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유사

[스크랩] 20세기의 특징

향기나무 김성휴 2008. 6. 23. 01:00

20세기의 특징


***영성이해의 몇가지 관점

   1]연속성-맛디아를 뽑을때

   2]본받음-나를 믿는자는 ...

   3]인간론-인간은 누구인가


1. 인류의 큰 좌 절-양차대전


2. 두가지 부흥


   1]하나님의 나라-롬 5:20-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넘침] 요엘 2:28-29

   2]사단의 나라[살후 2 : 3-4, 딤후 3:1-5]


3. 이른비와 늦은비-요엘 2:23, 신 11:14


   이른비[야라-먼저 내리는 비]]-9월 중순 11월 중순 : 오순절과 교회의 탄생

   늦은비[말카시-후에 내리는 비]-3월 중순 5월 중순 호6:3, 잠 16:15, 슥 10:1


4. 교회사에 은사주의의 오류


   몬타니즘[185-212]-몬타누스와 그 추종자들이 방언과 예언을하여 은사를 나타냈으나 자신의 예언을 성경말씀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것으로 주장했기 때문


   결국 거부 반응은

   어거스틴과 크리소스톰[고전 12장 강해]의 은사중지론[Cessation Theory]에 의해 교회에서 은사는 소멸됨


5. 준비운동


   1]영국-1830년경-스코틀랜드 포트글라스고우에서 방언과 병고침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어 조사까지 하였으나 무시됨

   역시 같은 해에 런던 리전트 스퀘어 의 이름있는 장로 교회 목사였던 에드워드 어빙은 사도시대의 성령의 은사 특히 신유와 방언은 현재에도 새롭게 나타나야한다고 설교 1831년 10월 교회에서 터져나옴. 메리 켐벨이라는 자매가 방언을 함. 결국 어빙은 쫒겨나고 다른 교회를 개척했다["가토릭 사도 교회[Catholic Apostolic Church]가 그 교회에서도 쫒겨나서 3년후에 스코틀랜드의 어느 지방에서 쓸쓸하게 죽음.

   그는 초대교회의 모든 성령의 은사들이 회복되었음을 가르쳤고, 사도직[Apostolic Office]도 세상 마지막 때를 위해서 회복 되었음을 가르쳤다.

   그러나 토마스 카알라일이라는 사람은 그의 회고록에서 방언하는 사람들을 "정신이 흐릿하고 신앙심이 견고치 못한성도"라고 비판, 방언을 하는 미친여자를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서는 차거운 물동이를 뒤집어 씌워야한다고 제안

   1857-찰스 스펄젼 "성령의 능력"이란 제목으로 설교,

"현재 나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여명이 우리에게 비취기 시작했음을 느낄수 있으며, 지금보다 더 놀라운 성령강림의 역사가 곧 나타날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으며, 아니 바로 지금인지도 모른다"

   1856-윌리엄 아더 는 "불의 혀"라는 책을


   2] 미국의 성결운동


   오순절운동[Pentecost Movement  ]과 성령운동[Charismatic Movement]은 19세기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성결운동의요체는-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으로 만족해서 안되며 윤리적으로 성결함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R.A토레이[Torrey] 박사의 성령론은 대표적인 책이다

   1]성령의 제1차적인 역사는 중생사역으로 성령님은 불신자에게 감화하여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여 죄씻음을 받게 하신다.


   2]성령의 제2차적인 역사는 성령세례이다. 성령세례는 놀라운 체험과 함께오며, 성결의 축복을 받는다. 성령세례를 받은 신자들 속에는 성령님이 내주한다. 제2의 축복으로 신자들은 성령의 사람이된다.

   3]성령의 제3차적인 역사는 은사의 체험이다. 성도들은 제3차 축복을 받을때에 성령의 은사들을 받아 하나님께서 위임하시는 사명을 이땅에서 수행할수 있다.


성도의 분류

   1] 단순히 중생하여 죄 용서만 받은 성도들

   2]성령세레를 받아 성결의 축복까지 받은 성도들

   3]성령의 은사까지 받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수 있는 성도들


***영성운동의 큰 줄기


1. 오순절운동[Pentecostal Movement]


   효시-미국 캔자스 주 토페카시에 소재한 성경학교에서 파함[Chares Parham] 목사는 감리교 목사였으나 성결운동에 깊이 참여하여, 신앙체험을 통하여 부흥시키려는 목적으로 성경학교를 만들었다.  파함목사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세례를 받는 방법을 열심히 연구하였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성령을 받을때마다 방언이 언급된 것을 발견하였다. 사마리아의 성령받는사건은 방언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때에 사람들이 성령받는 것을 보았다고 암시한 대목은 틀림없이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학생들은 결론을 내리고 합심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1901년 1월 1일 새벽에 오즈만[Agnes N Ozman]이라는 여학생이 방언을 받아 오순절운동의 시발점이 됨[오즈마은 보헤미안 지방의 방언]. 동료들에게도 방언이 열리고 통역도 함


***아주사 운동


   파함의 제자였던 미국 남부 시골뜨기 청년 세이무어는 1906년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흑인 성결교회로부터 설교요청을 받고 부흥회를 인도[당시 방언을 받지는 앉았지만 파함의 가르침을 받아들임, 그는 전에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성도들'이라는 단체에서 잠시 일함], 1909년까지 세이무어의 지도하에 아주사 거리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남. 익서은 "늦은비 성령의 역사"의 증거였다.

   당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귀신이 쫒겨나가고 병자가 고침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속에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났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회복되었고, 또한 기름부음을 받았다. 영적인 위인들이 새로이 탄생되었으며..."

"비판하기 위하여 넥타이메고 참석한 목사들이 많았는데 그 때 세이무어는 조용히 묵상으로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기를 요청했고 그 결과는 그들이 성령에 능력에 사로잡혀서 "마치 숨이 멈추는 듯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현기증이 나며, 눈앞이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서 한 발자국도 더 움직이지 못했다" " 결국 이 목회자들은  rm 자리에서 고꾸라져서 하얀 양복이 더러워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루바닥에 퍼질러 앉아 그날 밤이 새도록 철저히 회개하며 간절히 성령세레를 간구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세계로 확산


**영국-영국태생 노르웨이인인 토마스 바렛 감리교 목사로 선교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뉴욕을 방문하였다가 아주사부흥소식을 듣고 뉴욕에서 12시간씩 기도를 하던중 방언을 받고[1906년 10월 7일], 1906년 오슬로로 돌아와 2천석의 실내체육관을 빌려 집회인도 대역사가 나타남 [최초의 유럽 오순절 운동]


**칠레-감리교 선교사 후버-시카코의 개업의사였다. 아프리카로 지원했으나 칠레로 바꿈

성결운동에 관심을 갖고 기도함. 그러다가 1905년 인도의 성공회 교사 팬디타 라마바이가 인도에서 이레적인 부흥운동을 일으키고있는 소식을 접함[여학교에서 환상,꿈,예언] 등이 나타남

그러다가 후버의 한 성도가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dirks 경비원] 예수님이 "너는 네 담임 목사에게 가서 성도들 중에 가장 영적인 성도들을 소집하도록 하라 그들은 매일 합심하여 기도해야한다. 내가 그들에게 불의 혀로 세례를 줄것이기 때문이다.]-춤과 환상 방언이 강함


**브라질-다니엘 버그와 군너 링렌이 인디애나 사우스 밴드에서 소수의 영적인 사람들과 기도하다 예언이 임함

"파라"로 가라 세계지도를 보고 찾으니 브라질 동북부의 어느 지역이었다

또다른 예언이 임했는데 뉴욕시의 어느 장소로 가서 누구를 기다리라-갔더니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이 나타나서 브라질로 가는 편도 운임을 줌.  가서 그곳에서 어느교회에 들어가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남


특징

   1].예수님을 영접한후 두번째주시는 하나님의 복으로 성령세례를 강조한다.

   성령의 세례는 방언을 증거로 주시며 방언은 성령세례 받은자의증거이다.

   2].오순절운동은 공적 예배에서 방언을 말하며 은사집회를 통하여 방언 받기를 구한다.

   3].방언의 은사를 받은사람들은 과거에 어느교단에 속했든지 그 교단을 떠나 오순절운동에 속한 교단으로 들어간다

4]오순절운동은 신유의은사와 기적을 믿고 강조하지만 방언보다는 덜 중요시한다.온순절운동은 방언과 은사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 외에 생활이나 신조에 있어서는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가지고있는 엄격한 보수신앙을 견지하며 철저한 생활의 신앙을 강조한다.


2. 은사운동 [Charismatic Movement]


   이 운동은 1960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밴나이스 성 마가 성공회 교회의 목사 데이빗 바네트[David Bannet]신부가 예배 도중에 교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기가 5개월전에 자기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실을 고백한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물론 이전에도 교단을 떠나지 않고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공개적으로 자기 교단에 머물겠다고 선언하지는 않았다.   


특징

   1]방언과 함께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방언을 받아야만 성령세례를 받는것은 아니라는 약간 부드러운 입장을 취한다.

   2]공중예배시 방언하는 것을 자제하나 은사집회에서는 방언을 사모하며 신유를 구한다.

   3]방언의 은사를받은 후에도 자기교단에 그대로 머문다

   4]은사운동은 방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 기적의 체험을 같은 무게로 강조하며 2000년전에 이스라엘 가운데서 기적을 베푸시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가운데서 신유의 은사를 베푸신다고 믿는다


3. 전통적 복음주의 운동[오성춘 교수의 분류]


   특별한 제목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게 부른다.

방언,통역,신유,기적행함등의 은사들이 사도시대가 끝나면서 중지되었다고 믿는다.


이 뿌리는 프린스턴의 밴자민 워필드 와 존 칼빈에게까지 올라간다.

존 스토트는 1966년 세계 복음주의 대회에서 "교회에 주어진 사명은 병자를 고치는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오늘날 교회는 기적적인 치유사역을 행할 권세가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패커[J.I.Packer]라는 사람은 "은사운동자들이 주장하는바 오순절 운동으로부터 이어받은 사도시대의 은사들이 현재도 나타난다는 이론은 적용이 불가능하다. 신약성경의 은사들 방언,방언통역,신유,기적행함등의 은사가 현재에도 나타난다는 것은 누구도 확인할수 없고 또 그런것 같지도 않다.


4. 제3의 물결


   1983년에 이르자 제3의 물결이라는 말들이 사용되어진다.

피터 와그너는 오순절주의자나 은사주의자라는 말을 듣기를 거부하며 자연스럽게 은사를 인정하고 교회안에서 방언이나 치유를 행하는 형태의 교회로서 자신이 다녔던 레이크 에비뉴 회중교회를 소개한다.


   피터 와그너는 빈손 사이넌과 제임스 왕을 인용하여 제3의 물결을 설명한다.

   제3의 물결은 오순절 운동이나 은사운동과 다르다.


   1]신약성경에서 보는 성령님의 힘으로 가득채워지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성령세례[B메샤느 in the spirit]란 표현보다는 성령충만[Filling with the spirit]으로 이해해야 하며 성령을 받은 성도들도 계속적으로 성령충만을 받아야한다.

   2]성령세례는 일회적인 사건으로 성령님을 받아 교회의 지체로 가입하는 것으로[고전 12:13] 봐야한다.

   3]방언도 성령의 은사이나 모든 성도가 다 방언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4]성령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하시며 필요에 따라 성령님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사람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실수도 있고 안주실수도 있다.

   5] 신유의 은사는 매우 중요한 성령의 은사로 그리스도의 복음증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은사이다.


***이러한 변화의 주요원인


   은사주의운동과 제3의 물결이 자리잡게된 주요원인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보다 의미있는 예배를 갈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오순절 예배형식중에 통성기도, 복음성가 사용등 장로교는 좀더 오순절적이 되었고, 오순절 교회는 오히려 장로회 예전을 닮아가려고 한다


***하나의 강

   교회사에 세가지 큰 줄기

   1]로마 캐토릭의 연속성과 통일성. 교회에서의 성례전의 중요성

   2]개신교의 성경이 차지하고 있는 핵심적인 위치와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

   3]교회내에서 일고 있는 성령의 현재적 활동을 성령의 은사로 드러내는 것이다.


   은사는 같은 성령의 존재를 확인시켜줌으로서 일치와 하나됨의 구심점, 혹은 연결점역활을 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의 초기 은사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던 마이클 하퍼[Michael Harper]의 자서전인 "세 자매[Three Sisters]에 보면 하퍼는

"한 자매가[복음주의자] 나에게 기독교적인 삶의 근본은 예수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라고 가르쳐주었다. 둘째 자매[오순절주의자]는 나로하여금 성령의 영적인 역동성을 체험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자 또다른 자매[가토릭]는 기독교 공동체의 함축된 의미들을 알수있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인도하였다."


그래서 1984년의 성공회 은사주의 갱신 운동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가톨릭 복음주의적 은사주의"로 만들기를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영성운동

웨일즈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음[1903-1906]약 10만명이 회개하고 예수 믿음

**1903년도-함겸남도 원산에서 캐나다에서 온 감리교 선교사 하디[R.A Hardie]의 주도하에서 성경공부, 회개,자백의 거대한 물결이 일어났다.[하디는 화이트 선교사 집회때 은혜받음]

성령의 부흥운동이었으며 개개인의 성결한 생활로 이어져서 한국교회의 전통과 특징이 되었다.


**1904-1907년 사이에 평양에서 거대한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일어났다. 길선주 장로는 새벽 4:30분에 새벽기도를 인도하여 한국교회의 전통이 됨


**1907-말씀사경회 운동과 열성적인 통성기도운동, 회개운동

**1911-김익두 목사 신유 역사가 크게 나타남

**1928-오순절 운동이 선교사 메리 럼시[Mary Rumsey]에 의해 병원 예배로부터 시작됨

**1928년 자생적인 성령운동 이 용도 목사가 기도원을 세우고 집회시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남

**1950-나운몽 장로의 기도원 운동

**1958-조 용기 목사 가 불광동에서 교회 개척 3년만에 300명 교인으로 성장 1961년에 서대문으로 이전 1500석 교회로 성장 1964년 구역조직 1973년 여의도이전

**1980-천주교내에도 은사주의 운동이 들어감


   1990년에 학자 데이빗 본은 세계의 10대 교회중에 4개가 한국에 있는데 모두가 은사주의 운동을 한다고 피력

   1]여의도 순복음교회[200,000]

   2]금란감리교회[50,000]

   3]은혜와 진리교회[47,000]

   4]숭의 감리교회[40,000]


******기독교안에서 일어났던 운동들


1.신앙부흥운동 [ 信仰復興運動, Great Awakening ]


18세기 전반 영국의 아메리카식민주에서 일어난 종교운동.


1726년경 네덜란드 개혁파 목사 T.J.프렐링호이센이 뉴저지에서 전도를 시작하면서 일어난 운동으로 대각성운동이라고도 한다. 이 무렵 회중파 목사인 W.테넌트는 로그칼리지(지금의 프린스턴대학)를 세우고 목사양성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졸업생들은 아들인 G.테넌트를 중심으로 전도활동에 주력하였다. 매사추세츠에서는 회중파교회 목사였던 J.에드워즈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움을 얻는다고 설교하며 많은 신자를 모았다.


이 운동은 유럽과 영국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루터교가 되살아났고, J.웨슬리가 주도한 영국의 부흥운동으로 결국 감리교가 생겨났다. 그 설교자인 G.화이트필드는 1739년 미국으로 건너가 G.테넌트, J.에드워즈를 도와 각지에서 전도설교를 함으로써 교파를 초월하여 아메리카 전역에 신앙의 활기를 새롭게 불어넣었다. 이로 인해 각 교파의 연대감이 깊어져 식민주 각 지역의 이해를 촉진시켰고 이는 미국독립혁명에서 식민주가 단결하여 승리를 얻는 한 요인이 되었다.


신앙부흥운동을 통하여 교회가 발전하였고 영혼 구원을 목회의 가장 으뜸으로 삼게 되었으며 절제, 여성해방, 해외선교 등 여러 분야에서 도덕적이고 박애적인 개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또 많은 대학과 신학교가 세워졌으며 선교협회가 조직되었다. 이 운동은 18세기 후반에 들면서 사그라들었으나 뉴잉글랜드신학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수도원의 개혁운동  


교회가 부패되어 가던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 본연의 영적(靈的) 생활로 되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의 중심을 이룬 것은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은 4세기경 이집트에서 비롯된 은둔생활에 그 기원을 두지만, 이것을 사회적 공동체로 성립시킨 사람은 이탈리아의 베네딕투스이다. 그는 6세기에 몬테카시노수도원을 세우고, 청빈(淸貧) ·정결(淨潔) ·순명(順命)의 생활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 세상에 봉사하는 수도생활을 창시하였다. 10세기에 이르러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자는 운동은 이 베네딕투스파의 클뤼니수도원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다. 그 후 11∼12세기에는 각지에 많은 수도원들이 세워졌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창설한 프란체스코회(會)와 도미니쿠스가 창설한 도미니크회(會)가 유명하다. 이들 수도회는 사유재산을 완전히 포기하고, 탁발생활을 하는 가운데 마음의 청결을 유지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이들 수도회를 탁발수도회(托鉢修道會)라고 한다. 수도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랑과 청빈생활의 모범으로서, 그리스도교 안에 신선한 영적 생명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으며, 학문연구와 사회봉사 등을 통하여 세계역사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3. 종교개혁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상 가장 파고(波高) 높은 변화는 16세기의 종교개혁에 의하여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마르틴 루터가 교황 레오 10세의 면죄부(免罪符) 판매에 반기를 들고 1517년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발표함으로써 불붙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개혁운동은 몇 가지 시대적 흐름이 한 곳에서 만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그 흐름들은 중세 신비주의 ·회의주의 ·르네상스 ·민족주의 등이었다. 중세 신비주의운동은, 후기 스콜라 신학이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주장하고 하느님 이해의 이성적 추구의 가능성을 부인하자, 이에 따라 하느님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순수체험적인 영적 차원에서 얻으려고 한 데서 일어난 것이었다. 에크하르트, J. 타울러, T.아 켐피스 등이 이 운동의 대표자인데, 이들에게 있어 공통적인 것은 신의 내적 체험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사람 안에서 탄생하는 신(God being born within)'을 주장하였다. 이 신비주의운동은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인 스콜라 신학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신앙의 생동감과 역동감을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중세기 회의주의운동은 15세기 전반부를 특징짓는 종교운동으로서, 교황청의 분열과 부패 등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은 영국의 위클리프와 보헤미아의 후스였다. 이들은 중세 말기의 교회의 타락을 공박하고 교황의 절대성에 항거하여, 교황권이나 황제권의 근원은 모두 하느님이기 때문에 그 권한은 각기 자체의 한계 내에서 선용되어야 하며, 교회는 재산을 가져서는 아니되고, 교회진리의 유일한 근거는 성서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두 사람 모두 처형되고 개혁운동은 실패로 끝났으나, 이들에 의하여 장차 16세기에 이루어질 종교개혁의 기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15세기에 일어난 르네상스는 고전(古典)의 연구와 인문주의(人文主義:humanism)로 집약시킬 수 있는데, 이러한 근대정신이 종교의식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고전연구는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인문주의는 인간을 교회의 제도적 권위 아래서 해방시키려는 운동을 싹트게 함으로써 종교개혁을 태동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의 인간중심적인 사상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신중심주의(神中心主義)였다. 마지막으로 민족주의는 그 때까지 로마교황청에 예속되어 있던 각 민족의 독립의식의 발로에서 형성되었다. 독일은 교황청의 착취를 가장 심하게 당하고 있던 지역의 하나였는데,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지 않아 곤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에서 민족적 자각을 하게 된 것이 종교개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기본 입장은 다음의 3가지로 요약된다.


   그는 첫째, 가톨릭교회의 전승주의(傳承主義)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 진리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에 있는 것이지,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둘째, 개인의 구원은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교회의 성사(聖事)와 같은 외적 행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 가톨릭의 사제제도(司祭制度)에 반대하여 모든 신자가 하느님의 사제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위에서, 루터는 종교개혁에 찬성하는 제후(諸侯)들의 보호를 받아 개혁운동을 성공시켰다. 그는 지방군주적 교회통치제를 확립하고, 1529년에는 제후들의 공동 커뮤니케 '프로테스타티오(Protestatio)'를 발표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사회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루터와 거의 같은 시기에 스위스에서는 H.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을 일으켜 가톨릭측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뒤를 이어 프랑스 태생의 칼뱅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성공시켰다. 칼뱅의 사상은 루터와 같은 흐름을 이루면서도 루터보다 더욱 철저하여 생활 전체의 성화(聖化)를 주장하였다.


   그는 세속적인 직업도 하느님의 소명(召命)으로 보고, 세속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려는 근세적인 종교관을 구체화하였다. 칼뱅의 개혁운동은 유럽 각지로 전파되어 '개혁파교회'를 형성하여 루터교회와 함께 프로테스탄트의 2대 주류를 이루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특이하게 종교개혁이 국왕 헨리 8세의 이혼문제에서 발단하여 교회를 교황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국왕이 곧 교회의 지배자가 되는 '수장령(首長令)'이 선포되었다. 그 후 엘리자베스 여왕 때에 이르러 '영국국교회'로 분립되었는데, 한국에서 성공회(聖公會)라 불리는 이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중에서 가톨릭에 가장 가까운 편이다. 유럽 각지에 프로테스탄트운동이 퍼져 나가자 가톨릭에서는 무력(武力)으로 반(反)종교개혁운동을 일으키면서 내부적으로는 교회의 혁신을 시도하였다. 1545년부터 63년에 걸쳐 여러 차례 열린 트리엔트공의회에서는 여러 가지 교의(敎義)가 재검토되고 가톨릭 신학이 재확인되었다. 또 I.로욜라가 창시한 수도회인 예수회는 가톨릭의 포교를 위해 세계 각지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획기적인 전도사업을 폈다.


******근대 그리스도교  ▲


   종교개혁 운동은 제도적인 가톨릭교회에 묶이어 있는 신앙을 개인에게로 돌리려는 데서 일어난 운동으로, 신학적으로는 그 때까지 교회의 정통적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자유주의 ·합리주의 사상이 발흥하고 과학이 진보하자, 그리스도교 신학사상은 그 자체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신론(理神論)은 17∼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신학사상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합리주의 사상인데, 이것은 근세 영국의 경험론과 프랑스에서 건너온 유물론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이신론은 우주창조자로서의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리스도교적인 신의 계시는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었다. 한편 독일의 합리주의는 성경을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교의 입장에 반대하여, 성경을 사람의 손에 의하여 쓰여진 역사적인 저술로서 연구 비평하려는 운동이었다.


   이같은 합리주의적인 흐름에 반대하여, 근대 조직신학(組織神學)으로의 새로운 길을 연 사람은 독일의 F.E.D.슐라이어마허였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종교론》(1799)과 《그리스도교 신앙》(1822)은당시 궁지에 몰리게 된 그리스도교 신학에 새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종교와 철학 및 윤리를 엄밀하게 구별하여, 직관과 감정에 의한 개인의 절대귀의(絶對歸依)의 체험을 종교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개인의 주체적 종교를 역사종교로 완성시킨 것이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했다. 또한 독일의 A.리츨은 칸트의 인식론 위에 그 가치판단설을 세워, 근대 그리스도교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즉 가장 근본적인 가치판단은 인간이 자연존재인 동시에 정신적인 인격이라는 판단으로서, 이러한 인간이 자연에 대하여 정신의 승리를 얻는 실천적 활동이 종교라고 정의하였다. 이 실천적 입장은 그리스도가 하느님 나라 건설의 기초라는 판단을 가져오게 하였고, 여기에서 비로소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사랑의 계시로 인정하는 그리스도교의 교의가 확인되었다.


   영국에서는 18세기 중반에 J.웨슬리를 중심으로 하여 합리주의 신학에 대항하는 경건주의(敬虔主義) 운동이 일어났다. 웨슬리의 경건주의는 이성적 ·신학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영감(靈感)에 의한 종교체험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 운동은 개인의 금욕적인 생활방법을 요구하게 되어 메서디즘(Methodism)이라 불리었으며, 영국의 산업근로자들에게 사회사업을 추진하면서 널리 전파되어, 메서디스트 처치(감리교회)를 형성하였다. 감리교회는 그 뒤 미국으로 전파되어 침례교회(浸禮敎會:Baptist Church)와 함께 2대 복음주의 교회를 이룩하였다. 근대 교회, 특히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이 밖에 여러 교파를 파생시켰는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파(Presby- terians)가, 영국에서는 청교도혁명에 의하여 조합교회(組合敎會:Congregational Church)가 파생하였다. 이 조합교회는 곧 미국으로 건너가 큰 교파를 형성하였는데, 조합교회는 당시 미국에서 작은 교파이면서도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컸던 퀘이커파(Quakers)와 유니테리언교회(Unitarian Church) 등과 함께 사회사업에 힘을 기울여, 근대사회에 휴머니즘 신상을 전파시키는 데 큰 몫을 하였다.


*******현대 그리스도교  ▲ Top 


  계시종교이며 또한 역사종교로서의 특징을 지니는 그리스도교는 지난 2,000년 동안 다른 어떤 요소보다 더 강하게 인류역사에 영향을 끼쳐 왔고, 인류역사상 그 어떤 세력보다도 깊은 변화를 초래한 영적 세력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중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가 세속화(世俗化)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종교적 이해와 통찰력으로써는 파악될 수 없으며, 영적 신앙의 차원이 아닌 세속적인 지성의 이해와 통찰력으로써 파악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종교가 신앙을 잃고 속화(俗化)된다는 뜻으로, 극단적으로는 그리스도교가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신앙의 종말론이다. 이러한 논의는 부분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일부, 특히 변증신학(辨證神學)에 의하여 지지를 얻고 있다.


   한편 그리스도교를 '비신화화(非神話化)'하려는 신학적인 시도 역시 그리스도교를 세속화시키는 데에 한몫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위기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교회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리스도교회는 2,000년의 긴 역사를 통하여 무수한 난관을 겪었으나 늘 새롭게 변모하면서 그 본질을 지켜 왔다. 그리스도교회는 본래의 영적 위치로 되돌아가는 힘을 자체 안에 지니고 있으며, 그 힘은 바로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20세기의 위기 속에서도 그리스도교는 끊임없이 갱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이 갱신운동들은 20세기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초월 체험을 겪음으로써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대에 와서 새로이 부상(浮上)하고 있는 전례(典禮) ·종교음악 ·명상 ·기도 ·경건신앙 등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교회에서 괄목할 만한 움직임의 하나로, 교회일치 운동이 있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세속화와 유물론적 경향에 맞서서, 교파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단결하려는 움직임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1910년 이래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침례교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교회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컬(ecumenical) 운동이 일어났다. 교회일치운동으로도 번역되는 이 운동은 그리스정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호응을 얻어, 48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창립되기에 이르렀다. 교회일치운동이 목적하는 바의 일치는, 특정한 교리나 의식(儀式) 등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 한 분의 성령이 가져다 주는 신앙정신적 일치를 상호 대화 속에서 발견하자는 것이다. 또한 그 일치를, 다만 교회 안의 일치에 한정시키지 않고 전인류의 일치라고 하는 넓은 관점에서 파악하여, 특히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해방을 위해 교회 전체가 일치 협력하자는 데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하여 그리스도 교회는 세계 역사 속에서의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나타난 부흥운동들

**1496-1498 : 이탈리아 프로렌스 사보나롤나 하의 대부흥운동. 개신교는 그 부흥운동의 잔광이라고 볼수 있다. 루터는 사보나 롤나에게 큰 영향을 받았음


**1739-1741: 미국 식민지의 대각성운동

 2차 1800-1830

 3차 1857-1858- 9달동안


**1859-아일랜드 얼스터 부흥운동

**1904-1905: 웨일즈 부흥운동

**1906-1909: 아주사거리의 부흥운동

**1907: 한국 평양

**1954-아르헨티나 토미 힉스

**1965-1970: 인도네시아

**1981-: 아르헨티나 

출처 : 세계선교와 여행
글쓴이 : David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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