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맨’들은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은 외계인이었지만, 지구에서는 뿔테 안경을 쓴 다소 굼뜬 이미지의 ‘클라크’로 살아가던 슈퍼맨. 그리고 우연히 유전자 조작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돼 뉴욕을 지키는 ‘피터’ 등, ‘맨’으로 변신할 때가 아닌 현실에서는 남보다 굼뜨고 ‘어리버리’해 보이는 인간들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예외를 찾자면 대재벌이자 깔끔한 미남 ‘브루스 웨인’의 배트맨 정도가 있을 뿐이다. ‘맨’들은 왜 우리와 다를바 없는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하는 것일까? 답을 찾자면, ‘대리만족’일 것이다. 사회에는 다양한 범죄와 불의가 판치지만, 약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바로잡고자 해도 그럴 ‘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초현실적인 힘을 부여하면서 우리를 괴롭혔던 그 불의를 스크린에서라도 바로 잡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각각 외계인과 재벌이라는 신분의 한계가 있던 슈퍼맨이나 배트맨과는 달리, 스파이더 맨은 삼촌 부부의 손 아래 자랐고, 적당히 가난을 겪으며 살고 있으며,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조차 쉽게 못붙이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 혹은 소심한 이웃 그 자체다. 알고 보면, <슈퍼맨>과 비슷한 면이 많은 <스파이더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영웅’을 괴롭히는 인생의 명제①-복수
그런 결심이 서면, 자신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혹은 오해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되돌려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앞선다. 1일에 개봉한 <스파이더맨3>의 중심 소재는 ‘복수’다. 1편에서 ‘그린 고블린’으로 변해 ‘스파이더맨’으로 활약하는 ‘피터(토비 맥과이어)’와 싸우다 죽은 ‘노만 오스본(윌렘 대포)’. 그의 아들 ‘해리(제임스 프랑코)’는 자신의 아버지가 절친한 친구와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알고 복수를 결심하며, ‘피터’는 피터 나름대로 삼촌을 죽인 범인에 대한 원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파이더맨3>은 이 대결구도에 ‘피터’의 본업, 사진기자로서 경쟁을 벌이다가 ‘수모’를 당한 ‘베놈(토퍼 그레이스)’까지 ‘블랙 스파이더’라는 이름으로 등장시켜 뒤엉킨 복수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스파이더맨3>은 호쾌한 액션 그 자체를 원했던 다수의 일반관객에게는 혼란을 줄 우려도 생겼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뻔한 속편’이라는 한계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운 것은, 이 뒤엉킨 복수를 통해 인간의 속내를 확인해볼 수 있다는 것.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수치심을 느끼거나, 소중한 것을 잃게 되면 복수를 꿈꾼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냉정한 사리판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인간은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동물. 정확한 자초지종, 혹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스파이더맨3>에서 다루는 뒤엉킨 복수들은 그런 인간의 흥미로운 속내를 보여준다. <스파이더맨3>은 영웅도 ‘인간’임을 보여준다. 그 역시 감정을 갖고 있는만큼, 가치관과 감정 사이의 혼란을 겪는다.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이 그를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착한 사람이란, 그리고 정의의 화신이란, 순간의 감정을 잘 제어할 수 있는 참을성이 강한 사람들이다.
‘영웅’을 괴롭히는 인생의 명제②-사랑 지금까지 공개된 수많은 영화들의 ‘여주인공’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여주인공들이 남주인공과 갈등할 때에는, “자신에게 소홀하다”는 이유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일에 치인 나머지 이혼당하는가 하면, 위기에 빠지자 미련없이 냉정하게 남주인공을 버리는 여주인공도 있었다. 정의의 화신 ‘스파이더맨’은 불특정다수의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과 안전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피터’는 몸 하나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니, 어렵게 연인이 된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의 마음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물론 마음만은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메리 제인’은 자신의 일자리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그 고민을 ‘피터’가 모두 떠안아주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줄 시간조차 없는 ‘피터’에게 실망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갈등한다. 그리고 ‘이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정한 남자’를 모르는 여자들도 많다. 사실,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져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저마다 다른 환경, 다른 생활을 영위하던 이들이 서로를 맞춰가며 살아가는 것은 알고 보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일이 너무 위급한 나머지, 상대방을 돌아보기 어려울 때도 있으며, 이별의 흔한 이유 ‘성격 차이’를 경험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진짜 사랑’과 ‘진정한 남자’는 무엇일까? 겉이 화려한 것도 좋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진정한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불가능을 알면서도, 1%의 절망적인 확률에 희망을 걸면서 목숨을 걸 수 있는 남자다. 진짜 위급한 상황에서,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남자야말로 평생을 함께 해도 좋을 남자다. 물론 사랑을 할 때는, 돈도 중요하며, 번지르르한 겉멋도 중요하다. 일단 끌리는 것은 그런 요소들이라는 사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은, 그 많은 것을 ‘지키기 위해’ 배신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물론 ‘너무 없는 사람’은 ‘가지기 위해’ 배신을 저지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을 떠나,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표현하느냐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위기상황에서 드러난다. ‘피터’는 그 많은 위기상황 속에서 궁지에 몰린 ‘메리 제인’에게 등장 자체만으로 희망을 준다. ‘피터’는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남자’다. 특별한 능력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희망을 줄 수 있냐는 것이다. 평론가 혹평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3>이 흥미진진한 이유 착한 사람, 혹은 성인(聖人)이 위대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의 그 많고 많은 감정을 절제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란, 꿈틀거리는 감정과 본능과의 싸움. 예수, 부처 등은 모두 그런 싸움을 극복하면서 깨달음을 이뤘다. 하지만 이 ‘깨달음’이라는 것을 반드시 ‘성인’들만 이루라는 법은 없다.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과 본능을 참아내며, 사람의 도리와 길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오물덩어리같은 추악함이 넘침에도 유지되는 것이다.
|
출처 : 영화
글쓴이 : 박형준 원글보기
메모 :
'잡학다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서울 357배'…최대 '괴물도시'로 거듭나는 상하이 (0) | 2007.06.08 |
---|---|
[스크랩] 현대미술 1분만에 따라잡기 (0) | 2007.05.11 |
[스크랩] 세계 8대 불가사의 ‘악마의 성경‘이 돌아온다 (0) | 2007.04.24 |
[스크랩] [트렌드&이슈] 종이에 글씨쓰니 USB 메모리로 쏙∼ (0) | 2007.04.24 |
[스크랩] 대중들은 트루먼쇼를 원한다 (0) | 2007.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