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의
[스크랩] 벼랑 끝에 선 `기독교 세계관` (최태연 교수)
향기나무 김성휴
2006. 11. 15. 16:48
벼랑 끝에 선 ‘기독교 세계관’
최 태 연(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1. ‘기세’를 왜 비판하는 거야?
1) 스무살에 매맞기: ‘기세’ 비판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와 급진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자리 매김해 왔던 ‘기독교 세계관’(이하 ‘기세’) 운동이 얻어맞고 있다. 속되게 말하자면 19년 동안 엄격한 가정에서 조신하게 자란 ‘기세’가 스무살에 처음 밤거리 구경 나갔다가 조폭들에게 몰매 맞은 셈이다. 더 울화통 터지는 일은 기세 좋게 ‘기세’를 때리는 주역들이 지난 89년대 말, 90년대 초에 ‘기세’ 교과서로 걸음마 배운 새까만 후배 복음주의자들이란 사실이다. 이들 30대들이 21세기에 들어와 기(氣)가 점점 세지더니 마침내 ‘기세’ 정벌에 나선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전쟁터에 끌려나온 ‘기세’주의자에게는 만감(萬感)이 교차한다. 젊은 대학원생들로서 비판의식과 변혁의 의지를 가지고 도전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도전을 받는 처지가 되다니... 그들이 복음주의 ‘평신도’ 운동에서 잔뼈가 굵었다면 마땅히 ‘기세’의 깃발을 이어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아직 ‘불혹’(不慈)의 나이도 안 된 친구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선배들을 비판하다니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이젠 중년이 된 ‘기세’ 주의자들에게는 한국 교회를 미성숙으로부터 구해 낼 수 있는 ‘흑기사’로 여겨졌던 ‘기세’가 마음껏 실력발휘를 하기도 전에 왜 같은 진영의 후배들로부터 ‘종이호랑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을까? 나는 대학원 시절 ‘기세’ 모임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개혁주의 신학과 철학의 영향 아래 있었고 독일에서 학업을 마친 후, ‘기세’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사람이다. 작년 『복음과 상황』의 지면을 통해 ‘기세’ 비판에 접했을 때, 나의 느낌은 솔직히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기획이 기독 저널리즘의 선정주의 이벤트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기세’ 운동의 당사자들과 복음주의권 젊은 세대 사이의 대화의 단절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위기감을 느졌다. 내가 내린 결론은 무시가 아닌, 참여였다. 그래서 불청객의 자격으로 논의에 뛰어 들었고 그들의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기세’ 운동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게 되었다. 아직 한국의 ‘기세’ 운동은 각 분야에서 비판자들의 예봉을 끈기에 충분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으며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기세’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내가 ‘기세’ 비판을 통해서 반성하게 된 점은 다음 세 가지 점이다. 첫째, 종교개혁자 칼 빈의 개혁신학과 네델란드 개혁교회의 ‘신칼빈주의’ 신학을 모체로 하는 ‘기세’, 즉 ‘개혁주의 세계관'(이하 ‘개세’)이 ‘기세’의 전부일 수는 없다. 이 사실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혔을 ‘기세’ 개론서인 『창조, 타락, 구속』의 저자 월터스(Wolters)도 인정하고 있다. 알버트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Creation, Regained), (서올: IVP, 1992), 22.
"개혁주의적 세계관은 어떤 특징 때문에 이교적, 인본주의적 세계관 및 다른 기독교 세계관과 구별되는가? 역사적 정통 기독교의 주류 안에서조차도 서로 다른 기독교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독교 교회 안의 깊은 분열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분열은 좁은 의미에서의 신학상의 차이점뿐만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점도 반영하고 있다. 이제 개혁주의적 세계관과 다른 기독교 세계관 사이의 기본적인 차이점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굵은 글씨는 필자의 강조)
둘째, 지난 20년 동안 신칼빈주의의 ‘기세' 모델을 한국의 ‘상황' 속에서 토착화하고 구체화 ‘하려는 이론적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 셋째, ‘기세’를 한국 교회와 사회에 적용하고 실현하기위한 실천전략과 행동이 부족했다.
그러기에 나는 이 시점에서 ‘기세’ 비판이 불거져 나온 것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정체된 이론과 실천은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지 못한다는 일반원칙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모든 이론과 실천은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물며'안'으로부터 나오는 비판에는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나는 최근의 ‘기세’ 비판이 상당 부분 ‘기세’ 운동 안으로부터의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기세’ 운동이 한국에서 진정으로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째 먼 것 같다.(어쩌면 한 1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길을 가기 위해 여태까지 ‘기세’라고 불러왔던 ‘개세’와 다양한 ‘기세’ 운동 사이에 선의의 경쟁 및 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기독교 내의 다른 교파신학에서도 교회 안의 신학과 사회 속의 실천을 연결해 주는 자신들의 ‘기세’ 운동이 살아나야 한다. ‘기세’들의 상호비판과 보완은 ‘개세’ 운동에도 생산적인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나 한국에서 ‘기세’ 운동은 다분히 평신도 신학운동의 성격이 강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전문화된 신학을 자신들의 언어로 이해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제로 적용하도록 하는데 ‘기세’의 효용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다양한 ‘기세’간의 경쟁과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다양한 교파로 이루어진 한국 교회 전체의 성숙에 큰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2) 들어보자! ‘기세’ 비판
이 글을 쓰기 위해 머뭇거리다가 그 동안 ‘복상'에 등장했던 ‘기세’ 비판의 목소리들을 한 번 정리해봐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글들을 읽으면서 마구 난도질당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속 쓰리고 뼈아픈 심정도 들었다. 모든 비판들을 뭉뚱그려 요점정리 해볼까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실명 비판’의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기로 했다. 이 실명비판에서 박총은 제외했다. 이미 2002년 3월에 나름대로 응답을 했기 때문이다.
(1) 정정훈과 ‘포스트모던 좌파 복음주의' 정정훈이 자신은 더 이상 복음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신앙을 여전히 고백하는 한, 그는 복음주의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못 떠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복음적 신앙의 인식과 실천을 위해 맑스주의의 자본주의 비판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대적 주체성 비판에 의존하는 복음주의자이다. 그 점에서 그의 입장은 종래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의 입장과 다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입장을 ‘포스트모던 좌파 복음주의'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정정훈의 ‘기세’ 비판의 중요한 축은 성경(서)해석학이다. 그의 강조는 ‘기세’가 "스스로 의 주장처럼 성경이라는 단일한 기원을 가진 체계나 담론이 아니라는 것, 그 기원이 이 세
상의 정신과는 완전히 단절된 순수하고 투명한 성경적 관점만이 아니라는 점"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복음과 참황 123호 (2002. 3), 66.
에 놓여진다. 이 점이 그가 보는 ‘기세’의 기본모순이다. 그래서 ‘기세’가 "자신을 당파적 입장이 아닌 보편적 입장 - 보편적 진리인 성경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 으로 상정"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67.
한다는 사실이 그를 무엇보다도 거슬리게 한다. 그는 ‘기세’가 감추고 있는 당파성이 바로 근대의 계몽주의적 관념론과 다를 바 없으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존 지배세력의 당파적 이익에 복무하는 보수적 이데올로기"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69
의 당파성이라고 일러준다. ‘기세’주의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관점이란 결국 "철저하게 그들이 속해 있는 당파"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72.
인 중산층 부르주아 세력의 이익에 충실한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글에서 정정훈은 한국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주체성은 하나의 ‘상상' 이라고 진단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는 주체성이란 "복음주의 공동체가 자기 공동체의 필요에 적합한 주체를 생산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상상" 정정훈,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관해 묻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복음과 상황 126흐 (2002. 5), 77.
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체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상상의 세계에서만 갖고 있지, 현실에서는 무기력과 자기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그 증거로서 "80년대 상황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한국 사회의 폭압적 정치권력과 현실적 투쟁, 노동자들의 물적 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 여성들의 자기해방을 위한 현실의 투쟁에 어떠한 입장을 보였던가"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68-59.
라고 반문한다. 그에게 복음주의가 형성시키는 "철저하게 중심화되고 주권적인 주체" 정정훈,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관해 묻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79.
는 결코 보편적이지 못한 역사적이고 특수한 입장에 속한 주체일 뿐이다
정정훈의 ‘기세’와 ‘복음주의 주체/정체성' 비판은 그가 밝힌 대로 맑스, 푸코, 부르디외, 한스 프라이 등의 예일학파, 자크 엘룰의 시각이 뒤섞인 복합적인 비판이다. 그 중에서도 그의 관점을 지탱하는 기둥은 맑스주의이다. 그의 개인적 예수신앙과 상관없이, 정정훈이 복음주의 기독교를 보는 시각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맑스의 바로 그 시각이다. 기독교에 대한 맑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은 역사적으로 기독교에 가해진 비판 중 가장 예리하고 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이 비판의 과녘에서 벗어 나는 길은 맑스주의로 전향하는 길 이외는 없다. 예수님 자신이 당대의 로마의 유대지배나 노예제도를 종식시키지 않았던 것처럼 봉건주의나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제도의 모순과 부조리를 악으로 규정하면서도 정치/경제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 제도들을 하나님이 임시로 허락한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기존의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결국 기독교의 사회적 실천은 역사상의 모든 체제를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사회로 가려는 맑스주의에서 볼 때 사회개량주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사회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는 그 나라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 나라는 투쟁과 죽음이 극복되고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나라이다. 우리가 분명한 것은 그 나라의 통치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이 맑스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개종'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동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그들을 도와야 한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성경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믿음'과 ‘행위' 사이의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기세’ 운동에도 ‘해석'과 ‘실천'의 한계가 있다. 정정훈은 그것을 기세의 ‘당파성' 또는 ‘관념성'이라고 아프게 꼬집는다. 그러나 맑스주의의 이론과 실천 역시 괴리가 있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 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다른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당들과의 연대를 원했다. Marx/Engels, 커urgeuJoeAffe fcfrfen fd. f, (Berlin: Dietz Verlag, 1972), 55-56를 살펴볼 것.
그러나 맑스주의의 역사는 비인간적인 폭력으로 점철된 일당독재의 피 묻은 역사였다. 이 비판에는 브르주아 자유주의와 아나키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별이 없다. 내가 보기 에는 이 비판을 견뎌낼 수 있는 맑스주의는 아직 ‘관념'으로만 있지 ‘실제'로는 없다.
맑스주의의 관념성이라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정정훈은 "세계관이라는 관념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67.
는 ‘기세’의 공리가 부르주아 계몽주의의 에토스와 너무 닮아 있다고 개탄한다. 정정훈은 여기서 중대한 오류를 범한다. 그것은 ‘복음주의자'로서 자신에 대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기세’ 운동은 관념의 변화가 사람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 사람이 변한다고(요한복음 3:5) 믿는다. ‘기세’는 성령이 일하러 가실 때의 보조도구(지도, 나침판, 쌍안경, 위성항법장치(GPS) 등등)에 불과하다. 정정훈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즉 죽어서 천국 가는 것"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77 (각주 6).
을 믿게 되었다면, 나는 그 사건이 단순한 관념의 변화였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정정훈에게 죽음 이후의 실재까지 변화시키는 현실적인 사건이다. 정정훈은 기독교의 실천성과 당파성을 비판하다가 본의 아니게 계몽적 합리주의나 맑스주의의 역사적 유물론 모두 집착하고 있는 물질/정신 또는 유물론/관념론의 이분법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정정훈은 더 나아가서 ‘기세’의 제한된 해석과 실천에도 성령의 함께하심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기세’ 운동의 모든 것에 성령을 둘러대어 ‘사면부'를 받자는게 아니 다. 정정훈의 체험에서 나왔을 ‘기세’에 대한 충고에는 할 말을 잃는다: "기독인이 현실 속에서 무기력하고 침묵하고 비기독교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 기독인이 비 기독인들과 관계를 맺는 훈련을 하지 못했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을 잊어버렸으며, 그들과의 연대 속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참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72.
왜 우리는 이렇게 소심하고 왜소해 졌을까? 세상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맺으면 타락할까봐, 언제부턴가 우리끼리의 교회와 천국에 만족하게 된 걸까? 바로 이런 기독교와 기독인에서 벗어나자고 ‘기세’를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나? 정정훈의 뼈아픈 지적에 ‘기세’주의자인 나는 고개를 떨군다. 우리의 자기만족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나를 인정하면서.
(2) 이원석과 문화신학적 ‘기세’ 비판
‘기세’ 비판 세대 중에도 가장 젊은 축에 드는 이원석은 여전히 "개혁주의"를 고백하는 개혁주의자이다 그런 그가 이제 그만 ‘기세’를 ‘멀리서 넓게' 보자고 제안한다. 그와 ‘개세’의 관계는 오랜 교제 끝에 더 이상 별다른 감정을 못 느끼지만, 더 이상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사이라고나 할까. 대학 신입생 때부터 ‘개세’를 뜨겁게 사랑했던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의 지병을 치료하는데 ‘개세’라는 약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의심이 생긴 것이다. 그의 지론은 다분히 ‘풍수지리설'에 근거해 있다. 이 풍수지리설은 그의 문화신학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세계관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세계관이란 것이 이 땅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성요인들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신학적 ․ 철학적 ․ 문화적 요인들, 기후적 ․ 지리적 요소들에 따라 달리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도 동일한 형성의 역학 아래 놓여있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복음과 상황 124호 (2002. 4), 55.
따라서 이원석에게 다양한 세계관의 차이는 ‘땅'의 차이에 의해 생겨난다. 루터교가 둥지를틀은 땅에서는 루터교의 전통이 형성되고 그로부터 루터신학이 생겨난다. 물론 루터신학은 이론 구성을 위해 특정한 철학이나 사조를 받아들인다. 특정한 철학이나 문화를 수용한 루터신학의 영향 아래 루터교인은 일반적으로 루터교 세계관을 갖게 된다. 독일에는 독일적 개혁자 루터가 나을만한 기후와 사조가 준비되어 있었고 프랑스에는 칼빈이 나올만한 환경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원석 식의 표현으로는 "루터는 프랑스에서 나올 수 없고 칼빈은 독일에서 나올 수 없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56
이 이른에 근거해서 이원석은 그가 풀어야 할 과제로 육박한다. 과연 한국의 풍토와 문 화와 사상에 ‘개혁주의'라는 신학이 잘 맞아 들어가는가? 이원석의 결론은 ‘아니올시다'이다. 이원석은 개혁주의가 한국 땅에 정착하기 어려운 이유를 우선 문화풍토에서 찾는다: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은 유불무(儒拂巫)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와 유불무의 만남은 한국교회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한국교회의 주로 특정한 영역에 집중된 윤리적 태도와 성서에 대한 자세는 유교에서 온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경건의 행습과 내세에 대한 이해는 불교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무교에서 기복의 자세와 일반적 영역에 대한 무윤리적 태도가 유입되었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0
따라서 한국의 개혁교회 신자의 내면에는 그가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개혁주의와 무자각적으로 받아들인 유불무의 전통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이질적인 두개의 문화가 접하해서 변형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이원석은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에게 이 혼돈스러운 과정은 "결국 하나님의 영이 간접적으로 역사하시는 과정이며, 하지만 우리를 기계적으로 이끄시지는 않기에 종종 돌아가기도 하고, 많이 왜곡되기도" 하는 창조적인 과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원석은 또 하나 한국 개혁주의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로서 20세기의 일제 식민지 경험을 든다. 선교 초기의 기독교는 정치와 사회 개혁에 앞장 섰지만, "3 ․ 1운동 이후 지속 되는 일제의 극심한 핍박으로 인해 대부분 예배당과 내세와 초월로 도피"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55.
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제말기 한국교회가 생존을 위해 받아들인 신학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삶과 영원한 복락의 내세로 이루어진 ‘이원론적 세계관'이었다 이원석에게 일제하에서 한국교회의 탈정치화, 내세신앙화 과정 역시 한국교회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이렇듯 한국의 문화 여건과 근대사의 경험이 맞물려 한국 기독교는 리차드 니버가 말한 '문화 변혁자이신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개혁주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원석이 보기에는 "한국교회는 상호 대조되는 입장인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와 문화의 그리스도가 혼용되어 있는 독특한 형태의 세계관을 가지고"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0.
있으며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세계관은 두 유형의 단점만 중첩되어 나타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원석은 한국인의 심성과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이상적으로 ‘개세’만을 주장하는 태도를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에 잘 맞아들어가는 세계관을 찾아서 정착시키는 노력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이원석은 조심스럽게 ‘역설적 관계 속에 있는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 in paradox)의 유형을 대안으로 추천한다. 첫째 예로 루터교의 두 왕국론은 교회와 세상을 분리와 긴장관계 속에 위치시키면서도 역설적으로 성도가 두 영역에 다 속하도록 허용한다. 둘째 예로 자크 엘룰 역시 현대 문명의 산물인 "기술, 폭력, 도시, 금전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이에 대한 포기와 방임이 아닌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역설모델에 속한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2.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세상 나라의 원리와 일치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양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안내해 주는 ‘기세’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이원석의 입장이다.
나에게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심성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개혁주의 세계관(과 네델란드 개혁주의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1.
는 이원석의 문화신학적 ‘기세’ 비판은 정정훈의 이데올로기적 ‘기세’ 비판에 못지않게 심각한 도전을 준다. 사실 이원석의 생각은 그 동안 한국 교회와 사회에서 ‘기세’가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현상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답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을 해석할 때도, 본문의 의미를 독자의 문화를 고려해서 그 문화에 적용하지 않는 해석은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해석을 산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원석의 주장에 대한 두 가지의 반론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 ‘개세'와 한국의 전통문화 사이에는 갭 뿐만 아니라, 친화적 요소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유교의 정치윤리나 성윤리에는 ‘개세’와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둘째로 ‘개세'가 한국인의 전통 윤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미래의 한국 교회나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세계관을 제공해줄 수 있다. ‘개세’가 전통적 한국인의 세계관을 개선하고 변혁시켜 줄 수 있다면 ‘개세’의 필요와 공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3) 양희송의 ‘내러티브' 비판
‘복상'의 또 하나의 뛰어난 토론자 양희송은 "기독교 세계관: 담론, 운동, 혹은 논란"이란 제하의 글을 두 번에 거쳐 연재했다. 그는 영국에서의 신학수업 경험을 통해 그 나름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조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특히 그가 설하는 바는 한국의 보수 장로교단에서 선호되는 ‘개세’는 서구교회의 신학에서는 주류 담론이 아니며 따라서 한국의 복음주의권에서 주류담론으로 자리 잡은 ‘개세’의 권위적인 성격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양희송에게 ‘개세’ 해체작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정정훈의 좌파적 시각이나 이원석의 문화신학적 시각을 포용하기에는 신학적으로 덜 유연하고, 덜 세련되었다는데 있다. 그러나 ‘기세’ 비판 담론에서 양희송의 생산적인 기여는 ‘내러티브'(narrative) 비판에 있다고 생각된다.
양희송은 세계관 논의의 주요한 목적의 하나로 ‘자아/정체성 형성'을 들고 있다. 즉 어떤 방법으로 ‘기세’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정체성을 형성하느냐가 그의 관심사이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자아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명제이기보다는 내러티브이다. 중첩되고, 얽힌, 이야기들이 우리의 내면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자아정체성이 성경 내러티브로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희송, "기독교 세계관: 담론, 운동, 혹은 논란"(Ⅱ), 복음과 상황 124호 (2002. 4), 43
모든 사람은 삶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자아/주체도 형성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내러티브로 이루어진 성경없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도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이다. 그는 최근의 성경신학 연구의 결과를 소개하면서 이 주장을 설득력있게 입증한다. 창세기 주석가 고든 웬함(G. Wenham)은 창조스토리가 고대 근동세계의 세계관에 대한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해석하며, 역사적 예수 연구가 톰 라이트(N. T. Wright) 역시 복음서의 예수이야기에서 유대교에 대한 세계관적 도전을 발견한다.
그는 또한 현대 신학에서의 내러티브를 활용하는 시도들에 주의를 돌린다. 미들턴과 월쉬(Middleton & Walsh)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조건을 분석하고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충분 히 고려하는 억압적이지 않은 성경적 세계관을 모색한다. 한국에 잘 알려진 스탠리 그랜츠(S, Grenz)도 포스트모던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신앙의 증거방식을 명제가 아닌, 공동체의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양희송의 입장은 20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내러티브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 각성을 반영한다. 그의 작업 가설은 더 이상 ‘기세’ 연구나 ‘신학'조차도 성경의 내러티브에서 신학적 명제(proposition)를 추론해 내지 말고, 생생한 내러티브로 쓰여지고 전달될 때, 권위적이지 않고 편협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주체성이 형성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직업상 소설이나 시보다는 철학책과 신학책, 과학서적같은 딱딱한 책을 많이 읽는 다. 그리고 책을 잃을 때마다 나는 저자의 주장(claim)이 무엇인지, 그가 제시하는 근거 (grounds)나 증거(evidence)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한다 그리고 항상 그의 정당화 논리 (warrant)에 어떤 결점이나 문제가 있는지를 따지려 든다. 이런 걸 흔히 ‘직업병'이라고 말 하나 보다. 나는 대개 이런 일을 좋아서라기보다는 강의 준비하고 논문이나 책을 쓰기 위 해 한다. 반면에 가끔 신앙간증 서적이나 아주 드물게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다 읽을 때까 지 밥도 먹고 싶지 않고 잠도 안 온다. 내러티브는 독자를 끝까지 따라가도록 하는 힘이 있다. 가끔 아이들이 보던 만화를 손에 잡으면 끝장 볼 때까지는 절대 못 놓는다. 초등학교 때 만화가게는 나에게 방과 후부터 저녁 먹으러 불려갈 때까지 도서관이었다. 나도 내러티브의 파워를 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 가는 통로나 마찬가지인 성경이 ‘세계관'을 담고 있는 내러티브라는 양희송의 생각이나 기독교의 교리(dogma)조차도 "성경 내러티브의 해석"(interpretation of narrative) 양희송, "기독교 세계관: 담른, 운동, 혹은 논란"(Ⅱ), 51.
이라는 맥그라스(A. McGrath)의 주장에 나는 이의를 달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 서양 중세뿐만 아니라, 근대의 학문에서 논리학과 인식론의 위치는 확고부동했다. 모든 정신적 내용은 논리적으로 논증되거나 경험적으로 입증되어야만 되었다. 인간의 일상적 삶의 이야기나 초자연적인 기적의 이야기, 꿈과 상상의 이야기들은 가치가 없거나 허무맹랑한 정보로 치부되었다. 양희송이 역설하는 내러티브의 부활이 필요하다 사실 내러티브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다만 그것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희송을 비롯한 ‘내러티브'주의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내러티브와 명제의 경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논리학에서는 ‘명제'(proposition)를 내러티브를 포함하는 모든 문장(sentence) 가운데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서술문장으로 본다. 최한빈, 이경직, 최태연 (공저), 『논리와 신앙』 , (서울; 살림, 2003), 72.
이런 명제가 내러티브 안에도 얼마든지 들어있을 수 있다. 우리의 언어에서 구체적이지 않은 추상개념(abstract consept)이나 명제를 모두 추방할 수는 없다. 또한 내러티브의 진위를 가려야 할 필요도 생겨난다. 내러티브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우리는 다시 명제로 되돌아간다. 김기현의 주장대로 내러티브가 먼저고 명제는 나중이라는데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명제를 필요로 하거나 명제로 되돌아간다는 것도 사실이다. 내러티브와 명제간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4) 김기현과 ‘애너밥티스트' 세계관
2. 나는 왜 ‘개세’를 붙들고 있지?
1) 개혁주의라는 ‘생활세계'(Life-World)
나는 이북 출신의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사춘기 몇 년 동안 교회를 떠나있었지만, UBF(현재 ESF)란 한국의 복음주의 선교단체를 통해서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기독교의 품으로 다시 돌아 온 나에게 다시 나가야 할 교회는 당연히 ‘장로교회'였다. 나는 내가 의식적으로 기독교를 선택하기 이전에 장로교인으로 선택되었고 의식적으로 ‘기세’나 ‘개혁신학'을 배우기 이전에도 장로교식의 예배와 신앙생활에 이미 친숙해 있었다. 장로교가 루터교나 감리교나 성결교와 어떻게 다른지 알기도 전에 나는 장로교가 나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다니던 선교단체는 형식상 초교파지만, 대부분의 간사(목자)님들이 장로교 신학교에 가서 장로교 목회자가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겼다. 관심사라면 장로교는 장로교인데 다만 어느 교파 신학교를 가느냐 정도였다.
이렇게 장로교가 너무도 당연했던 나에게 한국에서 보수적 장로교에서 선호하는 ‘기세’를자연스럽게 선호하게 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가 의도적으로 감리교인이 되거나 내 아내는 결혼 전에 고향에서 한매 감리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열심히 장로교회에 나간다. 아마도 남편인 내가 감리교인이었다면 다시 감리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내게 교파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종종 말하기 때문이다. 복음이 중요하단다. 내 생각에는 그녀의 이런 생각은 아무래도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대학생 선교단체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어떤 특정한 신학을 배워본 적도 없고 관심도 별로 없다. 아무래도 그녀는 ‘전이론적'으로 그런 신념을 형성한 것 같다.
맑스주의자가 1980 년대 후반, 맑스주의에 경도된 한국 유학생이 유난히 많았던 서 베를린에서 나는 몇 년간 그 들과 열심히 맑스의 유물른과 변증법을 스타디했다. 우리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었지만, 그들에게 나는 허구적인 신을 믿는 약간 맹신적인 철학도로 보였을 것이고 , 나에게 그들은 맑스의 말을 너 무 신성시하는 유사 종교인으로 보였다. 그들과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 다시 진보주의자와 장로교인이라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되었다면 인생의 커다란 전환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시절 나는 장로교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쉐퍼의 책들에서 친밀감을 느꼈고, 학업을 마친 후에는 기학연 중심의 ‘기세’운동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세계관은 자명하지 않다"는 양희송의 의문에 나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싶다. 세계관을 ‘세상에 대한 일관된 관점'이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리면, 이러한 세계관은 내 아내나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가정이나 주위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어떤 관점같은 것이다. 세계관은 이론이나 학문으로 배우기 이전에 이미 가지게 되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조망 같은 것이랄 수 있다. 독일의 현상학자 후설(Husserl)이 ‘생활세계'(Lebenswelt ; life-world)라고 부르는 현상이나 해석학자 불트만(Bultmann)이나 가다머(Gadamer)가 선이해(Vorverstaendnis; pre-understanding)라고 부르는 현상이 세계관의 출발점일 것이다.
2) 내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개세’
내가 ‘개세’를 막연한 친밀감을 넘어 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개세’가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가장 큰 폭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개혁주의는 종교개혁 이후 다른 어떤 신학 전통보다 ‘창조'의 신학을 더 강조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타락'과 ‘구속'과 ‘종말'을 배제하는 신학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신학의 핵심들을 일관되게 연결하려 했던 신학으로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되어야할 세상은 동시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상이다. 비록 창조되었고 구속될 세상이지만 역사의 현재는 죄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아비규환 속에 움직여지는 세상이다. 개혁주의는 이 모든 역설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관되게 하나님과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려 했다. 이 점에서 개혁신학은 넓은 지평을 가진 신학이다. 나는 이점이 개혁주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주의는 정치나 전쟁의 문제에서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거부 사이에 양심의 자유를 허락한다. 첫째, 칼빈주의는 모든 성도가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의미를 준 수해야 한다고 믿는다. 칼빈주의는 아나키즘을 거부한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군대 복무를 시민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의무로 생각한다. 둘째, 그러나 정부의 권위는 절대적이 아니다. 만일 정부가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거스리고 시민에게 그것을 강요할 때에 시민은 양심의 요청에 따라 정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전쟁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수행하려는 어떤 전쟁이 정당화할 수 없는(uniustifiable) 전쟁인 경우, 성도는 그 전쟁을 거부할 수 있다. Henry Meeter, The Basic Ideas of Calvinism, (Grands Rapids: Baker, 1990), 182.
그러나 칼빈주의는 모든 경우에 무조건적인 ‘평화', 즉 전쟁회피의 길만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점이 재세례파의 평화주의와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재세례파의 무조건적 평화주의가 이상주의적이라면 칼빈주의 정치윤리는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현실적이다.
문제는 개혁주의가 역사 속에서 어떤 실천을 해왔는가의 문제이다. 개혁주의는 태생부터 '평화주의'가 될 수 없었다. 루터주의는 가톨릭과의 대결의 결과 독일 영주와 귀족들의 보호아래 국가에 순응적인 종교로서 성장했다 국가 전체가 루터주의를 받아들인 스칸디나비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개혁주의는 개혁주의의 진원지인 프랑스에서 국가와 결합된 가톨릭 교회에 의해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 결국 소멸되다시피 했다. 개혁주의가 피난처를 얻은 곳은 스위스의 산골도시들과 독일의 도시들에서였다. 그들은 가톨릭과 루터교의 전선 사이에서 불안한 존재로 남았다. 영국에서는 그들은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다. 네델란드에서도 그들은 스페인이라는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개혁주의의 한 가지 잘못이라면 당시의 혼란 속에서 제세례파에 대한 관용을 베풀지 않은 점이다. 개혁파 교회는 한편으로 로마가톨릭의 무자비한 박해로 고통을 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근본적으로 같은 신앙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수행하고자 했던 교회의 일부를 박해했다. 나는 이 박해의 역사를 오류와 죄의 역사로 인정한다. 나는 종교개혁 이후의 교파투쟁의 불행한 과거를 통해 배운 교훈을 회상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개혁파 교회가 재세례파 교회를 더 이상 박해하지 않는 것처럼 ‘개세’도 ‘애너벱티스트 세계관'을 투쟁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상호 비판과 보완의 대상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3) 한국 개혁주의의 불안한 양심
이만열은 <기독교역사연구소>를 세워 한국근대사와 한국교회사를 공관적(synoptic)으로 연구하고 토론하는 장(場)을 마련한 대표적인 크리스천 역사학자이다. 동시에 그는 손봉호, 홍정길, 김인수 등과 함께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과 ‘기세’ 운동을 대변하는 한 인물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그가 한국의 주목받는 장로교회의 장로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그가 1989년에 출판한 "한국 문화와 기독교"라는 논문에서 장로교가 주축을 이루는 한국 기독교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조심스럽게 한국 개혁주의의 ‘불안한 양심'을 표출한다.
“부러지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국문화와의 접촉에서 기독교와 함께 들어 온 물질문화는 ‘적응'하였고, 행동문화는 ‘충돌'하였으며, 정신문화 특히 기독교의 가치관은 도리어 한국 문 화에 ‘몰입'되어 갔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 문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물질문화는 수용하 였고, 행동 문화에 대해서는 반발하였고, 정신문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정복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이만열, "한국 문화와 기독교", 이원규 편저, 『한국 교회와 사회』 , (서울: 나단, 1996), 257.
이만열의 불안의식은 특히 기독교의 가치관과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관의 접합 관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의 말을 좀더 자세히 들어보자: "기독교 자체가 정신 문화를 의미하고 있지만, 재래의 한국 문화와의 접촉은 기독교적 인간관 및 가치관 등은 그 독자성을 상실하고 도리어 점차 한국 문화에 몰입되어 갔던 것으로 느껴진다." 이만열, "한국 문화와 기독교", 259.
일생을 한국근대사와 교회사 연구에 몰두했고 복음주의 운동에 헌신한 중진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이 불안의식은 감염성이 높다. 물론 개신교가 한국에 선교된 이후, 이 땅의 많은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정도가 ‘개세’가 지향하는 만큼 만족스런 열매를 맺었느냐에 대한 평가에서는 많은 ‘개세’ 운동가 사이에서도 이만열에 동조하는 이가 많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이만열이 말한 가치관의 역조현상을 뒤바꿀 수 있을 것인가의 전략과 방법의 개발이다. 나의 한가지 제안은 이 고민을 한국에서 다양한 ‘기세’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연구하고 나누자는 것이다. 이 문제는 비단 ‘개세’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교파외 ‘기세’를 다양하게 이해하는 모든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3. 기독교 세계관의 "백가쟁명(百家爭嗚)"
어떤 ‘기세’라도 그것이 ‘기세’라면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이 점을 ‘기세’의 ‘보편성'이라고 하자. ‘기세’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세계관의 개념에 들어있는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세’가 ‘기독교'와 ‘세계관'의 합성어라는 사실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모든 ‘기세’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인 삼위일체론이다. 성경에 근거를 두고 니케아와 칼케돈 신조를 통해 확립된 삼위일체의 교리는 기독교라면 동, 서방을 물론하고 인정해야 할 기본 교리이다. 월터스는 헤르만 바빙크의 정의를 사용해서 개혁주의 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 세계관이 전제로 하고 있는 신앙고백을 ‘기세’의 보편적 의미로 제시한다: " ‘성부 하나님은 그가 창조했으나 타락한 세계를 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화목케 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것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신다. ‘재혁주의적 세계관은 이러한 전(全) 기독교회의 삼위일체적 신앙고백의 모든 주요 용어들을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한다. ‘화목케 함', ‘타락함', ‘세계', ‘새롭게 함', ‘하나님의나라', 등의 용어들을 그 범위가 우주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을 제외한 어떤 것도 성경적 신앙의 이러한 기초적인 실체들의 범위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 22-23.
기독교 세계관이란 말을 꺼낸 사람들이 ‘개혁주의'(reformed) 신학자들이라는 점은 역사 적 사실이다. 그 때문에 기독교세계관은 개혁주의의 신학으로 바라 본 ‘세계관'과 차별없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만일 기독교를 세계관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다양한 교회의 신학과 전통에 의해 기능해 질 거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루터파 세계관, 재세례파(메노나이트, 침례교) 세계관, 감리교 세계관, 성결교 세계관, 오순절 세계관, 좌파 기독교 세계관, 포스트 모던 기독교세계관이 가능하고 그러한 기독교 세계관들의 한국적 버젼들도 가능하다고 생각 한다 이원석의 말대로 한국문화 지형 안에서 생동하는 한국 교회에 어떤 기세가 ‘이식'에 성공할지 아직은 우리는 모른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의 최선을 다 하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기다릴 따름이다. "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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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맺으며: ‘새로운 시작'
나는 작년부터 시작된 ‘기세’ 비판과 논쟁을 통해 한국의 ‘기세’ 연구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동안 지금까지의 ‘기세’ 운동에 만족해 왔던 이들에게나, 반대로 박총의 표현대로 ‘변두리'나 아니면 ‘물밑에서' 꿍시렁 거리던 이들에게나 이 작업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화자로 또는 청자로 이 논쟁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앞으로 ‘게임의 룰'을 지킨다면 말이다. 그 규칙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일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세’에 대해 더 생각하고 표현해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세’대로 살아보는 일이다. 결국 어느 ‘기세’가 가장 좋은지는 그 ‘기세’대로 사는 사람이 가장 많거나 교회나 시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쪽으로 결정이 나지 않을까? 이제 ‘기세’가 나가는 길은 2차선 지방도에서 8차선 고속도로로 변한 느낌이다. 랠리는 시작됐다!
최 태 연(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1. ‘기세’를 왜 비판하는 거야?
1) 스무살에 매맞기: ‘기세’ 비판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와 급진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자리 매김해 왔던 ‘기독교 세계관’(이하 ‘기세’) 운동이 얻어맞고 있다. 속되게 말하자면 19년 동안 엄격한 가정에서 조신하게 자란 ‘기세’가 스무살에 처음 밤거리 구경 나갔다가 조폭들에게 몰매 맞은 셈이다. 더 울화통 터지는 일은 기세 좋게 ‘기세’를 때리는 주역들이 지난 89년대 말, 90년대 초에 ‘기세’ 교과서로 걸음마 배운 새까만 후배 복음주의자들이란 사실이다. 이들 30대들이 21세기에 들어와 기(氣)가 점점 세지더니 마침내 ‘기세’ 정벌에 나선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전쟁터에 끌려나온 ‘기세’주의자에게는 만감(萬感)이 교차한다. 젊은 대학원생들로서 비판의식과 변혁의 의지를 가지고 도전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도전을 받는 처지가 되다니... 그들이 복음주의 ‘평신도’ 운동에서 잔뼈가 굵었다면 마땅히 ‘기세’의 깃발을 이어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아직 ‘불혹’(不慈)의 나이도 안 된 친구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선배들을 비판하다니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이젠 중년이 된 ‘기세’ 주의자들에게는 한국 교회를 미성숙으로부터 구해 낼 수 있는 ‘흑기사’로 여겨졌던 ‘기세’가 마음껏 실력발휘를 하기도 전에 왜 같은 진영의 후배들로부터 ‘종이호랑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을까? 나는 대학원 시절 ‘기세’ 모임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개혁주의 신학과 철학의 영향 아래 있었고 독일에서 학업을 마친 후, ‘기세’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사람이다. 작년 『복음과 상황』의 지면을 통해 ‘기세’ 비판에 접했을 때, 나의 느낌은 솔직히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기획이 기독 저널리즘의 선정주의 이벤트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기세’ 운동의 당사자들과 복음주의권 젊은 세대 사이의 대화의 단절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위기감을 느졌다. 내가 내린 결론은 무시가 아닌, 참여였다. 그래서 불청객의 자격으로 논의에 뛰어 들었고 그들의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기세’ 운동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게 되었다. 아직 한국의 ‘기세’ 운동은 각 분야에서 비판자들의 예봉을 끈기에 충분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으며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기세’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내가 ‘기세’ 비판을 통해서 반성하게 된 점은 다음 세 가지 점이다. 첫째, 종교개혁자 칼 빈의 개혁신학과 네델란드 개혁교회의 ‘신칼빈주의’ 신학을 모체로 하는 ‘기세’, 즉 ‘개혁주의 세계관'(이하 ‘개세’)이 ‘기세’의 전부일 수는 없다. 이 사실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혔을 ‘기세’ 개론서인 『창조, 타락, 구속』의 저자 월터스(Wolters)도 인정하고 있다. 알버트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Creation, Regained), (서올: IVP, 1992), 22.
"개혁주의적 세계관은 어떤 특징 때문에 이교적, 인본주의적 세계관 및 다른 기독교 세계관과 구별되는가? 역사적 정통 기독교의 주류 안에서조차도 서로 다른 기독교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독교 교회 안의 깊은 분열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분열은 좁은 의미에서의 신학상의 차이점뿐만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점도 반영하고 있다. 이제 개혁주의적 세계관과 다른 기독교 세계관 사이의 기본적인 차이점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굵은 글씨는 필자의 강조)
둘째, 지난 20년 동안 신칼빈주의의 ‘기세' 모델을 한국의 ‘상황' 속에서 토착화하고 구체화 ‘하려는 이론적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 셋째, ‘기세’를 한국 교회와 사회에 적용하고 실현하기위한 실천전략과 행동이 부족했다.
그러기에 나는 이 시점에서 ‘기세’ 비판이 불거져 나온 것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정체된 이론과 실천은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지 못한다는 일반원칙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모든 이론과 실천은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물며'안'으로부터 나오는 비판에는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나는 최근의 ‘기세’ 비판이 상당 부분 ‘기세’ 운동 안으로부터의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기세’ 운동이 한국에서 진정으로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째 먼 것 같다.(어쩌면 한 1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길을 가기 위해 여태까지 ‘기세’라고 불러왔던 ‘개세’와 다양한 ‘기세’ 운동 사이에 선의의 경쟁 및 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기독교 내의 다른 교파신학에서도 교회 안의 신학과 사회 속의 실천을 연결해 주는 자신들의 ‘기세’ 운동이 살아나야 한다. ‘기세’들의 상호비판과 보완은 ‘개세’ 운동에도 생산적인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나 한국에서 ‘기세’ 운동은 다분히 평신도 신학운동의 성격이 강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전문화된 신학을 자신들의 언어로 이해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제로 적용하도록 하는데 ‘기세’의 효용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다양한 ‘기세’간의 경쟁과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다양한 교파로 이루어진 한국 교회 전체의 성숙에 큰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2) 들어보자! ‘기세’ 비판
이 글을 쓰기 위해 머뭇거리다가 그 동안 ‘복상'에 등장했던 ‘기세’ 비판의 목소리들을 한 번 정리해봐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글들을 읽으면서 마구 난도질당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속 쓰리고 뼈아픈 심정도 들었다. 모든 비판들을 뭉뚱그려 요점정리 해볼까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실명 비판’의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기로 했다. 이 실명비판에서 박총은 제외했다. 이미 2002년 3월에 나름대로 응답을 했기 때문이다.
(1) 정정훈과 ‘포스트모던 좌파 복음주의' 정정훈이 자신은 더 이상 복음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신앙을 여전히 고백하는 한, 그는 복음주의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못 떠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복음적 신앙의 인식과 실천을 위해 맑스주의의 자본주의 비판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대적 주체성 비판에 의존하는 복음주의자이다. 그 점에서 그의 입장은 종래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의 입장과 다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입장을 ‘포스트모던 좌파 복음주의'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정정훈의 ‘기세’ 비판의 중요한 축은 성경(서)해석학이다. 그의 강조는 ‘기세’가 "스스로 의 주장처럼 성경이라는 단일한 기원을 가진 체계나 담론이 아니라는 것, 그 기원이 이 세
상의 정신과는 완전히 단절된 순수하고 투명한 성경적 관점만이 아니라는 점"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복음과 참황 123호 (2002. 3), 66.
에 놓여진다. 이 점이 그가 보는 ‘기세’의 기본모순이다. 그래서 ‘기세’가 "자신을 당파적 입장이 아닌 보편적 입장 - 보편적 진리인 성경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 으로 상정"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67.
한다는 사실이 그를 무엇보다도 거슬리게 한다. 그는 ‘기세’가 감추고 있는 당파성이 바로 근대의 계몽주의적 관념론과 다를 바 없으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존 지배세력의 당파적 이익에 복무하는 보수적 이데올로기"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69
의 당파성이라고 일러준다. ‘기세’주의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관점이란 결국 "철저하게 그들이 속해 있는 당파"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72.
인 중산층 부르주아 세력의 이익에 충실한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글에서 정정훈은 한국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주체성은 하나의 ‘상상' 이라고 진단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는 주체성이란 "복음주의 공동체가 자기 공동체의 필요에 적합한 주체를 생산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상상" 정정훈,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관해 묻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복음과 상황 126흐 (2002. 5), 77.
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체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상상의 세계에서만 갖고 있지, 현실에서는 무기력과 자기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그 증거로서 "80년대 상황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한국 사회의 폭압적 정치권력과 현실적 투쟁, 노동자들의 물적 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 여성들의 자기해방을 위한 현실의 투쟁에 어떠한 입장을 보였던가"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68-59.
라고 반문한다. 그에게 복음주의가 형성시키는 "철저하게 중심화되고 주권적인 주체" 정정훈,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관해 묻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79.
는 결코 보편적이지 못한 역사적이고 특수한 입장에 속한 주체일 뿐이다
정정훈의 ‘기세’와 ‘복음주의 주체/정체성' 비판은 그가 밝힌 대로 맑스, 푸코, 부르디외, 한스 프라이 등의 예일학파, 자크 엘룰의 시각이 뒤섞인 복합적인 비판이다. 그 중에서도 그의 관점을 지탱하는 기둥은 맑스주의이다. 그의 개인적 예수신앙과 상관없이, 정정훈이 복음주의 기독교를 보는 시각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맑스의 바로 그 시각이다. 기독교에 대한 맑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은 역사적으로 기독교에 가해진 비판 중 가장 예리하고 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이 비판의 과녘에서 벗어 나는 길은 맑스주의로 전향하는 길 이외는 없다. 예수님 자신이 당대의 로마의 유대지배나 노예제도를 종식시키지 않았던 것처럼 봉건주의나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제도의 모순과 부조리를 악으로 규정하면서도 정치/경제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 제도들을 하나님이 임시로 허락한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기존의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결국 기독교의 사회적 실천은 역사상의 모든 체제를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사회로 가려는 맑스주의에서 볼 때 사회개량주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사회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는 그 나라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 나라는 투쟁과 죽음이 극복되고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나라이다. 우리가 분명한 것은 그 나라의 통치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이 맑스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개종'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동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그들을 도와야 한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성경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믿음'과 ‘행위' 사이의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기세’ 운동에도 ‘해석'과 ‘실천'의 한계가 있다. 정정훈은 그것을 기세의 ‘당파성' 또는 ‘관념성'이라고 아프게 꼬집는다. 그러나 맑스주의의 이론과 실천 역시 괴리가 있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 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다른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당들과의 연대를 원했다. Marx/Engels, 커urgeuJoeAffe fcfrfen fd. f, (Berlin: Dietz Verlag, 1972), 55-56를 살펴볼 것.
그러나 맑스주의의 역사는 비인간적인 폭력으로 점철된 일당독재의 피 묻은 역사였다. 이 비판에는 브르주아 자유주의와 아나키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별이 없다. 내가 보기 에는 이 비판을 견뎌낼 수 있는 맑스주의는 아직 ‘관념'으로만 있지 ‘실제'로는 없다.
맑스주의의 관념성이라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정정훈은 "세계관이라는 관념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67.
는 ‘기세’의 공리가 부르주아 계몽주의의 에토스와 너무 닮아 있다고 개탄한다. 정정훈은 여기서 중대한 오류를 범한다. 그것은 ‘복음주의자'로서 자신에 대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기세’ 운동은 관념의 변화가 사람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 사람이 변한다고(요한복음 3:5) 믿는다. ‘기세’는 성령이 일하러 가실 때의 보조도구(지도, 나침판, 쌍안경, 위성항법장치(GPS) 등등)에 불과하다. 정정훈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즉 죽어서 천국 가는 것"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77 (각주 6).
을 믿게 되었다면, 나는 그 사건이 단순한 관념의 변화였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정정훈에게 죽음 이후의 실재까지 변화시키는 현실적인 사건이다. 정정훈은 기독교의 실천성과 당파성을 비판하다가 본의 아니게 계몽적 합리주의나 맑스주의의 역사적 유물론 모두 집착하고 있는 물질/정신 또는 유물론/관념론의 이분법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정정훈은 더 나아가서 ‘기세’의 제한된 해석과 실천에도 성령의 함께하심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기세’ 운동의 모든 것에 성령을 둘러대어 ‘사면부'를 받자는게 아니 다. 정정훈의 체험에서 나왔을 ‘기세’에 대한 충고에는 할 말을 잃는다: "기독인이 현실 속에서 무기력하고 침묵하고 비기독교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 기독인이 비 기독인들과 관계를 맺는 훈련을 하지 못했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을 잊어버렸으며, 그들과의 연대 속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참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정훈, "환상 속에 ‘기세’가 있다", 72.
왜 우리는 이렇게 소심하고 왜소해 졌을까? 세상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맺으면 타락할까봐, 언제부턴가 우리끼리의 교회와 천국에 만족하게 된 걸까? 바로 이런 기독교와 기독인에서 벗어나자고 ‘기세’를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나? 정정훈의 뼈아픈 지적에 ‘기세’주의자인 나는 고개를 떨군다. 우리의 자기만족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나를 인정하면서.
(2) 이원석과 문화신학적 ‘기세’ 비판
‘기세’ 비판 세대 중에도 가장 젊은 축에 드는 이원석은 여전히 "개혁주의"를 고백하는 개혁주의자이다 그런 그가 이제 그만 ‘기세’를 ‘멀리서 넓게' 보자고 제안한다. 그와 ‘개세’의 관계는 오랜 교제 끝에 더 이상 별다른 감정을 못 느끼지만, 더 이상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사이라고나 할까. 대학 신입생 때부터 ‘개세’를 뜨겁게 사랑했던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의 지병을 치료하는데 ‘개세’라는 약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의심이 생긴 것이다. 그의 지론은 다분히 ‘풍수지리설'에 근거해 있다. 이 풍수지리설은 그의 문화신학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세계관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세계관이란 것이 이 땅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성요인들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신학적 ․ 철학적 ․ 문화적 요인들, 기후적 ․ 지리적 요소들에 따라 달리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도 동일한 형성의 역학 아래 놓여있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복음과 상황 124호 (2002. 4), 55.
따라서 이원석에게 다양한 세계관의 차이는 ‘땅'의 차이에 의해 생겨난다. 루터교가 둥지를틀은 땅에서는 루터교의 전통이 형성되고 그로부터 루터신학이 생겨난다. 물론 루터신학은 이론 구성을 위해 특정한 철학이나 사조를 받아들인다. 특정한 철학이나 문화를 수용한 루터신학의 영향 아래 루터교인은 일반적으로 루터교 세계관을 갖게 된다. 독일에는 독일적 개혁자 루터가 나을만한 기후와 사조가 준비되어 있었고 프랑스에는 칼빈이 나올만한 환경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원석 식의 표현으로는 "루터는 프랑스에서 나올 수 없고 칼빈은 독일에서 나올 수 없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56
이 이른에 근거해서 이원석은 그가 풀어야 할 과제로 육박한다. 과연 한국의 풍토와 문 화와 사상에 ‘개혁주의'라는 신학이 잘 맞아 들어가는가? 이원석의 결론은 ‘아니올시다'이다. 이원석은 개혁주의가 한국 땅에 정착하기 어려운 이유를 우선 문화풍토에서 찾는다: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은 유불무(儒拂巫)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와 유불무의 만남은 한국교회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한국교회의 주로 특정한 영역에 집중된 윤리적 태도와 성서에 대한 자세는 유교에서 온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경건의 행습과 내세에 대한 이해는 불교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무교에서 기복의 자세와 일반적 영역에 대한 무윤리적 태도가 유입되었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0
따라서 한국의 개혁교회 신자의 내면에는 그가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개혁주의와 무자각적으로 받아들인 유불무의 전통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이질적인 두개의 문화가 접하해서 변형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이원석은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에게 이 혼돈스러운 과정은 "결국 하나님의 영이 간접적으로 역사하시는 과정이며, 하지만 우리를 기계적으로 이끄시지는 않기에 종종 돌아가기도 하고, 많이 왜곡되기도" 하는 창조적인 과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원석은 또 하나 한국 개혁주의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로서 20세기의 일제 식민지 경험을 든다. 선교 초기의 기독교는 정치와 사회 개혁에 앞장 섰지만, "3 ․ 1운동 이후 지속 되는 일제의 극심한 핍박으로 인해 대부분 예배당과 내세와 초월로 도피"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55.
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제말기 한국교회가 생존을 위해 받아들인 신학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삶과 영원한 복락의 내세로 이루어진 ‘이원론적 세계관'이었다 이원석에게 일제하에서 한국교회의 탈정치화, 내세신앙화 과정 역시 한국교회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이렇듯 한국의 문화 여건과 근대사의 경험이 맞물려 한국 기독교는 리차드 니버가 말한 '문화 변혁자이신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개혁주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원석이 보기에는 "한국교회는 상호 대조되는 입장인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와 문화의 그리스도가 혼용되어 있는 독특한 형태의 세계관을 가지고"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0.
있으며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세계관은 두 유형의 단점만 중첩되어 나타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원석은 한국인의 심성과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이상적으로 ‘개세’만을 주장하는 태도를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에 잘 맞아들어가는 세계관을 찾아서 정착시키는 노력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이원석은 조심스럽게 ‘역설적 관계 속에 있는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 in paradox)의 유형을 대안으로 추천한다. 첫째 예로 루터교의 두 왕국론은 교회와 세상을 분리와 긴장관계 속에 위치시키면서도 역설적으로 성도가 두 영역에 다 속하도록 허용한다. 둘째 예로 자크 엘룰 역시 현대 문명의 산물인 "기술, 폭력, 도시, 금전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이에 대한 포기와 방임이 아닌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역설모델에 속한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2.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세상 나라의 원리와 일치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양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안내해 주는 ‘기세’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이원석의 입장이다.
나에게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심성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개혁주의 세계관(과 네델란드 개혁주의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1.
는 이원석의 문화신학적 ‘기세’ 비판은 정정훈의 이데올로기적 ‘기세’ 비판에 못지않게 심각한 도전을 준다. 사실 이원석의 생각은 그 동안 한국 교회와 사회에서 ‘기세’가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현상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답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을 해석할 때도, 본문의 의미를 독자의 문화를 고려해서 그 문화에 적용하지 않는 해석은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해석을 산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원석의 주장에 대한 두 가지의 반론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 ‘개세'와 한국의 전통문화 사이에는 갭 뿐만 아니라, 친화적 요소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유교의 정치윤리나 성윤리에는 ‘개세’와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둘째로 ‘개세'가 한국인의 전통 윤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미래의 한국 교회나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세계관을 제공해줄 수 있다. ‘개세’가 전통적 한국인의 세계관을 개선하고 변혁시켜 줄 수 있다면 ‘개세’의 필요와 공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3) 양희송의 ‘내러티브' 비판
‘복상'의 또 하나의 뛰어난 토론자 양희송은 "기독교 세계관: 담론, 운동, 혹은 논란"이란 제하의 글을 두 번에 거쳐 연재했다. 그는 영국에서의 신학수업 경험을 통해 그 나름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조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특히 그가 설하는 바는 한국의 보수 장로교단에서 선호되는 ‘개세’는 서구교회의 신학에서는 주류 담론이 아니며 따라서 한국의 복음주의권에서 주류담론으로 자리 잡은 ‘개세’의 권위적인 성격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양희송에게 ‘개세’ 해체작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정정훈의 좌파적 시각이나 이원석의 문화신학적 시각을 포용하기에는 신학적으로 덜 유연하고, 덜 세련되었다는데 있다. 그러나 ‘기세’ 비판 담론에서 양희송의 생산적인 기여는 ‘내러티브'(narrative) 비판에 있다고 생각된다.
양희송은 세계관 논의의 주요한 목적의 하나로 ‘자아/정체성 형성'을 들고 있다. 즉 어떤 방법으로 ‘기세’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정체성을 형성하느냐가 그의 관심사이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자아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명제이기보다는 내러티브이다. 중첩되고, 얽힌, 이야기들이 우리의 내면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자아정체성이 성경 내러티브로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희송, "기독교 세계관: 담론, 운동, 혹은 논란"(Ⅱ), 복음과 상황 124호 (2002. 4), 43
모든 사람은 삶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자아/주체도 형성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내러티브로 이루어진 성경없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도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이다. 그는 최근의 성경신학 연구의 결과를 소개하면서 이 주장을 설득력있게 입증한다. 창세기 주석가 고든 웬함(G. Wenham)은 창조스토리가 고대 근동세계의 세계관에 대한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해석하며, 역사적 예수 연구가 톰 라이트(N. T. Wright) 역시 복음서의 예수이야기에서 유대교에 대한 세계관적 도전을 발견한다.
그는 또한 현대 신학에서의 내러티브를 활용하는 시도들에 주의를 돌린다. 미들턴과 월쉬(Middleton & Walsh)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조건을 분석하고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충분 히 고려하는 억압적이지 않은 성경적 세계관을 모색한다. 한국에 잘 알려진 스탠리 그랜츠(S, Grenz)도 포스트모던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신앙의 증거방식을 명제가 아닌, 공동체의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양희송의 입장은 20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내러티브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 각성을 반영한다. 그의 작업 가설은 더 이상 ‘기세’ 연구나 ‘신학'조차도 성경의 내러티브에서 신학적 명제(proposition)를 추론해 내지 말고, 생생한 내러티브로 쓰여지고 전달될 때, 권위적이지 않고 편협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주체성이 형성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직업상 소설이나 시보다는 철학책과 신학책, 과학서적같은 딱딱한 책을 많이 읽는 다. 그리고 책을 잃을 때마다 나는 저자의 주장(claim)이 무엇인지, 그가 제시하는 근거 (grounds)나 증거(evidence)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한다 그리고 항상 그의 정당화 논리 (warrant)에 어떤 결점이나 문제가 있는지를 따지려 든다. 이런 걸 흔히 ‘직업병'이라고 말 하나 보다. 나는 대개 이런 일을 좋아서라기보다는 강의 준비하고 논문이나 책을 쓰기 위 해 한다. 반면에 가끔 신앙간증 서적이나 아주 드물게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다 읽을 때까 지 밥도 먹고 싶지 않고 잠도 안 온다. 내러티브는 독자를 끝까지 따라가도록 하는 힘이 있다. 가끔 아이들이 보던 만화를 손에 잡으면 끝장 볼 때까지는 절대 못 놓는다. 초등학교 때 만화가게는 나에게 방과 후부터 저녁 먹으러 불려갈 때까지 도서관이었다. 나도 내러티브의 파워를 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 가는 통로나 마찬가지인 성경이 ‘세계관'을 담고 있는 내러티브라는 양희송의 생각이나 기독교의 교리(dogma)조차도 "성경 내러티브의 해석"(interpretation of narrative) 양희송, "기독교 세계관: 담른, 운동, 혹은 논란"(Ⅱ), 51.
이라는 맥그라스(A. McGrath)의 주장에 나는 이의를 달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 서양 중세뿐만 아니라, 근대의 학문에서 논리학과 인식론의 위치는 확고부동했다. 모든 정신적 내용은 논리적으로 논증되거나 경험적으로 입증되어야만 되었다. 인간의 일상적 삶의 이야기나 초자연적인 기적의 이야기, 꿈과 상상의 이야기들은 가치가 없거나 허무맹랑한 정보로 치부되었다. 양희송이 역설하는 내러티브의 부활이 필요하다 사실 내러티브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다만 그것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희송을 비롯한 ‘내러티브'주의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내러티브와 명제의 경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논리학에서는 ‘명제'(proposition)를 내러티브를 포함하는 모든 문장(sentence) 가운데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서술문장으로 본다. 최한빈, 이경직, 최태연 (공저), 『논리와 신앙』 , (서울; 살림, 2003), 72.
이런 명제가 내러티브 안에도 얼마든지 들어있을 수 있다. 우리의 언어에서 구체적이지 않은 추상개념(abstract consept)이나 명제를 모두 추방할 수는 없다. 또한 내러티브의 진위를 가려야 할 필요도 생겨난다. 내러티브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우리는 다시 명제로 되돌아간다. 김기현의 주장대로 내러티브가 먼저고 명제는 나중이라는데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명제를 필요로 하거나 명제로 되돌아간다는 것도 사실이다. 내러티브와 명제간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4) 김기현과 ‘애너밥티스트' 세계관
2. 나는 왜 ‘개세’를 붙들고 있지?
1) 개혁주의라는 ‘생활세계'(Life-World)
나는 이북 출신의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사춘기 몇 년 동안 교회를 떠나있었지만, UBF(현재 ESF)란 한국의 복음주의 선교단체를 통해서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기독교의 품으로 다시 돌아 온 나에게 다시 나가야 할 교회는 당연히 ‘장로교회'였다. 나는 내가 의식적으로 기독교를 선택하기 이전에 장로교인으로 선택되었고 의식적으로 ‘기세’나 ‘개혁신학'을 배우기 이전에도 장로교식의 예배와 신앙생활에 이미 친숙해 있었다. 장로교가 루터교나 감리교나 성결교와 어떻게 다른지 알기도 전에 나는 장로교가 나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다니던 선교단체는 형식상 초교파지만, 대부분의 간사(목자)님들이 장로교 신학교에 가서 장로교 목회자가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겼다. 관심사라면 장로교는 장로교인데 다만 어느 교파 신학교를 가느냐 정도였다.
이렇게 장로교가 너무도 당연했던 나에게 한국에서 보수적 장로교에서 선호하는 ‘기세’를자연스럽게 선호하게 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가 의도적으로 감리교인이 되거나 내 아내는 결혼 전에 고향에서 한매 감리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열심히 장로교회에 나간다. 아마도 남편인 내가 감리교인이었다면 다시 감리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내게 교파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종종 말하기 때문이다. 복음이 중요하단다. 내 생각에는 그녀의 이런 생각은 아무래도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대학생 선교단체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어떤 특정한 신학을 배워본 적도 없고 관심도 별로 없다. 아무래도 그녀는 ‘전이론적'으로 그런 신념을 형성한 것 같다.
맑스주의자가 1980 년대 후반, 맑스주의에 경도된 한국 유학생이 유난히 많았던 서 베를린에서 나는 몇 년간 그 들과 열심히 맑스의 유물른과 변증법을 스타디했다. 우리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었지만, 그들에게 나는 허구적인 신을 믿는 약간 맹신적인 철학도로 보였을 것이고 , 나에게 그들은 맑스의 말을 너 무 신성시하는 유사 종교인으로 보였다. 그들과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 다시 진보주의자와 장로교인이라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되었다면 인생의 커다란 전환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시절 나는 장로교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쉐퍼의 책들에서 친밀감을 느꼈고, 학업을 마친 후에는 기학연 중심의 ‘기세’운동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세계관은 자명하지 않다"는 양희송의 의문에 나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싶다. 세계관을 ‘세상에 대한 일관된 관점'이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리면, 이러한 세계관은 내 아내나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가정이나 주위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어떤 관점같은 것이다. 세계관은 이론이나 학문으로 배우기 이전에 이미 가지게 되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조망 같은 것이랄 수 있다. 독일의 현상학자 후설(Husserl)이 ‘생활세계'(Lebenswelt ; life-world)라고 부르는 현상이나 해석학자 불트만(Bultmann)이나 가다머(Gadamer)가 선이해(Vorverstaendnis; pre-understanding)라고 부르는 현상이 세계관의 출발점일 것이다.
2) 내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개세’
내가 ‘개세’를 막연한 친밀감을 넘어 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개세’가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가장 큰 폭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개혁주의는 종교개혁 이후 다른 어떤 신학 전통보다 ‘창조'의 신학을 더 강조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타락'과 ‘구속'과 ‘종말'을 배제하는 신학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신학의 핵심들을 일관되게 연결하려 했던 신학으로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되어야할 세상은 동시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상이다. 비록 창조되었고 구속될 세상이지만 역사의 현재는 죄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아비규환 속에 움직여지는 세상이다. 개혁주의는 이 모든 역설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관되게 하나님과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려 했다. 이 점에서 개혁신학은 넓은 지평을 가진 신학이다. 나는 이점이 개혁주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주의는 정치나 전쟁의 문제에서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거부 사이에 양심의 자유를 허락한다. 첫째, 칼빈주의는 모든 성도가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의미를 준 수해야 한다고 믿는다. 칼빈주의는 아나키즘을 거부한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군대 복무를 시민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의무로 생각한다. 둘째, 그러나 정부의 권위는 절대적이 아니다. 만일 정부가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거스리고 시민에게 그것을 강요할 때에 시민은 양심의 요청에 따라 정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전쟁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수행하려는 어떤 전쟁이 정당화할 수 없는(uniustifiable) 전쟁인 경우, 성도는 그 전쟁을 거부할 수 있다. Henry Meeter, The Basic Ideas of Calvinism, (Grands Rapids: Baker, 1990), 182.
그러나 칼빈주의는 모든 경우에 무조건적인 ‘평화', 즉 전쟁회피의 길만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점이 재세례파의 평화주의와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재세례파의 무조건적 평화주의가 이상주의적이라면 칼빈주의 정치윤리는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현실적이다.
문제는 개혁주의가 역사 속에서 어떤 실천을 해왔는가의 문제이다. 개혁주의는 태생부터 '평화주의'가 될 수 없었다. 루터주의는 가톨릭과의 대결의 결과 독일 영주와 귀족들의 보호아래 국가에 순응적인 종교로서 성장했다 국가 전체가 루터주의를 받아들인 스칸디나비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개혁주의는 개혁주의의 진원지인 프랑스에서 국가와 결합된 가톨릭 교회에 의해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 결국 소멸되다시피 했다. 개혁주의가 피난처를 얻은 곳은 스위스의 산골도시들과 독일의 도시들에서였다. 그들은 가톨릭과 루터교의 전선 사이에서 불안한 존재로 남았다. 영국에서는 그들은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다. 네델란드에서도 그들은 스페인이라는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개혁주의의 한 가지 잘못이라면 당시의 혼란 속에서 제세례파에 대한 관용을 베풀지 않은 점이다. 개혁파 교회는 한편으로 로마가톨릭의 무자비한 박해로 고통을 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근본적으로 같은 신앙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수행하고자 했던 교회의 일부를 박해했다. 나는 이 박해의 역사를 오류와 죄의 역사로 인정한다. 나는 종교개혁 이후의 교파투쟁의 불행한 과거를 통해 배운 교훈을 회상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개혁파 교회가 재세례파 교회를 더 이상 박해하지 않는 것처럼 ‘개세’도 ‘애너벱티스트 세계관'을 투쟁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상호 비판과 보완의 대상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3) 한국 개혁주의의 불안한 양심
이만열은 <기독교역사연구소>를 세워 한국근대사와 한국교회사를 공관적(synoptic)으로 연구하고 토론하는 장(場)을 마련한 대표적인 크리스천 역사학자이다. 동시에 그는 손봉호, 홍정길, 김인수 등과 함께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과 ‘기세’ 운동을 대변하는 한 인물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그가 한국의 주목받는 장로교회의 장로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그가 1989년에 출판한 "한국 문화와 기독교"라는 논문에서 장로교가 주축을 이루는 한국 기독교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조심스럽게 한국 개혁주의의 ‘불안한 양심'을 표출한다.
“부러지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국문화와의 접촉에서 기독교와 함께 들어 온 물질문화는 ‘적응'하였고, 행동문화는 ‘충돌'하였으며, 정신문화 특히 기독교의 가치관은 도리어 한국 문 화에 ‘몰입'되어 갔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 문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물질문화는 수용하 였고, 행동 문화에 대해서는 반발하였고, 정신문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정복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이만열, "한국 문화와 기독교", 이원규 편저, 『한국 교회와 사회』 , (서울: 나단, 1996), 257.
이만열의 불안의식은 특히 기독교의 가치관과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관의 접합 관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의 말을 좀더 자세히 들어보자: "기독교 자체가 정신 문화를 의미하고 있지만, 재래의 한국 문화와의 접촉은 기독교적 인간관 및 가치관 등은 그 독자성을 상실하고 도리어 점차 한국 문화에 몰입되어 갔던 것으로 느껴진다." 이만열, "한국 문화와 기독교", 259.
일생을 한국근대사와 교회사 연구에 몰두했고 복음주의 운동에 헌신한 중진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이 불안의식은 감염성이 높다. 물론 개신교가 한국에 선교된 이후, 이 땅의 많은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정도가 ‘개세’가 지향하는 만큼 만족스런 열매를 맺었느냐에 대한 평가에서는 많은 ‘개세’ 운동가 사이에서도 이만열에 동조하는 이가 많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이만열이 말한 가치관의 역조현상을 뒤바꿀 수 있을 것인가의 전략과 방법의 개발이다. 나의 한가지 제안은 이 고민을 한국에서 다양한 ‘기세’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연구하고 나누자는 것이다. 이 문제는 비단 ‘개세’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교파외 ‘기세’를 다양하게 이해하는 모든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3. 기독교 세계관의 "백가쟁명(百家爭嗚)"
어떤 ‘기세’라도 그것이 ‘기세’라면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이 점을 ‘기세’의 ‘보편성'이라고 하자. ‘기세’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세계관의 개념에 들어있는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세’가 ‘기독교'와 ‘세계관'의 합성어라는 사실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모든 ‘기세’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인 삼위일체론이다. 성경에 근거를 두고 니케아와 칼케돈 신조를 통해 확립된 삼위일체의 교리는 기독교라면 동, 서방을 물론하고 인정해야 할 기본 교리이다. 월터스는 헤르만 바빙크의 정의를 사용해서 개혁주의 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 세계관이 전제로 하고 있는 신앙고백을 ‘기세’의 보편적 의미로 제시한다: " ‘성부 하나님은 그가 창조했으나 타락한 세계를 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화목케 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것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신다. ‘재혁주의적 세계관은 이러한 전(全) 기독교회의 삼위일체적 신앙고백의 모든 주요 용어들을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한다. ‘화목케 함', ‘타락함', ‘세계', ‘새롭게 함', ‘하나님의나라', 등의 용어들을 그 범위가 우주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을 제외한 어떤 것도 성경적 신앙의 이러한 기초적인 실체들의 범위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 22-23.
기독교 세계관이란 말을 꺼낸 사람들이 ‘개혁주의'(reformed) 신학자들이라는 점은 역사 적 사실이다. 그 때문에 기독교세계관은 개혁주의의 신학으로 바라 본 ‘세계관'과 차별없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만일 기독교를 세계관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다양한 교회의 신학과 전통에 의해 기능해 질 거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루터파 세계관, 재세례파(메노나이트, 침례교) 세계관, 감리교 세계관, 성결교 세계관, 오순절 세계관, 좌파 기독교 세계관, 포스트 모던 기독교세계관이 가능하고 그러한 기독교 세계관들의 한국적 버젼들도 가능하다고 생각 한다 이원석의 말대로 한국문화 지형 안에서 생동하는 한국 교회에 어떤 기세가 ‘이식'에 성공할지 아직은 우리는 모른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의 최선을 다 하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기다릴 따름이다. " 이원석, "기독교 세계관, 멀리서 넓게 보기",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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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맺으며: ‘새로운 시작'
나는 작년부터 시작된 ‘기세’ 비판과 논쟁을 통해 한국의 ‘기세’ 연구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동안 지금까지의 ‘기세’ 운동에 만족해 왔던 이들에게나, 반대로 박총의 표현대로 ‘변두리'나 아니면 ‘물밑에서' 꿍시렁 거리던 이들에게나 이 작업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화자로 또는 청자로 이 논쟁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앞으로 ‘게임의 룰'을 지킨다면 말이다. 그 규칙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일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세’에 대해 더 생각하고 표현해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세’대로 살아보는 일이다. 결국 어느 ‘기세’가 가장 좋은지는 그 ‘기세’대로 사는 사람이 가장 많거나 교회나 시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쪽으로 결정이 나지 않을까? 이제 ‘기세’가 나가는 길은 2차선 지방도에서 8차선 고속도로로 변한 느낌이다. 랠리는 시작됐다!
출처 : 명지새벽이슬
글쓴이 : 임왕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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