받고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오 추 쳰 (T. C. Chao. 1888-1979) 및 우 야오 충 (Wu Yao-Tsung. 1893-1979) 등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활동이 주목되고, 특히 삼자교회를 이끌어 온 팅 광훈 주교 (K. H. Ting)의 신학 상상이 연구되고 있다.
8) 일본
20세기 초 코베 지역의 빈민촌 사역을 했던 토요히꼬 카가와(Toyohiko Kagawa. 1888-1960) 목사가 일본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가 쓴 여러 권의 책들이 이미 1930년대에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신학자로 우찌무라 간조 (Uchimura Kanzo)가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 서구 신학계에 널리 알려진 일본 신학자로는 코스케 코야마 (Kosuke Koyama)가 있다. 그는 태국 북부에서 선교사를 지냈고 그 후 미국에 거주하며 신학작업을 했다. 일본 신학계에서는 일본 신학자로 인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어쨌든 국제 신학계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신학자로 여겨진다.
9) 한국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기독교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서구 신학을 흡수하고 한국 교회 나름대로의 신학을 모색해 온 동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초창기 척사 최병헌(1858-1927)의 종교신학이 있고 윤성범의 성의 신학, 유동식의 풍류신학 등 토착화 신학이 있다. 안병무, 서남동, 현영학 및 김용복 등이 민중신학을 전개했고, 변선환의 종교다원주의 신학 및 최근에 이정배의 한국적 신학 모색이 주목된다. 이 밖에도, 김경재, 정양모, 정희수, 최기복, 이제민, 권진관, 박종천, 김광식, 송기득 등의 신학자들이 한국 신학 모색과 관련하여 글을 발표했다.
맺는 말
이 글에서 우리는 아시아 신학을 점검하는 기본 입장과 각국의 아시아 신학자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에 언급된 이름들이 아시아적 신학을 모색하려는 사람들의 전부가 아니다. 아시아 신학자들에 대한 개괄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한국 신학은 대부분이 국내용에 머물렀다. 국내용이라서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교회 성장에 걸맞게 세계 신학계에 기여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쉬운 것이다. 한국 신학이 아시아 신학계의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관심과 감각의 결여로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한동안 한국신학이 민중신학과 동일시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민중신학의 생명력도 다 했다. 한국 신학계가 아시아 신학계를 이끌 수 있는 신학적 의제(agenda)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와 신학,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을 영어권에 소개하는 작업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한국 교회와 한국 신학을 소개하는 영어 자료들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아시아 다른 지역의 기독교가 출판한 영어 서적과 비교한다면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 교회 역사조차 영어로 소개할 수 있는 책이 한 권 변변히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 교회와 신학은 (서구 교회는 차치하고) 아시아 다른 교회들에 의해서도 무시당하는 현상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스스로 한국 교회의 성장과 신학의 발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한국 교회와 신학은 동남아시아 교회들에 의해서 조차 변방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싱가폴 트리니티 신학교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영문학(B.A.)을 동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총신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 후, 예일대학교 신학부에서 STM을 마친 후 영국 에딘버러대학 신학부에서 아시아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97년 에딘버러대 신학부 교수를 역임했으며 주요연구분야는 아시아신학으로 복음과 문화 및 아시아 성경 해석학 등이다.
1) 노봉린, "Contextualization: Asian Theology," in The Bible and Theology in Asian Contexts. An Evangelical Perspective on Asian Theology, Bong Rin and Ruth Eshenaur, eds, (Taichung: ATA, 1984), 63-78.
2) Simon Chan, "The Problem of Transcendence and Immanence in Asian Contextual Theology," Trinity Theological Journal, Vol. 8, 1999, 5-18.
3) "Diet"이란 용어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으로, "깨진, 짓밟힌"이란 뜻이다. 이 용어는 인도 4개 카스트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그야말로 천대받는 그룹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 달릿은 인도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약 90%가 시골에 거주하며, 달릿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절대빈곤에 허덕이며 살고 있다. Cf. John Parratt, "Recent Writing on Dalit Theology. A Bibliographical Essay."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LXXXIII, No 329, 1994, 329-337.
출처 : 명지새벽이슬
글쓴이 : 이은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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