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는 교회의 반항아였나 ?
20세기 신학의 방향을 바꿔놓은 신학자로 칼 바르트(Karl Barth)가 있다. 그는 음악에 문외한이라고 스스로를 고백하면서도 모차르트에 관한 단편적인 생각들을 모은 짧은 책(Wolfgang Amadeus Mozart)을 한 권 썼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음악이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신학자가 늘비한 유럽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에 대한 단상이나 즐겨보는 오페라에 관해 그 인상을 짧게 기록하는 것이 왕왕 있기는 하지만, 특히나 한 세기 신학의 전환기에 서 있던 위대한 신학자가 그 음악을 사랑했던 모차르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책으로 내어 오늘 우리가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흔한 일이 아니니 오히려 행운에 속하는 것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이 책은 우리말로도 번역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본다고 말한다. ‘천국에서는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열심에 사로잡혀 당연히 바하의 음악을 연주할 것이다. 그런데 천사들이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에는 (아마도 휴식 시간에?) 모차르트를 연주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그 음악에 기꺼이 귀 기울일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의 연구실에는 언제나 모차르트의 음악이 울렸다고 사람들은 전한다. 그 스스로도 매일 아침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나서야 방대한 분량인 그의 평생의 역저인 ‘교의학’(Kirchliche Dogmatik) 저술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야사에 의하면 그는 꿈에 모차르트를 만났다고 한다. 그렇게도 만나보고 싶었던 모차르트를 만난 그는 (그의 책에는 그가 천국에 가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모차르트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어거스틴도 토마스 (아퀴나스)도 루터, 칼빈, 슐라이에르마허도 그 뒤다.) 모차르트의 음악 중 특히 예배에 관련된 음악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으나 모차르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모차르트의 침묵을, 음악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거나, 음악은 하나의 중립가치를 가진 것으로 ‘너희들이 나의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가 모차르트에 관한 책을 쓸 만큼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은, 또한 그가 모차르트의 열렬한 애호가였음 과도 거리가 멀지 않다. 그는 만일 그가 2주간만 교황이 될 수 있다면 모차르트를 ‘성자’로 선포(Seligsprechung)하겠다고 했다. 카톨릭 교회에서 거의 순교자에게나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가 되는 위치다. 칼 바르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다. 하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사람 중 누가 과연 그 흠모와 존경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바리톤 윤재호 교우에게 부탁을 해서 헌금시간에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öte)에 나오는 아리아 하나를 불러 달라 부탁했다. 무리한 부탁을 기꺼이 받아 그 고마움을 어찌 표현할지 모르겠다.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는 직업인이긴 하지만, 하긴 그래서 더욱 부탁이 쉽지 않은 것이다.
가사가 매우 신앙적이라 싶었다. 물론 예배시간에 아리아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아마도 그 예를 찾기 쉽지 않은, 아주 낯선 것이고 파격적인 것이다. 특히나 오페라에 ‘마술’이라는 말이 들어있고 이 아리아가 이방 제사장의 노래라서 더욱 그럴지 모른다. (그런데 중세기의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마술사’로 이해했었다. ‘이방’이라는 말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일 필요도 없다.
흔히 전(展)의 아리아(Hallen-Arie)로 알려진 제사장 사라스트로의 베이스 - 수난곡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제사장, 베드로 등은 반드시 베이스다 - 노래를 대략 자유롭게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가사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극작가인 쉬카네더가 쓴 것이다. 물론 둘 다 같은 프리메이슨의 적극적인 단원이었으니 이심전심이었을 것이며, 적어도 최소한 그 글에 동의함이 없이 작곡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거룩한 전(展) 안에서는 복수를 알지 못한다네. 쓰러진 자 (전사한 자) 있다하리, 사랑이 그를 의무로 이끈다네. (사랑이 그에게 의무가 되어버린다네.) 그리고 나면 그는 친구의 손에, 만족스럽고 즐겁게 더 나은 세상으로 탈바꿈해 버린다네. /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곳 성스러운 장벽 안엔 배반자가 숨어 엿볼 수 없다네. 적들을 (기꺼이) 용서하기 때문이라네. 이 가르침에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이가 있다면, 그는 인간이 될 자격이 (아예) 없다네.” 물론 원문보다 나은 번역이 있을 수 없으니 독일어 원문을 한번 읽기를 권한다.
모든 형식의 껍데기를 벗기고 들어보면 이 아리아는 아름다운 한편의 설교가 된다. 사실 모차르트는 이 이방의 전(展)에 믿음의 보석을 감춰두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아름다운 음악자체가 보물을 감추어 둔 실제의 ‘보배함’일 것이다. 모든 오페라가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모차르트는 무엇보다도 오페라 작곡가로서 자신을 이해했다. 그의 삶 자체가 하긴 전혀 모자람이 없는 비극적인 하나의 오페라가 아니었는가? 그러므로 오페라라는 형식을 우선은 음악가로서의 모차르트의 작업도구로, 그의 삶의 내용을 채우는 틀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물론 그의 오페라는 그 자체로 그에게 종교였을 수도 있다.
프리메이슨이 종교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서약과 의식이 있고 그들만의 상징이 있다. 그러나 프리메이슨(Freimaurerei)을 종교집단으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많다. 마치 우리에게 도덕적 가치관으로 취급되는 유교처럼 말이다. 음악가요 무엇보다도 여기서는 오페라 작곡가인 모차르트는 (여전히 카톨릭 신자로서 - 그가 많은 미사곡을 썼다는 사실은 물론이지만 그의 편지들은 그가 분명 확실한 카톨릭 신자임을 드러낸다. 그가 남긴 많은 미사곡들이 그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반대로 이 오페라가 그가 이방제의에 빠져있음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집트의 신전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제사장으로 동시에 인간성의 대변자인 사라스트로의 입을 통해, 그렇게만 그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결국은 피흘림으로 끝나고, ‘자유는 오로지 비현실의 세계에서만, 그리고 아름다움은 시인의 노래에서만 살아있다.’(Die Freiheit wohnt nur im Reich des Unwirklichen und die Schönheit im Gesang des Dichters)는 쉴러의 시가 밝혀주고 있듯이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실제로 인간의 고통을 환희로 바꿀 ‘마술피리’를 ‘밤의 여왕’에게서 받은 주인공인 타미노는 ‘자연과 이성’을 숭앙한 계몽주의의 성전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사랑과 덕은 비밀스런 지혜의 성전에서만 찾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신전은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우상으로 정죄하는 단순한 이방의 신전이 아니다.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신화를 읽어본 사람은, 물론 신화란 인간의식의 투영이라는 점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지만, 사람들이 꿈꾸던, 그리고 신앙인들이 그리는 (보편적 이상)세계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약속받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나라’의 이상의 세계를 나는 여기서, 다른 형식 안에서 은근히 비쳐지고 있음을 본다. (세계교회인 카톨릭 교회에겐 당시 개신교는 여전히 사교, 곧 이방의 종교였으니...) 이 담장(Mauer) 안의 집합소(Halle)를 교회로 설정해보면 어떨까? 그리스도인인으로서 말이다.
그들이 넘겨다 보았고 그 경계를 넘어오고 싶어 한 곳(Mauer-frei), 원수 사랑이 설교되고 사랑이 의무가 되어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곳, 더 나은 고향인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어 위선자가 필요치 않은 곳, ‘참 인간’ 예수를 따라 모두가 새로운 피조물로서 사는 높지 않은 장벽으로 둘린 곳, 그래서 복수란 개념이 낯설고 무지의 영역에 속하는 그곳이 나는 교회라고 믿고 있다.
이런 꿈을 꾸어본 사람이라면, 교회를 사랑과 화해와 용서의 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가사가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곧 우리의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내용과 실제로 많은 부분 겹쳐져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이방 제사장의 노래로 (빼앗긴 채) 남겨 두고 싶지 않다. 성서가 주장하는 것과 일치하는 점을 가진 이 노래를 이방제사장이 말하기 때문에 ‘틀렸다’고 할 수 없거니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고집할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싶은 것이 사실 내 마음이다. 실제로 ‘선과 악’의 주제를 포함해 그리스도교 신앙과 ‘마술피리’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연구하려고 하면 아주 재미있는 주제가 될 것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는 당시 유행하던 이태리어 오페라들 속에서 독일어로 된 - 모차르트 자신이 ‘독일 오페라’(Teutsche Oper)라고 부른 - 오페라의 가장 대표적인, 아니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 세 개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고, 모차르트를 대변하는 바로 그 오페라(Die Oper Mozarts)로 꼽힌다.
여기에는 하늘과 땅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형식이나 내용에 차이가 있는 노래들이 (예를 들어 Opera seria에 속하는 ‘사라스트로’와 ‘밤의 여왕’의 노래들이나 Opera buffa의 타미모, 파미나, 그리고 독일의 Singspiel에 속하는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오페라의 틀 속에서 일체성을 갖춘 종합판 예술인 이 ‘마술피리’는 실제로 모순이 아닌 조화로 ‘(음악적) 성숙과 (인간적) 천진난만함’의 요소를 소화해냈던 그 용광로 같았던 모차르트 자신과 자주 비교된다. 모차르트가 상충되는 두 속성들을 한 몸에 담고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Alfred Einstein이 육체와 영혼, 신과 짐승과 같은 모순적 속성들의 조화로운 결합체라고까지 부르는 바이다.) 섞여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물론 동화의 세계다. 어쩌면 ‘영원한 소년’ 모차르트 자신이 살았던 음악의 세계는 아닐까? 아니 그는 극중 인물 중 무엇보다도 삶의 기쁨을 선호했던 파파게노 속에 자신을 숨겨놓았는지도 모른다. (파파게노는 극작가인 쉬카네더 스스로가 첫 공연에 맡았던 역이었다.) 나는 여기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비유’속의 하나님 나라를 생각해본다.
모차르트가 카톨릭 신자였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움’은 당시 독일에 속했던 잘츠부르크 대주교(Fürsterzbischof Hieronymus Graf von Colloredo)의 종교적 속박에 머물 수 없었다. 이런 ‘자유인’ 경향의 모차르트는 사실은 인간적으로 괜찮았던 대주교 아래에서도 질식할듯했고,
새로운 이념을 쫓아 프리메이슨(Freimaurer) 이라는 단체에 가입했다.
그는 하이든처럼 이름만 걸어놓은 회원이 아니었다. 프리메이슨 회원들을 위해서 많은 작품을 쓰기도 했지만, 특히나 이 오페라는 이 정신(Freimaurertum)을 담은 종합작품인 것이다. 상징적인 숫자 셋(이 오페라는 플랫(b)이 세 개 붙어있는 Es-Dur 전주곡으로 시작될 뿐만 아니라 - 세 번의 울림으로 시작되는 첫 번째 부분은 매우 프리메이슨이 추구한 주요 세 미덕은 ‘강함, 아름다움, 현명함’(Stärke, Schönheit, Weisheit)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 주 조(調) 역시 그렇다. ‘밤의 여왕’의 여인들이 세 사람 등장하고, 세 명의 소년들, 세 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 등 수 삼(三)과 관련된 것들은 무수히 많다.)을 포함해 깊이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전문가인 음악가들에게 물을 것을 권한다.
프랑스 혁명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영향 혹은 소용돌이 속에서, 인권, 자유, 정의, 관용, 연대, 계몽을 추구했던 이 단체 속에서의 활동은 그래서 종교적이고 양심적인 억압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녔고, 양심의 자유를 주창했던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과 맞닿아있다고 이해된다. 그래서 ‘마술피리’는 양심의 자유를 교권적으로 억압했던 카톨릭 지배 체제에 대한 오페라의 옷을 입은 저항(Protest)이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프리메이슨이 정치적으로 금지된 것도 공화제를 정신적으로 뒷받침한 개신교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프리메이슨과 프로테스탄티즘과의 외적 연관에 매우 조심스러워함에도 불구하고, - 많은 프리메이슨 회원들이 그리스도인인 경우가 많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거기에 가입한 이들도 많았다 - 내용적으로 개신교의 신앙적 가르침과 일치하는, 카톨릭 신자인 모차르트가 쓴 오페라 형식의 정신적인 프로테스탄트 음악인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프리메이슨은 카톨릭의 형식 안에 갇힐 수 없던 자유한 인간 모차르트가 저항적(프로테스탄트) 내면과 영적세계를 표현한 음악의 정신적 고향인 셈이다.
나는 음악이 단순한 유희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유한 이들의 고급스런 놀이감은 더더욱 아니다. 거기엔 철학이 있고 고뇌가 표현되어 있으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물론 단순한 유희의 음악도 아주 많다. 또 반대로 철학을 담은 음악에도 반드시 유흥의 요소가 있다.) 때문에 음악은 때때로 권력자들에 의해 악용되기도 하지만, ‘민중’의 무기도 된다. 꿈이 녹아있는가 하면 슬픔을 응축시키기도 하고 정화시키기고 한다. 음악에도 베토벤이 그의 음악에서 추구했던 바 ‘더 나은 인간’(der bessere Mensch)을 위해 기여하고자 하는 정신이 있다. ‘마술피리’의 ‘더 나은 땅’을 향한(ins bess're Land) 꿈이다. 이 ‘마술피리’는 더더욱 그 인기와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프리메이슨은 ‘대중성’을 추구했다.) 단순히 ‘재미있는 음악극’이 아니다.
모차르트는 그렇게 자기의 신념, 곧 거의 종교적인 염원을 자기의 음악 속에 드러냈다. (이와 비슷한 이념의 음악으로 하이든의 오페라, Orlando Paladino는 모차르트가 쓴 메이슨 장송곡과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쉴러의 노래, ‘기쁨에 붙이는 송가’(Ode an die Freude)를 위한 베토벤의 첫 번째 작품 스케치도 이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생계와 표현의 수단이자 동시에 자유롭게 움직이는 해방의 공간, 아니 더 포괄적으로 음악가였던 그의 ‘삶’이기도 했던 음악의 형식 속에 자신이 동조하는 자기 그룹의, 아니 자기의 주장을 숨겨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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