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탄을 숭배하는 조직이 세운 세계교회협희회(W.C.C)
아래의 사이트에서 퍼 온 글입니다. 글을 쓴 저자가 없지만 내용들은 전부가 사실입니다. 아래의 글의 내용처럼 스타린이나, 평화연맹의 의장인 니코딤이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이라는 사실을 아는 학자는 국내에 존재하기 않습니다. 세계교회협의(W.C.C)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들이 세운 조직입니다.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영적으로 어두워서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8대 기독교 교단들이 이 사탄의 조직에 자금을 대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헌신적으로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 기독교를 파괴하고 공격하는 조직에 흘러 들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탄의 조직을 지원하고 있는 8대 교단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① 기독교 장로회(기장) ② 예수교 장로회(통합) ③ 기독교 감리회 ④ 성공회 ⑤ 구세군 ⑥ 복음교회 ⑦ 정교회 ⑧ 기하성.
#여기서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성공회는 프리메이슨 조직들이 세운 단체로 캔터베리 대 주교가 프리메이슨 33도 입니다. 이런 기록들은 법적으로 증거할 충분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학자들이 오래 동안 기록한 사료들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http://headstone.pe.kr/04_paleHorse/WCC/wcc_meeting.htm
W.C.C. 총회 정리
W.C.C.가 발족하기 전, 이미 소련 스탈린은 1947년 9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평화연맹'을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주로 소련공산당 지도자들과 그 위성국의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었는데, 세계교회 침투를 위한 세계적화 사령부격이었다. 이 '평화연맹'이라는 조직을 발판으로 하여 공산당의 마수는 세계교회협의회를 초반부터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세계교회협의회 설립 배후조종자인 스탈린은 본래 러시아 정교회 신학생이었음을 기억하라! 그는 정교회의 타락상을 보고 '하나님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는 마귀의 감화를 받고 레닌과 힘을 합쳐 노동자 농민을 선동하여 공산주의 혁명을 이룬 자이다. 이렇게 등장한 붉은 말(계 6:4, 계 8:7)이 약 40년간 자기 민족 약 5,000만명을 때려죽인 후, 색깔을 바꾸어 나온 것이 청황색말의 등장이다(계 6:8). 이렇듯, 하나님을 따르던 자가 타락하면 무신론자가 되고, 자본주의가 부패하면 반갑지 않은 손님 공산주의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 공산당이 때려죽이는 타도정치를 끝내고(1917년~1947년), 궤휼정치로 나오면서 이용한 것이 바로 W.C.C.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전략과 전술이 있는데, 전략은 거시안적인 목적이며 전술은 그것을 이루는 다양한 방법들이다. 전략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전술은 유동적이다. 그들의 변하지 않는 전략은 당연히 '세계적화'이며, 대놓고 드러낼 수 없기에 '평화로운 세계건설'이라는 꿀바른 독약으로, 이를 이루는 전술적인 방법이 바로 W.C.C.를 배후조종하는 것이다.
제1차 총회 |
1948년 8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44개국 147교회가 정식대표로 모였다. 이미 언급한대로 스탈린이 1947년 9월 바르샤바에서 서방교회 침투 전략을 세우고 '평화연맹'을 조직하여 1948년 8월 W.C.C. 1차총회에 약 60~70 여명의 동유럽 공산국가의 정보요원을 위장 침투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자본주의체제를 먹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인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체코 출신의 '흐루막카'와 폴란드 출신의 '나즐로 패트'가 W.C.C.중앙위원에 임명됨을 시작으로 일곱째 머리 소련정부의 세계교회회와 자본주의 적화야욕이라는 궤휼이 태동했다. 스탈린이 죽기 3년 전인 1950년 4월, 바르샤바에서 세계평화회의(W.P.C.)라는 공산권 교회기구를 조직하였는데, 여기에 68개교단 98명이 참가하여 W.C.C. 2차총회 잠식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무섭지 않은가? 시작서부터 W.C.C.란 멋모르는 처녀는 포학한 마귀에게 강간당할 위험성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1953년 6월, 스탈린이 사망한 후,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종교궤휼정책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그 조직을 '세계기독교평화회의'로 확대하였다(1958.11). '평화공존' 정책으로 유명한 그는 겉으로는 위장평화전술에, 속으로는 서방침투전략에 최선을 다했다. 후르시초프는 1967년 3차회의 때 K.G.B.두목인 니코딤을 '세계기독교평화회의' 의장에 임명하므로 세계교회침투를 적극 장려하였다. 이러한 공산주의 궤휼정치는 1975년 1월 '아시아기독교평화회의' 등의 관련기구들의 확대로 더욱 탄력을 받았으며, 이로써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W.C.C. 내로 침투시킬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총회 |
1954년 8월, 미국 에반스톤에서 "현대의 정치적 정의는 공존"이라는 모토를 내세웠다. 그리스정교회를 인정함으로써 그리스, 유고, 터키의 정교회가 정식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이때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이 W.C.C.의 지상목표"라는 신앙고백을 선언함으로써 스탈린의 평화공존 결의안을 지지하였다. 우리나라가 가입신청을 한 것도 이때로서, 보수와 진보가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사상전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보수교단 대표들은 반대연설을 하고 퇴장하였으나, 기장, 기감, 예장(통합) 측은 K.N.C.C.(National Council of Church, Korea)의 이름으로 W.C.C.에 가입함으로써 사탄의 마수가 하나님의 동방 땅 끝 대한민국 안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붉은 짐승들이 이처럼 양의 탈을 쓰고서 W.C.C.와 그 산하 단체인 "아시아교회협의회(C.C.A.),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산업선교회(U.I.M.), 기독학생총연맹(S.C.F.)"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
스탈린을 격하시키고 서방세계를 완전히 속이고 나온 소련 공산당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제3차 총회에 대비하여 1958년 11월, 체코 프라하에서 "세계기독교평화회의"를 조직했다. 이 회의에는 서방교회에서 600 여명이 참가하였는데, 흐루시초프의 "동서공존" 이란 위장평화 전략의 독소가 먹혀들게 되었다. 흐루시초프는 기독교와의 평화공존을 강령화했으며 제3차 회의에 대하여 숙의하였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속임수요, 꿀바른 독약이었다. 김홍도 목사의 '공산주의와 기독교 신앙'이라는 글에 보면 그는 서기장이 된 다음에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소련의 모든 기독교인들을 다 없이하고 마지막 한 사람을 전국 모든 사람이 TV로 볼 수 있게끔 한 다음에 죽여버려 소련 땅에서 교인 씨를 완전히 말려 버리겠다".
그러나 그가 이 일을 실행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그를 데려가셨다.
제3차 총회 |
1961년 11월, 인도 뉴델리 대회 대표들은 "세계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란 표어 아래서 타 종교들도 세계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소련 K.G.B.(국가보안위원회) 요원이요 당시 '세계기독교평화회의'의 의장인 '니코딤'이 소련교회 대표 자격으로 16명을 인솔 참가하여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와 더불어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이때 니코딤은 W.C.C. 중앙위원에 임명됨과 동시에 W.C.C.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이러한 배후에는 흐루시초프의 세계적화야욕이 있었다. 니코딤은 이 대회에서 예수만이 세계의 유일한 구세주이심은 말못하고(행 4:12) 흐루시초프의 공산당노선을 선전했으며, 마르크스주의(marxism)는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위한 필수이념임을 운운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우리나라가 정식회원국이 된 것도 이 때이다.
W.C.C.는 창설 당시에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를 다같이 지적하면서 대화로써 평화공존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실은 공산권의 병폐보다 도 서방세계의 병폐를 지적하는데 치중해왔다. 이러한 때 니코딤이 회장에 당선됨으로써 그 성격이 더욱 공산주의 선전 및 침투기구 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산업선교'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했는데, 이것은 전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내었으며 당시 한국에서도 이로 인해 소용돌이가 일어났었다. 1966년 제네바에서는 "혁명을 위한 개혁"이란 주제 아래 산하교회와 사회분과 위원회가 개최되어 "보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파괴원리는 허용되어야한다" 는 공개 성명서를 채택했다.
제4차 총회 |
1968년 7월, 스웨덴 웁살라 대회 때에 "만물을 새롭게라"는 주제 하에 그리스도 외에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거짓 선지자가 득실대는 세계교회협의회 안에 현재 한국의 8개 교단이 가입하고 있다(① 기독교 장로회(기장) ② 예수교 장로회(통합) ③ 기독교 감리회 ④ 성공회 ⑤ 구세군 ⑥ 복음교회 ⑦ 정교회 ⑧ 기하성). 4차 총회 때부터 다른 종교에 대하여는 "다른 신앙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필립 포터 총무는1969년 5월 25일자 『로스엔젤레스 타임』지에 "W.C.C.는 만일 폭력이 정치적 경제적 독재를 전복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면 그 폭력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기고함으로써 폭력혁명을 선포하였다. 또 『기독교 사상』 1972년 11월호에서는 "폭력혁명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기독교의 봉사를 말할 수 없는 시기가 왔다"고 하면서 이러한 공산혁명 과업을 교회가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에뮤메니칼 리뷰』지에는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군사 원조를 끊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W.C.C. 총무인 그의 발언들은 모두가 사회주의, 맑스주의,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가 말하는 해방이란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자본주의와 계급사회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것이 전부 다였다. 한국 교회는 이런 명백한 사실들을 몰라서 거기 있는 것인가? 알고도 거기 있는 것인가?
1971년부터 W.C.C는 회교, 불교, 힌두교, 유대교의 회의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신앙들"이라는 용어가 변해서 "살아있는 신앙들" 이라는 말로 불리우게 되었다. W.C.C.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 세계인과 기독교인의 상상을 초월한 상태였다.
이때 총회는 인종차별. 세계평화, 사회정의를 외치며 제3세계 발전에 무관심했던 교회의 죄를 고백하고 "인종차별주의 철폐 투쟁기구"를 신설키로 결의하고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등 세계 도처에서 혁명을 위해 투쟁중인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에게 자금을 지원키로 결의하여 모금운동에 착수했다. 1970년 가을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좌익 게릴라 단체에 300만불을 지원, 결과적으로 로디지아 정부를 전복 시킨 후 40 여명 이상의 보수주의 선교사를 살해하였다.
이제 일곱째 머리 짐승정권이요, 붉은말이요(타도정권), 청황색말의 본부(궤휼주의)인 소련은 제5차 총회에 대비하여 1975년 1월 인도 곧다암에서 "아세아 기독교 평화회의"를 설립하였다. 이때 북한까지 "조선 인민공화국 기독교연맹"이란 거짓 이름으로 참석하였으니, 현재 북한교회를 돕겠다는 대한민국 교단들의 어리석음이 어찌 사단에게 속은 결과가 아니라 할 수 있으리요!
4차총회에서는 ① 남한으로부터 미군철수. ② 미-일의 남한군사원조 반대. ③ 남한 기독교인 중심의 민중 옹호 투쟁 지지 및 투옥자 석방 등의 내용이 결의된 바 있다.
제5차 총회 |
1975년 11월, 아프리카 캐냐 나이로비에서 "해방의 신학 :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 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이때 이방 종교들과 마르크스주의 사상까지도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대회의 대변자인 로버트 브라운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교(모슬람), 힌두교, 불교, 맑스주의자들의 말도 들을 수 있는 때가 왔다"고 하였다. 소련의 비밀경찰 두목이요 평화연맹 의장인 '니코딤'이 의장에 당선되었고, 또한 맑스주의자인 필립 포터 목사가 총무에 선출되었다.
5차 회의는 처음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인도네시아 내 회교와 기독교간의 분쟁으로 인하여 취소되었다. 당시 소련 K.G.B 요원 니코딤은 소련교회 대표 36명을 인솔하여 참가했고, 미국대표 로버트 브라운(기독교 윤리학 교수)은 기조 연설에서 "해방을 위한 의식화 고취"를 연설한데 이어 '아세아 기독교 평화회의'에서 북괴가 주장한 내용을 제5차 총회 성명서 내용에 포함시켜 발표하기도 했다.
총회 신앙고백서는 ① 마르크스 게릴라운동을 공식 승인 하고 ② "자본주의와 인종차별주의 및 식민주의의 불의한 모든 구조를 파괴하지 않는 한 어느 국가나 민족도 자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사회주의는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는 첩경"이라고 선언했다.
1975년 11월 24일자 타임지는 나이로비 총회 소식을 "W.C.C.는 세계 크리스챤을 연합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어 신학적인 차이점들을 감소시키는데 주력해 왔으나 사회적 정치적 해방의 문제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라고 보도했다. 1977년 W.C.C. 필립 포터 박사는 중앙위 기조연설에서 "공산주의가 베트남에서 승리한 것은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해방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이 위대한 베트남의 승리는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전 세계 인민을 고무시키고 있다" 라고 발언했다(W.C.C. 회보 E.P.S. 77.6.9 기사).
이렇게 노골적으로 완전한 마귀적 발언들을 내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거대교단들이 지금까지도 이러한 단체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은 영적 살인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제6차 총회 |
1983년 7월 24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100개국 300개 교파에서 3,000 여명이 모여 "정의, 인간존엄에 대한 투쟁, 환경오염, 하나됨을 향한 진 일보, 공동체를 통한 삶의 치유와 공유" 등을 논의했는데 한국에서도 40명의 대표가 참가하여 2명이 중앙위원이 되었다. 대표단 보고회의는 "제6차 총회는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용공단체라고 오인하게끔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총회 주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사들의 발언이 온통 미국을 비방하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악에 관한 문제들의 화살을 미국에 몽땅 따돌림으로서 소련으로 하여금 어부지리를 얻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했다.
W.C.C.의 활동 연대를 보면 1948년∼1965년까지는 "책임 사회구현"이요, 1965년∼1968년까지는 "급진주의 추구", 1969년부터는 "해방신학 승리"였다. 해방신학이란 설탕으로 껍질을 싼 칼 맑스주의이다(Poison with honey).
1978년 W.C.C. 공식 발간물인 '하나의 세계(One World)'란 잡지 7~8월호에는 한국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남한에는 종교를 탄압하는 무서운 음모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반해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실행할 만큼 자유롭다"라는 거짓말을 하였다. 이외에도
① 자유란 국가 충성에 역행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② 북한에서 기독교의 복음화 노력은 한국전쟁에 개입한 미국 때문에 타격 받았다.
③ 북한에는 전통적 교회는 없지만 새로운 세속적 종교를 즐기고 있다.
④ 이 새 국가 종교에서 김일성은 예언자적 제사장적 역할을 하고 있다.
⑤ 북한은 물질적 사회적 발전은 의심할 나위가 없으며 아시아에서는 그 유래가 없다.
거짓말을 언론을 통해 유포하였다. '하나의 세계'라는 잡지가 공산주의 선전을 위한 도구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적화를 노리는 공산당은 기독교를 이용 또는 내부적으로 붕괴시키기 위해 공산국가에 기독교 위장단체를 설립하고 공산당원을 교육시켜 이들을 교회 대표로 내세워 W.C.C.에 침투한 것이 W.C.C.의 역사이자 본질이다.
전술한 바, W.C.C.는 창설 당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를 다 같이 지적하면서 대화로서 평화공존을 도모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1961년 3차 총회에서 소련 K.G.B.요원이 회장에 피선된 것을 계기로 그 성격이 공산주의 선전도구 및 침투기구로 변하기 시작했으며 1966년 제네바에서 '해방신학' 원칙을 채택하여 "혁명을 위한 폭력은 허용되어야 한다" 는 공개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1977년 나이로비의 5차 총회에서 '공산주의 사상의 게릴라 활동을 공인'하고 '자본주의 타파'를 주장하였고, 이들은 이를 실제 행동화하여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침투하여 사회혼란과 자유주의 정부 전복에 성공을 거두고 한국에까지 그 마수를 뻗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해둘 것은 이 모든 음모는 공산당의 전략 전술에 의해 W.C.C.가 해방 신학자들의 이용물이 되어 발생한 점이라는 것, 곧 이는 공산국가 회원 및 용공분자들의 끈질긴 음모에 의한 것이지 회원 전체가 해방신학을 진정으로 추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레닌, 스탈린처럼 총, 칼로 까부수는 정책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사상적인 독소이다(타도정치보다 무서운 것이 공산당 궤휼정치이다). 우리는 세계교회와 대한민국이 마귀의 졸개들에 의해 침투를 당하고 있음을 똑바로 깨닫고 이들의 끈질기고도 거대한 음모를 널리 알려 백마의 2차승리를 이루어야 한다.
제7차 총회 |
1991년 2월, 호주 캔버라에서... "오소서 성령이여 -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전 지구를 구원하는 문제에 있어서의 성령 현존의 중요성, 또는 "영성(Spirituality)"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이때 중공교회 이외에 6개교단이 새로 가입하였는데, 정회원에 가입된 교단은 ① 필리핀성공회, ② 침례자유오순절교회, ③ 남아공화란개혁교회이고, 준회원에 가입된 교단든 ④ 볼리비아루터교회, ⑤ 엘살바도르침례교회, ⑥ 산살바도르루터교노회이다
북한도 북한조선기독교도연맹대표 4명이 세계교회협 사상 처음으로 참석했다(업저버 자격). 이북기독교연맹 교인수가 1만명에 이른다 함.
이때 정현경 연세대교수가 초혼제 행하였는데, 이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소지를 불태운 뒤 그 재를 하늘로 뿌리는 행위였다. 그는 원혼의 음성을 못 들으면 성령의 음성도 못 듣는다는 말도 안되는 마귀소리를 행했으며, 한 맺힌 영들은 정의를 세우려고 떠돌아다닌다 하였다.
이에 대해서, ① 이종윤목사 - "초혼제는 무당신앙 접맥 불과" ② 김명혁목사(한국복음주의협총무) - "종교혼합주의 노선 심각 경계" 를 외쳤다.
제8차 총회 |
1998년 12월 3~14일까지 아프리카 짐바브웨 하라레(Harare)에서 "희년 총회"로... 주제는 "하나님께 돌이켜라 - 희망 중에 기뻐하라"로서 인류는 그의 문제를 씨름하는 중 삼위일체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궁극적 방법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남북한 교회 대표들이 공동예배를 드리고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맺 음 말 |
이 땅에 위에서는 어떠한 정치제도도 완전할 수는 없다. 완벽한 정치, 공의의 정치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사 11장, 32장, 35장, 65:17~25). 다만 우리가 새 시대가 오기 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기준은 하나 있다. 현재 어느 체제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기에 자유로우며 기독교의 활동을 보장해 주는가이다. 지금도 한국 교회 안에는 반미 운동에 앞장서고,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는 교회들이 많다. 북의 침범의지와 공산통일 노선에 대하여는 함구하면서 인권과 정의가 무시되는 독재국가들에 대해 가하는 미국의 제제에는 모든 것을 바쳐 반대활동을 한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이 아니다. 교회는 기독교 복음운동을 전파하는 것이지 북방의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1~8차 총회내용을 살펴보면서 공산주의자들과 W.C.C. 지도부가 얼마나 많은 좌익활동과 공산혁명 활동에 광분해 왔는지를 증명하였다. 감출 수 없을 만큼의 선명한 저 증거들을 알려주어도 만일 한국 교회가 회개하여 W.C.C.를 탈퇴하는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이것은 스스로가 쭉정임을 드러내기 위한 고집으로 밖에 볼 수가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수많은 진실된 성도들이여! 아직 W.C.C.와 에큐메니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던 주의 참된 자녀들이여! 어서 그곳에서 나오십시오.
계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겔 33: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3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5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Copyright (c) 2002 Mahershalalhashbaz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