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1
지은이: 후안 마누엘
옮긴이: 김창민, 강성식 외
펴낸곳: 도서출판 자작나무
(저자 및 역자 약력)
* 지은이: 후안 마누엘(Don Juan Manuel)
1282년 스페인의 에스깔로나(Escalona)에서 태어났으며, 뻬로뻬스 데 아알라
주교와 함께 14세기 스페인의 산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현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알폰소 10세(제위기간: 1252-1284)의
조카라는 신분 덕택에 젊어서부터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였고, 페르난도
4세와 알폰소 11세 때에는 전쟁에 활발히 참여했다. 나이가 들자 자신이 도미니크
수도회에 기증한 뻬냐피엘 수도원에 들어가 작품활동을 하다가 1348년 삶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토록 도미니크 수도회를 정신적^5,23^물질적으로 후원하면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지만 동시에 부와 명예에 관한 세속적인 관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기사와 시종에 관한 이야기 Libro de caballero et del
escudero',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이야기 Libro de los estados'가 있고 그 외에도
'시가집 Libro de los cantares o de sus cantigas', '산추린 연대기 La cronica
abreviada', '무기교본 Libro de las armas' 등이 있다.
* 옮긴이: 김창민
1959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동
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멕시코 구아달라하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중남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서로는 '저주받은 사랑'(열음사),
'미국은 섹스를 한다'(자작나무)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푸에르토리코 현대소설에
나타난 문화적 갈등', '수필에 나타난 에르네스또 사바또의 문학관'이 있다.
강성식, 이소현, 박정희, 전미연, 정수현, 최철훈, 한희주, 허인숙: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대학원 재학중@ff
첫번째 이야기 악마와의 계약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물었다.
"빠뜨로니오, 점술과 예언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를 잘
이용하면 미래도 알 수 있고 재산도 늘릴 수 있지 않겠소?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니, 그 사람이라고 실수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겠소. 당신은 현명하니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조언을 좀 해주시오."
"백작님, 어떤 가난뱅이에게 있었던 일화를 들려드리지요."
옛날에 한 가난뱅이가 살고 있었는데, 너무 가난해서 입에 풀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그도 예전에는 떵떵거리는 부자로 살았었지요. 백작님도
아시다시피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다가 가난뱅이가 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과거에 부자였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지요. 어느날 그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신세타령을 하면서 산길을 걷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악마 하나가 앞에 나타나지 않았겠습니까?
악마는 그 가난뱅이가 괴로워하는 이유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모르는 척 가난뱅이에게 왜 괴로워하냐고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가난뱅이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면서 왜 묻냐고 대뜸 화를 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악마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했지요. 그리고는
자신의 능력을 믿게끔 하기 위해 가난뱅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아맞추었답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예전보다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답니다. 물론
사람이 아닌 악마였기 때문에 그 일을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지요.
가난뱅이는 상대가 악마라는 사실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지만 자기 처지를 생각해
보고는, 부자로만 만들어 준다면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말했답니다.
하지만 백작님, 원래 악마라는 놈은 속이기에 가장 적합한 때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희생물에게 접근하는 법이지요. 다시말해 악마는 희생물로 삼은 사람이 가장
궁핍하거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다가가 그를 이용하지요. 마찬가지로 이
가난뱅이에게 악마가 찾아간 것도 그가 가장 힘들었을 때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 사이에는 계약이 이루어졌고, 그후 가난뱅이는 악마의 종으로
전락했습니다. 악마는 계약이 맺어지기가 무섭게 가난뱅이에게 도둑질을 시켰지요.
그러면서 말하기를 아무리 굳게 닫혀 있는 문이라도 열리지 않는 문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만에 하나라도 일이 잘못되거든 자기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도와주세요, 마르띤.’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즉시 나타나 위험에서
구해주겠다고 했지요.
모든것이 악마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가난뱅이는 칠흙
같은 어둠을 틈타 어떤 부유한 상인의 집을 털기로 했답니다. 원래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은 빛을 싫어하는 법이지요. 상인의 집에 도착하자 출입문과 보물이 담긴
궤짝의 문이 악마의 힘에 의해 열렸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훔칠 수
있었지요.
그날 이후로 그는 끊임없이 도둑질을 하였고, 그래서 가난했던 지난날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모으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어느날 도둑질을 하다
경찰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악마에게서 들은 구절은 읊조렸지요. 그러자 악마는 어디서 왔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 그를 구해주었답니다. 악마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이제는 미친 듯이 도둑질을 해댔습니다. 하지만 또
경찰에게 붙잡히고 말았답니다. 그는 또 악마에게 구원을 요청했지요. 하지만
악마는 예전처럼 그렇게 빨리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악마는 경찰이 조사를 얼마간
진행하고 있을 때야 나타났던 것입니다. 악마가 나타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 마르띤. 내가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아십니까? 이번에는 왜 그리 오래
걸렸지요?”
이 말을 들은 악마는 그간 너무 바빴다는 말만 하고는 위험에서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악마가 보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그는 그후로도 도둑질을 멈추지 않았고
그러다 또 다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그가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다시 악마의
도움으로 왕에게 상소를 올려 풀려날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 후로도 그의 도둑질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에는 붙잡혀 교수형을
선고받았답니다. 악마는 그가 교수대에 올려졌을 때에야 보습을 드러내었지요.
악마가 나타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마르띤, 왜 이리 늦었어요. 난 정말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구요.”
그 말을 듣자 악마는 도둑에게 보따리 하나를 주면서 그 속에는 오백 마라베니의
돈이 들어 있으니, 재판관에게 몰래 건네주면 곧바로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요. 그는 악마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드디어 재판관이 형을 집행하라고 지시했지요.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목을 옭아맬 줄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줄은 찾기 시작하였고,
도둑은 그 틈을 이용해 재판관에게 보따리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재판관은
보따리를 슬쩍 건네받고서는 주위를 둘러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당신들 중에서 교수형을 집행하는 데 줄이 없어지는 것을 지금껏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이것은 틀림없이 신의 뜻일 겁니다. 신이 저
사람의 죽음을 원치 않아 우리로 하여금 줄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무죄일 것이니 집행을 내일로 연기하고 그동안 사건을 좀더 엄밀히
조사해 봅시다. 그리고 나서 형을 집행해도 늦지는 않을 겁니다. ”
재판관은 그를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따리
속에 오백 마라베니의 돈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따리를 여는
순간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속에는 돈이 아닌 교수용 줄이 놓여 있지
않겠습니까? 화가난 재판관은 즉시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했답니다.
교수대에 올라 목에 줄을 걸고 있을 때, 악마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가난뱅이는 또
다시 악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요. 하지만 악마는 이전에는 같이 일할 친구들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많다는 말만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가난뱅이는 악마 때문에 몸과 영혼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백작님. 악마가 하는 일은 모두 나쁜 결말을 초래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예언자니 점쟁이니 요술쟁이니 하는 자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나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 말을 믿기 힘드시면,
이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미신을 좋아했던 알바르 누녜스나 가르실라소(역주:
16세기 스페인 최고의 시인)의 종말이 어떠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백작님, 재산을 늘리고 싶으시거든 점술이나 예언 같은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땀과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미신과 우연에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은 비참한 삶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ff
두번째 이야기 신하의 부인과 살라디노 사이에 일어난 일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뺘뜨로니오에게 조언을 청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난 이 세상 누구도 나의 질문에 당신처럼 그렇게 사려깊은 대답을
하는 이가 없다는 것을 잘 아오. 그래서 묻는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은
무엇이요? 이걸 묻는 까닭은 비록 내게 이롭지는 않더라도 올바르고 좀더 나은
행동을 하기 위해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요. 그래서
행동하는 데 유의할 점 중 꼭 잊지 말아야 하며 항상 보탬이 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싶소."
"백작님, 백작님께서 그렇게 절 칭찬해 주시고 제가 많은 지혜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시니 실수할까 두려워집니다. 이 세상에서 상대방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지
그 사람이 본래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일만큼 실수하기 쉬운 일은 없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선 그가 삶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선행으로 덕을 쌓은 사람이라도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다보면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겁니다.
누가 현명한 지혜를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옳은
말을 하고 아주 이성적이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거느린 영지는 잘 다스리면서 올바른 말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옳은 말도 아주 잘하고 영지도 잘 다스리지만 옳지 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인지, 올바른 사고의 소유자인지,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인지,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인지 확실히 알아보시려면 미리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의 평소 행동을 보고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영지가
번창하는지, 쇠퇴하는지에 따라서도 앞서 말한 모든 것을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아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지 물으셨는데 살라디노와 그의
부하 기사의 아주 현명한 아내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아시면 도움이 되실겁니다."
살라디노는 바빌로니아의 술탄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대동해
다녔는데, 어느날인가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한집에서 모두 묵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라디노는 어느 부하 기사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그 충직한 부하는 최선을 다해 살라디노를 대접했고 즐겁게 해주려고 애썼습니다.
그의 부인도, 자식들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간의 일에
훼방을 놓는 악마는 살라디노로 하여금 사랑해선 안될 그 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부인에 대한 사랑이 애절했던 살라디노는 별로 신통치 않은 조언자에게 어떻게
하면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충고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백작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모든 지도자들이 옳지 못한 길을 가지 않도록 충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선 옳지 못한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사람도 항상 있기 마련이지요.
살라디노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못된 조언자는 살라디노에게, 그녀의 남편을 불러
선심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적당한 임무를 주어 먼곳으로 보내서 남편이 그것에 있는 동안 뜻을
이루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살라디노는 이 충고를 받아들여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그 부하는 살라디노가
베풀어준 우정과 친절을 생각하며 먼 곳으로 떠났고, 살라디노는 그 부하의 집으로
갔습니다. 살라디노가 집에 오는 것은 안 그 부인은 그가 남편에게 보인 호의를
아는 터라 그를 잘 대접했고 그 집의 모든 사람들도 많은 애를 썼습니다. 식사를
끝내자 살라디노는 넓은 방으로 들어간 뒤 그녀를 찾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여 그
부인은 얼른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살라디노는 그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부인은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어 이렇게 돌려 말했습니다.
“저는 전하께서 언제나 멋진 인생을 사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다스리시는 전하께서 저희 부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항상 전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살라디노는 자신이 베푼 호의에 상관없이 그 부인을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훌륭한 성품에 넓은 이해심을 지니고 있던 그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하, 비록 제가 미천한 여자이오나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저에게
가지고 계시는 사랑이 진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남자들 특히
높은 분들께서는 어떤 여자가 마음에 들면 그 여자가 원하는 일은 뭐든지 하겠다고
하시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여자들을 농락하고 난 뒤에는 업신여기고 결국
저버리곤 하십니다. 저 자신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그러자 살라디노는 그녀가 행복할 수 있도록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자신이 요구한 답을 얻어오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살라디노는 그녀가 요구하는 답을 얻지 못하게 되면 더 이상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하자 그녀는 그가 할 수 없는 일은 요구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곤 무릎을 꿇고 그의 손과 발에 입맞춤을 하고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은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살라디노는 이 착한 부인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도 살라디노가 답을
구하면 언제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살라디노는 대동한 이들과 모든 현인들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물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인간이 가질수 있는 최고 덕목은 선한 영혼을 갖는 것이라고 하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은 천국에서나 필요한 진실이지 이 세상에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몇몇이 충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최고 덕목이라고 하자 또다른
사람들은 비록 충직한 것이 좋긴 하나 인간이란 충직하다고 해도 동시에 비겁하고,
약하고, 어리석고, 무지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충직함보다는 다른 어떤 것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살라디노에게 확실한 답을주진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하자, 살라디노는 두명의 뜨내기 음유시인들을
데리고 신분을 숨긴 채 세상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교황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있는 모두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떠나 프랑스 왕궁과 다른 왕궁들을
돌아다녔지만 그 어디서도 대답을 얻지못했습니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이 흐르자
살라디노는 이 일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그는 사랑하는 그 부인을 위해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한 일을 포기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시작한 일을 포기하는
것은 그로서는 큰 치욕이었기 때문이죠. 만약 힘들어서 혹은 두려워서 그 일을
포기한다면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추될 명예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살라디노는 그 답을 얻지 않고서는 자신의 날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살라디노는 함께 다니던 뜨내기 음유시인들과 길을 가다가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는 사슴 한 마리를 잡아 산에서 내려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늙은 그의 아버지는 그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기사였지만 이미 수년 전에 앞을 볼 수가 없게 되어서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례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살라디노 일행에게 어디서 오는 누구인지 묻자, 그들은 그저 뜨내기
음유시인들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오늘 사냥이 아주 잘 되었는데, 마침 음유시인들이시라니 저희집에서 즐겁게
밤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뜻밖의 청을 받은 살라디노 일행은 얼른 서둘러 대답하기를 어떤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자기 나라를 떠난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 아무도 그 질문에 만족하게
대답해준 이가 없었다고 하면서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그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며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자기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아마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살라디노는 매우 기뻐하며 젊은이의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다다랐을때, 젊은이는
아버지에게 사냥 이야기와 자신과 함께 온 음유시인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질문을 아버지에게 말하고 답을 청했습니다. 젊은이는 아버지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답을 줄 사람은 없다고 장담했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 늙은 기사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뜨내기 음유시인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아들에게 말하기를 저녁을 든 후에 그 담을 하겠노라고
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음유시인이라고 믿고 있는 살라디노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고
저녁식사가 끝날 때까지 좀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식탁을 치우고 뜨내기 음유시인들도 노래를 마치자 그 늙은 아버지는 어느
누구도 주지 못했던 그 답을 알려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살라디노는 즉시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좋은 성품의 정수, 즉 인간의 최고 덕목은
무엇입니까?”
그 늙은 기사는 이 질문을 듣고 그 뜻을 완벽하게 이해했으며 그 질문을 하는
이가 살라디노라는 것도 알아차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에 살라디노의 성에서
오랜 기간 동안 머물면서 많은 혜택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보시오, 우선 한번도 이렇게 훌륭한 음유시인들이 내집을 방문한 적이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이 저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당신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한 질문의 답은 바로 부끄러움입니다. 바로 이것으로 인해 어떤 이는 죽음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나쁜 일을 하고 싶은 많은 충동을 느끼지만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모든 나쁜 행동의 출발점이
됩니다.”
살라디노는 이 말을 듣자, 그 늙은 기사의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찾던 대답을 얻자 크게 기뻐하며 그 늙은 기사와 아들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가 집을 나서기 전에 그 늙은 기사는 아들에게 그가 살라디노이며
자신은 그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노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늙은 아버지와
아들은 살라디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있은 후, 살라디노는 서둘러 자기 나라로 향했습니다. 그가 도착하자
모든 부하들이 기뻐하며 그의 귀향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축제가 끝나자 살라디노는
그 부인을 찾아갔고, 그가 올 것을 알고 있던 부인은 그를 맞이하여 극진한 대접을
했습니다.
살라디노는 식사를 마친 후 큰 방으로 들어가 부인을 찾았습니다. 부인이
들어오자 살라디노는 자신이 답을 찾기 위해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제
그답을 찾았고 완벽하게 대담을 할 수 있으니 약속한 바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질문에 대한 답부터 들어보고 만약 그 답이 만족할 만한 것이면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살라디노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품 중 으뜸은 부끄러움이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부인은 이 대답에 매우 만족해하며 살라디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하, 이제 전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답을 얻어내셨습니다. 왕은 모름지기
진실만을 말하셔야 함을 아실 겁니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이 세상에서 전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제게 말씀해 주시렵니까?”
살라디노는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러웠지만 그 자신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부인은 그 말을 듣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처량하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좀전에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전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시라는 것 둘째, 부끄러움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 사실들을 잘 아신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이신 전하께 청하오니 이 최고의 덕목인 부끄러움을 가지시고 저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인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살라디노는 자신이 하마터면 저지를 뻔했던
잘못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그녀의 지혜로움과 성품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 세상 무엇보다도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 대신에 백성들을 충실하고
정직하게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그 부인의 덕성으로 인해 그녀의 남편은
다시 고향집에 되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살라디노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이웃들로부터 많은 존경도 받았습니다.
이 보든 일이, 부끄러움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품 중 으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 부인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저에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지
물으셨으니 이제 그 답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바로 부끄러움이죠. 부끄러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노력하게 하며, 성실과 좋은 습관으로 선행을 하도록 만든답니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백작님도 아셨을 겁니다. 따라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고 추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숨어서 한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어떤 이가 숨어서 잘못을 저지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 일이 밝혀졌을 때 얼마나 부끄러울지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나쁜 일을 행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하고 자신이 얼마나 못된 인간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 백작님, 이제 그 질문에 답을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시간
동안 숙고를 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도움 되는 이야기에 관심도 없고 배우려
하지도 않는 백작님의 친구분들이 들으시면 화를 내실 만 할 것 같군요. 그들은
마치 금자루를 지고 가며 무겁다고 말하면서 그 값어치는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들은 들은 것에 대해 화를 내실 뿐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흔히 일어나는 이러한 일 때문에 그리고 제가 드린 대답들로 인해
그분들과의 관계에서 마찰이 생길까봐 더 이상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 부끄러움은 모든 나쁜일에서 멀어지게 하고, 좋은 일들을 많이 만든다.@ff
세번째 이야기 악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물었다.
"빠뜨로니오, 내가 잘 아는 이웃이 두 명 있소. 그중 한 사람은 존경할 만한 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가끔씩 실수를 저질러 나를 불쾌하게도 한다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내가 호의를 베풀 필요도 없고, 존경할 이유도 없으며, 또한 별로 내맘에
들지 않는 일도 한다오.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 내가 이들에게 각각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시오."
"백작님,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일입니다. 다시 말해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제가 말씀드리는 두 이야기를 듣고 가장 적절한
방법을 택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는 선과 악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고, 나머지는
하나는 선한 사람과 미친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럼 먼저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옛날에‘선'와‘악이 있었는데 그들은 함께 지내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본래
악이라는 놈은 자기 이익만 챙기기에 급급하고 항상 말썽만 일으키는 놈이었지요.
그런 악이 어느날 선에게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하자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선은
그 말에 동의했고, 얼마 후 몇 마리의 양을 사게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양이 새끼를 낳자, 악이 선에게 말하기를 양에서 필요한 부분을 먼저
택하라고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본래 마음씨가 고운 선은 악의 제의를 사양하며
오히려 악에게 그 선택권을 주었지요. 이 말을 들은 악은 자기는 젖과 털만 가질
테니 선에게는 새끼양을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선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악의
의견에 동의했지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악은 또 돼지를 몇 마리 사자고 제의 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은 아무 말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돼지 새끼가 태어나자 악이
선에게 말하기를 저번에는 내가 젖과 털을 가졌으니 이번에는 네가 젖과 털을
가지라며 자기는 새끼돼지를 갖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도 선은 아무런
불평없이 그 제안을 들어주었지요.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채소가 필요해 무를 심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무가 다
자라자, 악은 선에게 땅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 땅 위로 나온 부분을
가지라며 자기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땅 속의 것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은 아무 말 없이 악의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그 후 그들은 또 배추를 심게 되었습니다. 배추가 다 자라자 악은 선에게
저번에는 네가 보이는 부분을 가졌으니, 이번에는 내가 보이는 부분을 갖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은 아무런 반대 없이 악의 분배를 따랐지요.
그러던 어느날, 악이 이번에는 여자를 한 명 갖자고 하였습니다. 선은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여자가 생기자 악은 자신이 여자의
허리 아랫부분을 가질 테니 선더러는 허리 윗부분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은 집안일을 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게 되었고, 악은 잠자는 데 필요한 부분을
가지게 되었지요.
얼마 후 그 여자에게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여자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갑자기 선이 나타나 몸의 윗부분은 자기 소관이라며 젖을 먹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편 밖에 나가 있던 악은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지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기가 울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여자에게 이유를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여자는 선이 몸의 윗부분은 자기 소관이라며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못하게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악은 그길로 선에게 달려가 자기 아들에게 젖을 먹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선은 몸의 윗부분은 자기 것이라며 허락할 수 없다고 했지요. 하지만 악이
계속해서 부탁을 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보게, 친구. 이제까지 내가 자네의 몫과 내 몫이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전혀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말게.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네.
마음이 상하기는 했지만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 여태껏 참고 지내왔다네. 그러나
자네는 그런 나를 본체만체 했었지. 좋다네. 하지만 앞으로는 자네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여도 난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네. 여태껏 자네가 한
짓을 한번 생각해 보게나. 그리고 이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네도 한번 고통을
당해보라구."
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신의 아기가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빌려 선에게
자비로써 그 어린 생명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선이 시키는
대로만 할 테니, 과거의 일은 제발 잊어달라고 했습니다.
선은 이 발을 듣고, 악이 이제는 자신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악의
나쁜습성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선은 악에게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싶거든 아기를 등에 업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치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이여, 착한 일을 하면 결국에는 선이 악을 이기는 법입니다!’하고
말입니다. 악은 자기 아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치고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의 제안을 받아들였지요. 아울러 선 역시도 그렇게 해서
악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악은 약속을 지켰고,
이로써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하면 결국 선이 악을 이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선한 사람과 미친 사람 사이에 일어났던 다음의 이야기는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옛날 대중목욕탕을 가지고 있는 착한 사람이 한 명 있었지요. 하지만 그 마을에는
미친 사람이 한 명 살고 있었답니다. 그는 목욕탕에 사람들이 한창 많을 때
들어와서는 물통이든, 몽둥이든 가릴 것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사람들에게
휘둘러댔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목욕탕을 뛰쳐나와야 했고, 그래서 그 착한 사람은
목욕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목욕탕 주인은 미친 사람의 횡포를 참다 못해 아침 일찍 일어나
그가 나타나기 전에 목욕탕 속으로 들어가 있었지요. 그리고는 벌거벗은 채로
뜨거운 물 한 바가지와 큰 몽둥이 하나를 들고 미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람들 괴롭히는 재미로 목욕탕에 오는 그 성미 고약한 사람이
나타나자, 곧장 다가가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머리에 쏟아붓고는 몽둥이로 늘신
두들겨 패주었지요. 갑작스런 봉변으로 죽는 줄 알았던 미친 사람은 자기를 때린
놈은 분명히 정신이 이상한 놈일 거라 여기고는 죽는다고 고함을 치며 목욕탕을
뛰쳐나갔지요. 그리고는 웬 호들갑을 그리 떠느냐고 묻는 행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조심하세요. 목욕탕에 또 다른 미치광이가 있어요."
결국 주인도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게 된 것이지요.
"백작님, 당신도 이와 같이 행동하십시오. 즉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대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게는 비록 그가 가끔씩 백작님을 실망시킨다 할지라도 집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호의를 베푸세요. 하지만 그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그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지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주셔야 합니다. 반대로 그렇게 대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굳이 애써 참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 그가 백작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결코 백작님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일러두십시오. 왜냐하면 나쁜 친구들은 두려움이나 이익 때문에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 선은 항상 선행으로 악을 이긴다. 못된 자는 상대해 봤자 이로울 게 없다.@ff
네번째 이야기 아마씨의 위험을 피한 제비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소. 나보다 권세 높은 주변사람들
몇 명이 모여서 나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함정을 파는가 하면 나쁜 음모도 꾸미고
있다고 하오. 나는 그 말을 믿지도 않고 의심조차도 하지 않소. 허나 그대는 현명한
사람이니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조언을 좀 해주었으면 하요."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제 생각에 백작님께서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지 아시려면 어떤 제비와 다른 새들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비 한 마리가 어떤 사람이 밭에 아마씨를 뿌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혜로운 제비는 만약 아마씨가 다 자라면 사람들이 그것으로 새 잡는 그물이나
올가미를 만들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새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불러모아 놓고 어떤 사람이 아마씨를 뿌렸는데 만약 그 씨가 나서 자라게 되면 큰
해를 입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씨가 싹트기 전에 그곳으로
가서 씨를 다 파헤쳐버리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초창기에는 그
해악을 뿌리뽑기가 쉽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새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는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비는 끈질기게 설득했지만 다른 새들은 그것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고 심지어는 자기가 한 말을 들은 체 만 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윽고 그
아마는 싹이 터서 뽑아버리고 싶어도 새들의 발톱이나 부리로는 어쩔 수 없을 만큼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새들은 아마가 다 자라면 자기들이 해를 입게 될
것이고 이제는 그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제비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습니다.
한편 다른 새들이 자신들에게 닥칠 위험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자 위험을
느낀 제비는 도리어 아마씨를 뿌린 그 사람에게로 날아가서 그의 보호 아래 있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비는 자신과 후손들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제비는 사람들의 보호 아래서 살게 되었고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제비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던 다른 새들은 날이면 날마다
그물과 올가미에 의해 사냥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 앞으로 닥칠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그
피해를 입지 않으시려면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하고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그 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한
법입니다. 자기에게 무슨 해로운 일을 안겨다 줄 소지가 있는 어떤 징후나 움직임에
직면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책을 강구하는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는 법입니다."
* 자기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르는 일이 있다면 처음부터 대비해야 한다.@ff
다섯번째 이야기 은혜를 모르는 교황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다.
"빠뜨로니오, 어떤 남자가 도움을 청하러 왔는데 그 대가로 내게 이롭고 명예로운
일은 무엇이든지 해주겠다고 했소.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를 도와주었는데, 그
문제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내게 생겼다오. 그러나
자기 문제가 내 덕분에 잘 해결되었다고 하던 그 사람이 내가 도움을 청하자 양해를
구하며 거절했소. 그 후에도 나를 도울 수있는 기회가 또 있었는데 내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매번 거절했소.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려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아시려면 똘레도에
거주했던 대학자 일란과 산티아고 지방의 대리 주교사이에 있었던 일을 아시는 것이
좋겠군요.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산티아고에 강령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대리 주교가 있었는데 똘레도의 일란이라는
학자가 그 분야에 통달해 당대의 그 누구보다도 마술에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령술을 배우기 위해 곧장 똘레도에 있는 일란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학자는 집에서 외따로 떨어진 방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지요. 그는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기는 했지만, 점심 식사 이후까지는 방문 이유를 듣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일란은 손님이 편하게 기다릴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하며 그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두 사람은 방으로 갔고 대리 주교는 방문 목적을 설명하며 마술을
전수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일란이 대답하기를, 당신은 사회
상류층인 대리 주교로서 아주 높은 직위까지 오를 수 있을 텐데, 은혜를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여느 고위직 사람들처럼 마술을 배우고 난 후에는 가르쳐준 사람의
은혜를 잊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대리 주교는 가르쳐만 주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했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점심부터 저녁이 가까울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긴 이야기 끝에 마침내 합의에 도달하자 일란은
마술이라는 학문은 한적한 곳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하며 대리 주교를 밀실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곤 하녀를 불러 메추라기를 저녁거리로 준비하되 그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요리를 시작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대리 주교와 마술사는 좁은 복도를 지나 아름답게 조각된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 층계가 끝나자 좋은 가구와 읽어야 할 책들이 가득 차
있는 아주 아늑한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어떤 책들을
먼저 들춰봐야 할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중 두 남자가 들어와 대리
주교의 삼촌인 주교가 보낸 편지를 전했습니다. 그 내용인즉 주교가 심한 병에 걸려
목숨이 오락가락하니 살아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면 당장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대리 주교는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삼촌의 병환이
마음에 걸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막 배우기로 한 마술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렇게 빨리 포기할 수는 없다고 결정하고 삼촌에게
보낼 편지를 썼습니다.
그 후 3,4일이 지나자 상복을 입은 남자들이 몇 명 와서는 대리 주교에게 주교의
사망 소식과 그 뒤를 이을 사람을 지명하기 위해 온 교회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모두들 신앙심을 가지고 그를 지명하고 있으나 그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좋을 것이므로 대기하고 있으라 전했지요. 7,8일
정도 지난 후에 잘 차려입은 하인 두명이 나타나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는 그를
주교로 임명하는 증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란은 대리 주교가
자신의 집에서 이런 희소식을 받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하면서, 신의 은총을 받아
직위가 상승했으니 이제는 비게 된 대리 주교 자리에 자신의 아들을 앉혀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러나 새 주교는 대리 주교의 자리를 자신의 동생에게 양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는 일란의 아들에게는 교회의 다른 직위를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란과 그 아들에게 산티아고로 같이 가줄 것을
제안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모두 산티아고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아주
성대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도시에서 얼마 동안 지낸 후 주교는 교황이 보내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는 주교를 똘로사 지역의 대주교로 임명하며 산티아고의
주교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일란은
이번에는 꼭 자기 아들을 임명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러나 주교는 그 자리를 자리
삼촌에게 양보해 달라고 했습니다. 일란은 언짢은 마음을 표시하고 앞으로 잘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대주교는 그렇게 할 것을 약속하며 함께 똘로사로 가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도시에 도착하자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다 나와 그들을 환영했지요.
그곳에서 2년을 지내자 이번에는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더불어 똘로사의 대주교 자리에 그가 원하는 사람을 앉힐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습니다. 일란은 다시 빚을 받아낼 양으로 지금까지 계속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똘로사 대주교 자리를 자기 아들에게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추기경은 대주교의 자리를 평생 착하게 살아온
자신의 늙은 외삼촌에게 양보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 대신 추기경이 되었으니
교황청이 있는 곳까지 동행하면 좋은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했지요. 일란은 내키지
않았지만 추기경이 하자는 대로 로마까지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다다르자 추기경을 비롯한 교황청의 사람들이 그들을 크게 환영했습니다.
일란은 자기 아들을 배려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추기경은 막연한 대답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황이 사망하고 추기경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일란은
그에게 더 이상 약속을 회피할 길이 없다고 했지요. 그러자 교황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며 기회가 닿으면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일란은
화를 내며 그가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의심스러웠으며 아무것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제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투덜거리는 소리에 질렸다며 계속 잔소리를 한다면
사기꾼에다 이교도라는 명목으로 감옥에 처넣을 것이라고 협박했다지 뭡니까.
일란이 똘레도에서 하던 일은 마술뿐이었으니 말이지요.
이 말을 들은 일란은 그가 추기경을 위해 한 일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깨닫고
이별을 고했습니다만 교황은 먼 길을 떠나는 일란에게 음식물 하나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란은 교황에게 그가 음식을 주지 않으니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저녁으로 준비하라고 한 메추라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며 하녀를 불러 요리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일란의 명령이 떨어지자 교황은 갑자기 처음 똘레도에 왔을
때처럼 대리 주교의 신분이 되어 그 도시에 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리
주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수치스러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일란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으니 메추라기를 나누어줄 생각이 없다며 잘 가라고
내쫓아버렸습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고맙다는 인사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그리 많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럴때면 똘레도의 일란에게 보답할 줄 몰랐던 대리 주교와 같은
사람을 위해 노력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시면 안 된다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미천한 자리에 있을 때 도움을 받고도 보답할 줄 모르는 자는 좋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욱 배은망덕해진다.@ff
여섯번째 이야기 간을 닦아야 했던 남자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과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나는 요즘 돈이 넉넉하지 못해 괴롭다오. 그래서 마음은 아프지만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을 팔아버리든가 아니면 다른 방도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소.
지금 처해 있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소. 내 주변에는
그동안 내가 고생해서 모은 돈을 요구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오. 그 사람들한테는
그 돈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과 그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일은 어떤 병자에게 일어난
일과 비슷 하군요."
한 남자가 심하게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를 본 의사들은 갈비벼를 들어내고 간을
꺼내 약물로 닦지 않으면 낫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남자가 수술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의사가 간을 꺼내 손에 들고 있을 때 마침 그곳에 있던 어떤
사람이 의사에게 그 간을 자기 고양이의 먹이로 주겠다며 달라고 했답니다.과연 그
남자는 자기 간을 그 사람에게 주었을까요?
백작님, 어려움을 겪어가며 모은 돈을 별로 필요로 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주신다면 그건 그 남자가 자기 간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남에게 줘서는 안 될 것을 줘버린다면 당신에게 큰 해가 될 수도 있다.@ff
일곱번째 이야기 금괴에 담아둔 심장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에게 자신의 재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빠뜨로니오, 어떤 이들은 내게 가능한 한 많은 재물을 끌어모으라고 충고한다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재물이 가장 유용할 거라고 하면서 말이오. 이것에 대한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소."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내노라 하는 대지주가 그 이름에 걸맞는 여러 일을 치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재물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재물을 축적하는 데 급급하여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부하를 괴롭히며, 나라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물에
눈이 멀어 그것만을 좇는다면 어떤 롬바르드인이 볼로냐 시에서 겪은 일과 같은
경우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볼로냐 시에는 아주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롬바르드인은 그 재물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개의치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
모으는데만 열성을 다 했답니다. 그러다 심한 병을 앓게 되었는데 다 죽게 된 그를
본 친구 하나가 마침 그 도시에 와 있던 성 도밍고에게 고해성사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친구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성 도밍고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자는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닐 거라
판단했지요. 그래서 자신이 고해성사 받기를 거부하고는 대신 사제 한 명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성 도밍고를 불러오게 시켰다는 것을 알게 됨 롬바르드인의 자식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성자가 아버지에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전재산을 기부해야
한다고 하면 자신들의 유산이 날아갈까봐 걱정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제가 집에
오자 자시들은 아버지가 고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니 다시 부를 때 와달라며
돌려보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롬바르드인은 입이 굳어버렸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다음날 장례식에서 자식들은 성 도밍고에게
마지막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성자는 그렇게 하기로 했고 기도중 그
롬바르드인을 거론하면서 이런 성경 구절을 인용하였지요.
‘너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의 심장이 있다.
그리고는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요, 성경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 보려면 이 죽은 자의 심장을
찾아보시오. 분명히 그의 심장은 몸 속에 있지 않고 재물을 담아두던 궤짝 안에
있을 것이오.”
사람들이 시체를 살펴보자 과연 심장이 없었으며 성 도밍고의 말대로 보석상자
안에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구더기에 가득 차서
말입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이미 말씀드렸듯이 재물은 두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라야만 좋은 것입니다. 첫째, 그것을 얻게 된 경위가 정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는 재물에 지나치게 마음을 두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 명예에
흠이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일을 통해 얻은 재물로 신의 은총을
받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깨끗한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 진정한 보물을 얻으려고 노력하되, 부질없는 재화는 멀리하라.@ff
여덟번째 이야기 여우에게 치즈를 빼앗긴 까마귀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내 친구 하나가 명예로 보나 권세로 보나 또 선한 마음씨로 보나
내게는 남다른 기품이 있다며 나를 추켜세우기 시작했소. 이렇게 나를 한껏
추키더니, 얼핏 듣기에 내게 상당히 득이 될 것 같은 거래를 하자고 제의해 왔소."
백작은 빠뜨로니오에게 자기가 제안받은 그 거래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그러나
빠뜨로니오는 득이 될 것 같은 그 거래와 친구가 한 감언이설의 이면에는 속임수가
숨어 있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래서 백작에게 이렇게 말했다.
"백작님, 그는 백작님을 속이기 위해 백작님의 권세와 형편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그가 백작님에게 쓰려고 하는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으시려면 까마귀와 여우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느날 까마귀 한 마리가 큰 치즈 조각을 발견하고는 남들에게 빼앗기거나 먹는
데 방해를 받을까봐 치즈를 가지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나무 밑을 지나고
있던 여우 한 마리가 치즈를 물로 있는 까마귀를 발견하고는 어떻게 하면 치즈를
빼앗아 먹을 수 있을까하고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까마귀님, 오래 전부터 당신의 고귀함과 고운 자태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참 많이도 찾아다녔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지금까지
내게는 당신을 만나볼 만한 기회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당신을 만나고
보니 당신은 내가 익히 들어왔던 것보다 훨씬 더 기품이 넘쳐보이는군요. 내 말이
단순한 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당신의 기품과 우아함을 낱낱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검은색은 보통 다른 색깔처럼 아름답지 않다고 하죠. 그리고 당신 역시 깃털부터
눈, 부리, 다리 그리고 발톱까지 완전히 새까맣다고 하면서 그것이 당신의 흠이라고
겸손해합니다. 물론 당신은 새까맣습니다. 그러나 비록 당신의 깃털이 검긴 하지만
당신의 그 검은 빛깔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인 공작의 깃털처럼 푸르스름한
빛을 발합니다. 또한 당신의 눈도 검습니다. 그러나 검은 눈은 다른 어떤 색깔의
눈보다 아름다움 것입니다. 원래 눈이 하는 역할이란 본다는 데 있는 것이고, 검다는
것은 시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검은 눈이 최고랍니다.
당신의 부리나 발톱 역시 당신만한 크기의 다른 어떤 새들보다도 강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거센 바람도 거슬러 날 수 있는 당신의 그 신속한 비행술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어떤 새도 당신처럼 그렇게 가볍게 날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는 다 합당하게 창조하셨으니 신은 이 모든 것을 갖춘
당신이 다른 새들보다 노래를 못하게 창조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늘에야 신은
내가 당신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이제 나는 당신이 이제껏 들어온
것보다 훨씬 더 기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참에 당신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조재가 될
것입니다.”
그 까마귀는 여우가 온갖말로 자기를 칭송하는 것을 듣고는 정말이지 옳은 말만
한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것도 틀림없이 진실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여우가 그런 말을 한 것이 자신의 치즈를 빼앗기 위함이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까마귀는 그를 친구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우가 자기에게
여러 가지 칭찬을 해가며 노래를 들려줄 것을 간청했으므로 까마귀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까마귀가 입을 열자마자 치즈는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여우는 재빨리 그것을 물고 가버렸습니다. 그 까마귀는 실제 자기가 갖추고 있는
것보다 더 우아한 자태와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믿음으로써 여우에게
속아넘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여우가 한 말들이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여우의 진짜
속셈은 까마귀를 속이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꿰뚫어보셔야 합니다. 결정적인
속임수나 죽음을 부를 정도의 해악은 참말같은 거짓말 뒤에 숨어 있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백작님께 여러 면에서 많은 은혜를 베푼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백작님이 실제보다 훨씬 더한 권세와 명예, 선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믿도록 만들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백작님을 속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아시고 그를 경계하시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고 행동일 것입니다."
* 네 앞에서 교언영색하는 자는 바로 네 재산을 탐하는 자다.@ff
아홉번째 이야기 측근을 시험한 왕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내가 좋은 친구라고 여기는 사람이 한 명있는데 그는 명예도 있고
권세도 있는 사람이오. 그 사람이 일전에 은밀하게 내게 이런 말을 했소. 자기에게
일어난 몇 가지 일 때문에 이 땅을 떠나서 여하한 일이 있어도 돌아오지 않을
작정인데, 나와 친분도 있고 또 날 대단히 신뢰하고 있는 터라 내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기고 싶노라고 말이오. 그 중 일부는 팔아달라고 하고 나머지는 관리를
해달라고 했소. 그사람이 그렇게 원하니 나로서는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기도 하고
큰 이득도 될것 같소. 그대 생각은 어떤지 조언을 좀 해주었으면 좋겠소."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은 제 소언 따위가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소견을 듣는 것이 백작님의 뜻이라는 말씀드려보지요. 우선 백작님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계신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백작님을 시험해 보고자 함에 다름아닌
듯합니다. 이는 어떤왕과 그 측근 사이에 일어난 일과 유사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어떤 왕이 자기 측근 중 한 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는 어느 시대, 어떤 곳에서도 있기 마련이라 그 사람이
누리는 총애와 행운에 대한 사람들의 시기 역시 대단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왕과의 사이가 틀어지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방법으로 설득을
해도 그를 신뢰하는 왕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을
섬기는 그의 지극한 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쓴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왕에게
그 측근이 원하는 것은 왕이 빨리 죽어 왕의 어린 아들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일단 어린아이가 모든 왕실 재산의 주인이 되면 그
특근은 스스로 왕이 되려고 어린 왕을 죽일 것이라고 모함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있던 왕도 이 말을 듣고 나자 그 측근을 예전처럼 믿지
못하고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되어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그때는 후회해 봐야 소용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징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의심하고 경계하기 시작하자 왕은 차츰 불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그 측근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왕에게 그 측근을 모함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한 것이 사실임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왕을 속이고는, 왕에게 측근을 시험해 볼 방법 한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왕은 그들이 알려준 방법대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며칠이 흘러 측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왕은 이승의 삶이란 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고 모든 것이 허망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장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또 다시 측근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승의 삶과 부귀영화에 대한 허무가 나날이
더해간다고 얘기를 끌어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몇날 며칠을 두고 몇 번이나 했기
때문에 그 측근은 드디어 왕이 덧없는 명예나 부는 물론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에도 아무런 의미를 못 찾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측근이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왕은 어느날 그에게 그곳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외떨어지고 낯선 곳으로 가서 죄를 참회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신을 어여삐 여겨 영원한 광영을 얻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실 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말을 듣고 그 측근은 매우 놀라며 온갖 방법으로 왕의 결심을 단념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만약에 왕이 굳이 그 나라를 떠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평화롭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숱한 백성들을 팽개치는 결과가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신에 대한 불경한 짓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나버리면
분명 반란이 일어나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져서 결국 신을 잘못 섬기는 결과가 될
것이고, 왕국은 큰 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차치한다
손치더라도 최소한 왕비와 홀로 남게 될 어린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그 뜻을
굽혀야만 한다고 왕에게 간곡히 진언했습니다. 그래도 왕이 끝끝내 고집한다면
틀림없이 왕비와 어린 아들은 재산뿐 아니라 생명마저도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말을 듣고 왕은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자기 부인과 아들이
왕국을 평화롭게 다스리면서 존경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도를 미리 생각해
두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나를 잘 보좌해서 재산이 불어나도록 도와주었다는 것과 언제나
충성을 다해 나를 올바르게 잘 섬겼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세상 누구보다도 그대를
신뢰하고 있소. 그러니 그대에게 내 아내와 아들을 보호해 줄 것을 부탁하며 동시에
왕국의 모든 성과 땅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양도할 생각이오.”
왕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도 감히 자기 아들에게 해가 될 만한 짓은 못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행여나 자신이 왕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해도 그에게 위임한 모든
것들이 잘 관리되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죽음을 맞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그가 왕비를 잘 섬길 것은 물론이요 자기 자들을 잘
키워서 아들이 왕의 직무를 맞아 현명하게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왕국을 잘 보존해
줄 것도 확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산 역시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관리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왕이 자기에게 국사와 왕자를 맞기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측근은 그
말의 깊은 의미까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으나 내심 기뻐했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자기 수중으로 들어온다면 자신에게 큰 득이 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측근은 집에 포로 한 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 포로는 매우 현명한
철학자였습니다. 그 측근이 해야 할 일이나 왕에게 해주어야 할 조언을 가르쳐준
사람도 바로 그 포로였습니다.
측근은 왕과 헤어지자 곧바로 포로에게 달려가 왕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왕이 국사는 물론 왕자까지 맡기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면서
기쁨에 겨워 자기에게 돌아올 이득이 얼마나 클지를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철학자는 자기 주인이 왕과 나누었다는 대화 내용을 듣고는 왕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한 것에 대해 대단히 큰 잘못을 범했다며 호되게 그를 책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주인의 생명과 재산은 커다란 위험에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그런 말을 한 것은 그 일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려는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왕으로 하여금 그를 시험해 보도록 부추긴 탓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다만 그를 넌지시 떠본 것에 불과한데 면전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이제 주인의 생명과 재산은 아주 위험한 지경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왕의 측근은 이 말을 듣고 아주 걱정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이 포로가
말해준 그대로 전개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현병한 철학자는
주인이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닥쳐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순례자들처럼 머리와 수염을 삭발하고 누더기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낡아 떨어져서 징을 댄 신발을 신은 채 누더기옷의 기워 잇댄
헝겊 사이에 상당량의 금화를 챙겨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밝기 전에 왕이
기거하고 있는 궁궐의 문 앞으로 가서 그곳을 지키던 문지기에게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기 전에 그 도시를 떠날 수 있도록 즉시 왕을 깨우라고 비밀리에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문 밖에서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 문지기는 왕의 측근이 그런
몰골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놀랐지만 왕의 침실로 가서 시킨 대로
아뢰었습니다. 문지기의 말을 들은 왕은 깜짝 놀라서 그를 들여보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왕은 측근이 하고 있는 행색을 보고는 왜 그 꼴이 되었냐고 물었고, 그는 왕이
당장 이 땅을 떠나고 싶어하는데 자신에게 베풀어준 왕의 은혜를 잊고 이를 모른
척한다면 신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왕 덕분에 명예와 행복을
누렸으니 왕의 불행과 유랑생활도 같이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부인과 아들 그리고 나라를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데 자신이 그런 것들에 대해 미련을 둔다면 그것은 합당하지 않은 일이므로
왕과 함께 떠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왕의 뜻대로 아무도 왕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옷 속에 둘이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을 가지고 간다고 하면서 떠나시려면 남들에게 발각되거나
알려지기 전에 지금 당장 떠나자고 말했습니다. 왕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그의
충성심에 탄복해 대단히 기뻐하면서 그때서야 이 모든 일이 그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측근은 사람들의 시기심과 모함으로 위험에 빠질
뻔했지만 신은 그의 집에 있던 포로를 통해 그를 보살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도 친구로 생각하고 계신 그 사람에 의해 시험을
당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사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친구분이 그런 말을 한
것을 백작님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분이 백작님은 자신의 편이며 자기 명예를 아껴주고 자신의
그 어떤 것도 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도록 말씀하셔야 합니다. 만약 친구 사이가
그렇지 못하다면 우정이란 지속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남을 위해 자기에겐 해가 될 일을 해줄 사람이 있으리라고 믿지도 바라지도
말라.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 자기의 소망을 성취하는 것은 신의 자비와 훌륭한
조언 덕분이다.@ff
열번째 이야기 까마귀에게 속은 부엉이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에게 조언을 구했다.
"빠뜨로니오, 나와 원수로 지내는 사람의 집에는 친척과 하인 그리고 그가
돌봐주고 있는 식객 한 명이 있다오. 그런데 하루는 그들끼리 크게 다투게 되어 이
식객이 몹시 모욕을 당했소. 그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괘씸히 여겨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고는 나를 찾아왔다오. 나는 쉽게 원수를 욕보일 기회를 얻게 되어 내심 무척
기쁘다오. 그러나 만약을 대비해서 당신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니 어디 당신 생각을
말해보시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는 필경 당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까마귀와 부엉이 이야기를 한번 참고해 보십시오."
까마귀들과 부엉이들은 몹시 사이가 나빴는데 언제나 더 많이 당하는 쪽은
까마귀들이었습니다. 부엉이란 낮동안에는 으슥한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나오는 종족 아닙니까. 부엉이들이 걸터앉아 밤을 보내는 나무는 원래
까마귀들의 잠자리였습니다. 부엉이들은 늘 잠든 까마귀들을 괴롭혀 상처를 입히고
또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하루는 부엉이들에게 시달리던 까마귀들 중 영악한
한 놈이 다른 까마귀들에게 복수할 계책을 내놓았습니다.
그 계책이란 이러했습니다. 그 까마귀는 동료 까마귀들이 자신의 털을 간신히 날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몽땅 뽑은 후에 혼자 버려두고 떠나도록 했습니다. 짐짓
학대당한 듯이 꾸민 그 까마귀는 부엉이들에게 가서 이제는 부엉이들과 다투지
말자고 말해서 동료들에게 몰매를 맞았다고 울먹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이제
부엉이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까마귀들을 괴롭힐 방책을 얼마든지 알려줄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부엉이들은 그 제안에 몹시 기뻐하며 그 까마귀를 동지로 받아들이고 잘
대접해 주었답니다. 그러나 경험 많고 나이 지긋한 한 부엉이는 즉시 침입자의
계책을 알아차리고는 그 까마귀는 우리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동태를 살피러 온
첩자라고 대장 부엉이에게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홀로 무리를 떠나 피신해 버렸답니다.
부엉이들이 신임하는 사이 깃털이 다 자란 까마귀가 이제 나가서 다른 까마귀들의
동태를 살펴보고 오겠으니 잠시 후면 모든 까마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말하자
부엉이들은 이를 흡족히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그 까마귀는 동료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낮 동안은 잠을 자는 부엉이들의 생활방식을 알게 된 까마귀들은
쉽사리 그들을 전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불행은 원수를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요.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을 찾아온 사람이 당신의 원수에게 은혜를
입었다면 경계하십시오. 그로인해 당신이 곤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 당신의 적이 어느 날 친구인 척하더라도 그를 믿지 말라.@ff
열한번째 이야기 위험한 혀
루까노르 백작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인간의 삶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이들은 반란자가 가장
나쁘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폭력배 혹은 불량배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가장 피해를 주는 사람은 말을 잘못 전달하는 중상모략자라고 의견이
모아졌다.
백작이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빠뜨로니오에게 들려주자 빠뜨로니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 뒤, 악마와 결탁한 위선자 중의 위선자였던 어떤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매우 선량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갈등 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한 것과는 상극인 악마는 그 사이좋은 부부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둘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를
했죠.
악마는 아무리 해도 그 부부 사이를 방해하지 못하자 풀이 죽어 어느날 한 사악한
여자를 찾아갔습니다.
악마가 인사를 하자마자 여자는 왜 그렇게 슬픈 기색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악마는 행복한 부부 사이를 방해하려다가 실패만 하여 이미 이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대장이, 만일 부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악마와 대장 간의 관계도 끝날 것이라고
협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아는 것이 그렇게 많은 악마가 실패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만일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 일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그 부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즉시 악마와 여자는 계약을 맺었고, 여자는 부부가 사는 곳으로 갔습니다.
여자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 선량한 아내와 가까워지려고 했습니다. 사악한
여자는 과거에 그 부인 어머니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은혜를 갚기 위해
부인을 도우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착한 여인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그녀를 집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뒤, 사악한 여자는 부부의 사적인
조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자는 자기를 신뢰하게 된 부인에게 와서
무천 슬픈 표정을 짓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방금 전에 들었던 말 때문에 기분이 몹시 언짢아요. 글쎄 당신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지 뭐예요. 당신 남편이 당신 외에는 그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이 그를 존경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에게는 이번 일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겠지요.”
착한 여인은 이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몹시 괴롭고도 슬펐습니다.
사악한 여자는 부인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자, 이번에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사악한 여자는, 그 남편이 부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부인이 남편보다 자기를 더 사랑해주는 남자를 찾겠다고 말했다며 착한 부인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사실을 말했다는 것을 알면 부인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며 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남편은 이 말을 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고통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비탄에
잠긴 남편을 보고난 후, 못된 여자는 남편을 앞질러 부인에게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인, 어떤 불행이 우리에게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당신 남편이
점차 당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 당신 남편이 전에 없이 슬프고 화난
얼굴로 집에 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그녀의 남편에게 가서 부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남편도 집에 돌아와서 부인의 슬픈 얼굴을 보자, 전과 같이 함께 있는
기쁨을 느낄 수가 없었고 둘은 모두 비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나가자, 그 여자는 부인에게 남편의 나쁜 버릇과 화를 없애는 마법을 알고
있는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슬쩍 부인을 떠보았습니다. 부인은 어떤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예전의 남편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에 여자의 말에 희망을 갖게 되어
매우 기뻐하고 고마워했습니다.
마침내 사악한 여자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 남자를 만나보았다며, 남편의
목덜미 부분의 머리카락 한줌이 있으면 그의 분노와 화를 없앨 수 있고 예전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도록 가능하면 그를 그를 무릎 위에 재우라고 말하고 칼을 건네주었습니다.
가련한 여인은 남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전과 같이 행복한 삶을 바라면서
칼을 받았습니다.
이윽고 사악한 여자는 남편에게 가서 부인이 새 애인과 함께 도망가기 위해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의 죽음을 걱정해주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당신이 집에 돌아가면 부인은 당신에게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자라고 청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잠들게 되면, 숨겨놓았던 칼을 꺼내서 몰을 벨 거예요.”
남편은 이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전에는 그저 우려에 그쳤지만,
이제는 너무 고통스러워 여자가 말한 것이 사실인가를 확인해 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자 부인은 그를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맞이했으며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일만 했으니 이제 자기 무릎을 베고 잠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남편은 그 사악한 여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남편이 부인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척하자 부인은 목덜미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칼을 꺼냈습니다.
자는 척 하던 남편은 부인이 칼을 쥐고 자신의 목부분에 가까이 가져오는 것을 보자
그 여자의 말이 맞다고 믿고 부인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서 부인의 목을 찔러
죽였습니다.
울음소리와 비명에 놀란 부인의 부모와 형제들이 부부가 있는 곳으로 왔을 때
그들은 목이 찔려 죽은 부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부인이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남편도 죽였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의 비명소리가 그의 부모에게 들리자, 부모는 자식을 죽인
살인자들이라며 부인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날은 이 마을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은 날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그 사악한 여자의 거짓말과 중상모략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이 못된 여인에게 벌을 내리는 대신 모든 일들이 자신의 중상모략에
의해 일어난 것임을 일깨워주고, 자신 때문에 부부가 잘못 판단하게 되어 끝내
비참한 살육을 초래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백작님,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과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선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위장한 위선자나 중상모략자 혹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대부분 사악하며 거짓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사람은 그의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백작님,
어떤 사람도 마음 속에 품은 악한 뜻을 오랫동안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악한 꼬임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겉모습보다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ff
열두번째 이야기 왕을 속인 좀도둑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을 구했다.
"빠뜨로니오, 낯선 사람 하나가 찾아와 자신이 계획하고 잇는 사업의 밑천을
조금만 제공하면 큰 수익을 올려주겠다고 말한다오. 자신은 경험이 많아서 밑천의
열 배를 버는 일은 아주 쉽다고 하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가장 큰 이득을 얻으시려거든 연금술사와 왕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곤궁한 처지에서 벗어나 부자가 될 생각만으로 머리가 꽉 찬 철면피 사기꾼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왕이 연금술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이 사기꾼은 10페세타짜리 금화 백 개를 구해 갈아서 가루로
만들고 다른 여러 가지와 섞어서 백 개의 구슬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구슬 한개의
무게는 금화 한 닢의 무게에 다른 재료의 무게를 더한 것이 되었지요. 그리고는
좋은 옷으로 치장한 후 왕이 사는 도성에 가서 어느 향료상인에게 그 요술 구슬들을
사라고 꾀었습니다. 상인이 그 물건이 무엇에 쓰이는 것이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두루두루 많은 일에 유용하지만 특히 연금술에는 필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말에 상인은 구슬당 두세 닢의 금화를 지불하고 백 개를 모두
사버렸습니다. 얼마 후 도성 안에는 연금술사가 있다는 풍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마침내 왕에게까지 이 소식이 닿았답니다. 왕은 그를 불러들여 네가 정말
연금술사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짐짓 겸손한 척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곤
연금술에 많은 돈을 거는 일은 무모하지만 왕이 원하시면 자신이 가진 재주를
보여드리겠노라고 못이긴 척 말했습니다. 왕은 그가 말하는 품으로 보아 인품이
훌륭하다고 판단하고는 그를 아주 신뢰해 버렸습니다. 사기꾼은 두세 푼 어치의
가치도 없는 자질구레한 것들 몇개와 자기가 판 요술 구슬 하나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왕이 보는 앞에서 그 잡동사니들을 요술 구슬과 함께 녹였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두세 푼어치의 가치도 안되는 것들에서 10페세타 금화 무게에 해당하는
금조각을 꺼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왕은 몹시 흡족해 하며 그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명예로운 기사라 칭찬하고는 어서 더 많은 금화들을 만들라고
재촉했습니다. 사기꾼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순진한 척하며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제가 아는 것은 다 알려드렸습니다. 왕께서도 저처럼 잘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섞은 물건들 중 한가지라도 부족하면 금이 안 나오는 법이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가짜 비법을 가르쳐준 후 사기꾼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편 왕은 이제 홀로 남아 비법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사기꾼이 알려준 비율로
양을 두 배로 섞으면 금도 두 배로 나왔고, 세 배를 섞으면 당연히 세 배의 금이
나왔습니다. 이를 본 왕은 금화 천 닢을 만들기에는 다른 재료는 다 구할 수 있으나
요술 구슬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보고서 다시 사기꾼을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왕은 그에게 구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자기 고향에는 엄청나게 많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왕은
사기꾼에게 가서 있는 대로 몽땅 구해오라고 했고 사기꾼은 구입하는 데 필요한
돈과 경비를 합쳐 큰 액수를 요청했습니다. 그리하여 돈을 수중에 넣은 사기꾼은 그
길로 여행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신중하지 못해 사기를 당한 왕이
감감무소식인 그의 소식을 물으려 사기꾼 집에 사자를 보내었을 때 집은 텅빈 채
자물쇠로 잠긴 궤짝 하나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습니다. 열어보니 안에는 이런
글귀가 쓰인 편지 한 장이 있더랍니다.
“세상에 요술구슬은 없도다. 내가 당신을 속였은즉, 애초에 내가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당신은 ‘네 말을 믿기 위해선 먼저 네가 부자여야
한다’고 말했어야 한다.”
여러 날이 흘러 내막을 알게 된 몇몇 사람들은 서로 모여 배꼽을 잡고는,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성품을 큰 종이에 썼답니다. 간교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 그리고 조심성 없는 사람들을 적는데 그 명단에 왕의 이름을 제일 먼저
썼습니다. 이를 안 왕은 그들을 불러 어떤 대답을 해도 벌주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는
왜 자신이 조심성 없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대답하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많은 돈을 주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이 잘못 알고 있으며, 이제 그가 구슬을 가지고 나타나면 자신이 현명한
사람임을 알게 되리라고 우겼습니다. 그들은 그 사기꾼이 나타나면 왕의 이름을
명단에서 지워드리겠다고 대답했답니다.
"백작님, 이 왕처럼 조심성 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시려면 후회할 모험은 하지
마십시오. 불확실한 희망은 품지 않는 것이 현명한 법입니다."
* 가난한 사람의 충고를 듣고 네 재산에 모험을 걸지 말라.@ff
열세번째 이야기 홍등가에 들어간 철학자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세상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을 당신도 알 것입니다. 항상 그랬듯이 나에게 당신보다 더 좋은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명성을 유지하고 키울 또 다른
방법이 없겠는지 말해주시겠소?"
"백작님께서 저에게 충고를 부탁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경우 어느 늙은
철학자가 겪은 이야기를 아시면 저를 더 믿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모로코 왕국의 어느 도시에 위대한 철학자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심한
변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배설을 미루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배설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많은 제자들과 함께 그 도시의 어느 거리를 지나던날, 이 늙은 철학자는 화장실에
가고 싶었습니다. 의사들이 충고한 대로 바로 일을 치르기 위해 그는 어느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보 그 일로 인해 그 철학자의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엔 거리에서 육체를
팔며 사는 여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그곳에 그런 여자들이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변비환자인지라 대변을 보느라 오랜 시간을 보내고
기분좋은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나오자, 사람들은 평소 안 그렇게 보이던
그 철학자가 홍등가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나쁜 일은 입에서 입으로 와전되기 마련입니다. 특히 어떤 중요한 인물이
그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비록 그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나쁜 일을 저지른 것보다 더 비판하는 법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존경받는 노스승이 자신의 영혼은 물론 육체와 명성에 금이 가게
하는 그런 곳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철학자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제자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스승에게 그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 잘못에 대해 말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스승이나 제자나 똑같은 사람들로 여기게 될 것이며 애써 지켜왔던 명예도 다
무너졌다고 말했습니다.
철학자는 제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도대체 자신이 어디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온 도시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반문할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노스승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제자들에게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말도록 요청했고,
그날부터 8일째 되는 날까지 해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서재에 칩거해서 매우 유용하고 좋은 책을 한 권 썼습니다. 그 책을
제자들을 등장시켜 행복과 불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썼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나의 제자들아, 불행과 행복이 찾아오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느니라. 우선
행복의 경우 그것은 추구해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우연히 얻어질 수도 있다. 불행도
마찬가지로 화를 자초해 다가올 수도 있지만 우연찮게 당할 수도 있다. 열심히
선행을 하면 그로 인해 행복이 찾아오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불행이 닥친다. 이것이
스스로 만든 행복과 불행인데, 다시 말해 선행과 악행을 통해 만들어지는 행복과
불행인 것이다.
또 행복을 추구하진 않았지만 우연히 얻어지는 경우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이익을 얻는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돈이 가득 든 지갑을 줍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불행의 경우는,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이 새에게 던진 돌이 머리 위로
떨어져 다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은 모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노력이나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다가오는 행운과 불행이다.
더불어 자네들이 추구한 행복과 자초한 불행에 있어서 항상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 잇다. 그것은 선행은 좋은 결과를, 악행은 나쁜 경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또 우연히 얻은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도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로 나쁜 일을
행하거나 의심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 그 일이
불행을 초래하거나 불명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는 우연히 겪은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그날 건강상의 이유로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갔을 뿐 나쁜 평판을 만들어낼 만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곳에 거리의 여자들이 산다는 이유로 나를 헐뜯어 내 명예가
실추된 것이다.
"백작님, 백작님께서 명성을 드높여 유지하기 원하시면 세 가지 일에 애쓰셔야
합니다. 첫째, 항상 좋은 일을 하십시오. 백작님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면서 가능한
한 이웃들에게도 선행을 베푸십시오. 그러나 만약 선행을 베풀지 않거나 나쁜 일을
하면 명성을 잃게 됩니다. 비록 어느 한순간 좋은 일을 했더라도 그것이 계속되지
못하면, 그간 얻었던 모든 것을 잃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둘째, 지금
백작님께서 누리고 계신 명성을 확실히 유지할 수 있도록 그 명성에 해가 될만한
언행이나 사람들의 의심을 살 만한 어떠한 행동도 삼가십시오. 셋째, 자주 좋은 일을
하되 보이기 위해 일부러 행동하지는 마십시오. 오직 백작님의 영혼을 위해 선행을
실천하십시오."
* 항상 착한 일을 하라. 그리고 변함없이 좋은 명성을 유지하려면 의심받지
않도록 조심하라.@ff
열네번째 이야기 진정한 남자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게 언제나 훌륭한 조언을 해주는 부하가 하나있는데 그가 친척아이를
시집보내려고 한다오. 그 때문에 이번엔 그가 내게 조언을 구해 왔소.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수많은 구혼자들 중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거요. 그 사람이 정확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는데 뭐라 조언해 주어야 할지를 모르겠소. 당신은 그런 일에
대해 아는 게 많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가르쳐 주시겠소?"
그 말을 듣고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프로방스에 어떤 백작이 있었습니다. 매우 선량했던 그 사람은 명예롭고도 자기
지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건장한 남자들을
휘하로 받아들여 훈련시킨 뒤 그들을 이끌고 울뜨라마르의 산따띠에라(역주:
성스러운 땅이라는 뜻)를 향해 출발했으나 그만 술탈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포로의 몸이었지만, 백작의 훌륭한 심성을 아게 되면서 술탄은 최대한 그의
편의를 봐주었고, 그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방대한 영토와 막강한 힘을 소유한
술탄은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백작의 조언이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기에 술탄은 그를 깊이 믿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백작은 자기
영지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대접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백작이 영지를 떠날 때 그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딸은 아버지가
포로로 있는 동안 혼기가 찬 처녀로 자라났습니다. 백작의 아내와 친척들은 포로로
있는 백작에게 여러 왕자들과 세도가의 자식들이 딸에게 청혼해온다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술탄이 그를 만나러 간 어느날, 백작은 술탄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탄이시여, 당신은 제게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저를 존중하고
믿어주시어 제 조언을 그토록 중히 여기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감히 당신께 조언을 좀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백작의 말에 술탄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기꺼이
조언을 해주겠다면서 심지어는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도와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백작은 자기 딸에게 청혼해온 집안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딸을 누구와 결혼시켜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술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백작님, 저는 따님에게 청혼해온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들의
가계가 어떤지, 세도가 어느 정도인지, 행실은 어떤지, 당신과는 어떤 관계이며,
서로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낫고 못한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저의 조언이
적절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따님을 ‘남자'와 결혼시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백작은 술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즉각 알아듣고는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와 친척들에게 그 지방의 모든 귀족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그들의 예법이
어떠하고, 관습은 어떠하며, 또 행실이 어떤지 확인해보되 그들의 부도, 세력도 보지
말고, 단지 결혼할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만을 보라는 내용의 전갈을
보냈습니다.
백작의 편지에 친척들과 아내는 매우 놀랐으나 곧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청혼해온 모든 사람들의 예법과 관습, 장단점 등을 서신을 통해 그에게 알렸습니다.
백작은 가족들이 써보낸 것을 읽은 후에 술탄에게도 보여주었습니다. 구혼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모두가 매우 훌륭한 것 같았으나 술탄은 그들에게서 여러 가지
결점들을 발견해냈습니다. 예의범절이 바르지 못하거나, 성격이 모났거나,
비사교적이거나 사람을 맞아들이는 예법을 모르거나,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 등이 모든 청혼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인간적
결점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큰 세력은 갖지 못한 어느 부자의 아들이 그래도 가장
낫다고 판단 되었습니다. 그는 사윗감으로 적절한 자격을 가장 많이 갖추고 있었고,
여러 청혼자들 중에서 결점이 가장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술탄은 백작에게 딸을 그 사람과
결혼시키라고 했습니다. 더 세도가 잇고 신분이 높은 귀족도 많지만 그에 상당하는
결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세력은 없지만 결점도 없는 사람과 결혼시키는 게
더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를 평가할 때, 재산이 얼마나 된고 신분이 어떤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어떤가가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작은 아내와 친척들에게 편지를 보내 딸을 술탄이 권한 사람과
결혼시키라고 명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놀랐지만 그 청년을 찾으러 사람을 보냈고,
그에게 백작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젊은이는 백작의 집안이 자기 집안보다 훨씬 더
지체높고, 부유하며, 세도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기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자신을 놀림감으로 만들기 위한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백작가문의 사람들은 자기들 말이 사실이며 이 결혼이 성사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청혼해온 사람들 중에 세도 높은 왕이나 귀족의 아들이 아닌
그 청년에게 딸을 시집 보내라고 술탄이 백작에게 권고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당신이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에 청년은 그들이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술탄이 자신의 됨됨이를 인정하여
‘남자’로서 자신을 택했으므로 자신이 응당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남자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백작부인과 친척들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자기에게 백작의 영지와
수입에 대한 권한을 모두 넘겨준다면 그들의 말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의논
끝에 합의를 보고 그가 요구한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습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하게
된 그는 비밀리에 여러 척의 배를 무장시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기일을 정해
결혼을 준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정해진 날짜가 되자 그는 화려하게 결혼식을 거행했습니다. 밤이 되어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간 청년은 자리에 들기 전에 은밀히 백작부인과 친척들을
불렀습니다. 지기보다 더 뛰어나고 부유한 사람들 중에서 백작이 자기를 선택한
것은 그들도 이미 알고 있듯이 딸을 ‘남자’와 결혼시키라는 술탄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술탄과 백작이 자기를 그토록 믿어주었는데 남자로서 응당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남자도 아닌 셈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영지를 남겨둔 채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말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그는 아르메니아로 가서 그곳의
말과 풍습을 배울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그는 술탄이 사냥에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투함을 항구마다 한 척씩 배치해 놓고
자기가 명령할 때까지 정박지에서 나오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훌륭한 사냥용 새와 사냥개를 여러 마리 구해 술탄의 궁으로 갔습니다.
그가 술탄의 궁에 당도하자, 크게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환영의 뜻으로
귀족에게 의당 그렇게 하듯 그의 손에 입맞추는 이도,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해오는
이도 없었습니다. 술탄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무엇이든 주라고 했으나, 젊은이는
그런 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기에 술탄의 호의를 사양할 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기와 자기 부하들이 얼마간 술탄의 집에 머물면서 이것 저것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에 덧붙여 술탄이 사냥의 명수라는 소문을
듣고 훌륭한 사냥용 매와 사냥개들을 가져왔으니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기는 나머지를 데리고 술탄을 따라 사냥을 가고, 지기
힘이 닿는 데까지 술탄을 위해 무슨 일이든 봉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술탄은 매우
고마워하며 가장 좋아보이는 사냥용 매와 사냥개를 골랐습니다. 젊은 이는
술탄으로부터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약속을 얻어내거나 특혜 같은 것을 받은 바는
없었으나 꽤 오랜 기간을 술탄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사냥을 나갔을 때 매를 따라 학을 쫓아가다가 전투함 한
척이 청년의 명령대로 배치되어 있는 항구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말을
탄 술탄과 백작의 사위는 동료들로부터 너무 멀어져서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매들이 학을 잡아 물어뜯고 있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술탄은 매들을 돕기 위해 신속히 말에서 내렸고, 백작의 사위는
술탄이 땅에 내려오자 전투함에 있던 부하들을 불렀습니다.
사냥감에만 열중해 있던 술탄은 자기가 전투함에서 내린 군사들에게 포위된 것을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 청년은 칼을 뽑아들어 그를 해치려 하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술탄은 그제서야 자기가 함정에 빠져든 것을 알고 가슴을 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백작의 사위는 술탄에게 당신은 내가 주는 것을 모두 받았으나
자기는 술탄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않았으니 빚진 것도 없고, 또 당신의 신하도
아니므로 당신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없다고 하면서 불만은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는 술탄을 붙잡아 전투함에 태우고 나서, 자기는 ‘진정한 남자’이기 때문에
훨씬 나은 다른 사람들을 제쳐두고 술탄이 권해 선택된 백작의 사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라서 자기를 택했는데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남자’도 아닌 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술탄이 해준 충고가 훌륭한
것이고 진실 된 것이라는 것을 장인이 알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충고를 해준 것에
대해 만족해 하시도록 장인을 넘겨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술탄은 충고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맞춘 그를 치하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장인을 넘겨줄 테니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습니다.
사위는 술탄의 말을 믿고 그를 배에서 내려주었고 부하들에게 사람들 눈에 뛰지
않을 때까지 부두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명령한 후 자기도 따라 내렸습니다.
술탄과 백작의 사위는 매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따라온 사람들
눈에 술탄은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자기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을에 도착하자 곧 그들은 백작이 포로로 잡혀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술탄은
그를 보자 기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백작님, 제가 당신게 해드린 조언이 올바른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여기 이
사람은 바로 당신을 구하러 온 당신의 사위입니다.”
술탄은 그의 사위가 자기를 포로로 잡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었고, 자기에게
보여주었던 신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술탄과 백작 그리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청년의 지혜와 노력과 진실함을
칭찬했습니다.
술탄은 백작과 그의 사위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고, 갇혀지내는 동안의 노고를
달래기 위해 백작이 포로로 지낸 기간 동안 벌었을 수입의 두 배를 주어 그의
조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모두가 딸을 ‘남자’에게 시집보내라는 술탄의 훌륭한 충고 덕택이었습니다.
"그러니 백작님, 결혼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사람 됨됨이를
관심있게 봐야 한다고 충고하셔야 할 것입니다. 청혼자의 부와 귀족칭호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훌륭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명예가 드높아지고, 가계가
발전하며 재산은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제아무리 귀족이고 부유하다 해도
사람이 옳지 못하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게 됩니다. 부모에게서 부와 지위를
물려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감당할 그릇이 못되어서 명예도 부도 모두 잃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또 오로지 본인이 훌륭해서 재산뿐만 아니라 명예까지
높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많아 그렇게 된
사람들보다 더 칭송을 받고 존경을 받습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은 그 사람됨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사람의 현재 상태와 조건이 어떻든 간에 말입니다.
따라서 첫번째로 살펴봐야 하는 것은 결혼상대의 예의범절과 행실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려는 여자는 남자가 얼마나 똑똑하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 됨됨이가 어떤지를 첫번째로 보고 그런 후에 누가 더 높은 귀족인지, 재산이
더 많은지, 조건이 더 잘 갖춰졌는지,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본다면 그
결혼은 훨씬 더 현명한 결혼이 될 것입니다."
*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의 지위나 재산이 아니라 그의 됨됨이와
능력이다. 참된 인간은 작은 이익도 큰 것으로 만들 수 있다.@ff
열다섯번째 이야기 이간질에 속은 사자와 소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빠뜨로니오, 내겐 매우 권세 있고 정직한 친구가 있다오. 지금까지는 그에게서
의심스러운 면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요사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그가 전처럼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하오. 심지어는 나와 맞설 구실을 찾고 있다니
참으로 걱정이오. 만약 내가 자기를 의심하고 감시할 게 아니겠소? 그렇게 되면
불신과 미움이 커져 결국 갈라설 수밖에 없지 않겠소. 내가 믿고 의지할 곳이라고는
그대밖에 없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주겠소?"
이 말을 듣고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사자와 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사자와 소는 덩지 크고 힘이 셌기 때문에 다른 짐승들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사자는 소의 도움으로 육식동물을 통치했고, 반대로 소는
사자의 도움으로 초식동물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물들은 사자와 소가
서로서로 도와가며 자기들을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어왔음을 알게 되자, 동물들은 그러한 노예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자기들끼리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들은 사자와 소 사이에 불화의 씨앗 하나만 심어놓아도 자신들이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우와 양이 각각 사자와 소로부터 가장
큰 신임을 얻고 있었기에, 동물들은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사자와 소 사이에
싸움을 붙여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여우와 양은 동물들을 위해 자기들의 힘이 닿는
대로 노력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자의 조언자인 여우는 우선 육식동물 중 사자 다음으로 가장 힘이 센 곰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소가 사자를 해칠 기회를 노리고 있어서 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으며, 그런 소문이 떠돈 지 벌써 며칠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감시는 해야 할 것이라고 사자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소의 조언자인 양도 소를 빼면 풀을 먹는 모든 동물들 중 가장 힘이 센 말에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곰과 말은 그 소문을 사자와 소에게 전했습니다. 사자와 소는 그 이야기가 모두
사실일 거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가장 신임하는 자들이 둘사이에
불화를 불러 일으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자 결국에 가서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각자 믿을 만한
충신인 여우와 양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의 자초지종을 잘 알로 있는 여우와 양은 곰과 말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별
근거는 없는 일이겠지만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대비책을 모색해 두기는
해야 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먼저 상황을 좀 지켜보고 나서 일을 도모하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자와 소 사이에는 커다란 불신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둘 사이에 의심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자 소에게는 사자가 소를
시기하고 있다고, 또 사자에게는 소가 사자를 시기하고 있다고 이간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바로 상대가 마음속에 나쁜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꼬드겼습니다.
여우와 양은 거짓 조언자 노릇을 통해 얻게 될 이익에 눈이 멀어 대장에 대한
충성의 의무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참된 지혜로 일깨우는
대신 갈수록 더욱더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결국 사자와 소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사랑과 믿음은 증오와 불신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를 본 다른 동물들은 갈수록 더 그들을 부추겼습니다. 결국에 가서 그들은
드러내놓고 싸우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들은 각자가
자기들의 우두머리편에 서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모든 피해는 결국 사자와 소가
입게 되었습니다.
싸움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사자는 소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고 그에게서 힘을
많이 빼앗아갔습니다. 그러나 사자 또한 그 이후로 권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전처럼 다른 동물들을 통치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에게 힘을 행사할 수도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자와 소는 그때까지도 자기들이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 도왔기
때문에 존경받을 수 있었고 다른 동물들을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나쁜 충고를 경계하지 않았고, 둘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던 그
우정을 지키지 못해 서로 싸우게 되었으며 그 결과 모든 동물들은 군주였던 그들을
이제 더 이상 섬기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백작님, 친구분과의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그러면 소와 사자의 경우와 같은 일이 백작님께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믿고 형제가 서로 믿듯이 진정한 친구를 믿으십시오.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백작님께 뭐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본인에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그
친구도 그들이 당신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자를 벌하십시오. 아무도 그런 소리를 하거나 퍼뜨리고 다니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친구가 평생을 함께 할 정도로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면,
친구로 지내되 당신이 그를 의심한다는 것을 모르도록 조심하십시오. 백작님께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그의 작은 실수는 눈감아주십시오. 당신에게 그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그에게도 역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십시오.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시고 그의 행동에 대해 이유없이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면 우정이 지속될 것이고, 사자와 소가 범했던 실수는 범하지 않게 되실 겁니다."
* 거짓말쟁이들의 이간질에 속아 유익한 친구를 잃지 말라.@ff
열여섯번째 이야기 최고의 기사는 누구인가
여느 때와 같이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말했다.
"빠뜨로니오, 예전에 아주 막강한 세력을 가진 왕이 나의 적이었던 때가 있었소.
둘 사이의 대결은 하도 오랜 세월을 두고 계속되어 결국에는 화해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짓고 합의를 했다오. 그래서 지금은 친구가 되어 전쟁이 없어졌다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항상 서로를 의심하고 있소. 더군다나 그의 측근들이 그에게 하듯이
나의 벗들도 그가 우리 관계를 악화시킬 구실을 찾는 데 여념이 없다며 나를
불안하게 한다오. 그대는 내 모든 문제를 알고 있으니, 이런 때 어찌해야 하는지
충고해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제게 요구하시는 조언은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조언을 드리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백작님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전쟁 준비도 하고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또 당신을 모시고, 당신의 불행을 자신의
것처럼 아파하며 잘못을 깨우쳐주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께서 어떤 일에 대비를
하시도록 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리고 백작님께서 나쁜 일에 대비하시는 것을
막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며, 땅을
일구어 식량을 준비하고 요새를 튼튼히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자는 당신의 재산이
보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신께서 많은 친구와 부하를 거느리며
그들을 위해 너그럽게 베푸는 것을 저지하는 자는 당신의 명예와 영토 수호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행하지 않으면 큰 위험에 처하게 되실 것이나,
한편으로는 그 일들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어려운 일이지만 저의 조언을 바라시니 선하고 정직했던 한 기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군요."
성스럽고 자비로운 페르난도 왕이 회교도들이 점령하고 있던 세비야를 포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를 모시고 있던 많은 부하들 중에 당대 최고의 무사로 인정받고
있던 세 명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로렌소수아레스 갈리나또였으며, 두번째는
가르시아 뻬레스데 바르가스였고 세번째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하루는 이 세
기사가 서로 누가 최고의 무사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쟁이 끝날 것 같지 않자 그들은 무장을 하고 적이 점령하고 있는 세비야의
성문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세 기사는 무장을 하고 그 마을로 갔습니다. 성벽과 망루 위에서 정찰을
하고 있던 회교도들은 그 세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는 외교서신을 전하는
사자일것이라고 판단하고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 기사는 성
밖의 담을 지나 성문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기사들은 창끝으로 문을 여러 번
두드린 후 말을 돌려 다시 진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지요.
이들이 서신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회교도들은 노하여 기사들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성문을 열고 기병 천오백 명과 보병 이만 명 정도가 뒤따르기
시작했을 때 세 기사는 이미 멀리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따르는 회교도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본 기사들은 말을 돌리고 기다렸습니다. 적이 다가오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기사가 먼저 나서서 싸웠습니다. 로렌소수아레스와 가르시아
뻬레스는 움직이지 않았지요. 그러나 적이 더 가까이 오자 가르시아 뻬레스 데
바르가스가 싸우기 시작했고 로렌소 수아레스는 혼자 계속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 회교도들이 그를 에워싸고 공격을 하자 그도 용감하게 싸우기 시작했지요.
왕의 군사들은 이 세 기사가 적에게 포위된 것을 보고는 즉시 지원하러
달려갔습니다. 많이 다치고 백적간두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다행히도 이
세 기사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과 회교도들의 결투는 너무
치열했기에 페르난도 왕도 몸소 참가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승리는 기독교인들에게
돌아갔으나 진영으로 돌아오자 왕은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무모한 짓을 벌인
세 기사를 체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하들이 세 기사를 용서해
달라고 빌자 왕은 그렇게 했지요.
후에 왕은 목숨을 건 그 모험의 발단이 세 기사 중 누가 최고인가를 가리지
못하여 생긴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휘하의 모든 훌륭한 전사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세 기사 중 누가 더 훌륭했는가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모두 모이자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혹자는 처음 혼자 싸움을 시작한 기사가 가장
용감하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두번재가, 또 다른 이들은 세번째가 가장
뛰어났다고 했지요. 모든 의견의 근거와 이유가 너무도 논리정연하여 틀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격론 끝에 다음과 같은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회교도인들이 수가 많기는 하여도 세 기사들의 용기와 노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첫번재 기사가 가장 훌륭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이 너무 많아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싸움을 시작했다는 것은
승리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도망가는 수치스러움을 당할 수 없어 두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용기를 가지고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두려움을
견디면서 적이 더 가까이 다가와 공격을 할 때까지 싸움을 시작하지 않은 두번재
기사도 나름대로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랫동안 두려움을 견디고
회교도들의 공격을 직접 받고서야 싸움을 시작한 로렌소 수아레스 갈리나또가 세
기사 중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뛰어나다.”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께서는 불안과 공포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또한 한번 시작하면 쉽게 끝나지 않는 전쟁이 있다는 것도 아시지요.
그러나 불안하실수록 그만큼 더욱 현명하게 대처하실 수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대비하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갑자기 당신에게 화를 입히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가 충고하건대 절대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마시고 급작스럽게 큰 화를 입지는
않으실 것이니 상대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사람들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 근거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자들은 뭔가 일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측근이나 상대의 친구들도 전쟁을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스스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시에는 쓸모 없으며 온전한 평화를 즐길
줄도 모릅니다. 그들은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란을 피워 그 틈을 타
축재나 하려고 하며, 당신을 심란하게 만들어놓고는 재산을 갉아먹으려고 할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당신께 해가 되는 일을 하더라도 그들을 정확히
파악하시는 한 당신께서는 안전합니다. 당신은 모든 일에서 소신껏 행동한다는 것을
만인이 알게 될 것 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백작님께서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으신다면 아무도 당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백작님께 해가 되는
일을 하면서까지 못된 자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평화를
누리실 것이며 착한 이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 타인의 불평을 받아주느라 해를 입지 말라. 고통을 참을 줄 아는 자만이
승자이니.@ff
열일곱번째 이야기 사자 앞에 선 두 마리 말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과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오래 전부터 내게 많은 해를 끼치고, 무척 괴롭히는 원수가 한 놈
있소. 우리는 서로 하는 일이 다를 뿐만 아니라 마음도 맞지 않다오. 그런데 최근에
우리 둘보다 더 세력 있는 자가 나타나서는 우리에 게 큰 해가 될 일을 하고 있다
하오. 일이 이렇게 되자 원수로 지내던 그 놈이 이젠 화해하고 이 자로부터 서로를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제의를 해오지 않았겠소? 둘이 합심한다면 우리를
확실히 지켜낼 수 있지만 따로 떨어져 있다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자에게 둘중
하나가 손쇱게 제거될 거라고 말이오. 그렇게 된다면 남아 있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오.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큰 고민이라오.
한편으로는 그 놈이 나를 속일까 두렵기도 하고 말이오. 일단 그 놈과 가까워지게
되면 내 목숨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닐 것이오. 둘이 가까이 지내게 된다면 내가
그를 믿고 그가 나를 믿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으나, 실은 그 점이 몹시 불안하오.
반대로 만약 내가 그 놈의 제의를 거절한다면 이미 말했듯이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오. 당신을 믿고 당신의 지혜를 알고 있으니, 지금 내가 행해야 할 바를
알려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도 위험한 일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으시려면 튀니지에서 헨리 왕자를 모시던 두 기사에게 있었던
일을 아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튀니지에서 헨리 왕자를 모시던 기사가 두 명 있었지요. 그들은 매우 친해서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두 기사는 각자 말을 한 마리씩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마리 말은 주인들과는 반대로 서로를 미워했다는군요. 두 기사는
따로 살 만큼 재산이 넉넉하지 못했지만 서로 증오하는 애마들 때문에 같은 집에
살수가 없었지요. 이렇듯 불편한 생활을 하던 중 두 기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궁에서 사자를 기르고 있던 튀니지 왕에게 그 말들을 줘버릴 것을 헨리 왕자에게
부탁하였습니다.
헨리 왕자는 사정의 내막을 이해하고 튀니지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요. 이 왕은
즉시 말들을 사들여 사자를 가두어놓은 우리에 함께 넣어버리도록 하였습니다. 한
우리에서 만나게 된 말들은 끔찍할 정도로 서로 물고 뜯으며 싸움을 벌였지요. 그때
한쪽에 갇혀 있던 사자를 풀어놓았습니다. 사자를 보자 두 말은 사시나무마냥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서게 되었지요. 한동안 아주 가깝게
있던 말들은 같이 사자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는 물어뜯고 걷어차고
하며 사자를 몰아붙였습니다. 사자는 종전에 갇혀 있던 우리로 쫓겨났고 말들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지요. 그 후부터 이 두 동물은 절친한 사이가 되어 같은
구유에서 먹고, 같은 마구간에서 잤다고 합니다. 둘이 가까워진 이유는 사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루까노르 백작님게서 그 원수가 두려워하는 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백작님을 필요로 하고 지난 날의 나쁜 기억을 다 잊으려 한다고 믿으시면, 그 두
마리 말들이 가까워져 불신을 없애고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백작님도 옛
원수에 대한 신뢰를 가져보십시오. 그가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신의를
지킨다면 그를 믿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타인에게 화를 입지 않도록 서로 돕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사람은 때로 그 사람이 밉더라도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타인이 우리에게 저지를지 모르는 악행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보아 위험이 지난 후에 당신을 해칠 수 있으며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예측
할 수 있으면 그를 돕는 것은 우매한 일이므로 가능한 한 빨리 그를 멀리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위험에 처한 자가 자신을 구해주는 사람에 대한 나쁜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기회가 닿을 때마다 복수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지요."
* 낯선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되, 측근들의 악행에도 방심하지 말라.@ff
열여덟번째 이야기 조롱받은 선한 일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방에서 빠뜨로니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그대가 알고 있듯이 나는 뛰어난 사냥꾼이라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사냥을 하곤 했소. 이를테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올가미나 그물 같은 것을 사용했단 말이오. 그런데 지금은 나에 대해서
험담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그것을 두고 나를 조롱하고 있소.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시드나 페르난 곤잘레스 백작, 성인들 혹은 페르난도 왕을 칭찬할 때에
나에 대해서도 칭찬하는 것을 들을 수 있지만 그물이나 올가미 등을 사용하는 나의
사냥법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되면 어느새 조롱하는 투가 된다오. 그들이 하는
칭찬은 존경이라기보다 모욕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조롱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는지 조언을 해주시오."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꼬르도바의 아랍 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꼬르도바에 알하켄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가 통치하면서 나라가 평화로워지자
그는 이에 만족할 뿐 다른 왕들이 흔히 강조하는 명예나 명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왕들에게는 나라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업적을 쌓아서 통치를 강화시키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하켄
왕은 자신의 통치 이외의 업적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단지 먹고 마시며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뜰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악기는 모로인들이 즐겨 부는
피리였는데 왕은 그 피리소리가 원래의 소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 악기를 가져다가 악기 아랫부분에 구멍을 내었고, 그러자 피리소리는
전보다 한결 좋아졌습니다.
왕은 유익한 일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왕으로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왕을 존경하는 척하며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칭찬하는 말로서, ‘알하켄 왕의 추가물이구나’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말이 온 나라에 퍼져 왕의 귀에까지 이르자 왕은 신하들에게 사람들이 그 말을
왜 그리 즐겨 사용하는지 물었습니다. 신하들은 애써 숨기려 했지만 왕이 자꾸 묻는
바람에 대답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듣고 난 왕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자꾸 사용하는 사람들을 벌하기보다 왕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왕은 짓고 있던 꼬르도바의 회교 사원을 완공 시켰습니다. 이 사원은
현재까지 모로인들이 스페인에서 지은 사원 중 가장 크고 훌륭한 사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산타 마리아 교회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답니다.
그 전까지는 조롱하며 거짓으로 왕을 찬양하던 사람들이 왕이 회교 사원을 지은
이후로는 진심으로 그를 받들고 찬양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작님, 사람들이 사냥을 위해 발명한 그물과 올가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조롱한다면, 이번에는 위대하고 품위있는 업적을 쌓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당신의 업적에 대해 감탄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 선하되 위대하지는 못한 일을 했다면, 더 정진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라.@ff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2
지은이: 후안 마누엘
옮긴이: 김창민, 강성식 외
펴낸곳: 도서출판 자작나무
(저자 약력)
* 지은이: 후안 마누엘(Don Juan Manuel)
1282년 스페인의 에스깔로나(Escalona)에서 태어났으며, 뻬로뻬스 데 아알라 주교와 함께
14세기 스페인의 산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현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알폰소 10세(제위기간: 1252--1284)의 조카라는 신분
덕택에 젊어서부터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였고, 페르난도 4세와 알폰소 11세 때에는
전쟁에 활발히 참여했다. 나이가 들자 자신이 도미니크 수도회에 기증한 뻬냐피엘 수도원에
들어가 작품활동을 하다가 1348년 삶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토록 도미니크 수도회를
정신적^5,23^물질적으로 후원하면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지만 동시에 부와 명예에 관한
세속적인 관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기사와 시종에 관한 이야기 Libro de caballero et del escudero',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이야기 Libro de los estados'가 있고 그 외에도 '시가집 Libro de los cantares o de
sus cantigas', '산추린 연대기 La cronica abreviada', '무기교본 Libro de las armas' 등이 있다.
* 옮긴이: 김창민
1959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동 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멕시코 구아달라하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중남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서로는 '저주받은 사랑'(열음사), '미국은 섹스를 한다'(자작나무)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푸에르토리코 현대소설에 나타난 문화적 갈등', '수필에 나타난 에르네스또 사바또의
문학관'이 있다.
강성식, 이소현, 박정희, 전미연, 정수현, 최철훈, 한희주, 허인숙: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대학원 재학중@ff
첫번째 이야기 서로 다른 두 부부의 이야기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이야기했다.
"빠뜨로니오, 내겐 이미 결혼한 두 형제들이 있소. 그 중 하나는 부인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절대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고, 반대로 또 다른 하나는 부인을 너무나 싫어하는 나머지
아예 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오. 이 두 동생들이 항상 내겐 큰 걱정이오. 그러니 현명한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내게 조언을 해주길 바라오."
그러자 이야기를 들은 빠뜨로니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백작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백작님의 형제들은 두 분 다 잘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인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도, 그렇게 싫어하는 것도 내색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형제분뿐 아니라 부인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을 겁니다. 글쎄, 이런 경우 백작님께
화드리께 황제와 그의 황후 그리고 알바화네스 미나야와 그의 부인의 이야기를 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화드리께 황제는 한 귀족처녀와 결혼을 했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결혼하기 전부터 있던 부인의 나쁜 습관을 황제가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그녀는 점점 다루기 어려운 여자가 되어갔습니다. 황제가 잠을 자고 싶어할 때
그녀는 깨어 있으려 했고, 황제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표시하면 그녀는 즉시 그 사람을 증오하는
식이었죠. 황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그녀는 싫어하며 황제가 하는 모든 일에 반대로
행동하곤 했습니다.
처음엔 참으려 했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부인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자, 황제는 자신의 그런
고통스런 삶은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라와 백성들에게도 해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행동하려면 어떤 합리적인 생각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죠. 결국 황제는 교황에게 가서 그간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혼을 허락해 줄 것을
탄원하였습니다. 교황 역시 황후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결혼생활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긴 했지만 천주교리상 이혼은 금지된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황제는 자기 나라로 되돌아와 아부와 충고, 협박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시 한 번 시도해보았지만 황후의 나쁜 습성은 더욱 심각해질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황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슴사냥을 하러 나가는데 사슴을 죽이기 위해 화살촉에 묻힐 독성분이 있는 풀을 조금
가져갈 것이오. 남은 풀은 다음번 사냥을 위해 남겨두고 가는데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절대로
피가 나는 상처부위나 종양 근처에 닿게 해서는 안 되오.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떤 생명체든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이 생길 테니 조심하시오."
그리고 나서는 부인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몸에 있는 종기 치료에 좋다는 고약을 발랐습니다.
부인뿐 아니라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약효가 얼마나 금방 나타나는지 알게 되었죠.
그리고 황제는 부인에게 상처를 치료하려면 고약을 사용하지 절대 풀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재차 당부한 후 사냥을 떠났습니다.
황제가 떠나자마자 황후는 이렇게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황제가 내게 뭐라고 얘기했는지 아세요? 그는 내가 앓고 있는 옴이 나기가 앓고 있는
종기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게 자신이 사용하는 고약을 사용하라고 했답니다. 그 약으로는
내 병이 치료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는 내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풀은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나는 그가 돌아왔을 때 내가 다 나은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 풀을 바르겠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마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걸
테니까 말이에요."
그러자 곁에 있던 신하들과 궁녀들은 그 풀을 바르면 목숨을 잃게 될 테니 제발 그만두시라며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황후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상처부위에 풀을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죽음이 엄습했고 그녀는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할 틈도 없이 그 고집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되었지요.
화드리께 황제 이야기가 끝나자 빠뜨로니오는 알바화네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스까르 지방에는 선하고 정직한 알바화네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꾸례야르 지방엔 세
딸을 둔 뻬드로 안수레스 백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알바화네스는 예고도 없이 뻬드로
백작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백작은 갑작스런 그의 방문에 매우 놀라긴 했지만 함께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지요. 이윽고 갑작스럽게 방문한 이유를 묻자 알바화네스는 백작의
세 딸 중 한 사람에게 청혼을 하려 했는데, 그 중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을 고를 수
있도록 세 딸과 따로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갖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알바화네스가 훌륭한
청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백작은 흔쾌히 요구를 받아들였지요.
백작의 첫째딸과 은밀히 만난 자리에서 알바화네스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먼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저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젊진 않답니다. 전쟁에서 부상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몸이 아주
약하기도 하구요. 또 술을 조금만 마셔도 이성을 잃고 난폭해지기 일쑤며 정신이 들면 내가 무슨
얘길 했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한답니다. 이런 버릇 때문에 보통 여자들은 나와
결혼하길 꺼려하죠."
이야기를 모두 들은 첫째딸은 결혼이라는 건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부모님의 문제이기도
하니 부모님과 상의해 보겠다고 대답한 후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부모에게 그런 사람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백작은 알바화네스에게 큰딸은 아직
결혼할 뜻이 없는 것 같다고 둘러댔습니다.
다음으로 둘째딸과 이야기를 하게 된 알바화네스는 그녀에게 역시 똑같은 이야기를 했고
둘째딸의 반응 역시 큰언니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들은 막내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분이 제게 청혼을 하다니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그리고 당신이
말씀하신 그 술버릇은 제게 맡기세요. 제가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할테니까요. 그리고 당신의
나이 또한 결혼생활을 하는데 장애가 되진 않을 거예요. 그런 결혼생활로부터 얻는 좋은 것들도
많을 테니까 말이죠. 그 외에 다른 일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화나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설사 당신이 화를 낸다 하더라도 한마디 불평없이 참을 수 있으니까요."
결국 알바화네스의 말에 막내딸만 현명한 대답을 했으며 그는 매우 만족해서 이해심 많은
여자를 만나게 해준 신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곧 뻬드로 백작에게 막내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고 백작 역시 기쁜 마음으로 즉시 결혼식을 치러주었습니다. 그의 부인이 된 막내딸
도냐 바스꾸냐나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여인이었기 때문에 알바화네스는 매우 행복해 했으며
그녀가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항상 배려했습니다.
그녀도 남편을 매우 사랑했으며 남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모든 언행은 항상 옳다고
믿었습니다. 남편의 모든 행동과 말들이 그녀를 항상 기쁘게 했으며 남편이 좋아하는 어떤
일에도 반대의 뜻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남편을 기쁘게 하거나 남편에게 아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이 원하거나,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이 옳으며 누구도 그보다 더
옳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진정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현명하고 신중해서 언제나 이치에 합당한 일을 했기 때문에 알바화네스도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녀가 하려는 모든 일을 언제나 따르고 존중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알바화네스 집에 조카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그 조카는 궁정에서 왕의 시중을
들던 자였는데 얼마간을 숙부 집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조카가 알바화네스에게
숙부는 모든 것이 다 좋지만 한 가지 흠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숙부가 숙모에게 재산을
관리하는 데 너무 많은 권한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알바화네스는 며칠 후면 그 까닭을
알게 될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알바화네스는 부인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조카를
데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사람을 보내 부인이 자신의 뒤를 따라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에선 숙부와 조카가 말을 타고 가고 있었고, 멀리 뒤에선 부인이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가다 그들은 소떼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그러자 알바화네스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너 보았니? 얼마나 멋진 말들이냐!"
이 말을 들은 조카는 놀라긴 했지만 숙부가 농담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숙부, 저건 말이 아니라 소예요."
그러자 숙부는 여전히 소떼를 보고 말떼라고 우겼습니다. 조카 역시 숙부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며 입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멀리서 바스꾸냐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조카는 숙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숙모님, 숙부와 저는 지금 말다툼을 하고 있었어요. 숙부가 저 소들을 보고 계속 말이라고
우기시길래, 제가 저건 말이 아니라 소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숙부는 제 정신이 나갔다고
하시네요. 그러니 숙모님이 숙부님께 누가 옳은지 말씀을 해주세요."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도 저 무리가 소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 알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숙부가 저것이
말들이라고 확신하신다면 확실히 저건 소가 아니라 말일 테니까요."
그리고는 조카와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 동물의 색깔이나 특징을 가리키며 남편의
주장이 맞다고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확신에 차 이야기를 하자 그 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자신들이 착각을 했으며, 그들이 본 것은 알바화네스의 이야기대로
소떼가 아니라 말떼였을 거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다시 길을 가던 중 그들은 이번에는 말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알바화네스는
조카에게 말떼를 보고 소떼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조카는 역시 소떼가 아니라 말떼라고 말하며 숙부가 정신이 나갔다고
했습니다. 알바화네스 역시 다시 말떼를 보고 소떼라고 우겼고 또 다시 그들의 입씨름이
시작되었지요. 그러던 중 바스꾸냐나가 또 다시 그들이 있는 곳까지 다다랐고, 소떼를 만났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바스꾸냐나의 설득으로 함께 있던 사람들은 말떼를
소떼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다시 길을 가던 중 그들은 물레방아가 있는 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말들에게 목을 축이게
하면서 알바화네스는 이 강은 위로 흐르고 있으며 그래서 물레방아는 위에서 아래로 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 위로 받고 있다고 조카에게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조카는 자신이 말을 소로, 소를 말로 생각했을 때처럼 또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말해 또다시 입씨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후 바스꾸냐나가 도착하자 그녀는 남편의 뜻에 동조하며 여러 이유를 들어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또다시 조카가 착각했다고 믿었지요. 그러자 이젠 조카
자신도 바스꾸냐나의 말에 설득되어 스스로가 판단력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조카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알바화네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언젠가 네가 나에게 얘기했던 그 한 가지 흠에 대해 이젠 답이 된 것 같구나. 사실 나
역시 너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단다. 처음에 본 것은 네 말대로 소였고, 나중에 본 것
역시 네 말대로 말이었지. 물론 네 숙모 역시 네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네 숙모는 항상 나의 판단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내가 착각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유와 논리를 대면서 내가 옳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믿게끔 한 것이란다. 네
숙모는 우리가 결혼한 첫날부터 내가 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았고, 언제나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가장 옳고 합당한 일이라고 믿어왔단다. 어떠한 순간에도 내 이름과 명예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며 모든 이에게 내 뜻에 복종해야함을 일깨워주었단다. 그것은 결코
자기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명예를 위해서였지.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
나를 위해 이렇게 했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아내가 나를 위해 이렇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니 네 숙모를 위해 무엇인들 못하겠니."
조카는 알바화네스의 이야기를 듣고, 숙부가 숙모를 그렇게 사랑하고 숙모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황제의 부인과 알바화네스의 부인은 상당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의
동생들이 한 분은 부인을 끔찍히 사랑하고 또 다른 한 분은 끔찍히 싫어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아마 그 동생분들의 부인은 제가 말씀드린 황후나 바스꾸냐나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부인들이 그러하다면 동생분을 비난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두 경우처럼
부인들이 그렇게 선하지도 그렇게 제 맘대로인 것도 아니라면 그땐 남편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불신감이 생기면 결국은 앞에서 말한 화드리께 황제와 황후의 경우처럼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깨달아 남편이 부인을
신뢰하고 부인도 남편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 부부 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다.@ff
두번째 이야기 변덕스런 아내를 둔 남자 이야기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빠뜨로니오, 내게 항상 도움을 청하는 한 사람이 있소. 그런데 그 자는 내가 도움을 주었을
때는 감사하게 여기지만 계속되는 부탁을 한번이라도 거절하면 그동안 내가 해주었던 일들은
모두 잊고 불만을 토로한다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소.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루까노르 백작에게 세비야의 왕 아베나벳과 그의 부인 라마이끼아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세비야의 왕 아베나벳은 부인 라마이끼아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부인이었기에 아랍인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흠이
있었는데 그것은 때때로 심한 변덕을 부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해 2월 그들이 꼬르도바에 머무를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폭설이 내렸는데 이를 본
라마이끼아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부인에게 우는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항상 눈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꼬르도바의 모든 산에 편도나무를 심게 했습니다. 꼬르도바는
날씨가 더운 지역이라 거의 눈이 내리지 않지만 다 자란 2월의 편도나무는 눈이 흩날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왕은 이렇게 해서라도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또 하루는 라마이끼아가 강이 내다보이는 방에서 한 여자가 맨발로 진흙탕 속에 들어가 벽돌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우는 이유를 묻자, 자신은 강가에 있는 그 여자처럼 저런 일을 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부인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꼬르도바의 큰 연봇에 원래의 연못물 대신 장미빛 물을 채우게 하고, 진흙 대신에 설탕, 계피,
향료, 사향 등 좋은 냄새가 나는 모든 것으로 채워놓게 했습니다. 또한 짚 대신 사탕수수를
심어놓게 했습니다. 연못에 모든 준비가 다 끝나자 왕은 부인에게 신을 벗고 들어가 진흙 속에서
만들고 싶은 만큼 마음껏 벽돌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또 어떤 이유에서인지 라마이끼아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를 묻는 왕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냐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한 나머지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왕은 그녀에게 이렇게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지요.
"다른 건 다 잊어도 내가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준비했던 그 진흙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아무리 많은 것을 해주어도, 부탁하는 것을 모두
다 들어주지 않는다면 결국 나중에 그 사람은 백작님이 해주신 일들을 다 잊고 오히려 불만을
토로할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 백작님의 재산에 피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또한 누군가가
백작님을 위해 무슨 일을 했을 때 비록 흡족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에게 받은 도움을 결코
잊지는 마십시오.
* 남들이 자신의 선행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선행의 미덕을 버려서는 안 된다.@ff
세번째 이야기 눈먼 남편을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른 아내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조언자 빠뜨로니오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많은 전투로 인해 적지 않은 재산을 잃었소. 그런데 부하
중 몇몇은 나의 호의를 그토록 많이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배신해 곤경에
빠뜨렸다오.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람을 신뢰할 수가 없다오.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좀 해주시오.
"백작님, 만약 당신을 곤경에 빠뜨린 사람이 다음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세 기사들과 같은
사람이라면, 또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더라면 결코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없었을 겁니다.
옛날에 로드리고라는 백작이 살고 있었지요. 그는 훌륭한 아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구실을 들어 아내를 괴롭혔습니다. 남편의 학대에 견디다 못한 아내는 신에게
기도하기를 만약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신에게 벌을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남편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했지요.
그러자 신은 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에게 나병이라는 형벌을 내렸고 그 후로 그들은
헤어졌지요. 그 소식을 들은 나바라 왕국의 임금은 사절을 보내어 그녀에게 구혼을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나바라의 왕비가 되었지요.
한편 로드리고 백작은 자신이 나병에서 결코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성지에서 죽기
위해 순례를 떠났답니다. 그에게는 막강한 권력과 훌륭한 부하들이 많이 있었지요. 하지만 막상
성지를 향해 떠나려 하자 세 명의 기사만이 따를 뿐 아무도 그를 계속 섬기려 하지 않았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세 명의 기사만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지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하게 되자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본국을 떠날 때 가져온 재물도
바닥이 나서 결국에는 백작에게 먹을 것조차 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요. 그래서 세 명의
기사들은 품삯일을 해야 했지만 밤이 되면 그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백작을 목욕시키고 나병의
종기를 씻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들은 백작의 다리를 씻겨주다가 입에 침이 고이자 그것을 뱉어내었지요.
그러나 백작은 기사들이 자신의 상처 때문에 구역질이 나서 침을 뱉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비탄에
빠져 슬피 울었답니다.
그러자 기사들은 오해를 풀기 위해 백작을 씻기고 난 고름으로 뒤덮힌 물을 한손 가득히 담아
단숨에 마셔보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백작이 죽는 날까지 비참한 생활을 보냈지요.
백작이 죽고 나자, 그들은 주인도 없는데 돌아가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여
본국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백작을 화장시키고 뼈만이라고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지요. 그러나 기사들은 백작이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고 나서도
그의 몸에 손대는 것이 불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장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백작을
땅에 묻고 백작의 몸이 모두 흙으로 변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지요.
세월이 흘러 백작의 몸은 흙으로 변했고, 그들은 백작의 뼈를 상자에 담아 본국을 향해
떠나기로 했답니다. 때로는 상자를 둘러멘 채 구걸을 해가며 여러 나라를 지나가야 했지요.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 가련한 기사들이 똘로사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부일을
화형시키겠다며 모여 있었는데, 그 부인은 간통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만약 부인을
위해 싸울 기사가 있다면 그녀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싸울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지요.
이 소식을 들은 충직한 기사 뻬드로는 만약 그녀가 진실로 죄가 없다면 자기가 그녀를 위해
싸우겠다고 동료들에게 말했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진실을 물어 보았지요. 그러자 그녀는
마음 속으로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했었지만 실제로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기사는 그녀가 마음 속으로나마 죄를 저질렀다는 말에 그리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마음 속으로 지은 죄로 인해 자신에게도 약간의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녀가 실제 행동으로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싸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고발한 사람들은 기사만이 싸울 자격이 있다며 거부했지요. 그러자 뻬드로
기사는 이제까지 적어둔 그들의 기록을 보여주었답니다. 그 기록을 보자 그들도 별 수가
없었지요. 부인의 부모는 뻬드로 기사에게 말과 무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결투장에 나가기
전에, 신의 가호로 기사는 명예를 그리고 자기 딸은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지요. 하지만
자기의 딸이 마음 속으로나마 죄를 지었기 때문에 어떤 불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사는 신의 도움으로 결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쪽 눈을
잃어버렸지요. 염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기사는 부인과 친척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고, 덕분에 그들은 별 어려움 없이 본국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충직한 기사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본국의 왕은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왕국에 그렇게 위대한
기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에게 충심으로 감사했답니다. 그리고는 사신을 보내 평소의 누추한
복장 그대로 왕국에 들어와 줄 것을 그들에게 요청했지요. 기사들이 왕국에 도착했을 때, 왕은
말도 타지 않은 채 친히 나가 그들을 맞이하며 그들의 충성심을 치하했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큰 상을 내렸지요. 그 상은 워낙 대단한 것이어서 오늘날까지도 계속 후손들에게
상속되고 있답니다. 게다가 기사들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왕과 신하들은 백작의 영지
오수나까지 동행했고, 백작의 유해를 안장하고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 중 다른 한 명의 기사 곤잘레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지요. 그런데 갑자기 아내는 앞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는 하늘을
향해 합장을 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 날을 보게 해주시다니. 신이시여,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고기와
포도주는 남편이 떠난 이후로 처음입니다."
기사는 이 말은 듣고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아내는 남편이 조국을 떠나면서
했던 말을 상기시켰습니다. 즉 기사는 백작과 함께가 아니라면 절대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그동안 자기 부인으로서 명예를 잘 지키라고 했던 겁니다. 그리고는 집에 빵과 물은 절대
부족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그 후로 아내는 어려운 생활에도 남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았고, 남편에 대한 신의로 식사 때마다 물과 빵만 먹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기사 뻬드로가 집에 도착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의 아내와 친척들은 그가 돌아온 것을
매우 기뻐하며 웃음으로 맞이해 주었지요. 하지만 기사에게는 그들의 웃음이 잃어버린 자기의
눈에 대한 비웃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망또로 얼굴을 가린 채 슬픔과 탄식에 빠져 병져
누웠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뻬드로가 괴로워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남편 모습을 보다 못해 그 이유를 물었지요. 그러자 기사는 남들이 자기의 눈을 비웃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어디선가 바늘을 하나 가지고 와서는 자기의 한쪽 눈을 찔렀습니다.
남편이 놀라 그 이유를 묻자, 자기의 웃음이 남편에 대한 비웃음으로 오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세 명의 기사들은 신의 도움으로 행복한 여생을 누릴 수 있었답니다.
백작님, 당신께 그런 짓을 한 사람이 앞에서 얘기한 세 명의 기사와 같이 충직한 사람이거나
자신들이 이제껏 누린 호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짓은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백작님을 저버린다고 선행을 중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나쁜 짓은
백작님보다도 그들 자신에게 더 해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백작님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백작님을 충심으로 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백작님께는
배신보다 충성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아울러 이제까지 잘 대해주었다고 그들이 모두
백작님께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하셔도 안 됩니다. 그러나 호의를 베풀다보면 언젠가는 그러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 비록 몇몇 사람이 당신을 실망시켜도 호의를 베푸는 것을 멈추지는 말라.@ff
네번째 이야기 사냥꾼의 눈물에 속은 메추라기
언젠가 빠뜨로니오와 이야기하던 중 루까노르 백작은 이렇게 말했다.
"빠뜨리니오, 때때로 사람들이 내게 고약한 일을 할 때가 있소. 내 재산이나 부하들에게 해를
입히고 난 후에 그 사실에 대해 심히 후회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 앞에서
변명을 한다오. 이럴 때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으니 의견을 말해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이 고민하고 계시는 그 문제는 메추라기 사냥을 하던 한 남자에게
일어난 일과 꽤 유사하군요."
한 남자가 메추라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쳤습니다. 메추라기가 그물에 걸리자 사냥꾼이 다가와
한 마리씩 죽이면서 그물에서 빼내고 있었지요.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 사냥꾼은 먼지로 인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아직 그물 안에서 목숨을 부지하던 메추라기 한 마리가 다른
메추라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들, 이것 좀 보시오. 이 남자는 비록 우리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마음으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소."
방금 이렇게 말한 메추라기보다 현명해 사냥꾼의 그물을 피할 수 있었던 다른 메추라기가 그
근처를 날고 있다가 이 얘기를 듣고 이렇게 빈정거렸습니다.
"이것 보시오. 내가 당신 경우라면 나는 그물에 걸리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하겠소. 그리고
앞으로도 나와 내 친구들을 죽이고 해치고 난 후에 마음 아파 우는 사람의 손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빌겠소."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을 해치면서 그 일로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단,
실제로 악의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소의 태도를 보시고,
그 행동이 불가피했으며 진실로 마음 아파한다고 판단되시면 눈감아주십시오. 그러나 실수하는
일이 자주 있어서 당신께 화를 입히거나 명예를 훼손하면 한 된다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 반대로 계속 그런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멀리 내쳐서 당신의 재산과 명예를 보존하십시오.:
* 짐짓 괴로운 척하며 해를 끼치는 자를 만나게 되면 그를 멀리할 궁리를 하라.@ff
다섯번째 이야기 아랍의 세왕자 이야기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내 집에는 젊은이들이 몇 사람 있는데 그 중 몇 명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되는
이들의 자식이고, 몇 명은 이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의 자식들이라오. 그런데 그들의 거동을
지켜보자면 과연 그들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걱정이 된다오. 당신은 지혜로운 사람이니
이들 중 내게 쓸모있게 될 자와 그렇지 않을 자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가르쳐주오."
"그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미래란 불확실한 것인데 백작님의
질문은 바로 그 미래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몇
가지 징조를 가지고 짐작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조로는 외모나 안색,
행동거지 그리고 체격 등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단지 징후에 불과하며 실제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어떤 외적 징후들을 보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더 뚜렷한 징후는 얼굴, 특히 눈에 나타납니다. 이것은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생겼지만 인물값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못생겼지만 믿음직한 사람도
있습니다. 균형잡힌 신체는 민첩함과 용기의 징후일 수 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징후에
불과합니다. 백작님께서 그 청년들의 가능성을 점쳐보고 싶으시다면 그들 내부의 품성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를 잘 살펴보십시오. 참고 삼아 한 아랍 왕이 왕국을 물려줄 후계자를
결정하기 위해 세 아들을 시험했던 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아랍의 어느 왕에게 아들이 셋 있었습니다. 왕이 노년에 접어들자 셋 중 한 명에게 왕관을
물려주어야 했기 때문에, 신하들은 어느 아들에게 왕좌를 넘겨줄 건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한 달이 지난 후에 말해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후 왕은 큰아들에게 다음날 아주 일찍 말을 타러 나가고 싶다며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왕자는 왕에게로 갔지만 왕이 말했던 만큼 이른 시각은 아니었습니다. 왕자가
도착하자 왕은 옷을 입어야 하니 자기 옷을 가져오게 하라고 왕자에게 지시했습니다. 왕자는
시종에게 옷을 가져오라고 했고 시종은 왕께서 무슨 옷을 입으실 거냐고 왕자에게 되물었습니다.
아들은 그것을 묻기 위해 왕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왕은 알후바(아랍인이 입는 소매가 짧고 좁은
외투의 일종)를 입고 싶다고 말했고, 왕자는 시종에게 돌아가 왕이 알후바를 입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시종은 어떤 알메히아(역주: 스페인 내의 아랍족이 있었던, 거친 천으로 짠
작은 망토)를 입으실 건지 물었고, 왕자는 다시 왕에게 그것을 물으러 가야만 했지요. 왕자가
이렇게 몇 번이고 왔다갔다한 후에야 왕은 옷을 입고 신을 신을 수 있었습니다.
옷을 입고 신을 신자, 왕은 왕자에게 말을 끌고 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왕자는 왕의 말을
돌보는 사람에게 말 한 마리를 끌고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마구간지기는 어떤 말을 타실 건지
물었고, 왕자는 왕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안장과 재갈과 칼과 박차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말에 타기 위해 필요한 것 하나하나 때문에 그는 일일이
왕에게 물으러 간 것이지요.
모든 것이 준비된 후, 왕은 왕자에게 자기는 말을 탈 수 없겠으니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잘
보고 와서 자기에게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말에 올라탄 왕자는 수많은 신하들을 동반하고 풍악소리를 크게 울리며 행차를 시작했습니다.
얼마간 마을을 돌아다닌 후 왕자가 돌아오자, 왕은 마을에 나가서 보고 온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왕자는 풍악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던 것을 빼고는 모든 게 좋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뒤에 왕은 둘째아들을 불러 첫째아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둘째아들도 큰 아들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은 막내아들에게 다음날 아침 일찍 자기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막내아들은 아주
일찍 일어나서 왕이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왕이 일어나자, 왕자는 공손하게 절을 하며
들어왔습니다. 왕이 옷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자 왕자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을 신으실 건지
물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마치 자기 행동이 아버지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자신에게 또한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 아버지이므로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드리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옷을 입고 신을 신자 왕은 말을 끌고 오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자는 어떤 말에 안장은
어떤 것으로 앉히고 재갈은 또 어떻게 하실 건지, 어떤 칼을 차고 그 외에 말을 타는 데 필요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말을 탈 때 누구를 곁에 세우고 싶으신지까지 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무엇
하나 반복해 묻는 일이 없이 왕의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왕은 말을 타고 싶지 않다면서 왕자에게 말을 타고 나가 둘러보고
나서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왕자는 전에 자기 형들과 함께 갔던 사람들을 대동하고 궁궐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왕이 왜 그러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왕자는 말을 타고 나가 모든 마을과 거리, 왕이 보물을 보관해둔 장소들, 사원들 그리고
끝으로는 도시에 있는 큰 건물 하나하나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기에게 보여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말을 타고 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자기를 따라오던 모든 군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왕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군대 묘기를 모두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을의 성벽과 탑과 요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두 다 둘러본 후, 그는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도착한 것은 이미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왕은 그가 본 모든 것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왕자는 만약 왕께서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자기 의견을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왕은 아무 걱정 하지 말고 한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아버지께서 아주
훌륭한 왕임에는 틀림없지만 자기가 보기엔 충분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왕자의 질책에 왕은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던 기일이 되자 신하들에게 막내
아들을 왕으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세 아들 중 누구라도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세 형제의 행동이 천지차이임을 확인한 왕은 오직
막내아들이 왕국을 물려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그를 후계자로 공표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청년들 중 누가 가장 나을지 알고 싶으시다면 이 시험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청년들이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지 뭔가 짚이는 바가 있으실 겁니다.
* 젊은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나가는가를 지켜보면 그가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짐작할 수
있다.@ff
여섯번째 이야기 사나운 신부 길들이기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심각한 목소리로 빠뜨로니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빠뜨로니오, 내 부하 중 한 명이 자기보다 부유하고 가문도 나은 여자와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여자라고 소문이 났다는
사실이라오. 과연 부하에게 그 여자와 결혼하라고 해도 괜찮을지 알고 싶으니 이야기를 좀
해주시오."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어느 선한 아랍인의 아들이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선량한 아랍인이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청년이었지만 워낙 가난해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의욕은 많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껏 풀이 죽어 지냈습니다.
같은 마을에는 그 청년의 아버지보다 훨씬 부자고 세력도 있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그 딸은 청년의 곧은 성품과는 대조적으로 사납고 모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나운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답니다.
어느날 그 선량한 청년은 아버지에게, 자신은 물려받을 재산이 없어 평생 초라하고 궁핍하게
살든지 아니면 고향을 떠나야 할 지경이니 차라리 자기가 좋은 혼처를 찾아보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이 맞다며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같은 마을에 사는 그 부자를 찾아가 딸을 달라고 부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매우 놀라며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그 딸의 성격을
아는 한 그녀와는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꼭 그녀와
결혼하겠다면서 비록 당장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겠노라며 간청했습니다.
아들의 뜻이 워낙 확고한지라 아버지는 곧장 그 부자 친구를 찾아가 아들의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자기 아들이 그의 딸과 결혼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만일 그 결혼을 허락한다면 나는 친구가 아니라 사기꾼일 걸세. 자네 아들이 불행해질
수도 있고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나는 정말 나쁜 놈이 되는 게 아닌가.
확신하건대 내 딸과 결혼하게 되면 죽거나 아니면 죽는 것만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될 걸세. 자네
뜻을 저버리기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게. 만일 정말로 내 딸을 사랑하여
데려만 가준다면 자네 아들이 아니라 그 누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네."
그러나 청년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하지만 아들이 그 딸과 결혼하기를 무척
원하고 있으니, 자기의 아들을 기쁘게 받아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윽고 결혼식이 올려졌고 신랑과 신부는 신랑 집으로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랍인들의
관습대로 신혼부부에게 저녁상을 차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양가의 부모와 친척들은 신랑이 다음날
심하게 다쳐 있거나 시체로 발견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두 사람을 남겨두고 모두
나갔습니다.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이들은 식탁에 마주앉았습니다. 신부가 한마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신랑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개 한 마리를 보고 성을 내며 말했습니다.
"이봐, 이 개놈아, 손 씻을 물 좀 가져와!"
개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더니 그는 더욱 화가 나서 손 씻을 물을 가져오라고 다시
소리쳤습니다. 이번에도 아무 반응이 없자 그는 미친 듯이 성을 내더니 식탁에서 일어나서는
칼을 집어들고 개에게 갔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향해 칼을 들이대며 다가오는 것을 본 개는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도 개를 쫓아갔습니다. 그들은 테이블, 식탁, 화로 위를
뛰어다녔고 마침내 젊은이는 개를 잡아 머리와 다리를 잘라 토막을 내면서 테이블보, 식탁할 것
없이 온 집안을 피로 범벅이게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젊은이는 피투성이인 채로 식탁으로 돌아왔고 다시 주위를
살피더니 이번에는 고양이를 보고 손 씻을 물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역시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본 젊은이는 격분하여 말했습니다.
"아니, 이 응큼스러운 간신 같은 놈아! 내 명령을 듣지 않은 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못 보았어?
만약 내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너도 똑같은 신세로 만들어버리겠다."
고양이가 물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꼼짝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식탁에서 일어나더니 고양이의 다리를 붙잡아 벽에다 대고 치면서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이번에는 개를 죽였을 때보다 더 화가 난 것 같았습니다.
젊은이는 이렇게 사납고 성난 모습으로 다시 식탁에 와서는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는 신랑이 미쳤거나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신랑은 사방을 둘러보더니, 이젠 집에 유일하게 남은 말 한 마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게 손을 씻으려 하니 물을 가져오라고 매우 사납게 소리쳤습니다.
당연히 말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죠. 그러자 신랑은 또 말했습니다.
"이봐, 내 집에 네놈만 남았다고 해서 명령을 거역해도 내가 가만히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하나? 만일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네놈뿐 아니라 이 세상 어떤 놈이라도 방금 전 개나
고양이 같이 비참한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는 걸 명심해!"
말이 자기 말을 듣고도 꼼짝하지 않고 있자 그는 이제까지보다 더 화를 내며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 완전히 잘게 토막을 내었습니다.
신부는 신랑이 분개해서 자기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그와 같은 결과를 맞게 될
거라고 소리치며 하나밖에 없는 말까지 죽이는 것을 보자, 그가 장난삼아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만일 집에 천 마리의 말과 천 명의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 명령을 어긴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죽여버리겠다고 맹세를 하면서 신랑은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로 피투성이가 되어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피로 범벅이 된 칼을 쥔 채 사방을 살피더니 주변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자기 부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향해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손 씻을 물을 가져오시오."
부인은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얼른 일어서서 손 씻을 물을 가지러
달려갔습니다.
"아! 당신이 내 말을 듣다니 신께 감사한다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명령에 불복종한
녀석들과 같은 신세가 될 뻔했지 뭐요."
그런 다음 신랑은 즉시 음식을 준비하라고 했고 그녀는 신랑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가
난폭한 투로 명령할 때마다 그녀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숙이며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신부는 말 한마디 못하고 남편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면서 밤을 보냈고 이윽고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밤에는 내가 너무 화가 났었던 모양이오. 지금까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소. 그러니
아침에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도록 신경을 쓰시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도록 하시오."
이윽고 아침이 되어 양가의 부모들이 신혼부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집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분명히 남편이 이미 죽었거나 심하게 다쳤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문 틈을
통해서 집안을 들여다본 그들은 집안에 신부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신부는 문밖에 부모님들이 오신 것을 알고 그들에게 조용히 가서는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쉿, 조용히들 하세요. 이렇게 떠들다가 그이가 깨기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 모두 그 사람 손에
줄초상이 날거라구요."
신부의 말에 깜짝 놀란 그들은 지난밤의 일을 신부에게 모두 전해듣고는, 사나운 신부를
다스리기 위해 신랑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순하고 행복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신부의 아버지도 자기의 부인을 다스려 볼 심산으로 사위가 했던 것처럼 마구 화를
내며 집에 있는 말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은,
"이봐요, 당신은 너무 늦었어요. 당신이 말 백 마리를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효과도 없을
거예요. 그럴려면 좀더 일찍 시작하셨어야죠. 우리는 이제 서로를 너무 잘 알잖아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작님, 만일 당신의 부하가 그 사위와 같이 집안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혼을 허락하시고,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만두게 하십시오. 그리고 더 나아가 만일 백작님이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하신다면, 당신께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처음부터 알리라. 그렇지 않으면 후에 아무리 알리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ff
일곱번째 이야기 자식을 살해할 뻔한 아버지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그가 들은 치욕스러운 말에 매우 화가 나서 빠뜨로니오를 불렀다.
빠뜨로니오는 화난 백작을 위로하며, 돈을 주고 조언을 구하려던 한 상인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직업도 지위도 없고 오직 돈을 받고 조언을 해주며 사는 현자가 있었습니다. 한
상인이 조언을 파는 현자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마을로 찾아갔습니다. 상인이 조언을 얻고자
값을 묻자 현자가 대답하기를 조언에 따라서 가격도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자는 상인이 일
마라베디짜리 조언을 부탁하자 다음과 같은 조언을 주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을 초대해서 처음 보는 음식을 대접한다면, 우선 제일 먼저 나오는 요리로
배를 가득 채우십시오."
상인이 그 조언은 중요한 것이 못된다고 하자 현자는 자기가 받은 일 마라베디 역시
마찬가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상인은 두배의 값을 지불하며 조언을 청했고 현자는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습니다.
"당신이 아주 격분하여 분풀이를 하고 싶을 때라도, 정확한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불평하지도
격분하지도 마십시오."
상인은 그와 같은 뻔한 조언을 더 얻으려 했다가는 가지고 있는 돈만 모두 잃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고 금방 얻은 교훈만이 마음 속 깊이 새기고 돌아왔습니다.
상인은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임신한 자기 부인을
남겨둔 채 배에 올랐습니다. 그 후 상인은 20년간을 그곳에서 장사를 하며 살았습니다. 고향에
남겨진 부인은 아들을 낳았고 그녀는 남편이 죽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오직 아들을 위로삼아
사랑하고 심지어는 남편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침실에서 잠을
잤답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고통중에서도 정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한편 상인은 마침내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하게 되었고, 예고도 없이 자기 집에 들어가서는
부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몰래 숨어 엿보았습니다.
해질녘에 아들이 돌아오자, 부인은 아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어디 다녀오시는 거죠?"
상인은 '여보'라는 소리를 듣자 그 자가 새 남편이거나 아니면 남편이라기에 너무 젊으므로
애인쯤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를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에 두 마라베디를 주고 산, 격분하지 말라는 현자의 조언을 기억해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부인과 아들이 함께 저녁 식사하는 광경을 보자 상인은 또 다시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충고를 기억하여 다시 분을 참았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자 그들은 함께 잠자리로 갔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는 다시금 그 조언을 되뇌이며 참았습니다.
날이 밝기도 전에 부인은 소리없이 흐느끼기만 하더니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아니, 아들아, 상선이 왔다는구나! 네 아버지가 간 곳에서 말이야. 가능하면 아침 일찍
항구로 나가보렴. 혹시 네 아버지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니."
이 말을 듣자 상인은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서 장사하러 떠났었다는 것을 떠올렸고, 부인과
같이 있던 남자는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자기가 아들을 죽였더라면
평생을 두고 괴로워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도록 도와준 현자의 조언을 그는 크게 갑사하고
기뻐했답니다.
"백작님, 아무리 말로 분을 해소하면 고통이 줄어들 것 같아도 사건의 진상을 알기 전에는
절대로 화를 내지 마십시오. 진실을 알기까지 조금 참는 것은 아무 해도 없지만 화를 내면 곧
후회를 하게 되는 법이랍니다.
* 진실을 알기 전에 화를 내면 격분하는 만큼 후회하게 된다.@ff
여덟번째 이야기 수탉과 여우
언젠가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과 빠뜨로니오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내 지배하에 있는 땅이 넓다는 것을 그대도 알고 있소. 그러나 그런 만큼
걱정거리도 많다오. 짜임새 있게 요새화된 곳이 있는가 하면 허술한 지역도 있고, 어떤 곳은 미처
내 권력이 미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나보다 우세한 자들과 맞서야 할 때면 스스로
내 친구라거나 고문임을 자청하는 자들이 내게 겁을 준다오. 내 관할지역 안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멀리 떨어진 곳에는 가지 말고 나의 힘이 미치고 안전한 곳에만 머루르라고 말이오. 내
그대의 충성심과 박식함을 알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어찌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확실한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나쁘다고 판단했던 것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으며 그 반대로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 때로는 나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래를 점칠 수 없는 일에 관해 충고할 때면 심히 괴롭습니다. 그 충고가
적절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므로 굳이 감사의 말을 들을 까닭이 없으나, 올바른
충고를 하지 못하면 그 화가 조언을 한 사람에게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충고를 원하시는
상황은 불투명하고 위험하므로 제 의견을 접어두었으면 합니다만, 백작님께서 이렇게 물으시니
회피할 길이 없군요. 그러나 충고를 드리기에 앞서 수탉과 여우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골 농장에 많은 암탉과 수탉을 기르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수탉 중 한 마리가 집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아무 겁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지요. 그때 여우 한 마리가 이 수탉을 보고는
잡아먹을 시기를 노리며 몰래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수탉은 이를 눈치채고 농장 한 가운데에
외로이 서 있는 나무 위로 날아올랐지요. 수탉이 달아나자 여우는 진작 덮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어떻게 하면 그 닭을 잡을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잠시
후 나무 밑으로 가서는 수탉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 내려와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탉은 여우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지요. 듣지 좋은 말로는
닭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여우는 자기를 믿지 않은 대가로 큰 화를 입을 것이라며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수탉은 여우가 보호해 주겠다고 하든지,
협박을 하든지 아랑곳하지 않았답니다.
말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여우는 나무 밑동을 갉아먹으며 꼬리로 세차게 후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불쌍한 수탉은 지레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여우의 행동은 단지 겁을
주기 위한 것이며 해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은 못했던 거지요. 무조건 겁에 질린 수탉은 다른
나무로 옮기는 것이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는 겨우겨우 날아 옆에 있는 나무로 갔습니다.
수탉이 겁을 집어먹은 것을 눈치챈 여우는 집요하게 따라가 닭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계속
옮겨다니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공포 때문에 정신을 잃은 닭은 나무에서 떨어졌고 여우에게
잡아먹혀버렸습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그 누구의 협박이나 거짓된 충고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이유 없이 놀라지
마시고 위험이 있을 법한 일은 신중히 행하십시오. 멀리 떨어져 있는 땅 한 치라도 지키기 위해
항상 싸우셔야 하며,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충분한 물자를 지니셨으니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 든든하지 않다고 두려워 마십시오. 근거 없는 두려움 때문에 변방을 버려두신다면 그
땅들로부터 시작하여 야금야금 당신이 설 땅을 모두 잃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변방을
지키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을 적이 보면 그것을 빼앗으려 더욱더 날뛸 것이기 때문이지요.
백작님은 그들이 설치는 것을 보시면 더욱 겁에 질리게 될 것이고 소유한 것을 몽땅 빼앗길
때까지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처음부터 백작님 것을 지키신다면 안심하고 편히
지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수탉이 처음에 자리잡았던 나무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처럼 말입니다. 그 예는 요새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유용하다고 봅니다. 요새를
포위하려고 나무로 집이나 성을 올리는 것을 보고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이런
짓은 포위된 사람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제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실 수 있도록 한 말씀 더 드리지요. 벽을 타고 넘거나 땅을 파지 않고는 그 어떤 요새로
점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벽이 높다면 사다리가 그 꼭대기까지 닿지 않을 것이며 땅을 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새가 함락되는 것은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공포에, 특히
이유 없이 공포에 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백작님처럼 세력 있는 사람이든 백작님보다는 못한 사람이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상황을 잘 관찰하고 난 후 확고한 태도로 밀고나가야 합니다. 일단 일을 시작했으면 쉽게
놀라거나 이유 없이 겁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위험이 닥쳤을 때 살아남는 자는 도망하는 자가
아니라 싸우는 자입니다. 늑대의 공격을 받은 작은 강아지가 버티고 서서 으르렁거리면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큰 개일지라도 도망치면 늑대가 따라가 죽여버릴 것입니다."
* 근거 없는 두려움에 떨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을 지켜라.@ff
아홉번째 이야기 양약을 입에 달게 하는 법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빠뜨로니오, 내가 무척 아끼는 친척이 있었는데 어린 아들을 하나 남기고 죽었다오. 그래서
내가 그애를 키웠지. 그 아이와 나의 유대관계를 봐서나 그애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그리고 그애가 자라면 감사해 하며 나를 위해 일해 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아주 잘 교육시켰다오.
나는 그애를 친아들처럼 사랑했소. 그런데 아이가 똑똑하고 선량하기는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때때로 미혹에 빠지고 올바른 길을 가지 않는다오. 그애가 정신을 좀 차린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대는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애의 장래를 위하여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좀 알려주겠소?"
이 말을 들은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위대한 철학자와 그가 가르치는 젊은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떤 왕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왕자를 교육시키기 위해 자기가 신임하는 철학자에게
맡겼습니다. 왕이 죽자, 아직 어린 아들이 왕의 뒤를 계승했습니다. 철학자는 그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어린 왕은 사춘기에 접어든 후부터 사부의 말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젊은 조언자들의 말만 들어려 했지요. 그들은 왕자에게 아무런 신세도
지지 않았기에 닥쳐올 재난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야 할 의무감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린 왕은 재산을 잃어갔음은 물론이고 예의범절도 생활태도도 눈에 띄게
나빠져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왕을 욕했고, 예전에는 훌륭하게 교육받은 그가 이제는 제멋대로
행동하며 소유했던 그 많은 재산을 다 탕진해버렸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사태가 점점 악화되어가자 철학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왕에게
애원도 해보고 비위도 맞춰보고, 심지어는 나무라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젊은 혈기는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커다란 장애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조언이
쓸모없음을 알게 되자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일을 꾸몄습니다.
그는 궁 안에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예언자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전해듣게 되었고 나중에는 젊은 왕의 귀에까지 가 닿게 되었습니다. 왕은
철학자에게 사람들의 말대로 그렇게 예언을 잘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처음엔 부인하는
척했으나 결국에 가서는 사실이라고 고백하면서 다른 사람이 알아선 안 되니 더 이상은 묻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으레 무엇이든 알고 싶어하듯이 왕도 철학자가 어떻게 예언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
안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이리저리 회피하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그럴수록 왕은
더욱더 몸이 달았습니다. 왕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자 철학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했고, 대신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자기와 함께 궁을 빠져나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황폐해진 마을이 있는 계곡으로 갔습니다. 얼마를 걷고 있는데 나무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듣기 싫은 소리로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후에 다른 까마귀 한
마리가 근처의 다른 나무에서 또 울었습니다. 두 마리는 저마다 앉은 나무에서 듣기 거북한
소리로 계속해서 울어댔습니다. 한참은 듣고 있던 철학자는 갑자기 자기 옷을 쥐어뜯으면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신세라도 되는 듯 구슬피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젊은 왕은 크게 놀라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철학자는 몇 번이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왕은 계속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마지못한 듯 철학자는 입을
열었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제가 아둔하여 왕께서 계속 땅과 재산을 잃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들까지도 알고 있지 뭡니까. 이제는 새들까지도 임금님을 무시하니 제가 무슨 면목으로
선왕을 뵙겠습니까?"
젊은 왕은 도대체 새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기에 그러는지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철학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저 두 까마귀는 자식을 결혼시키기로 서로 약속해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첫번째 까마귀가
결혼하기로 한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임금님께서 왕좌에 오른
뒤부터 자기네 계곡에 있는 마을들이 황폐해지고, 무너진 벽들 사이의 폐허에서 자라는 먹이가
많아져서 이제는 자기가 더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까마귀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것 때문에 결혼을 미루려 한다면 참 미련한 짓이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까마귀 하는
말이 이 왕이 계속 살아만 있게 되면 금방 자기가 더 부자가 될 거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열
배가 더 큰 마을이 있는 자기네 계곡도 얼마 안 가 황폐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결혼을 미룰 이유가 아니라고 하니 다른 까마귀도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젊은 왕은 이 말을 듣고 큰 고통에 사로잡혔고 자기 영토를 황폐해지게 내버려두는 것은 결국
손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철학자는 왕이 고통스러워하며 근심에 싸여 있는 것과 아직
남아 있는 땅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잘 지킬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아주 훌륭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얼마 안 가서 젊은 왕은 자기가 통치하는 왕국은
물론 사생활까지 모든 것을 옛날 그대로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빠뜨로니오는 루까노르 백작에게 말했습니다.
"백작님께서는 그 청년을 교육시키고, 그의 재산이 늘어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야기와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효능은 높다는 것을 참고로 하시어 백작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가 똑바로 행동하도록 하려고 벌을 주거나
나쁘게 대해선 절대 안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멀리하려
합니다. 본인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지만 젊은이들은 대개 그런 친구를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쁘게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백작님과 그 사이에도 증오가 싹튼다면 그러한 증오는 이후에 더 나쁜 방향으로
악화되어 갈 수도 있습니다."
* 젊은이를 책망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를 바른 길고 이끌기
위해서는 되도록 듣기 좋은 말로 설득하라.@ff
열번째 이야기 서로 먼저 종을 치겠다고 싸운 성직자와 수도사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이야기했다.
"빠뜨로니오, 내 친구와 나는 우리 둘의 명예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오. 나는
혼자서도 그 일을 할 수가 있지만 그가 도착할 때까지 차마 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소.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현명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소."
그래서 빠뜨로니오는 대교회의 성직자들과 파리의 수도사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교회의 성직자들은 교회의 우두머리인 그들이 새벽 종을 쳐야 한다고 날이면 날마다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수도사들은 교회 성직자들은 공부도 해야 하고 새벽기도도 드려야 하므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들은 그런 일들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자기들이 새벽 종을
쳐야 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놓고 큰 소송이 일어났고 이 소송을 위해 양측은 변호사에게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 소송이 오랜 시간 계속되자 교황은 한 추기경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을 해결하라며 모든 문제를 위임했습니다. 추기경은 그간의 소송서류를 가져오도록
시켰습니다. 엄청난 양의 서류를 보고 추기경은 양측에게 그 다음날 판결을 하겠으니 참석을
하라는 통지를 보냈습니다. 이윽고 다음날 양측이 모인 자리에서 추기경은 모든 서류를
태워버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 소송은 너무나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당신들 모두 많은 돈을 낭비했고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소송을 끌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종을 치도록 하십시오."
이야기가 끝나자 빠뜨로니오는 이렇게 얘기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그 일이 백작님과 친구분, 두 분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지만 우선 백작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친구분을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 일을 처리하십시오. 왜냐면 때때로
잘 마무리 될 수 있는 일이 미적거리다 정작 그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땐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 자신에게 크게 유익한 일이면 지체하지 말고 그 일을 해야 한다.@ff
열한번째 이야기 꿀항아리와 함께 깨져버린 꿈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내게 세상의 모든 일들은 쇠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었소. 만약 그가 내게 말한 대로만 된다면
그것은 내게 큰 이득이 될 것 같소."
그 이야기를 들은 빠뜨로니오는 이렇게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저는 헛된 망상이 아니라 확실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들어왔습니다. 허황된 것에다 기대를 건다면 그 사람에게는 도냐 뚜루아나라는 여인에게
일어났던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독히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여인은 머리에 꿀항아리를 이고 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면서 그녀는 그 꿀을 팔면 달걀 한 줄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달걀을
부화시키면 닭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그 닭을 판 돈으로 양을 사고 또 소를 사고 그렇게
계속하면 다른 이웃들보다 훨씬 부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인은 상상 속의 재산을 가지고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딸은 어떻게
결혼시킬까? 며느리와 사위들이 두루두루 모여 사는 그 거리를 어떻게 뻐기며 지나다닐까?
그렇게 가난하던 내가 큰 재산을 모았으니 사람들이 그 행운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자신의 밝은 앞날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그녀는 큰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치며 웃었고 그 순간 꿀항아리는
바닥에 떨어져서 박살이 났습니다. 깨져버린 항아리를 본 그녀는 꿀항아리부터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는 너무나 비통하게 울었습니다. 허황된 것에 모든
희망을 다 걸고 있었는데 결국 그녀가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작님, 사람들이 백작님께 하는 말이나 백작님께서 기대하시는 것들이 확실한 것이기를
바라신다면 언제나 그런 일들이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 혹시나 허황한 기대는 아닌지 따져보셔야
합니다. 지금 누리는 행운을 잃지 않으시려면, 확실하지 않은 이익을 바래 지금 손안에 있는 것을
거는 모험을 하지 마셔야 합니다."
* 하늘을 나는 두 마리 새보다는 내 손 안의 한 마리 새를 더 소중히 여겨라.@ff
열두번째 이야기 죽은 척해야 했던 여우 이야기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얘기했다.
"빠뜨로니오, 내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은 형편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게
갖은 모욕과 간섭을 받으며 살고 있소. 사람들은 내심 공개적으로 대놓고 그 사람을 헐뜯을
구실이 될 일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오. 나의 친척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모욕을 참기
어렵다면서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얘기한다오. 이럴 때 내가
어떤 충고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대에게 조언을 청하는 것이니 현명한 조언을 좀 들려주시오."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루까노르 백작에게 죽은 척해야 했던 한 여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밤 여우 한 마리가 닭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닭을 쫓다보니 어느 새 날이 밝아왔고 이미
사람들이 길가에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숨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민끝에
여우는 밖으로 몰래 나와 길가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기로 했습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여우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여우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여우의 이마에 있는 털을 아이들 이마에 붙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가위로 털을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여우 등의 털을, 그 다음 사람은 옆구리 털을
잘라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결국 여우는 옆구리 털이 모두 깍인 채 길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우는 그까짓 털이 잘린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여전히 죽은
시늉을 하며 누워 있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사람은 여우의 엄지손톱이 생인손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손톱을 뽑아갔고, 그 다음 사람은 여우의 이가 어금니 통증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를 뽑아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우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남자가 나타나 여우의 심장이 사람의 심장병을 치료하는 데 좋을 거라고
말하면서 칼을 꺼내 여우의 심장을 꺼내려 했습니다. 이때 여우는 자신의 심장을 도려낸다면 더
이상 자신은 회복할 길이 없이 목숨을 잃을 께 뻔하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일어나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백작님, 친척에게 이렇게 충고해주는 게 좋겠습니다. 특별히 자신에게 큰 피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웬만한 일은 참는 것이 낫고, 특별히 적극적인 방안이 없을 땐 차라리 수치심을
느끼거나 모욕적이라는 내식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수치심이나 모욕을
느낀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 경우 자신에겐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요. 피할
수 있고 참을 수 있는 일이라면 참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명예에 큰 해가 되는 경우라면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대처하는 것이 좋겠지요. 불명예스럽게 사느니 명예와 권리를 지키며
죽음을 맞는 게 오히려 나으니까 말입니다.
* 참아야 하는 것은 참고 잊을 수 있는 것은 잊어야 한다.@ff
열세번째 이야기 다리가 부러져 목숨을 건진 기사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인 빠뜨로니오에게 조언을 구했다.
"빠뜨로니오, 나는 지금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소. 그 내막은 이러하오. 한 이웃과 나는 어떤
별장까지 걸어서 가기로 내기를 했소. 물론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그 집의 임자가 되는 것이오.
실제로 나는 아주 날렵하니 시합에서 이겨 큰 명예와 이득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소.
헌데 갑작스레 몸이 개운치 못하니 지금으로서는 이길 가망이 없어져 버렸다오. 내 비록 많은
것을 걸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 집을 잃게 된다면 시합에서 이겨 그것을 얻는 명예보다 시합에
져서 재산을 잃는 불명예가 나를 갑절이나 더 괴롭힐 것이오. 당신을 믿는 터에 어찌하면 좋을지
묻는 것이라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염려하시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럴 경우엔 아주 좋은 방책이 있습니다. 마침
돈 뻬드로 멜렌데스 데 발데스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으니 그 얘기를 들려드리지요."
레온 왕국의 기사였던 돈 뻬드로 멜렌데스 데 발데스는 난처한 일만 생기면 이렇게 말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신에게 영광 있으라! 신이 하신 일이라면 바로 그것이 최선의 방책일지니!"
그런데 이 돈 뻬드로는 왕의 총애를 받는 대신이었기에 그를 시기하는 숱한 정적들이 있어서
그만 중상모략으로 왕의 미움을 사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돈 뻬드로가 집에 있는데, 왕의 부하가 그를 붙잡아 대령시키라는 칙서를 가지고 도착했습니다.
그의 집에서 반 레구아(역주: 1레구아는 약 5.5km) 떨어진 곳에는 친히 사형을 집행키 위해
행차한 왕과 구경하려는 군중들이 모여 있었지요. 그런데 돈 뻬드로가 왕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말을 타러 나가던 중 그만 현관 계단에서 떨어져 한쪽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왕의
명령을 따를 수 없게 되자 체포하러 왔던 부하와 수행원들은 이를 보고 이렇게 빈정거렸습니다.
"어이, 돈 뻬드로 멜렌데스. 당신은 항상 신이 하신 일이 최선이라고 말하더니만 지금이야말로
그렇게 되었군."
돈 뻬드로는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이제 비로소 사람들이 신이 하시는 일이 최선임을
알게 되지 않았느냐고 대꾸했습니다.
형을 집행하러 모여 있던 이들은 죄수가 도착하지 않는 이유를 전해 듣고서 왕에게 명령을
수행할 수 없는 까닭을 아뢰었지요. 그래서 왕은 돈 뻬드로의 다리가 나을 때까지 형 집행을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돈 뻬드로가 다시 말을 탈 수 있을 만큼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왕은 중상모략의 내막을 알고서 그를 모함한 이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총애하던 신하를 죽일 뻔한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사과하는 뜻으로 많은 재물과
높은 관직을 하사하는 한편 그가 보는 앞에서 정적들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신이 무고한 돈 뻬드로를 구했다고 여겨 그가 즐겨 말하던 '신이 하신
일이라면 모든 것이 최선'이라는 말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그러니 닥친 불운을 한탄하지 마시고 신이 허락하신 일이 최선임을
믿으십시오. 또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두 가지 종류가 있음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즉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때와 어떤 조언도 소용없는 때입니다. 먼저의 경우에는 그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만일 신의 뜻대로, 혹은 우연히 불운이
닥친다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닥친 일 또한 신의 뜻이니 저로서는
어떠한 충고도 해드릴 수 없군요. 하지만 신이 하신 일이 최선이라면 역시 신께서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 우연히 닥친 불운 앞에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ff
열네번째 이야기 거짓 나무에게 생긴 일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빠뜨로니오, 내게서 큰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내 주변에서 수없이 말썽을 일으키며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몇 있소. 그들은 언제나 나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거짓말만 일삼는다오.
그럴듯한 거짓말로 내게 큰 손해를 가져오는가 하면 부하들을 부추겨 내 말에 거역하게
만든다오. 난들 속임수를 쓸 줄 모르겠소? 나도 마음만 먹으면 그들보다 훨씬 더한 속임수도 쓸
수 있지만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소. 거짓말은 항상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이런
자들을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내게 조언을 좀 해주실 수 있겠소?"
이 말을 들은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짓과 진실이 서로 만났습니다. 어느날, 거짓은 진실에게 자기들 사이에 나무를 한 그루
심으면 과일도 얻고 더운 날엔 그늘에서 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진실은
단순하고 무슨 일이든 좋게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둘 사이에 심은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자 거짓은 진실에게 나무를 반씩 나누어 관리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습니다. 진실이 동의하자 거짓은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가며 뿌리는 나무의
생명이고 본질적인 것이니 나무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땅 밑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뿌리를 가지라고 진실을 설득하면서 자기는 이제 겨우 움이 튼 작은
가지들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가지는 땅 위에 있어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라버리거나 잎을 따버릴 수도 있고, 짐승들이 갉아먹거나 새들이 흔들어댈 수도 있으며, 더위에
말라버리거나 추위에 얼어버릴 수도 있으니 언제나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거짓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뿌리는 안전하다는 것이었지요.
진실은 교활한 구석이 없는 데다가 아무나 쉽게 믿기에 자기 친구인 거짓의 말을 듣고 뿌리
쪽을 택했습니다. 거짓은 자기의 속임수가 제대로 먹혀들어가 진실이 뿌리를 택하는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진실은 자기에게 배당된 부분에서 살기 위해 땅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반면 거짓은 위에 남아
땅 위에 사는 것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거짓은 말주변 좋게 속임수를 쓸 줄 알았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에게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나무는 곧 성장하기 시작해 굵은 가지 위에 넓은 잎이
무성하게 달려 사람들을 유혹하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나무 그늘로 와서 오랫동안 머물려 꽃을 보고 즐겼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거짓나무의 그늘에 앉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 그늘 밑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거짓은 아첨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았기
때문에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고, 모두가 그로부터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거짓은 단순한 사람들에게는 작고 평범한
거짓말을 했고, 좀더 영리한 사람들에게는 약간 복잡한 거짓말을, 그리고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복잡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개야, 내가 너에게 이러저러한 일을 해줄게"라고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거짓말입니다. 거기에 맹세를 하고 담보가 주어질 때, 그
거짓말의 효력은 두 배로 증가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해준 뒤,
자기가 약속한 것을 해줄 때가 오면 그때서야 모든 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거짓은 아는 게 많았고, 자기 나무 그늘 아래로 오는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듣기 좋은
말을 해 주었습니다. 거짓은 어떤 때는 나무의 아름다움으로, 또 어떤 때는 속임수로 사람들을
현혹했지요. 그런 기술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거짓의 말은 잘 먹혀들어갔고,
모두가 그의 속임수에 넘어갔습니다.
거짓은 이렇게 하루 하루 일이 잘 풀려나갔지만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불행한
진실은 땅 밑에 숨겨진 채 지냈습니다. 아무도 그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아무도 그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으며, 누구 하나 그것을 찾아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은 자기에게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친구의 충고를 듣고 택한 뿌리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뿌리를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나무가 아주 훌륭한 가지와 넓은 잎이 있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서로 겨루기라도 하듯 색색의 꽃을 피워냈지만, 진실은 아무것도 먹을 게
없었기 때문에 열매가 맺기 전에 나무의 뿌리들을 다 갉아 먹어버렸습니다.
뿌리가 모두 갉아 먹히고 잘린 거짓의 나무는 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단번에 쓰러져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거짓은 큰 상처를 입었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죽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생긴 구멍을 통해 숨어 있던 진실이 나왔을 때 땅 위로 올라온 진실은 자기
주변에 거짓과 그를 찾아온 이들이 모두 죽거나 크게 다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거짓에게 배웠던 기술은 그럴 때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입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거짓은 큰 가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말과 아부의 꽃은 사람들이 유쾌하고
즐겁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당신 적들이 속임수와 거짓된
지혜를 사용한다면 최대한 그들을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속임수를 따라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거짓말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혜택을 누리는 자들을 시샘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이
얼마 가지 못할 것이며 끝이 좋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요. 사람들이 그 그늘 밑에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었던 거짓
나무에게 일어났던 일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진실이 비록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진실에 손을 내미시고 더 높이 평가하십시오. 그러면 백작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때문에 행복하게
될 것이며 바람직한 결과를 얻게 되실 것입니다. 백작님은 결국 이 세상에서는 많은 부와 육신의
영광을 얻게 되실 것이고, 저승에서는 영혼이 구원받으리라는 확신을 얻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진실을 따르고 거짓을 멀리하라. 거짓은 또다른 거짓을 낳기 마련이다.@ff
열다섯번째 이야기 참새와 제비
루까노르 백작이 두 명의 이웃과 같은 시기에 싸움을 하게 되었다. 한 명은 별로 강하지는
않지만 가까이 살고 또 한 명은 힘이 아주 세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루까노르는 이
두 사람과의 싸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관해서 빠드로니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한 남자와 참새와 제비 사이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마을에 몸이 허약한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참새와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에 매우
짜증이 나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그는 친구를 찾아가 참새와 제비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좋은 해결책이 없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친구는 참새와 제비를 동시에 해치울 수는 없으나 그 중에 한 마리를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어느 쪽이 더 방해가 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찾아온 친구는 곰곰히 생각해본 뒤,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비는 참새보다 더 시끄럽게 지저귀지만 집안에 들어왔다가는 다시 나가버리거든. 그런데
참새란 놈은 항상 집안에 들어와 있으니 참새가 더 귀찮다네."
"그러므로 백작님, 비록 멀리 살고 있는 사람이 힘이 더 셀지라도 우선은 약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과 먼저 싸워야 한답니다."
* 힘이 약할지라도 가까이에서 괴로히는 자와 먼저 상대하라.@ff
열여섯번째 이야기 돼지 시체를 들고 시험한 우정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나에겐 나를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재산과 삶을 희생할 것이며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소. 당신의 그 올바른 직관으로 그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겠소?"
"백작님, 좋은 친구만큼 든든한 재산이 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어려운 지경에
처하면 어떤 친구들이 외면할 것이며 또한 정작 도움이 필요한 때 누가 당신에게 도움을 줄
친구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백작님께서 누가 어려울 때 의리있고 좋은 친구인지
확인하시기 위해선, 친구가 많은 아들을 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어떤 착한 남자가 살았는데, 그에겐 아들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에게
좋은 친구를 많이 두라고 충고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충고를 따르려고 애를 썼고, 친구로
만들려고 많은 이들에게 선심을 썼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그에게 자신들은 진실한 친구라고
말했고, 필요하다면 그를 위해 자신들의 인생과 재산을 희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일러준 대로 했는지 그리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지
물었습니다. 아들은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 중 열 명 정도는 어떠한
위험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를 저버리지 않을 친구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그처럼 단시간 내에 많은 친구들을 사귄 것을 칭찬했습니다. 사실 이미
늙어버린 아버지에겐 오직 친한 친구 하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하나 밖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친구들에 대해 확신하자,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친구들을 시험해
보라고 충고했습니다.
"돼지 한 마리를 죽여서 그걸 자루에 넣고 너의 친구들 집을 이집 저집 다녀보아라.
친구들한테는 그것이 네가 지금 막 죽인 시체라고 말을 하렴. 또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고 말하거라. 그리고 친구들에게 너희는 내 친구이니 이 시체를 좀
숨겨주고 필요하면 날 보호해 달라고 청해보거라."
아들은 그대로 행했습니다. 모든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저지른 불행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모두들 한결같이 다른 어떤 일이라도 도와줄 수 있지만 이번만은
사정이 있어 도와줄 수 없으며 제발 자신들의 집에 다녀갔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몇몇은 그를 위해 변호해주겠다고 이야기했고, 또 몇 사람은 친구가
교수대에 끌려가더라도 끝까지 그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친구들을 시험해 본 후, 아버지에게 돌아와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듣고 아들에게 아버지의 친한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를
똑같은 방법으로 시험해 보라고 충고했습니다.
아들은 먼저 아버지와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를 시험하러 찾아갔습니다. 밤에 그 친구 집에
죽은 돼지를 넣은 자루를 들고 찾아가서는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에 관해 자초지종을 밝히고 모든
친구들이 자기에게 섭섭하게 대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와의 친분을
생각해서라도 곤경에서 구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아버지와 친하지 않은 친구는, 비록 그를 잘 모르고 도와주어야 할 의무도 없지만 자신과 그의
아버지와의 친분을 생각해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체라고 믿는 죽은 돼지 자루를
들고 가서 양배추밭 고랑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곤 원래 있던 대로 양배추들을 다시 심고,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면서 그를 돌려 보냈습니다.
아들은 돌아와 아버지에게 그 일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음날에 어떻게
하든지 트집을 잡아 그 친구와 말다툼을 벌여 가능한 한 아주 심한 모욕을 주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그대로 했고, 아버지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아주 못돼먹은 놈이구나. 하지만 비록 네가 더 버릇없는 짓을 한다고 해도 밭에 심은
양배추들을 다 뽑아버리지는 않겠다."
아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는 자신과 아주 친한 친구를 시험해보라고 했고,
아들은 또 그렇게 했습니다. 그 집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 아버지의 친구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죽음으로부터 그 아들을 지켜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같은 동네에서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마침, 몇몇
사람이 그 젊은이가 자루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본 터라 사람들은 그를 살인범으로 고소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결국, 그 아들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아버지 친구는 그를 구해주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재판관들에게 저 젊은이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으며,
진짜 살인범은 바로 자신의 외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아들은 결국 자백을 한 뒤
사형선고를 받았고, 누명을 썼던 아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자, 백작님. 오늘 친구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 예화가 진실된
사람을 가려내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친구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시절에만 친구일 뿐이고, 그 시절이 지나가버리면 우정도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자, 백작님. 누가 좋고 진실된 친구인지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셔야 하는지 이제 아셨을 겁니다."
* 참된 우정은 어려울 때 드러나며, 진실을 통해서만 지켜나갈 수 있다.@ff
열일곱번째 이야기 개미가 살아가는 방법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사람들 말이 내가 이만하면 충분히 부자인 셈이니 걱정하지 말고 이젠 좀 즐기고,
먹고, 마시고, 쉬기도 하라는 거요. 이미 내겐 여생 동안 쓰고도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줄
충분한 재산이 있지 않느냐고 말이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당신도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젠 내가 그만 일하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 말을 듣고 빠뜨로니오는 물론 쉬고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개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느냐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개미는 미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먹고 살기 위해 그리 많은 준비를 해둘 필요는 없을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개미들은 매년 추수 때면 집에서 나와 탈곡장으로 가서 힘닿는 데까지
낟알을 모아들이고 자기들의 곡식창고에 넣어둡니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그것을 밖으로
꺼냅니다. 이 때 사람들은 그들이 곡식을 말리려고 그런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미들이 곡식을 집 밖으로 꺼낼 때는, 비가 오기 시작하고 겨울이 다가오는 때입니다. 비가 올
때마다 말리기 위해 곡식을 내놓아야 한다면, 개미들의 노고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일한 보람도
별로 없을 겁니다. 겨울엔 해가 뜨는 일이 별로 없고 따라서 젖은 곡식을 말리기가 무척
힘드니까요.
사실 첫비가 올 때 곡식을 꺼내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개미들은 자기들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곡식을 채워넣습니다. 그것을 모두 합쳐보고는 자기들에게 일년 동안 필요한 양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런데 비가 오면 곡식은 젖어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개미들은 만약
곡식이 자기들 집안에서 싹이 튼다면 먹고 살기 위해서 모아둔 양식이 자기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곡식마다 싹이 터 나오게 되는 가운데 씨를
빼내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그 나머지를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비가 와도 더 이상
싹이 트지 못합니다. 이런 식으로 개미들은 일 년 내내 양식을 보관합니다.
게다가 먹고 살기에 필요한 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날씨가 좋을 때면 집에서 나와
눈에 띄는 대로 나뭇잎 조각들을 집으로 가지고 갑니다. 개미들은 혹시라도 식량이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을 한 순간도 헛되이 흘려버리지 않고 아주 잘
활용한답니다.
"그러니 백작님, 미물에 불과한 개미도 매일같이 식량을 찾아 그렇게 열심히 지혜롭게
일하는데,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위대하며 만물을 통치하고 있는 인간이 이미 벌어놓은
것에만 의지해 살아간다면 될법한 일입니까? 새로 집어넣는 것은 없고 매일같이 꺼내기만 하는
주머니는 얼마 안가 텅 비게 됩니다. 성격이 무르고 통이 작은 것은 게으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제게 조언을 구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하지 않고 먹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가 지속되고 있는 동안은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많은 돈을
벌어서 보람있게 쓰고 싶어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보람된 곳에 써서 명예를 드높일 기회도 없는
것입니다.
* 벌은 것을 탕진하지 않고 보람있게 쓴다면 죽어서 명예를 남기게 될 것이다.@ff
열여덟번째 이야기 일만 금덩이 지고 강 못 건너랴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큰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꼭 가고 싶다고
빠뜨로니오에게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혹시 그곳에서 무슨 불상사가 생겨 많은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어떤 값진
물건을 무겁게 지고 강을 건너게 된 젊은이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젊은이가 값지고 운반하기가 힘들 정도로 커다란 보석덩이를 가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큰
강을 만나자 그는 무거운 보석을 지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보석이 너무 무거워
자꾸만 가라앉더니 마침내 강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몸이 거의 잠기다시피 했습니다.
강가에 있던 한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는 보물을 포기하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소리쳐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불행한 젊은이는 보물을 포기하면 보물만 잃지만, 물에
빠지면 보석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잃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의 탐욕은 그를
익사하게 만들었고 목숨과 보석 모두를 잃게 되었습니다.
"백작님, 아무리 돈이나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일지라도 만일 위험한 일을 만나면,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신체뿐 아니라 명예에 손상이 되는 일에는
관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자신을 귀히 여기지 않거나 탐심으로 가득한 사람을 스스로를
죽음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존경하도록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자기 스스로 존중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존경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일을 해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아는 사람은 탐심이나
불명예로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아는 참된 사람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하는 법입니다.
* 탐심으로 모험에 나서는 자는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ff
열아홉번째 이야기 아랍인을 향애 바다로 뛰어든 영국의 왕 리차드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인 빠뜨로니오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나는 그대의 지혜로움을 익히 알고 있소. 그대가 이해할 수 없거나 조언할 수
없는 문제라면 세상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가능한 한 제일 좋은 방도를 알려주기 바라오. 그대는 내가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소. 태어나서 오늘날까지 난 언제나 전쟁의 와중에서
자라고 살아왔소. 그때마다 난 항상 다른 왕들이나 나의 신하들, 백성들과 힘을 합쳤었소. 그러니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을 해치곤 했소. 하지만 지금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필연적으로 맞게 될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소.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상의 그 누구도,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안심시켜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언젠가 우리의 심판관이신 신 앞에 나아가게
되겠지만 그 앞에서 난 어떤 말, 어떤 방법으로도 용서를 구할 수가 없을 것이오. 난 더도 덜도
말고 내가 행한 선행이나 악행만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오. 불행하게도 내게 악행이 더 많다는
신은 필시 나를 처벌하실 것이오. 그런데 내겐 지옥의 고통 속으로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용서를
구할 만한 어떤 구실도 없고, 내가 영원히 그 지옥 속에 머무리게 된다면 이승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만약 신이 내게 은혜를 배풀어 나를
당신의 종들 중 하나로 선택하거나 내가 천국의 희락을 누릴 만한 선행을 쌓게 하신다면 세상의
어떤 즐거움도 그 행운, 그 즐거움, 그 영광에 비길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소. 행운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불행에 빠질 것인지 하는 이런 중대한 문제가 다 나의 행실에 달렸으니, 내
처지와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그대가 알고 있는 최고의 조언을 해주기를 부탁하는 바요. 내 죄를
회개하고 신의 은총을 받을 방도가 무엇인지 알려주시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의 말씀을 들으니 대단히 기쁘군요. 특히 백작님께서 처한 상황에
따라 조언을 해달라시니 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다른 방식으로 조언을 부탁하셨더라면 일전에
말씀드린 왕과 그 측근의 이야기처럼 나를 시험하시는 것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외에도 대단히
기쁜 것은 백작님께서 그 왕처럼 백작님의 나라와 명망을 버리시지 않은 채 신께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고 싶어하시니 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백작님께서 백작님의 나라를 버리고
물러나버리신다면 백작님에 대한 평판이 대단히 나빠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백작님께서
분별력이 없어서 자기들처럼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을 싫어한 탓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들려드릴 얘기를 신께서 어떤 고매한 은자 앞에 나타나셔서 그와 영국의 왕
리차드에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은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선을 행하며 훌륭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은총을 얻기 위해 힘든 고행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정성이 그렇게 지극했으므로 신께서 그에게 천국의 영관을 누리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은자는 신께 감사를 드리고는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고 생각하고 천국에서 누가 자기의
동료가 될 것인지 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신께서는 천사 한 명을 보내서 그런 것을 청하는 것은
잘하는 짓이 아니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자꾸만 간청하자 신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천사를 보내 천국에서 그의 동료가 될 사람은 영국의 왕 리차드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은자는 그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리차드 왕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차드 왕은 엄청난 싸움꾼에다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면서 그들의
대를 끊어놓은 자였습니다. 은자는 그 왕이 언제나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을
지켜보아온 탓에 구원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여겨왔으므로 대단히 기분이 상해
있었습니다.
신께서는 다시 천사를 보내어 은자에게 그 사실에 대해 놀라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라고
전했습니다. 리차드 왕은 한번의 싸움을 통해 은자가 평생 쌓아온 선행에 의한 것보다도 신을 잘
섬겼으며, 따라서 은자보다 더 많은 은총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은자는 깜짝 놀라서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프랑스 왕과 영국 왕 그리고 나바라의 왕이 울트라마르 지방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항구에 도착한 그들은 모두들 무기를 챙긴 후 배에서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엄청난
수의 아랍인이 해안에 모여서 그들이 배에서 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왕이 영국의 왕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 배로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을 하자고
청했습니다. 말을 타고 있던 영국 왕은 이 말을 듣고 프랑스 왕의 사신을 불러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분노를 살 만한 짓을 여러 차례 저지렀으며 그 외에도 이
세상에서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온몸을 바쳐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빌어왔는데 신의 은총으로 마침내 그렇게도 원하던 그날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죽는다면 자신이 고국을 떠나기 전에 그렇게도 빌어왔던 참회를
하는 셈이 되어 신께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주실 것이요 자기가 만약 아랍인들을 쳐부순다면
신은 그것을 대단한 선행으로 여겨주실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모험을 감행해 볼
생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왕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모두 신의 뜻에 맡기고 가호를 빌면서 부하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해변에 있는 아랍인들을 향해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 비록 항구에서 가까운 곳이긴 했지만 바다는 그다지 얕지가 않아서 왕과 왕의
말은 물 밑으로 가라앉아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께서는 그가
'신이시여, 당신은 이 죄인의 죽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서 살아남기를 원하십니다'라고
기도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그를 구해서 육신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물에서 빠져나와 아랍인들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영국 병사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왕의 뒤를 따라 모두 바다로 뛰어들어 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프랑스 병사들도 용기를 얻고 바다로 뛰어들어 모로족을 공격했습니다.
모로족들은 그들이 죽음도 무릅쓴 체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돌격해 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구 뒤편으로 물러나더니 급기야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은 육지에
도착하자 닥치는 대로 아랍인들을 무찔렀습니다. 이 일이 바로 영국 왕 리차드가 전쟁을 통해서
쌓은 선행이었습니다.
은자는 이 말을 듣고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만약 백작님의 죄를 참회하고 싶으시다면 백작님이 조그마한 해라도
입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백작님은 백작님의 죄를 회개하셨으니 차후라도
이승의 헛된 영화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익을 따져 행동하라고 권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에는 반드시 성공의 가능성이 있는지, 결말이 어떨지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따져본 연후에 믿으셔야 합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는 자신의 잘못들을 회개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헛된 영화는 쫓지는 마십시오. 신께서 백작님께 이 땅을 주셨으니 백작님은 이
땅에 살면서 백성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그날까지 바다와 육지에서 아랍인들과 싸우는
것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백작님께서는 훌륭한 삶을
사시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바로 백작님의 영혼을 구원하고 나라를 보전하는 최고의 방법이며
명예를 지키는 길입니다. 신을 섬기기 위해서는 일찍 돌아가셔서도 안 되고 백작님의 영토를
떠나셔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그렇게 신을 섬기다가
돌아가신다면 백작님은 순교자가 될 것이요 행복한 생을 누리신 분이 될 것입니다. 비록
전쟁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백작님의 그 뜻과 선행만으로도 충분한 순교자가
되셔서 설령 사람들이 백작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고싶더라도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백작님이 나쁜 악마의 꾐에 빠져 허황된 속세의 광명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신의
종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조금도 태만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작님, 백작님께서 제게 조언을 청하신 바대로 백작님의 처지에 가장 적합하게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 이제 저는 백작님이 청하신 조언을 해드렸습니다.
백작님의 처지에 알맞으면서도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추천하건대 그
싸움에서 영국 왕 리차드가 했던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행동하셔서 훌륭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신의 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특정 교단에 들어가거나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영국의 왕이 보여준 행동이 더욱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ff
스무번째 이야기 발가벗기운 채 쫓겨난 영주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충고하기를 내 지위와 품위를 지켜주는 재산과 명성을
계속 키우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소. 당신은 항상 나에게 좋은 충고를 해주시니,
이런 경우에 그들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아닌지 가르쳐주시오."
"백작님, 저에게 청하신 충고는 두 가지 이유에서 저에게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첫번째, 저는
백작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반대되는 말씀을 들리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그분들께서 이미
말씀하신 방법과는 반대로 백작님께 충고를 드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충실한
조언자라면 손해나 특정이익에 관계없이, 또 상대방의 기분에 관여치 말고 항상 더 좋은 방법을
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백작님께 오직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백작님
상황에 맞는 방법만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앞서 사람들이 해드린 조언들은 완벽하지 못했고,
백작님께 유익하지도 않습니다. 백작님께 알맞고 완벽한 조언으로 백작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어떤 큰 지역의 영주가 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그 지역에는 해마다 새로운 영주를 뽑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영주가 뽑히든지 통치기간 동안엔 그가 명령하는 대로 따랐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 임기가
끝나면 모든 것을 빼앗고, 발가벗겨서 무인도에 홀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각있는 어떤 사람이 영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일 년이 지나면 앞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인도로 쫓겨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임기가 지나기 전에
자신이 가서 기거해야 할 그 섬을 아름답고 완벽하게 꾸미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과
생활필수품들을 갖추라고 은밀하게 명령했습니다.
그의 통치기간이 끝나자 사람들은 영지를 다시 거두어들이고, 그를 발가벗겨 섬으로
내쫓았습니다. 앞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어놓은 좋은 집에 가서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백작님께서 제게 더 좋은 충고를 원하시면 이걸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백작님께서 발가벗고
떠나시기 전에, 즉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백작님께서 떠나 살게 될 영원한 집을 찾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삶은 영원하기 때문이죠. 영혼의 삶은 정신적인 것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라 실패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사시는 동안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에 좋은 집을 갖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명예나 지위 때문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원하고 확실한 것을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으시대거나 자만심을 갖지 말고
좋은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삶에서 백작님께서 이루지 못한 것을 백작님의 영혼에
보탬이 되도록 대신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두십시오. 그리고 비록 알려지지 않더라도
선행을 계속하시면 백작님께서는 훌륭한 명예와 지위를 오래도록 지킬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곧 사라질 이 세상을 위해 영원한 것을 잃지 말라.@ff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3
지은이: 후안 마누엘
옮긴이: 김창민, 강성식 외
펴낸곳: 도서출판 자작나무
(저자 약력)
* 지은이: 후안 마누엘(Don Juan Manuel)
1282년 스페인의 에스깔로나(Escalona)에서 태어났으며, 뻬로뻬스 데 아알라
주교와 함께 14세기 스페인의 산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현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알폰소 10세(제위기간: 1252--1284)의
조카라는 신분 덕택에 젊어서부터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였고, 페르난도
4세와 알폰소 11세 때에는 전쟁에 활발히 참여했다. 나이가 들자 자신이 도미니크
수도회에 기증한 뻬냐피엘 수도원에 들어가 작품활동을 하다가 1348년 삶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토록 도미니크 수도회를 정신적^5,23^물질적으로 후원하면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지만 동시에 부와 명예에 관한 세속적인 관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기사와 시종에 관한 이야기 Libro de caballero et del
escudero',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이야기 Libro de los estados'가 있고 그 외에도
'시가집 Libro de los cantares o de sus cantigas', '산추린 연대기 La cronica
abreviada', '무기교본 Libro de las armas' 등이 있다.
* 옮긴이: 김창민
1959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동
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멕시코 구아달라하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중남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서로는 '저주받은 사랑'(열음사),
'미국은 섹스를 한다'(자작나무)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푸에르토리코 현대소설에
나타난 문화적 갈등', '수필에 나타난 에르네스또 사바또의 문학관'이 있다.
강성식, 이소현, 박정희, 전미연, 정수현, 최철훈, 한희주, 허인숙: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대학원 재학중@ff
첫번째 이야기 보상금을 찾아 준 철학자
어느 가난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천 플로린이 들어 있는 돈주머니는 주웠다. 그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그것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아내는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일단 나한테 들어오면 절대로 그냥 나갈 수가 없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
재물을 내리신 거니 둘이서 끝까지 지켜야 해요."
하지만 다음날, 천 플로린을 잃어버린 부자가 사방에 방을 붙여놓았다. 돈을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보상금으로 백 플로린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돈을 주웠던
가난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이 돈을 돌려줍시다. 그리고 양심의 거리낌없이 마음 편하게 보상금이나
받읍시다.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천하를 얻는 것보다 떳떳하게 사는 게 더 값어치
있지 않겠소?"
아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편을 말리고 싶었지만, 남편은 아내의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주인에게 돈을 돌려주고 보상금으로 백 플로린을 요구했다. 하지만
부자는 돈이 자기 수중으로 돌아오자 마음이 변해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은 주운 돈을 나에게 돌려주었소. 하지만 사백 플로린이나 모자라오. 당신이
나머지를 마저 가져온다면 그 때 가서 백 플로린을 주겠소."
가난한 사람은 천 플로린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한게 없었다고 말했지만 부자는
믿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말다툼이 싸움으로까지 번지자 그들은 왕을 찾아가 천
플로린을 왕에게 맡기고는 누가 옳은지 재판을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왕이 어느
철학자에게 이 사건을 상세히 조사해서 공정한 판결을 내리라고 명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라고 불리는 철학자에게 이 사건을 재판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재판관이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이 아직도 이 부자의 돈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전부 돌려주었는지
나에게만은 사실대로 말해주시오."
가난한 사람이 말했다.
"하늘에 맹세컨대 제가 주운 것은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부자가 말했다.
"제가 천사백 플로린을 잃어버렸다는 건 하늘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들은 철학자가 왕에게 말했다.
"고귀하신 전하께 청하옵건데, 다음과 같은 판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 플로린은 전하께서 보관해두시고, 일단 백 플로린을 이 가난한 사람에게
보상해주십시오. 천사백 플로린을 잃어버렸다고 맹세까지 했으니, 천 플로린은 이
정직한 부자의 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잃어버린 돈은 다른 사람이 보관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 나중에라도 운이 좋아 이 부자가 잃어버린 천사백
플로린을 주운 사람이 나오면, 그 때 가서 되돌려주면 될 것입니다."
왕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철학자의 판결이 현명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부자는 자기의 꾀에 자기가 넘어갔음을 알고는 왕에게 자비를
내려달라고 간곡히 사정했다.
"전하,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제가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있사옵니다. 여기
있는 천 플로린은 제가 잃어버렸던 돈입니다. 이 가난한 사람에게 약속했던
보상금을 안 주려고 꾀를 낸 것이었습니다."
너그러운 왕은 자비를 베풀었다. 왕은 부자에게 천 플로린을 돌려주도록 하고
돈을 주운 가난한 사람에게도 제 몫을 돌려주도록 했다. 그래서 그 가난한 사람은
공정하고 현명한 재판관 덕택에 부자가 뒤집어씌운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는 법이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마저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ff
두번째 이야기 맡겨놓은 돈
스페인 남자 한 사람이 메카로 가던 도중 이집트에 들렀다. 그는 인적이 드문
마을이나 사막을 지나다가 도둑을 맞거나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여행 경비에 필요한 돈만 남겨놓고는 믿을 만한 이집트인에게 돈을 맡겨 놓기로
작정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이집트인이 정직하고 의리 있고 깨끗한 성격을 가졌다고
했다. 스페인 남자는 그 말을 믿고 은화 이십 마르코스를 그에게 맡기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는 메카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이집트 인을 찾아가 자기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집트인이 음흉한 마음을 먹고는, 이런 사람은
본 적도 없다면서 자기한테 돈을 맡기지 않았다며 잡아떼는 것이었다. 스페인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하다가 동료들에게 돌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 남자가 얼마나 정직하고 덕이 많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인데
그런 짓을 하겠냐면서 오히려 그가 하는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집트인을 다시 찾아가 더욱 겸손하고 정중한 태도로 사정을 했다.
그렇게 하면 자기 돈을 돌려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예를 갖췄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기꾼은 그가 사정을 하면 할수록, 자기가 돈을 맡아두었다는 사실을 더 완강히
부인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스페인 남자가 자기 명예를 더럽힌다며 그를
고소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스페인 남자는 기가 푹 죽어 돌아가다가 어느 노파를 만나게 되었다. 수녀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있던 노파는 외국인이 정신이 나가 헛소리를 하면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스페인 남자는 노파에게,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 이집트인과 자신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마음씨 좋은 노파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하늘이 도와줄 테니 희망을 가지라며
그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자기도 사실을 밝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노파는 우선 남자에게 믿을 수 있는 고향 친구를 데려오도록 하고는 그에게
자기의 묘안을 일러주었다.
"당신은 상자 네 개를 고급스럽게 색칠한 다음에 안은 조약돌들로 채우고 위는
은과 비단으로 덮어서, 당신 돈을 가로채려 했던 그 사람 집으로 가져가도록 하세요.
당신 친구가 그 이집트인에게 보물로 가득 찬 상자를 맡기려고 한다는 것을 믿게
해야 해요. 그리고는 사람들이 상자를 다 운반했을 때 당신이 그 집에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 거예요. 하느님이 도우시면 당신은 돈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스페인 남자는 노파가 시킨 대로 일을 준비했다. 노파는 그의 친구와 함께
이집트인의 집으로 상자를 옮겨놓고 그 사기꾼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여기 이 사람들이 금은 보화를 잔뜩 가지고 온 스페인 상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메카로 가려던 차에, 어르신이 정직하고 의리 있으며 성실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네가 돌아올 때까지 상자 네 개를 어르신께 맡기려고 합니다. 이
보물들을 가지고 사막을 통과하다가 도둑맞을까봐 두려운 거지요. 어르신께서 부디
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건 우리들만 아는 비밀로
했으면 합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네가 그렇게 엄청난 재물을 가지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들이 상자를 방에 집어넣고 있는데 갑자기 먼저 돈을 맡겼던 스페인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노파가 시킨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자기 돈을
돌려달라고 공손히 요구했다. 돈을 맡긴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었던 이집트인은
그가 보물상자를 맡기러 온 사람들에게 자기 얘기를 나쁘게 하거나, 소동을
피울까봐 덜컥 겁이 나 이렇게 말했다.
"아이구, 나한테 은을 맡겨놓고 가서는 이제야 오시면 어떡합니까! 당신이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하던 차였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페인 남자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그는 스페인 남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보물 상자를 맡기러 온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못해
보석을 맡기지 않고 그냥 돌아갈까봐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노파는 그 불쌍한
남자가 돈을 되찾는 걸 보고는 안심한 기색으로 사기꾼에게 보물 상자들을 맡겼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파는 이렇게 재치와 속임수로 스페인 남자가
은을 되찾도록 도와주었다.
* 주위와 평판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늘 기대에 어긋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ff
세번째 이야기 시인과 꼽추
어느날 현자가 아들에게 말했다.
"일을 조금 그르쳤다고 해서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라. 잘못된 줄 알면 빨리
손을 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꼴이 되느니라."
그리고는 아들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학문을 아끼는 왕이 살았다. 한 시인이 그 왕의 공적과 업적을 칭송하는
기가 막힌 글들을 써서 세상의 감탄을 자아냈다. 왕은 시인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은
마음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시인은 한
달 동안 성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는 수문장을 시켜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어 있었다. 성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신체적 결함에
한 냥씩 벌금을 물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시인의 글에 푹 빠져 있었던 왕은
흔쾌히 승낙을 했다.
시인이 자신의 새 직업에 우쭐해져서 성문을 지키고 있을 때 꼽추 한 명이 망토를
푹 뒤집어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꼽추가 성 안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시인은 그가 꼽추이기 때문에 돈을 내야 한다면서 그를
가로막았다. 돈을 안 내려는 꼽추와 시인은 실랑이를 벌였다. 그 바람에 꼽추의
망토가 벗겨졌다. 가만 보니 꼽추는 애꾸눈이기도 했다.
그것을 본 시인이 말했다.
"당신은 애꾸눈이기 때문에 두 냥을 내야 하오. 꼽추에 해당하는 한 냥까지
합쳐서 말이오."
하지만 꼽추는 한푼도 못 내겠다며 완강하게 버텼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통에
시인이 꼽추의 모자를 벗기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꼽추는 두창까지 앓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이 말했다.
"이제 세 냥을 내야 하오. 당신이 두창을 앓고 있으니 말이오."
하지만 꼽추는 그 돈도 안 내려고 끝까지 버텼다. 그러자 시인이 완력을 써서라도
돈을 받아내겠다며 덤벼들었다. 꼽추도 질세라 소매를 걷어부치고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팔목을 걷어올리자 옴에 걸려 사방이 쭈글쭈글한 팔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인이 네 냥을 내야 한다고 우겼다.
왕의 허락을 받고 요구하는 것이니 돈을 내야 된다는 시인과 자기를 욕보이는
일이니 그럴 수 없다는 꼽추는 결국 주먹질을 하며 싸우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꼽추가 땅바닥으로 뒹굴면서 탈장에 걸린 배가 그대로 다 드러나버리고 말았다.
이를 본 시인이 다른 신체적 결함까지 합해서 이제는 다섯 냥을 내야 된다고
우겼다.
결국에는 꼽추가 시인의 요구대로 다섯 냥을 내고서야 싸움은 끝이 났다. 처음에
아무 말 않고 한 냥을 냈으면 일이 그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 조그만 손해를 보더라도 막을 수 있으면 괜한 고집을
부리지 말라. 일을 크게 확대시키다가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ff
네번째 이야기 양을 데리고 강을 건너는 방법
어느 왕이 옛날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이야기꾼을 한 명 데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꾼은 왕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때마다 왕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어느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왕이 이야기꾼을 불러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상시처럼 이야기를 다섯 가지만 할 게 아니라 더 해달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이야기꾼은 다른 짤막한 이야기 세 편을 더 해주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그 이야기들은 너무 짧구나. 그러지 말고 좀 긴 이야기 하나만 더 해주고나서
자러가거라."
왕의 명령에 이야기꾼이 긴 이야기 하나를 시작했다.
"어느 시골 사람한테 찬 리브라가 생겼습니다. 그 남자는 장에 가서 이천 마리의
양을 샀지요. 그런데 그가 양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여울목은 물론이고 다리 위로도 강을 건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시골
사람이 어떻게 강을 건널까 고민하고 있는데 사람 한 명과 양 한 마리에다가
가까스로 끼워넣으면 양 한 마리 정도는 더 탈 수 있는 배 한 척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양을 두 마리씩 태워서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양 두 마리, 양 네 마리, 양 여섯 마리^5,5,5^"
그런데 이야기꾼은 이런 식으로 양들을 세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왕은 급히
그를 깨워서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야기꾼은 이런 재치 있는 대답으로 왕을 만족시켰다.
"오, 고귀하신 전하. 이 강이 워낙 넓은 데다가 배는 작고 양들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전하, 불쌍한 시골 사람이 그 많은 양들을 데리고 강을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나서 하던 이야기를 마저 끝내겠습니다."
* 상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재치이다.@ff
다섯번째 이야기 왕의 재단사와 네디오 이야기
옛날에 아주 훌륭한 재단사를 둔 왕이 있었다. 재단사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옷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냈으므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에게는 제자들도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네디오라는 제자가 가장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축제가 다가오자 왕은 재단사를 불러 자신과 왕실 사람들을 위해 멋진 옷들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에미코라는 신하를 시켜 모든 게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식사도 푸짐하게 대접하도록 했다.
어느날 에미코가 달콤한 꿀을 겻들인 빵과 푸짐한 간식을 내왔다. 에미코는
네디오가 없는 것을 알고는 사람들에게 네디오 몫으로 음식을 조금 남겨두자고
했다.
그러자 재단사가 말했다.
"네디오는 꿀을 안 먹으니까 다 먹어버려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돌아온 네디오는 사람들이 자기 몫의 음식마저 먹어치운 것을 보고는 화를
냈다.
에미코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너희 스승께서 네가 꿀을 안 먹는다고 말씀하시더구나. 그래서 네 몫을 따로
남겨놓지 않은 거야."
네디오는 스승이 자기를 골탕먹인 것에 대해 어떻게 분풀이를 할까 궁리했다.
그러던 어느날 스승이 없는 자리에서 에미코가 네디오에게 물었다.
"너는 네 스승보다 더 훌륭한 재단사를 본 적이 있느냐?"
네디오가 대답했다.
"스승님이 그 나쁜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재단사가 될
수도 있을 텐데^5,5,5^"
궁금해진 에미코가 무슨 병이냐며 묻자 네디오는 사뭇 걱정스런 얼굴로, 한 번
발병을 했다 하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다 때려죽이려 드는 병이라고 말했다.
"그가 언제 발병을 하는지 알기만 하면 사람들이 다치거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내가 그를 묶어놓을 수 있을 텐데."
이 말을 들은 네디오가 대답했다.
"스승님이 손으로 재단대를 탁탁 치면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뭔가를 찾기 시작할 겁니다. 그럼 그때가 발병을 하는 시기라
생각하시면 틀림없어요. 그때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크게 다치고 말 거예요."
에미코가 대답했다.
"네가 미리 귀띔을 해줘서 천만다행이구나. 내가 모두를 보호할 테니 걱정마라."
다음날 네디오는 스승의 가위를 몰래 숨겨놓았다. 가위가 눈에 띄지 않자
재단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재단대를 손으로 탁탁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가위를 찾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에미코는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하인들을 시켜 묶게 하고는 재단사가 정신을 차리도록 몽둥이로 때리라고
했다. 재단사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고스란히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 그는 왜 아무
이유도 없이 자기를 때리는 거냐며 큰 소리로 항의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만
생각할 뿐 몽둥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 후에 풀려난 재단사는 아픔을 호소하면서 신하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나를 이리도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겁니까?"
에미코가 대답했다.
"모두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당신이 가끔 미쳐서 흥분하면 제자들을
때린다는 말을 당신 제자인 네디오에게서 들었습니다. 당신을 묶어서 벌주지 않으면
그 몹쓸 병이 나을 길이 없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당신 병을 고치기 위해 묶어서
때리도록 한 거예요."
그때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된 재단사가 제자에게
"이런 고약한 놈을 봤나. 네놈이 내가 미친 걸 언제 봤다는 거냐?"
하고 따져묻자 제자가 대답했다.
"저는 선생님께서 제가 꿀을 안 먹는다고 말씀하셨을 때 선생님이 미치신 줄
알았어요."
그 말을 들은 신하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선생이 당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남을 속이려다고 오히려 자기가 속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에게 속임수나 조롱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자신부터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다른 사람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ff
여섯번째 이야기 거지가 된 오만한 왕
어느 나라에 젊고 부유하고 강한 권력을 지닌 왕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오만하여 신의 노여움을 사는 큰 죄를 범하게 되었다.
"우리의 주이신 신께서 권세 강한 자를 연약케 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셨도다."라는 찬미가의 구절을 듣게 된 왕은 화가 났다. 자신의 권력을 비웃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왕은 왕국 전체에 이 구절을 지우고 대신 이렇게 쓰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께서
강한 자를 권좌에 앉히시고 비천한 자를 저승으로 데려가시니라." 왕이 고친 이
구절을 들은 신은 무척 노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왕이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목욕을 하러 강가로 갔을 때였다. 왕이
옷을 벗어두고 목욕을 하는 동안 신이 보낸 천사가 왕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벗어둔
왕의 옷을 입고 수행원들을 거느린 채 왕궁으로 돌아가버렸다. 왕의 옷이 있던
자리에는 성문 밖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의 누더기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목욕을 끝낸 왕은 시종과 수행원들을 불렀으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몹시
노하여 모두 참수형에 처하겠노라고 으르릉거렸다. 시종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고
믿은 왕은 벌거벗은 채 누군가를 찾았으나 아무도 없는 것을 보자 그만 할말을
잃어버렸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왕은 구석에 놓인 넝마를 보자 저것으로라도
대충 몸을 가리고 왕궁으로 돌아가 모두에게 참혹한 벌을 내리리라 마음먹었다.
왕이 사람들 눈을 피해가며 성으로 돌아왔을 때 성문 앞에는 낯익은 수문장이
버티고 있었다. 왕은 나지막한 소리로 그를 불러 누군가 이 광경을 보기 전에 냉큼
문을 열라고 말했다. 허리에는 기다란 칼을 차고 손에는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있던
수문장은 '네 놈이 대체 누구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왕은 노하여
소리쳤다.
"이런 발칙한 것! 너희들이 친 장난이 모자라 이제는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다니. 냉큼 문을 열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수문장이 대답했다.
"정신나간 녀석, 어서 썩 물러가라. 그리고 계속 허튼 소리를 하고 다니면 큰코
다칠 줄 알거라. 왕께서 돌아오신 지가 언제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 지금 쉬고
계시니 깨지 않으시도록 어서 꺼지거라."
이 말을 들은 왕은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 수문장에게 달려들었으나 몽둥이
세례를 당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왕임을 주장하다 봉변만 당한 왕은 이제 마지막으로 왕비궁으로 향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몰라봐도 아내만은 자신을 알아보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비 앞에 이르러 자신이 왕이라고 말하자, 쉬고 있는 천사를 남편으로 믿고
있던 그녀는 그에게 욕을 퍼부으며 쫓아내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왕은 이제 거지가 되어 세상을 떠돌 뿐이었다. 구걸을
하며 허기를 면하고 변변한 잠자리가 없어 길에서 밤을 지새야 했다. 그러는 사이
왕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오만함으로 신을 모욕했음을,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왕은 그제서야 큰 소리로 울며 용서를 구했다.
왕국을 돌려받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하고 그저 영혼을 구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왕과 똑같은 모습을 지닌 천사가 수문장을 불러 물었다.
"어느 광인이 이 땅의 왕이라고 소리치며 다니는 해괴한 일이 있다던데 그게
사실인가?"
천사는 수문장에게서 그간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들은 후 그를 잡아 대령시키라고
명했다. 광인이 옥좌 아래 꿇어앉자 왕은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가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가 몹쓸 불행으로 왕국을 잃은 왕이라는데 그게 사실인가? 내 절대
해치지 않을 테니 어디 그 사연을 말해보게나."
이 말을 들은 불쌍한 왕은 무어라 대답할 바를 몰랐다. 이제 죽게 되었다며
절망한 그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왕이시여, 제 어찌 아뢰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제겐 삶과 죽음이
다름이 없고 이 모든 것을 신께서 아시니 무엇을 숨기오리까. 왕이시여, 저는
광인임이 분명하고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리 여겨온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만함으로 왕국을 잃은 왕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는 더할 나위 없이 솔직한 태도로 자기의 죄를 고백했다. 천사를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 당신의 말이 모두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방금 고백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주께서 천사인 나를 보내어 당신의 왕좌를 빼앗게 한 것입니다. 끝없는
자비를 지니신 신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셨으니 이제 다시는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같은 죄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것과 진심으로
참회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범하기 쉬운 오만함은 신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 죄가 신의 권능에 대적할 뿐 아니라 영혼을 파멸시키기 때문이지요.
어떤 혈통도, 지위도, 인품도, 모두 다 덧없이 소멸할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왕은 통곡하며 천사의 발치에 몸을 던졌다. 그리하여 회개한 왕은 용서를 받고
잃은 명예까지 되찾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신과 백성을 섬기는 겸손한 왕이 되어
치적을 남기고 명성을 얻었다.
* 신의 은총과 세상의 명성을 얻으려면 모든 일에 겸손해야 한다.@ff
일곱번째 이야기 정신병자보다 더 미친 사람
옛날 밀라노에 아주 유명한 의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정신병을 잘 낫게 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집에는 큰 울타리가 쳐져 있고, 그 안으로는 더럽고
깊은 늪이 있었다. 그 늪 가운데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의사는 병을 고치러
온 정신병자들을 벌거벗겨 기둥에 묶어놓고 치료를 했다. 늪의 물은 무릎 정도부터
시작해서 미친 정도에 따라 그 깊이가 깊어졌다. 그는 환자의 병에 차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계속 묶어만두었다.
어느날 한 정신병자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왔다. 그는 허벅지까지
오는 진흙탕 속에서 보름을 지냈다. 보름이 지나자 그는 제정신을 차린 것 같다며
제발 꺼내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려 통사정을 했다. 의사는 고문과 다름없는 그
지저분한 늪에서 환자를 꺼내주기는 했지만 울타리 밖으로 절대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로부터 며칠간 정신병자가 의사의 말을 듣고
고분고분하게 지내자, 의사는 그에게 울타리 밖으로 나가도 좋다고 허락을 했다.
하지만 문 밖으로 나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정신병자는 신이 나서 집안을
돌아다녔지만, 항상 의사의 말을 명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신병자는 문가에 기대어 서있다가 말을 탄 기사가 매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았다. 두세 마리의 개도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평생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는 그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기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기사가 가까이 오자 정신병자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내 말 좀 들어봐요. 당신이 타고 온 게 뭔지 얘기해줘요. 그리고
그게 뭐에 쓰이는 건지도요."
"이건 '말'이오. 사냥을 하기 위한 거라오."
다시 정신병자가 물었다.
"그럼 당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뭐요? 그건 어디에 쓰이는 거요?"
"이건 '매'라는 거요. 메추라기나 백로 같은 새들을 사냥하기 위한 거라오."
정신병자가 개에 관해서도 궁금해하자 기사가 말했다.
"이건 '개'라는 건데, 사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동물이요. 개가
산토끼, 새, 그밖의 다른 사냥감들을 찾아내기 때문이라오."
그러자 정신병자가 물었다.
"그러면 개나 매를 데리고 사냥하면 일 년에 얼마 정도 벌 수 있는 거요?"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대충 금화 사 리브라에서 오 리브라 정도 벌지
않을까 싶소."
"그러면 그 개나 매에 드는 비용은 일 년에 어느 정도 됩니까?"
"보통 오십 리브라 정도 든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자 정신병자는 그 기사가 미쳤다고 생각하고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어서 빨리 여기서 도망쳐요. 날 수만 있다면 날아서라도 빨리 도망을 가요. 우리
의사가 당신을 보면 안돼요. 의사가 당신이 얼마나 미쳤는가를 알게 되면 아마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요. 다른 정신병자들처럼 당신도 늪에다가 묶어놓을 거요.
내가 보기엔 당신이 제일 깊숙이 잠기게 될 것 같소. 이곳 환자들 중 당신이 가장
심하게 미쳤으니 말이오."
*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 결국 망신을 당하게 되는 법이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ff
여덟번째 이야기 황소만한 여우
기사가 시종과 함께 길을 가다가 여우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원 세상에, 저렇게 큰 여우가 있다니!"
뒤따르던 시종이 기사에게 말했다.
"저 여우를 보니 나으리께서 놀라실 만도 합니다. 하지만 옛날에 제가 살던
고장에서는 황소보다 더 큰 여우를 본 적도 있답니다."
그러더니 수다스러운 시종은 길을 가는 동안 계속해서 황당무개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참다 못한 기사가 말했다.
"오, 전지전능하신 주피터 신이시여. 오늘 저희가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다치지 않고 아무 탈 없이 그 위험한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무사히 인도해 주옵소서."
기사의 기도 소리를 들은 시종이 기사에게 물었다.
"나으리, 무슨 연유로 그렇게 간곡히 기도를 하시는 겁니까?"
기사가 대답했다.
"너는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단 말이냐. 이제 우리는 신비의
강을 건너야만 해. 그런데 그날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 강을 살아서 건너지
못한다는 거야. 그냥 물에 빠져 죽고 마는 거지."
그 말을 들은 시종은 덜컥 겁이 났다. 조그만 개울물이 나오자 시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 강이 나으리께서 말씀하시던 그 위험한 강입니까?"
"아니. 아직 근처에 오지도 못했다.?"
"그래서 어쭤본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예전에 본 그 여우는 사실
당나귀만했습니다."
기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여우 크기가 어떻다는 거냐? 그게 무슨 상관이야."
계속 길을 재촉하던 두 사람은 이번에는 강을 만나게 되었다.
"나으리, 이 강이 나으리께서 말씀하셨던 그 강이지요."
기사가 아직도 멀었다고 하자 시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나으리께 여쭤본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그 여우는 사실 새끼
송아지보다 작았어요."
그러자 기사가 말했다.
"나는 그 여우가 크건 작건 별 관심이 없다."
잠시 후에 그들은 또 다른 강가에 도착했다. 그러자 수심에 잠겨 있던 시종의
얼굴이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틀림없이 이 강이 그 위험하다는 강이지요?"
"그 강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그 여우 말인데요. 사실 그 여우는 양만한 놈이었지요."
"이제 여우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 좀 할 수 없겠느냐?"
어느덧 오후가 되어 엄청나게 큰 강에 도착하자 시종이 말했다.
"틀림없이 이 강이 나으리께서 말씀하신 그 강일 것 같네요."
"그래. 이 강이 바로 그 신비의 강이다."
그러자 시종은 잔뜩 겁에 질려 창피를 무릅쓰고 말했다.
"나으리. 여우에 대해 거짓말했던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겠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맹세컨대 예정에 봤던 그 여우는 오늘 우리가 함께 봤던 그 여우보다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기사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에게 맹세컨대, 이 강이 다른 강들보다 위험할 이유는 전혀 없느니라."
* 거짓말은 언제나 더한 거짓말을 낳는 법. 아무 생각없이 거짓말을 하다가는
자신의 말을 번복해야 하는 때가 온다.@ff
아홉번째 이야기 콩과 콩 껍질
재산도 많고 평판도 좋은 부자가 있었다. 남 부러울 게 없는 삶이었지만 그는
항상 '만약 가난해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고심 끝에 현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자 덕망 높은 현자는 부자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내로라 하는 부자인 두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하나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여 극심한 가난에 빠지고 말았지요. 입에 풀칠할 것조차 구하지
못했던 그가 유일하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콩을 몇 알 띄운 수프 한
대접이었습니다. 쓰디쓴 수프를 먹으며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니 부족한 것 없었던
옛날이 생각나 그는 서글픔에 잠겼습니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콩 껍질을
등뒤로 버리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한 남자가 자신이
버린 콩 껍질을 주워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남자는 부자였던 두
사내 중 다른 하나였지요.
그는 껍질을 주워 먹는 남자에게 어쩌다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말했지요.
"한때는 내가 자네보다 더 부자였지. 그런데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이젠
끼니를 채우지도 못하게 되었다네. 오늘도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자네가 버리는
콩 껍질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이 말을 들은 남자는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후로는 마음을 가다듬고 일을 한 끝에 그 불행한 상태에서
벗어나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끝낸 현자는 부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한다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신의 섭리지요. 그러나
원하는 것 모두는 아니더라도 신이 당신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편하고 정직하게 살
수 있으니, 만일 돈이 모자라 어려운 때가 있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당신보다 더
부유하고 명예로운 사람들도 어려운 때가 있음을, 당신보다 가난한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자신의 빈궁한 처지가 서글퍼질 때면 자신보다 더 불행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생각하라.@ff
열번째 이야기 당나귀를 팔러 간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장에 가고 있었다. 그들은 당나귀에 아무 것도
싣지 않은 채였다.
길을 가다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와 아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제정신이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당나귀를 써먹지도 않을 거면
먹이는 왜 준 거요? 그걸 타고 가면 몸도 덜 피곤하고 신발도 덜 닳지 않겠소?
당나귀야 튼튼하고 건강하니 그 위에 탄다고 해서 뭐가 문제요? 그게 당나귀가 해야
할 일이 아니오. 워낙 일할 팔자를 타고 태어난 놈 아니냔 말이오?"
사람들의 말을 그럴듯하게 여긴 아버지는 당나귀 위에 아들을 태우고 자기를
걸어서 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고 해도 그렇지. 아버지는 늙어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하는데 그냥 걸어서 가고, 사냥개보다 더 잘 뛸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녀석은
당나귀를 타고 와? 자식을 잘못 키워도 영 잘못 키웠어. 자식 교육은 그렇게 시키는
게 아닌데. 그렇게 키워봐야 게으르고 철없는 한량밖에 더 되겠나?"
그들의 충고가 제법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늙은 아버지는 아들을 내려오게 하고,
자기가 당나귀를 타고 갔다. 그렇게 아버지는 당나귀를 타고, 아들은 뒤에서
걸어가다가 또다른 나그네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보자마자
나무라기 시작했다.
"원 세상에, 무슨 아버지가 저리도 매정하담. 둘 다 태워도 끄떡없을 것 같은
당나귀인데 자기 혼자만 타고 가다니. 아들보다 당나귀를 더 귀하게 여기는
모양이군. 이 더위에 저렇게 걸어가다니 아들이 무슨 고생이야. 저러다가 더위라도
먹어 일사병에 걸리면 몸도 탈날 텐데. 다리라도 다쳐봐. 병신되기 딱 십상이지.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 병원신세나 지고 골골할 텐데."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이 측은해져서 아들도 당나귀에 함께 태웠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타고 가다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전에 보았던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아버지와 아들을 나무랐다.
"세상에 별꼴을 다 보겠네. 당나귀 한 마리 위에 장정 둘이 타고 가다니. 당나귀
한 마리 위에 당나귀 두 마리가 올라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 저 가련한 것이
힘이 들어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잖나. 인정사정도 없는 사람들 같으니. 차라리
그 당나귀를 타고 언덕길을 올라가지 그래. 당나귀가 배가 터져 죽어야 직성이 풀릴
사람들이야."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구나. 당나귀가 지쳐서 죽으면 안 되잖니.
다리를 묶어서 막대기에 걸쳐 성까지 들고 가자꾸나. 그렇게 하면 힘도 덜 들고, 또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인정 많다고 칭찬도 할 것 아니겠니? 당나귀도 푹 쉬고 나면
팔 때 돈도 더 많이 쳐서 받을 수 있을 테고."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의 네 발을 묶어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이런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마구 비웃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나? 이 당나귀가 똑똑하기는 똑똑한가 보군. 두 멍청한
인간들이 자기를 메고 언덕길을 오르게 하니 말이야. 저 당나귀라면 두 사람을
태우고 거기다가 짐까지 실을 수도 있을 텐데, 거꾸로 당나귀가 사람들한테
실려가다니.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러 태어난 짐승인데 저리 신주단지처럼 모셔서야
되겠나. 괘씸한 짐승이로군. 저런 놈은 가죽을 벗겨서 세상 사람들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해."
아버지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당나귀가 괘씸해지면서 화가 났다. 그는 당나귀를
메고 가던 막대기를 꺼내들고는 당나귀 머리를 냅다 내리쳤다. 당나귀가 그
자리에서 죽어 고꾸라지자 아버지는 당나귀 껍질을 벗기면서 말했다.
"온종일 이 놈의 당나귀 때문에 수도 없이 욕만 먹었군. 이제 이 놈 껍데기를
벗겨버리면 욕 먹을 일도 없겠지."
아버지는 당나귀 껍질을 어깨에 들쳐메고 장으로 갔다. 착한 일보다는 나쁜 일에
더 눈독을 들이는 동네 개구장이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개구장이들은 늙은
노인네가 피범벅이 된 당나귀 껍질을 팔려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 껍질을 뺏아
여기저기로 던지다가 진흙탕 속에 빠뜨렸다. 그 덕에 노인의 얼굴은 진흙범벅이
되고 말았다. 진흙과 피투성이로 온몸이 엉망이 된 그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
주려다가 결국에는 재산을 잃고 망신만 당한 꼴이 되었다.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만족시킬 수는
없으므로 자기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남의 말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된다.@ff
열한번째 이야기 세 명의 길동무
세명의 길동무들이 있었다. 그들은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다가 우연히 만난
사이였는데 두 명은 도시에 사는 상인이고, 나머지 한 명은 시골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식량이 떨어져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조그만 빵 한 개만 겨우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밀가루뿐이었다. 약아빠진 도시상인들이 이걸 보고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이젠 더 먹을 빵도 없어. 저 시골놈이 엄청 먹어댔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러니
그나마 남은 빵이라도 저 녀석을 빼고 우리끼리 먹을 궁리를 해야 돼."
이렇게 해서 그들은 시골사람을 속일 꾀를 생각해내곤 이렇게 말했다.
"우리 셋 중에서 가장 신기한 꿈을 꾼 사람이 마지막 남은 빵 한 개를 먹는 걸로
합시다."
세 길동무는 이렇게 하기로 결정을 하고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골사람은 도시상인들의 꿍꿍이속을 눈치채고는 반쯤 익다 만 빵을 다 먹어치우고
다시 잠을 잤다. 잠시 후 상인 중 하나가 신기한 꿈을 꿨는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신기한 꿈을 꿨는지 놀라서 자지러지는 줄 알았네. 천사 두 명이 나타나
하늘의 문을 열어주고는, 신이 계신 곳으로 나를 인도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들은 다른 상인이 환희에 찬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 꿈 한 번 신기하네. 하지만 내가 그보다 더 신기한 꿈을 꿨으니 한 번
들어보게나. 내 꿈에는 천사 두 명이 나타나서 나를 땅 위로 질질 끌고가 지옥으로
데리고 갔다니까."
시골사람은 계속 잠든 척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상인들은 이제
자기네 속임수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 시골사람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시골사람이 너무나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니, 누가 나를 깨우는 거야?"
상인들이 대답했다.
"그야 우리지. 누구긴 누군가?"
그러자 시골사람이 다시 물었다.
"아니, 이떻게 다시 돌아왔어?"
상인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우리는 여길 떠난 적이 없는데 다시 돌아왔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시골사람이 대답했다.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천사 두 명이 나타나서 자네둘 중 한 명은 신 앞으로
데리고 가고, 다른 한 명은 지옥으로 질질 끌려가는 꿈을 꾸웠네. 여기껏 천국이나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자네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지. 그래서 아까 일어나 혼자서 빵을 다 먹어치웠다네."
* 자기가 똑똑한 줄 알고 어수룩한 상대방을 속이려하다가는 오히려 자기가 자기
꾀에 빠질 수도 있다.@ff
열두번째 이야기 분수를 모르는 씨돼지
조그만 씨돼지가 다른 돼지떼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씨돼지는 자기가 덩치가
작아 우두머리가 되지 못하는 데다 다른 돼지들이 자기를 떠받들지 않자 늘 불만에
차 있었다. 그래서 다른 돼지들에게 어금니를 들이대면서 못살게 굴기도 했지만
자기가 아무리 괴롭혀도 돼지들이 꿈쩍도 하질 않자 제풀에 지쳐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여기서는 내가 뭘 시켜도 들은 척도 하질 않아.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무서워하지 않고, 갖은 협박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질 않아."
씨돼지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곳을 떠나서 자기를 알아주는 곳으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길을 떠난 씨돼지는 양떼들을 만났다. 씨돼지가 양떼 한가운데로 가서는 이를
갈면서 씩씩거리자, 양떼들이 겁에 질려 하나 둘씩 도망가기 시작했다. 씨돼지가
흐뭇해져서 말했다.
"여기서 사는 게 좋겠군. 여기서는 대접을 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화를
내면 무서워서 도망가고 겁을 주면 기겁을 하잖아. 여기 있으면 모두에게 존경받을
수 있을 거야."
씨돼지 혼자 기분이 들떠 이렇게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굶주린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양떼들을 잡아먹으려 했다. 늑대가 오는 것을 본 양들은 가파른 바위가 있는
곳으로 얼른 도망을 쳤지만, 씨돼지는 양들이 자기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고는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다. 씨돼지는 꼼짝없이 늑대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옛날 같이 살던 돼지떼들이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들을 알아본
씨돼지가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자 돼지떼들이 달려들어 힘을 합쳐 늑대를
물리치고는, 거의 반쯤 죽다 살아난 동료를 구해주었다. 씨돼지는 온몸이 아프기도
하고 망신스럽기도 해서 울상이 된 얼굴로 자기를 구해준 돼지들에게 말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겠어요. 내가 가족 곁을 떠나지만 않았어도 이런 봉변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 자기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거만한 사람은 큰
봉변을 당하기가 쉽다.@ff
열세번째 이야기 진정한 친구
아라비아의 한 현자가 아들에게 말했다.
"개미가 너보다 더 현명하다는 사실을 묵과하면 안 된다. 여름에 아끼고 열심히
일하는 자만이 겨울에 편하게 사는 것이다. 닭이 너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도 안
된다. 닭은 꼭두새벽에 일어나는데 너는 잠만 자는구나. 아홉 여자를 거느리는
남자가 너보다 더 강해서도 안 된다. 너도 원한다면 한 여자는 거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가 너보다 더 의리가 있어서도 안 된다. 개는 항상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데 너는 그렇지 못하구나. 아무리 하찮은 적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되며 많은
친구들을 가진 것처럼 허세를 부려서도 안 된다."
죽음에 임박하여 아라비아의 현자가 다시 아들을 불렀다. 현자는 아들에게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제 생각에 백 명은 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 너에게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나는 아직 반쪽 친구도 얻지 못했다. 그것도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아느냐. 그런데 네가 그 많은 친구들을 가졌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구나.
그러면 너는 네 친구들 중 누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느냐."
현자의 말에 아들은 도리어 물었다.
"아버지, 어떤 친구를 진정한 친구라고 합니까?"
그러자 아버지는 '모두가 등을 돌릴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한
철학자의 말을 들려주었다.
아들이 다시 현자에게 질문을 했다.
"혹시라도 진정한 친구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버지가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본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아들은 나중에라도 그런 친구를 가질지 모르는 일이니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현자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상인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이집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바그다드인이었는데 그들은 심부름꾼과 편지 그리고 남들의 이야기로만 서로를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장사를 하면서 거래차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바그다드 상인이 이집트에 갈 일이 생겼다. 친구가 온다는 전갈을 받은 이집트인은
너무나도 반갑게 그를 맞이하며 자기 집에 묵게 했다. 그는 일 주일 동안 친구에게
후한 대접을 하고, 자기의 은밀한 비밀까지도 전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바그다드에서 온 친구가 갑자기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이집트 상인은 친구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 지방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의사들
중에서도 제일 이름난 의사 몇 명을 골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친구의
맥을 짚어본 의사들은 그가 아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면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그가 마음이 병들었거나, 귀신에 홀렸거나, 사랑에 빠졌거나, 욕심이 많아서 아픈게
아니라면 아프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집트 상인은 친구에게 자기한테만은 숨김없이 말해보라고
사정했다. 혹시 자기 집에 마음에 둔 여자가 있는지, 그래서 그 여자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긴 건지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다.
"자네 집에 있는 여자들을 전부 보여주게나. 만일 그 여자들 중에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면 사실대로 말하겠네."
그래서 이집트 상인은 자기 집에 있는 모든 하녀들을 불러모았다. 하지만 친구가
찾는 여자는 거기에 없었다. 이집트 상인의 딸들 중에도 그가 찾는 여자는 없었다.
이집트 상인은 마지막으로 오래 전부터 자기의 아내로 삼으려고 마음먹었던 여자를
데려오게 했다. 그 여자를 본 친구는 바로 저 여자한테 자기 목숨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집트 상인은 아름답고 우아한 그 처녀를 그 자리에서
지참금까지 줘서 친구와 결혼을 시켰다. 그러자 그 친구는 곧 병이 나았고, 사업차
왔던 일이 끝나자 그 여자를 데리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세월이 한참 흘렀고 이집트 상인은 우여곡절 끝에 전 재산을 다 잃게
되었다. 그는 바그다드에 있는 친구에게 갈까 생각했다. 그 친구가 자기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의 벌거벗은 거나 다름없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배고픔을 참으며 친구를 찾아갔다.
그는 밤이 되어서야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하지만 자기의 형편없는 몰골이
창피해서 친구 집으로 찾아간다는 게 두려웠다. 더군다나 야심한 시간에 찾아간다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사원 안에서 밤을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사원 안에 드러누워 이런 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거리던 그는
자기가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화도 삭이고 바람도
좀 쐴 겸 걸어다니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거리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한 남자가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싸움소리를 듣고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은 죽어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자 살인자를 잡겠다며 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남루한 행색의
이집트인을 보자 그를 의심하게 되었다. 이집트 상인은 사람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는 어차피 이렇게 빈털털이가 된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자기가 그 남자를 죽였다고 말해버렸다. 이렇게 해서 그
이집트 상인은 그날 밤 당장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음날 재판관 앞으로 끌려간 이집트 상인은 교수형을 받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교수형당하는 광경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는데, 마침 이집트 상인을
찾아왔던 그 바그다드 상인도 구경꾼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는 친구를
알아보고는, 믿기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사형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의 이집트 친구, 자기를 극진히 대접했고 사랑하는 여자까지 양보했던
바로 그 친구였던 것이다.
그는 남자라면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죽고 나면
은혜를 갚을 길이 영영 없어진다고 생각한 그는 친구를 대신해서 죽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 나쁜 재판관 놈들아. 왜 죄없는 사람을 죽이려는 거냐. 너희들이 아무리 그
사람을 죽여봐야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바로
나니까. 내가 그 남자를 죽였다. 내가 살인자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재판관들은 그를 붙잡아들인 후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원래 사형에 처하려고 했던 이집트 상인은 풀어주었다.
이 모든 걸 보고 듣고 있던 진짜 살인범은 자기가 지은 죄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서로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두 친구의 우정과 믿음을 보게 된
것이다. 벌을 받을 사람이 있다면 자기인데, 아무 죄도 없는 그들이 죽는다면 그건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 살인범은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재판관님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사실 신들이야말로 공평한 재판관님이십니다.
신들은 무고한 사람이 처벌당하도록, 또 죄인이 벌을 받지 않고 무사하도록 내
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저 세상에서 더 엄하고 처참한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그 남자를 죽인 진짜 살인범이라는 걸 자백합니다. 내가 지은 죄값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죄없는 그 사람은 풀어주시고 죄인인 나를 벌해주십시오!"
깜짝 놀란 재판관들은 그 남자를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뭔가 더
자세히 조사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사건에 대한 경위서와 함께 세 사람을
포승에 묶어서 왕에게 보냈다. 왕도 그 사건이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그 살인사건이 정당방위였음이 드러났고, 세 사람은 모든
의원들과 현자들의 동의를 얻어 무죄를 인정받고 석방되었다. 그리고 애 세 사람이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외쳤는지 그 진짜 이유도 밝혀지게 되었다.
바그다드 상인은 이집트 친구가 가난해진 것을 보고는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말했다.
"자네가 내 집에 머무르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자네 것이야. 우리
둘이 같이 공유하는 거지. 그게 싫다면 내 재산을 둘로 똑같이 나눠서 반반씩
갖도록 하세. 나는 아무래도 좋아."
그리하여 이집트 상인은 친구가 나눠준 재산을 가지고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들이 현자에게 말했다.
"아버지. 그런 친구는 옛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친구는 많이 있지만 어려울 때 자신을 던져 도움을
주는 친구는 많지 않다. 그런 친구가 바로 진정한 친구이다.@ff
열네번째 이야기 억울한 누명
한남자가 아무 재산도 없이 집 한채만 덩그라니 아들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막노동을 해서라도 먹고 살려고 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배를
곯는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집을 파느니, 무슨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견디려 했다.
그런데 한도 끝도 없이 욕심이 많은 옆집의 부자가 그 집을 탐내기 시작했다.
그는 청년이 집을 팔게 만드려고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청년은 옆집 남자가 얼마나
음흉하고 교활한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자가 그에게 다가가 달콤한 말로 속삭였다.
"자네가 집을 팔지 않는다고 원망할 노릇은 아니지. 그러면 그 집의 일부분이라도
세를 놓을 수 없겠나? 거기에 올리브 기름 열 통을 갖다놓을 테니 자네가 그걸
보관해주게나. 수고비와 방세도 톡톡히 쳐주겠네. 그럼 자네한테 득이 되면 되었지
해는 안 될 걸세."
이 말에 솔깃해진 청년이 자기 집의 방 한 칸을 세주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속임수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청년은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에 부자는 기름이 잔뜩 든 다섯 개의 통을 방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통에는 기름을 반만 채우게 했다. 청년이 돌아오자 부자는
그에게 방 열쇠와 기름통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나는 자네만 믿고 기름을 맡겨놓는거야. 자네가 잘 지켜야 해."
청년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보관하게 될 기름 열 통이 다 꽉
차 있는 걸로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기름값이 많이 오르게 되자 부자는 기름을
팔아야겠다고 청년에게 말했다.
청년은 부자와 기름을 사러 온 상인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다섯
통에만 기름이 가득 들어 있고, 나머지 다섯 통에는 반만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속이 시커먼 부자가 이걸 보고는 청년에게 말했다.
"기름 좀 보관해달라고 그랬더니 자네가 나를 속인게로군. 이럴 수가 있나? 당장
모자라는 기름 양을 채워놓도록 하게."
청년은 자기가 속인 게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결국 죄인이 되어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청년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제가 기름 열 통을 보관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름을 빼돌리지는 않았어요.
너무 억울합니다."
그는 재판관에게 자기의 무죄를 입증할 시간을 달라고 청했다. 단 하루의 여유를
얻은 청년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주기로 소문난 철학자를 찾아갔다. 청년은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고는 겸손하게 그의 충고와 도움을 청했다. 청년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철학자는 그를 가엾게 여겼다.
"여보게, 마음을 단단히 먹게나. 내가 자네를 도와주겠네. 거짓이 진실을 이겨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다음날 청년은 철학자와 함께 재판정에 나갔다. 그날은 마침 의회가 열린 날이라
왕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양쪽의 주장을 다 들은 왕이 철학자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이 사건을 맡기려 하네. 자네 같으면 어떤 기준으로 이 사건을
공정하게 판결하겠나?"
철학자가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 부자는 평판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할 사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 청년도 지금까지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못 믿을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선 기름이 가득 들어 있는 다섯 통과 그 안에
들어 있는 기름 찌꺼기의 양을 한 통씩 재보도록 해야 합니다. 기름이 반만
들어있는 다섯 개의 통도 같은 방법으로 재봐야 합니다. 찌꺼기의 양이 똑같다면 이
청년이 기름을 훔친 게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기름이 반밖에 안 들어 있는
기름통의 찌꺼기가 기름으로 가득 찬 통에서 나온 찌꺼기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면
이 청년은 무죄로 석방되어야 합니다."
철학자의 말대로 기름 찌꺼기를 재어보자 기름이 가득 들어 있는 통의 기름
찌꺼기가 반만 들어 있는 기름통 찌꺼기의 두 배임이 밝혀졌다. 결국 청년은 무죄로
판명되었고, 아버지가 물려준 자기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 남의 것을 탐내 잔꾀를 부려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그 속성을 간파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ff
열다섯번째 이야기 술에 취한 늑대 이야기
아주 많은 양들을 거느린 부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늑대들로부터 양을 지키는
개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부자가 워낙 인색한지라 내는 늘 배를 곯으며 사는
실정이었다. 어느날 늑대가 개에게 와서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말랐니?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러는구나? 그래 네 주인이 워낙
구두쇠라고 소문이 났으니 먹을 걸 제대로 줄 리가 없지. 네가 원한다면 좋은
생각이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개가 솔깃해져서 대답했다.
"지금 나한테는 네 충고가 굉장히 절실해. 뭐든지 한 번 말해봐. 이젠 말할 힘도
없는 지경이야."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충고란 바로 이거야. 내가 양떼를 덮쳐서 양 한 마리를
훔쳐 도망가는 척할게. 그러면 그때 네가 나를 따라오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네가 힘이 달려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중간에 주저
앉아버리는 거야. 목동들이 그걸 보면 '저 놈을 제대로 먹이기만 했어도 늑대는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말할 거야. 그러면 그 때부터 너를 제대로
잘 먹이지 않겠니?"
"그래 네 계획대로 하자."
잠시 후에 늑대가 양 한 마리를 낚아채 도망을 쳤다. 개가 늑대 뒤를 쫓아 열심히
뛰어갔지만 늑대를 잡기도 전에 기운이 달려 쓰러지고 말았다. 목동들과 집안
식구들이 그걸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먹는 걸 제대로 못 먹어서 저러는 거야. 제대로 잘 먹어 건강하기만 했어도
늑대가 어디 감히 나타나기나 했겠어. 아마 양 껍질도 못 가지고 갔을 거야. 충분히
먹질 못해서 그런 거니까 이번 일은 저 놈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주인은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 개에게 먹이를 준 놈이 대체 어떤 놈이야. 망할 녀석 같으니. 내가 배불리
먹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개를 굶어죽일 뻔했잖아."
집 주인은 자기 잘못을 다른 식구들 탓으로 돌리고 앞으로는 개에게 먹을 것을
충분히 주라고 명했다. 그 때부터 개는 고기 국물도 먹고 빵 부스러기도 먹고 해서
조금씩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늑대가 다시 개 앞에 나타나
말했다.
"내가 너에게 좋은 충고를 했다는 걸 인정하겠지?"
"그럼 좋다뿐인가. 나한테는 절실한 충고였지."
"그럼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
"그래 어디 한 번 말해봐."
"그 계획이란 게 말이야. 내가 다시 양을 낚아채 도망가는 거야. 그럼 네가 나를
쫓아와서 내 가슴에 살짝 상처를 입히는 거야. 하지만 곧 기운이 달려 더 이상은 못
쫓아가겠다는 시늉으로 쓰러지는 거지. 그럼 목동들이 '정말 저 놈을 제대로 배불리
먹였으면 확실히 기운을 썼을 텐데. 그랬으면 양도 뺏기지 않았을 테고, 늑대도 저
놈 손에 살아나지 못했을 텐데' 라고 말할 거야."
늑대의 계획을 들은 개가 대답했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는 주인님이 너무 무서워. 하지만 배불리 먹도록 주질
않으니 네가 말한 대로 할 수밖에."
늑대는 양떼에게 다가가 제일 통통하게 살찐 양 한 마리를 낚아채 도망가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한 대로 개가 늑대 뒤를 쫓아 열심히 뛰어가서 늑대의 가슴에
상처까지 입혔지만 기운이 달려 더 이상은 못 하겠다는 듯 땅바닥으로 그냥
쓰러져버렸다. 그 광경을 본 목동들이 말했다.
"저 개를 좀더 배부르게 먹였으면 늑대가 살찐 양을 훔쳐가지도 못했을 테고,
늑대도 살아서 도망가지는 못했을 텐데."
그 말을 들은 주인은 화가 나서 앞으로는 개가 질릴 때까지 배불리 먹이라고
명령했다.
그때부터 개는 푸짐한 고깃덩어리와 빵을 먹을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늑대가 개 앞에 다시 나타났다.
"어때, 내 말대로 됐지?"
고개를 끄덕이며 개가 대답했다.
"그래, 모두 다 네 덕이야. 정말 고마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양 한 마리를 훔쳐가도 그냥 못 본
척하고 넘어가 줄래?"
"내가 보기에는 그 대가를 이미 받은 걸로 아는데? 벌써 우리 주인님 양을 두
마리나 먹어치웠잖아."
"너만 눈 감아주면 돼."
"나는 못 본 척할 수가 없어. 네가 만일 무모하게 그런 짓을 한다면 넌 살아서
도망갈 수 없을 거야."
이 말을 듣고 늑대가 말했다.
"그러면 난 지금 너무 배가 고파 죽기 일보 직전이니까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해봐."
개가 말했다.
"마침 빵과 소금에 말린 고기와 포도주를 가득 보관해놓은 식량창고 벽이 어제
허물어졌어. 오늘밤에 그곳에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야."
"나를 속이려고 그러는 거지? 내가 집 안에 들어가면 네가 마구 짖어대서
사람들에게 내가 거기에 와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 아니야?"
"맹세할게.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마. 안심하고 먹을 거나
챙겨가도록 해."
날이 어두워지자 늑대는 식량창고 안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빵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는 포도주를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서 술주정까지 했다.
"사람들은 빵과 포도주를 배불리 먹고 나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단 말이야.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나라고 노래 못 할 거 없지."
늑대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랫소리를 들은 개들이 일제히
짖어댔지만 늑대는 계속해서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늑대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말했다.
"늑대가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 늑대 소리가 굉장히 가깝고 크게 들리는 걸.
늑대가 식량창고 안에 있는 게 틀림없어."
사람들은 일제히 식량창고로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늑대를 발견하고는
모두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말았다.
* 도에 지나친 행동을 하면 결국 큰 화를 입게 된다. 만용을 부리지 말고
무엇이든 적당한 선에서 끝낼 줄 알아야 한다.@ff
열여섯번째 이야기 당나귀의 발을 핥은 늑대
당나귀가 산 중턱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데 여우가 와서 물었다.
"너는 누구니?"
당나귀가 대답했다.
"나는 짐승이야."
그러자 여우가 다시 말했다.
"내가 물어보는 건 그게 아니야. 네 조상이 누구냐는 거지."
"말이 내 할아버지뻘이 돼."
"그것도 내가 물어보려는 게 아니야. 네 이름이 뭔지나 말해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난 내 이름도 몰라. 그래서 이름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왼쪽 발바닥에 이름을 새겨놓았대. 이름이 뭔지 알고 싶으면 내
발바닥에 새겨져 있는 걸 읽어봐."
여우는 당나귀의 속셈을 눈치채고는 그냥 산 속으로 들어가다가 평소에 사이가
나빴던 늑대를 발견했다. 때마침 늑대는 배가 고파서 탈진한 상태로 나무그늘 밑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여우는 늑대를 골탕먹일 속셈으로 늑대에게 다가가 마구
야단치기 시작했다.
"아이구, 멍청하기는. 배가 고프다면서 왜 가만히 앉아 있는 거니? 얼른 일어나서
들판 있는 곳으로 가봐. 통통하게 살찐 동물이 있으니까 빨리 가서 잡아먹도록 해."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진 늑대가 초원으로 뛰어가서 여우와 똑같이 당나귀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니?"
"나는 짐승이야."
"내가 물어보는 건 그게 아니야. 네 조상이 누구냐는 거지."
"말이 내 할어버지뻘 돼."
"그것도 내가 물어보려는 게 아니야. 네 이름이 뭔지나 말해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난 내 이름도 몰라. 그래서 이름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왼쪽 발바닥에 이름을 새겨놓았대. 이름이 뭔지 알고 싶으면 내
발바닥에 새겨져 있는 걸 읽어봐."
당나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늑대는 당나귀의 속임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당나귀의 발바닥을 들여다보던 늑대는 뭐라고 씌어 있는지 자세히 보려고
흙투성이인 당나귀 발을 혀로 깨끗이 핥기 시작했다. 늑대가 당나귀 발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있을 때 갑자기 당나귀가 늑대의 이마 한가운데를 냅다 걷어찼다. 순간
눈알이 빠지면서 늑대는 기절해 넘어져버렸다.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여우가 박장 대소하면서 말했다.
"아이구, 바보 같은 녀석.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 글을 읽겠다고 하는
꼴이란. 이제 쥐뿔도 모르는 놈이 아는 척하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걸 알겠지?"
앙숙인 늑대를 골탕먹이고 신이 난 여우가 다시 길을 가다가 독수리가 달팽이를
낚아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달팽이가 껍질 안으로 들어가 꼼짝을
하지않는 바람에 독수리는 달팽이를 먹을 수가 없었다. 여우는 달팽이 껍질을 깨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는 까마귀에게 다가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맛있는 걸 잡아오셨네. 하지만 머리를 써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그러자 독수리가 여우에게 달팽이를 나눠줄 테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여우는 이렇게 충고했다.
"아주 높이 날아가서 바위에다 달팽이를 힘껏 떨어뜨리면 달팽이 껍질이 깨질
거예요. 그러고 나서 사이좋게 나눠먹으면 되잖아요?"
독수리는 좋은 생각이라면 하늘 높이 날아가 달팽이를 바위 위에 힘껏
떨어뜨렸다. 그러자 바위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우는 껍질이 깨진 달팽이를
가지고 재빨리 숲속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 눈앞의 이익에 혹하여 남의 말을 쉽게 믿다가는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ff
열일곱번째 이야기 영혼을 구원받지 못한 집사
카르카손에 살고 있던 한 집사가 병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수도원장과 주교를 모시고 오게 했다. 집사는 그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유언으로 남기면서 자기가 죽고 나거든 당부해둔 대로 일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것은 그가 원하던 대로 이루어졌다. 집사는 죽기 전에 사제들에게 많은
보상을 한 터라, 사제들은 그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한여자가 그 마을에 나타났다. 그 여자는 여러 가지 놀라운
말들을 하고 다녔는데, 들리는 말로는 그 여자에게 신이 내려서 그 마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했다.
집사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은 사제들은 그
여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놀라운 사실들을 말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그 여자를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집사는 영혼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신들린 여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 여자는 왜
자기를 찾아왔는지 알고 있다면서 그들이 궁금해하는 그 영혼은 얼마 전에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으려
했다. 그 집사는 너무나 진실하게 고해성사를 했고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성사를 다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제들은 만약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이 참된 것이라면
그 여자의 말은 사실일 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신들린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당신들이 믿는 신앙이 진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집사가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죽고 나서야 행했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의 의도가 선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자기가 죽거든 이러이러하게 하라는
말은 만약 죽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게다가 그
집사는 자기의 명성이 세상에 남기를 원했기에 선행을 행한 것이랍니다."
* 신은 선행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선의에 상을 주신다. 선행을 했더라도
그 의도가 선한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영혼은 구원받을 수 없다.@ff
열여덟번째 이야기 쓰디쓴 호두
호두나무 아래에 있던 원숭이는 그 나무에 열려 있는 열매의 이름이 무엇인지,
맛은 있는지 늘 궁금했다. 어느날 그 나무에서 아주 맛있는 호두열매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원숭이는 그 맛있는 걸 따먹을 생각을 하면서 혼자 흐뭇해했다.
하지만 나무가 워낙 높은 데가 중간에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가지들이 없어 그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숭이는 근처에 있는 한 농가를 찾아가 사다리를 좀 빌려달라고 집
주인에게 사정했다. 농부가 빌려준 사다리를 끙끙거리며 힘들에 가지고 온 원숭이는
갖은 고생 끝에 호두나무 위로 올라갔다.
호두열매를 딴 원숭이는 호두를 껍질째 날름 깨물었다. 하지만 딱딱한 호두
껍질에서는 쓴맛만 날 뿐 아무 맛도 없자 화가 나서 호두를 냅다 던져버렸다. 몇
개를 더 따먹어봤지만 매번 같은 맛일 뿐이었다. 원숭이는 분통을 터뜨리며 호두
열매들을 멀리 던져버리고는, 그 껍질 안에 있는 뇌 모양의 진짜 호두 열매는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원숭이는 아무 성과도 없이 고생만 한 것이 너무도 억울해 죽을 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나한테 이 호두가 맛있다고 칭찬하고, 먹을 수 있게 도와주고 충고해준 놈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야. 내 평생 이렇게 공들이고 헛수고만 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호두 열매가 그렇게 달고 맛있다고 하더니 이게 뭐야. 쓰기만 하잖아."
원숭이는 이렇게 한탄만 늘어놓다가 깊은 한숨을 쉬고는 그곳을 떠나갔다.
*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일단 시작을 하고나면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일을 하는 과정보다는 그 일을 마쳤을 때의 결실을 보고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쓴맛을 못 본 사람은 단맛을 볼 자격도 없다.@ff
열아홉번째 이야기 우물에 갇힌 늑대
여러 마리의 소를 가진 농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소들이 워낙 말을 듣지 않아
농부는 땅을 갈려면 무진 애를 먹어야 했다. 그때마다 농부는 화가 난 나머지
소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똑바로 가지 않고 삐딱하게 가려고만 하니, 늑대들한테나 잡아먹으라고
줘야겠다."
이 말을 들은 늑대를 농부가 자기한테 소를 줄 거라고 믿고는 하루종일 기다렸다.
그런데 농부는 소들의 쟁기를 풀더니 그냥 자기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늑대는 농부에게 달려가 말했다.
"당신이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나한테 소를 주겠다고 약속해놓고는 그냥 가면
어떡합니까? 당신이 약속한 거니까 지키세요. 나도 급하다고요."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다.
"그냥 해본 소리 가지고 약속을 지키라니 그건 말도 안돼. 맹세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당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갈 줄 알아."
늑대와 농부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공정한 재판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길을 떠나려던 차에 그들은 그 옆을 지나가던
여우를 만났다.
여우가 그들에게 물었다.
"안녕, 친구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 겁니까?"
늑대와 농부가 여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여우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것 때문이라면 다른 재판관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요. 내가 두 분들을 위해
공정한 재판을 해드리죠. 나야 두 분 사정을 훤하게 알고 있으니까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거예요. 우선 한 분씩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내가 내린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가서 다른 재판관들을 찾아도 늦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여우가 농부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이 나와 저 늑대에게 닭 두 마리만 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 소들이
안전하도록 조치를 취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당신이 한 말에 책임을 안 져도 돼요."
농부가 여우의 말을 따르기로 하자. 이번에는 늑대를 따로 불러 말했다.
"친구야, 내 말 잘 들어. 요즘들어 내가 너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괘씸하지만,
그래도 너를 위해서 농부와 합의를 했다. 네가 소들을 가지고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너한테 좋은 치즈 한 덩어리를 주도록 했어. 그러니까 농부 말을
들어."
늑대도 여우의 제안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여우는 농부에게 소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고는, 늑대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너는 나랑 같이 맛있는 치즈가 있는 곳으로 가자."
여우는 늑대를 데리고 이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달이 떠오르자 우물가로
데리고 갔다. 여우는 우물에 비친 달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친구야, 잘 봐. 저기 큼지막하고 맛있게 생긴 치즈가 있지? 네가 밑으로
내려가서 그걸 가지고 올라오는 거야."
늑대가 대답했다.
"이봐, 치즈는 네가 직접 나한테 건네줘야지. 네가 가져와. 하지만 만일 너 혼자
올라올 수 없으면 그때가서 내가 도와줄게."
여우가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 그렇게 하겠다고 선뜻 응했다. 그 우물에는 물을
퍼내기 위한 물통 두 개가 도르래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물통 한 개가
내려가면 다른 물통이 올라오게 되어 있었다. 여우는 우물 아래로 내려가서 한참을
꼼짝 않고 있었다.
그러자 늑대가 물었다.
"이봐, 왜 그렇게 한참 걸리지? 치즈는 어떻게 된 거야?"
늑대는 여우가 혼자서 치즈를 다 먹어치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때 여우가
말했다.
"치즈가 너무 커서 혼자서는 꺼낼 수가 없어. 얼른 다른 물통을 타고 내려와서 날
좀 도와줘."
늑대가 다른 물통을 타고 우물 밑으로 내려가자 여우가 타고 있던 물통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우는 우물 입구가 보이자 신이 나서 깡충 뛰어나갔고 늑대는
그만 우물 밑에 갇혀버렸다.
* 감언이설에 넘어가 불확실한 것을 위해 확실한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ff
스무번째 이야기 어느 청년의 구애
아름답고 정숙한 여인을 아내로 둔 귀족이 있었다. 그는 성물을 구경하러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아내를 홀로 남겨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평상시 행동과 곧은 성품으로 보아, 그녀가 혼자 있어도 자기 자신을 잘 지키리라
믿었다.
남편이 길을 떠난 후에도 아내는 남편의 믿음대로 매사를 올바르게 처신하고
정조를 지키며 순결하게 살았다.
그러던 차에 마을의 젊은 청년이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게 되면서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루라도 그녀를 보지 않으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청년은 여러
사람들을 통해 많은 보석과 선물을 보냈지만 모든 게 헛수고였다.
청년은 너무나도 상심하여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하지만 몸을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어도 늘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의 집 주변을 맴돌았다. 그는 한
번만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기를 청했다. 하지만 여인은 청년의 청을 냉정히
거절했고, 청년은 너무나 슬프고 괴로운 표정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여인의
집 앞에 서 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근처를 지나가던 한 노파가 청년을 발견하고는 왜 그리 슬프게
우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마음씨 좋아보이는 노파에게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노파가 청년을 위로하며 말했다.
"이제 기운을 차리게나. 내가 빠른 시일내에 자네가 원하는 걸 얻게 해줄 테니."
노파는 청년에게 희망을 심어주고는 그곳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온 노파는 암캐
한 마리를 방에다 가두어놓고는 아무 것도 먹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사흘 만에 매운
겨자를 바른 빵 한 조각을 개에게 먹였다. 너무나 배가 고팠던지라 덥석 그 매운
빵을 먹은 암캐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노파는 우는 개를 데리고 정숙한 여인의 집으로 향했다. 여인은 그 노파가 평상시
신앙심도 깊고 선량하기로 평판이 자자했기 때문에 반가운 얼굴로 정중하게
맞아들였다. 대화를 나누다가 개가 우는 것을 본 여인은 그 이유를 물었다.
노파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발! 이 암캐가 왜 눈물을 흘리는 건지 나한테 물어보지 말아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답니다. 그 이야기를 다 하기도 전에 내가 숨을 거둘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말에 더 궁금해진 여인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노파는
슬피 우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암캐가 사실은 내 친딸이라오. 이렇게 되기
전에는 행실바르고 기가 막히게 예쁜 딸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젊은 청년이 내 딸을
보고 반해서 사귀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내 딸이 쳐다보지도 않으니 결국에는 그
청년이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지요. 그 병에는 약도 없다잖아요. 그를 가엾게 여긴
신들은 모든 게 내 딸아이가 그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는,
내 딸을 이렇게 개로 둔갑시켜 놓았어요. 그 청년이 워낙 슬프고 간곡하게 기도를
올렸기 때문이지요."
노파의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변했다.
"어떡하지요. 당신 말을 들으니 두려운 마음이 드는군요. 나도 얼마 전에 당신
딸과 비슷한 일을 겪었거든요. 나에게 너무나도 열렬히 구애를 하던 젊은 청년이
있었어요. 내 사랑을 받지 못하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지요. 하지만
남편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답니다."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노파가 말했다.
"참 딱한 사정이네요. 하지만 당신이 내 딸처럼 개로 둔갑하지 않으려면 그
청년의 소원 한 가지는 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여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신의 뜻을 거역하지는 않겠어요. 그 청년이 나를 한 번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원하니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어요."
노파가 돌아간 후 여인은 대문 밖으로 나가 청년을 만났고 남편이 있는 자신의
처지를 잘 생각해보라고 청년을 설득했다.
그러자 청년은 남편을 극진히 사랑하는 부인의 마음에 감동하여 기쁘게 그녀를
떠날 수 있었다.
* 사랑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상대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것이다.@ff
스물한번째 이야기 미련하게 욕심만 부린 늑대
늑대가 아침 일찍 일어나 기분좋게 기지개를 켜다가 방귀를 늘어지게 뀌고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재수가 좋을려나 보네. 꼬리에서 이렇게 기분좋은 소리가 났으니 말이야.
배불리 먹을 복을 생기려나?"
그리고는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중에 마차에서 떨어진 돼지 비계를 발견했다.
늑대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돼지 비계를 먹으면 배가 그득하게 차오를 테니까 오늘은 저 비계를 먹지 않고
그냥 가야지. 아침에 내 엉덩이가 예언한 바에 의하면 맛있는 걸 잔뜩 먹을
운세인데 미리 배를 채워두면 안 되지."
늑대는 조금 더 가다가 베이컨을 발견했다.
"내 꼬리가 예언한 바에 의하면 오늘 맛있는 걸 먹을 운세니까 이걸 먹지 말고
그냥 지나쳐야지."
늑대는 또 절벽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다가 망아지와 함께 있는 암말을 발견하자
기분이 좋아 중얼거렸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내 오늘 먹을 복이 터질 줄 알았다니까."
늑대가 암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무척 배가 고파. 네 새끼를 잡아먹어야겠다."
그러자 암말이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하지만 어제 제 주인과 함께 길을 가다가 왼쪽 발에 가시가
박혔어요. 당신이 명의로 소문이 나 있으니 식사하시기 전에 내 발에 박힌 가시나
빼주세요. 그리고 나면 당신이 하자는 대로 다 하겠어요. 내 새끼를 드셔도 좋아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늑대가 암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주기 위해 말의
발바닥을 들여다보자, 암말이 냅다 늑대의 얼굴 한가운데를 걷어차고는 망아지를
데리고 산 속으로 유유히 도망쳐버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늑대가 혼자
중얼거렸다.
'이까짓 일쯤이야. 하여간 오늘 안에 배불리 먹기만 하면 되잖아.'
늑대는 다시 길을 가다가 염소 두 마리가 풀밭에서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웬 떡이냐.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늑대가 염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잘들 있었느냐? 오늘 너희 둘 중 하나는 내 밥이 되야겠다."
그러자 한 염소가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하지만 우리 둘 중 누가 옳은지 재판부터 해주세요. 원래
이 벌판은 우리 아버지 것이었는데 이 녀석이 자꾸만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올바른 판결을 해주시면 당신 뜻대로 하겠어요."
늑대가 대답했다.
"그쯤이야 기꺼이 할 수 있지. 하지만 너희가 어떤 방법으로 나눠 갖기를
원하는지 먼저 말해보거라."
그러자 다른 염소가 말했다.
"저에게 좋은 방법이 하나 있어요. 당신이 초원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우리가
양쪽 끝에서부터 당신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겠어요. 먼저 도착한 염소가 이기는
거고, 진 염소는 당신 먹이가 되는 거예요."
늑대는 흔쾌히 그 방법에 동의했다.
그런데 염소들은 양쪽 끝에서부터 늑대가 있는 초원 한가운데로 있는 힘을 다해
뛰어와 늑대를 세게 들이받았다. 늑대는 양쪽에서 거센 충격을 받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정신까지 잃고 쓰러졌다.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된 늑대가 중얼거렸다.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야. 오늘 아침에 꼬리가 예언한 바에 의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테니 꾹 참아야지."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가던 늑대는 돼지가 새끼들과 함께 강가 풀밭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 이럴 수가. 내가 오늘 먹을 복이 있다니까."
늑대가 어미 돼지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 자식들을 잡아먹어야겠다."
그러자 어미 돼지가 아무렇지도 않은 양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하지만 우리는 몸을 깨끗이 씻어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했어요. 내가 보기에는 신의 뜻에 의하여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
같으니 당신이 사제가 되어 우리 의식대로 내 자식들에게 세례를 주세요. 그때 가서
그놈들을 잡아먹든지 말든지 그건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깨끗하게 씻을 걸 먹으면
당신도 기분이 좋잖아요."
늑대가 말했다.
"그러면 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거라."
돼지가 물레방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물이 제일 깨끗하고 신성한 물이에요."
늑대는 물레방아의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진짜 사제나 된 것처럼 폼을 재면서
돼지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물 속에 집어넣고는 세례를 주었다. 바로 그때 어미
돼지가 물레방아를 힘껏 들이박는 통에 늑대는 땅바닥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온몸에
멍이 들고 심하게 다친 늑대가 혼잣말을 했다.
"흥, 내가 이까짓 고통에 물러날 줄 알고. 잠시 속았을 뿐이야. 원래 오늘의 내
운수가 얼마나 좋은 건데. 내 꼬리의 예언에 의하면 오늘 배불리 먹을 팔자란
말이야."
그리고는 마을 가까이 지나가다가 양 몇 마리가 아궁이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가 눈앞에 있군요."
늑대가 오는 걸 보자 양들은 놀라서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늑대가 아궁이
앞에서 으르릉대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잡아먹으러 왔다."
양들이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우리는 제사를 지내러 여기까지 온 거예요. 목청 좋은
당신이 노래를 불러주신다면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게요."
늑대는 자기가 덕망 높은 사제나 되는 것처럼 한껏 폼을 잡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는 개를 끌고
몽둥이를 집어들고 달려왔다. 늑대는 개들한테 실컷 물어 뜯기고 몽둥이 찜질을
당한 후 겨우 목숨만 건진 채 간신히 도망쳤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 그늘 밑에
쓰러진 늑대는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구, 내 팔자야. 대체 오늘 일진이 왜 이리 나쁜거야. 하진 내 잘못이 더
컸지. 돼지 비계와 베이컨을 우습게 알고 건방을 떨었으니 말이야. 약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암말을 고치겠다고 덤벼들고, 법에 법자도 모르는 내가
염소들의 싸움을 중재하겠다고 나섰으니, 그리고 글자도 모르는 내가 무슨 사제라도
된다고 돼지새끼들에게 세례를 주겠다고 설쳐대고 교황이나 추기경이 주관할 수
있는 제사를 내가 주관하겠다고 잘난 척했으니 벌을 받은 거야. 오, 주피터
신이시여. 상아로 만든 권좌에 앉으셔서 저에게 칼을 내려 벌을 주옵소서."
바로 그 때 남자 한 명이 나무 위에 올라가 가지를 치고 있다가 늑대가 하는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 늑대가 신세 타령을 마치자, 그 남자는 들고 있던 도끼를
집어던져 늑대의 목덜미를 찍었다. 늑대는 아파서 낑낑대면서 주변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늑대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 위대하신 주피터 신이시여. 당신의 섭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소원을 이리도 빨리 들어주시다니 그저 놀랄 뿐입니다. 이 장소를 성스러운 곳으로
지정해 괴롭고 슬픈 사람들에게 소원을 빌도록 하겠습니다."
*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높은 이상을 추구하다보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떨어지는 폭도 큰 법이다.@ff
스물두번째 이야기 신부의 뇌물
투사아 지방에는 무식하지만 부자인 신부가 있었다. 신부는 기르던 개가 죽자
아주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뤄 무덤까지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무성한
소문을 낳았고, 급기야는 주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주교는 신부가 부자라는
걸 알자 그의 죄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손수 신부를 불러 벌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신부는 주교가 자기를 벌주는 것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금덩어리를 들고 주교를 찾아갔다. 주교는 신부가 개에게 무덤을 만들어
준 일을 심하게 문책했다. 그리고 신부를 감옥으로 끌고가 벌을 내리도록 명령했다.
신부는 주교가 강경하게 나오자 그에게 말했다.
"주교님께서 그 개가 얼마나 똑똑했는지 아셨더라면 이렇게까지 노여워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개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머리가 영리했어요. 그 개는 살아
있을 때도 영리했지만,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는 더 그랬습니다."
주교는 신부는 말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신부가 대답했다.
"그 개는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어요. 하느님이 계신 성당을 위해 얼마나 큰 돈이
필요한지를 알고는 주교님께 백 개의 금덩어리를 기부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가 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주교에게 금덩어리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주교는 개의 유언과 장례식을
인정하고는, 신하들에게 필요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금덩어리를 잘 보관해두라고
명했다. 그리고 신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는 그를 석방시켰다.
* 돈의 위력을 믿고 큰 죄를 지어도 모든 게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죄값을 치르게 된다.@ff
스물세번째 이야기 신의 가호로 아들을 낳은 여인
가예테 시의 주민들은 바다로 나가 배를 타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도시
근처에 사는 어느 선원은 생계가 어려워지자 젊은 아내를 두고 바다로 나갔다가 오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 아내는 기다려도 남편이 돌아오질
않자 죽은 게 틀림없다며 남편을 기다리는 일을 단념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자기가 떠날 때보다 더 화려해진 집안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내에게 남겨주고 간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신의 가호가
내린 거니까요."
남편이 말했다.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신 신의 은총에 그저 고마울 뿐이야. 집에 좋은 가구가
가득 들어차 있고, 멋진 침대도 있으니 말이야."
그는 아내에게 어디서 이런 돈이 생겼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내는 모두가 신의
가호와 은총 덕택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신이 너무나도 자비롭다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갑자기 세 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사내아이가
아내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나타났다. 놀란 남편은 그 아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아내가 그들의 아이라고 대답하자, 남편이 자기도 없는데 어디서 아이가 생길 수
있냐며 아내를 다그쳤다. 아내는 신들의 가호와 은총을 받아 아이가 생긴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화가 난 선원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내 아내의 몸에서 자식을 잉태하는 게 신들의 은총이라면, 그런 신의 은총은
하나도 반갑지 않아. 아무리 신이라도 남의 일에 주제넘게 참견해서는 안 되지.
다른 일로 나를 도와주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내가 없는 틈을 타고 내 아내에게서
자식까지 만드는 건 결코 고마워만 할 일은 아니라구."
* 모든 것을 신에게서 구하지 말라. 신이 베풀어주는 예상치 못한 은총 중에는
달갑지 않은 것도 있다.@ff
스물네번째 이야기 개의 가죽을 둘러쓴 염소
아주 많은 양을 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크고 무서운 사냥개가 있어
늑대로부터 양들을 보호했다. 그 개가 얼마나 사납고 무서웠던지 늑대들이 감히 양
가까이 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개도 나이가 들자 마침내 늙어 죽고
말았다. 개가 죽자 걱정이 된 목동들이 이야기했다.
"어떡한담. 들판을 지켜주던 개가 죽고 없으니 이젠 늑대들이 마음놓고 와서
양들을 잡아갈 텐데 어떡하지."
목동들의 걱정을 들은 건방진 염소가 그들에게 말했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한 번 들어보세요. 내 뿔과 털을 깍고 나에게 죽은
개의 가죽을 벗겨서 씌워주세요. 그러면 늑대들이 내가 그 개인 줄 알고 놀라서
가까이 오지 못할 거예요."
그럴 듯한 말이라고 생각한 목동들은 염소에게 개의 가죽을 씌워 개로
변장시켰다. 늑대들은 양들을 잡으러 내려왔다가 평상시처럼 그 무서운 개가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도망쳤다. 그러던 어느날 배고픔에 견디다 못한 늑대 한
마리가 내려와서 양을 낚아채 도망쳤다. 개의 가죽을 둘러쓴 염소가 그걸 보고는
늑대 뒤를 급히 쫓아갔다. 염소는 자기가 진짜 개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늑대가 자기를 보고 놀라서 도망치는 것도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늑대의 뒤를
쫓았다. 늑대도 그 무서운 개가 쫓아오자 놀란 나머지 오줌을 싸면서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그 악명 높은 개가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쫓아오는
것을 보자 겁에 질려 자기도 모르게 오줌을 싸 몸을 다시 한 번 더럽혔다. 지칠
대로 지친 늑대가 붙잡히기 직전 염소의 개 가죽이 나뭇가지에 걸려 벗겨지면서
개가 아니라 염소라는 게 들통이 나버렸다. 그제서야 속임수라는 것을 깨달은
늑대가 염소를 붙잡고는 물었다.
"너는 누구냐?"
염소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길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대답했다.
"염소예요."
"그런데 왜 나를 그렇게 놀래켰어?"
"장난삼아 재미있어서 그랬어요."
이 말을 들은 늑대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는 염소를 끌고
자기가 놀라 오줌을 싼 곳으로 가서 말했다.
"네가 보기에는 이게 재미있는 장난이지? 늑대가 염소를 보고 놀라서 두 번씩이나
오줌을 싼 게 재미있단 말이냐! 너는 죄값을 치러야 해!"
그렇게 해서 개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던 염소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 자기의 처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잔꾀를 부리다가는 더 큰 화를 당하게
된다.@ff
스물다섯번째 이야기 날아가버린 종달새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고 초목이 무성한 아름다운 과수원을 가진 시골 농부가
있었다. 그는 힘이 들거나 피곤하면 과수원을 찾아가 쉬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종달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농부는 그 소리에 반한 나머지 덫을 놓아 종달새를 잡았다.
종달새는 자기가 잡힌 신세가 되자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나를 잡으려고 애를 쓰는 거죠? 나를 잡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네 노랫소리가 내 마음속으로 구구절절이 스며들기 때문이지. 네 소리에 반해서
너를 잡은 거란다."
"그렇다면 아저씨가 헛수고를 하신 거예요. 왜냐하면 아저씨가 돈을 주거나
통사정을 해도 나는 노래하지 않을 거니까요."
이 말을 들은 농부는 화를 내며 자기를 위해 노래를 하지 않는다면 종달새를
잡아먹겠다며 협박했다.
종달새가 말했다.
"나를 어떻게 잡아먹을 건데요? 나를 삶아먹으면 워낙 조그마하니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테고, 나를 구워 먹으면 오그라들어 더 작아질 텐데요. 그러지 말고 나를
그냥 날려 보내주세요. 그러면 아저씨에게 세 가지 충고를 해드릴게요. 그 세 가지
충고가 돼지 세 마리를 잡어먹는 것보다 더 값어치 있을 걸요?"
솔깃해진 농부는 종달새의 말을 믿고 풀어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종달새는
농사꾼에게 말했다.
"우선 첫 번째 충고는 아저씨가 듣는말을 모두 곧이 곧대로 믿지 말라는 거예요.
특히 사실 같지 않은 말들은 더 그렇구요. 두 번째 충고는 자기 것은 끝까지
지키라는 거예요. 마지막 세 번째 충고는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엎질러진 물은
가슴아파하지 말라는 거예요."
종달새는 이 말을 마치고는 나무 위로 올라가 아주 달콤한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농부의 눈을 멀게 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신이
그에게서 지혜를 빼앗으셨기에 그가 눈이 멀어 나를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우둔하여 내 몸 속에 일 온스나 되는 수정이 들어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만에 하나 그가 내 몸 속에 이런 보석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큰 부자가
되었겠지만 나는 그의 손에 죽고 말았겠지요."
이 소리를 들은 농부는 종달새를 풀어준 것을 너무나도 후회하면서 가슴을 쳤다.
"아이구, 아이구, 불쌍한 내 팔자야. 내가 왜 그 여우같은 종달새 말을
들었는지^5,5,5^ 내 손으로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고 말았구나."
농사꾼의 한탄을 듣고 종달새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어리석군요. 내 충고를 벌써 잊어버렸나요? 내 조그만 몸집에 일
온스나 되는 큰 수정이 어떻게 들어 있겠어요? 당신이 듣는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지 말라고 했잖아요. 당신은 당신의 것도 지키지 못하는 데다 이미 되찾을 수
없는 일에 단념하지도 않는군요. 당신은 내가 말한 세 가지 충고 중 하나도 못 알아
듣는 바보예요."
종달새는 이렇게 농사꾼을 실컷 약올리고는 훌쩍 날아가버렸다.
* 손 안에 있을 때 지키지 못한 금은 보화를 부러워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ff
스물여섯번째 이야기 은혜를 모르는 용
용 한 마리가 강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용이 자라면서 물이 부족해지자 용은
점점 하류 쪽으로 내려오다가 모래밭까지 오고 말았다. 물이 없어 용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데 농부가 그 옆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다. 농부가 용에게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고 묻자 용이 대답했다.
"물을 찾아서 오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런데 여기도 물이 다 말라버려서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답니다. 나는 물이 없으면 꼼짝도 못해요.
그러니 나를 당신 당나귀 위에 묶어서 강으로 데려다줘요. 그러면 금은보화를
선물로 드릴게요."
금은보화라는 말에 욕심이 생긴 농부가 용을 묶어서 당나귀에 싣고는 강으로
갔다. 용을 강에 내려준 농부는 약속대로 금은보화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용이
농부에게 말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네 놈이 감히 나를 묶어놓고는 그 대가를 바래?"
농부가 어이없다는 듯이 용에게 말했다.
"네가 네 입으로 묶어달라고 사정했잖아."
"그건 그때 일이지. 이제 배가 고프니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네가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구나."
한참을 이렇게 다투고 있는데 우연히 그 옆을 지나던 여우가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는 말했다.
"자, 그렇게 싸우지 말고 차근차근 얘기해봐요."
그러자 용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농부가 나를 꽉 묶어서 자기 당나귀에 싣고는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요.
그래놓고는 이제와서 그 대가를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 다음으로 농부가 말했다.
"여우 선생,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이 용이 강물을 따라 내려가다가 모래밭을
만나서 꼼짝도 못 하고 있는 걸 내가 발견했소. 그러자 용이 내게 자기를 묶어서
당나귀에 싣고 여기까지 데려다주면 금은보화를 주겠다고 약속했소. 그런데 이제
와서 약속을 지키는 건 고사하고 나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소."
여우가 말했다.
"용을 묶은 건 당신 잘못이에요. 하지만 이제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어요.
용을 어떻게 묶었는지나 보여주세요. 그걸 보고나서 판단하겠어요."
농부가 용을 묶기 시작하자 여우가 용에게 물었다.
"지금 농사꾼이 묶은 것만큼 세게 묶었습니까?"
용이 대답했다.
"이것보다 백 배는 더 세게 묶었을 겁니다."
여우는 농부에게 더 세게 있는 힘을 다해 묶으라고 말했다.
여우가 다시 용에게 물었다.
"어때요? 지금처럼 꽉 묶었어요?"
용이 대답했다.
"예, 바로 지금처럼 묶었어요."
그러자 여우가 농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용을 꽉 묶었으니 이제 당신이 용을 당나귀 위에 싣고는 용을 발견했던 원래
위치에 다시 갖다 놓으세요. 그럼 더 이상 당신을 잡아먹을 수도 없을 거예요."
농부는 여우가 시킨 대로 하고는 용을 내버려둔 채 떠나버렸다.
*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 있다.@ff
스물일곱번째 이야기 새끼 여우 베니티요
어느날 여우가 새끼 여우를 데리고 늑대에게 찾아가 자식에게 세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응한 늑대는 새끼 여우에게 베니티요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해준 후에
여우에게 말했다.
"여우야, 내가 네 아들을 키워서 기술도 가르치고 교육도 시킬 테니 허락해다오.
내가 아는 기술들을 모두 전수시켜줄 테니 나와 같이 있는 게 네 아들한테도 이로울
거야. 다른 자식들도 많이 있는데 네가 그 자식들을 모두 다 제대로 키우려면
얼마나 고생이겠느냐."
여우가 대답했다.
"당신 생각대로 하세요. 저를 잊지 않고 이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래서 베니티요는 늑대와 남고, 여우는 다른 자식들에게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늑대가 양을 잡아먹기 위해 베니티요를 데리고 양떼들이 머무는 목장으로 갔다.
하지만 개와 목동들에게 들켜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깊은 산 속으로 도망쳤다.
늑대가 양자인 베니티요에게 말했다.
"오늘밤 양떼들을 습격했더니 몹시 피곤하구나. 눈을 좀 붙일 테니 너는 망을
보고 있거라. 풀을 뜯어먹으러 나온 동물들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있다가, 보이는
놈이 있으면 즉시 나를 깨우도록 해라. 그래야 출출한 배를 채우지."
다음날 아침 베니티요가 늑대를 깨웠다.
"대부님, 대부님."
"왜 그러느냐, 양자야."
"돼지들이 나왔어요."
늑대가 말했다.
"돼지는 지저분하고 거친 동물이니 그냥 내버려두자. 나는 어째 돼지만 먹으면
속이 영 거북해지고 입맛이 나빠지더구나."
잠시 후에 베니티요가 다시 늑대를 흔들어 깨웠다.
"대부님."
"무슨 일이냐, 양자야."
"소들이 풀을 뜯어먹으러 나왔어요."
늑대가 대답했다.
"잔인하고 힘센 목동들이 소들을 지키고 있는 데다가 못되고 용감무쌍한 개들도
있으니까 소들은 그냥 내버려두자. 개들이 나를 보면 목이 터져라 짖어대면서 죽을
때까지 달려들 거야."
잠시 후에 베니티요가 다시 늑대를 불렀다.
"암말들이 나왔는데요."
"말들이 어디고 가는지 잘 살펴보거라."
"저기 산 중턱에 너도밤나무가 많이 있는 초원에 있어요."
그 말을 들은 늑대는 말이 있는 초원까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다가가서는 제일 통통하게 살찐 말을 골라 그 위에 올라탄 후 질식을 시켰다.
배불리 먹은 베니티요가 늑대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대부님. 저도 이제 혼자서 인생을 개척할 만큼 강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님의 놀라운 기술도 배웠고요. 이제는 엄마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늑대가 베니티요를 만류했다.
"아들아, 안 가면 안 되겠니? 넌 아직 충분히 배우지 못했단다. 지금 떠나면 곧
후회하게 될 게다."
"그래도 저는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늑대는 떠나겠다는 베니티요의 결심이 완강한 것을 보고는 말했다.
"정 그렇다면 가거라. 하지만 곧 후회하게 될 거다. 가서 네 엄마에게 안부나
전해주렴."
베니티요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아들을 보자 여우가
말했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거니? 공부는 다 끝났니?"
베니티요가 대답했다.
"더 이상 배울 게 없어서 일찍 돌아온 거예요. 이제 엄마도 고생하지 않으셔도
돼요. 앞으로는 내가 엄마와 동생들까지 다 배불리 먹일게요."
"아들아, 어디서 뭘 그리 빨리 배웠다는 거냐?"
"엄마, 질문은 이제 그만 하시고 그렇게 궁금하면 저를 따라오세요. 제가 얼마나
뛰어난 사냥꾼인지 직접 보시면 되잖아요."
여우는 너무나 자신만만한 아들이 미덥지는 않았지만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아들을 따라갔다. 베니티요는 늑대가 했던 대로 날이 어두워지자 양을 잡아먹으러
목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양을 잡지 못하자 다시 높은 산 위로 올라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도 잘 아시다시피 오늘밤에 양을 사냥하느라고 제가 피곤하고 많이
지쳤어요. 잠깐 눈을 좀 붙일 테니까 엄마는 망을 보세요. 풀을 뜯어먹으러 나오는
동물들이 있는지 잘 보고 있다가 저를 깨우세요. 그러면 제가 배운 걸 어떻게
써먹는지 보시게 될 거예요. 엄마에게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재주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음날 아침 여우가 아들을 깨웠다.
"엄마, 왜 그래요?"
"돼지들이 나왔다."
베니티요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돼지들은 더럽고 지저분한 데다가 성질이 고약하니까 그냥 내버려두세요. 그걸
먹으면 소화도 안 되고 입맛만 떨어져요."
잠시 후에 엄마 여우가 다시 아들을 불렀다.
"소들이 나왔다."
"소들은 성질이 고약한 개와 목동들이 지키고 있어서 너무 위험해요. 개들이 나를
보면 마구 짖어대면서 내가 지쳐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을 때까지 악착같이 따라올
거예요."
잠시 후 여우가 아들을 흔들어 깨웠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엄마 여우가 대답했다.
"암말들이 풀을 뜯으러 나왔다."
그 말을 들은 베니티요가 반색을 하면서 기분이 들떠 말했다.
"엄마, 말들이 어디로 가는지 잘 보고나서 돌아오세요."
엄마 여우가 돌아와서 암말들이 산 근처에 있는 초원으로 들어갔다고 일러주자
베니티요가 말했다.
"엄마는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내가 하는 걸 잘 지켜보세요. 내가 얼마나
영리하고 용감한지 곧 알게 될 거예요."
베니티요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말들이 있는 곳으로 살금살금 숨어들어가서,
제일 통통하게 살찐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선생인 늑대가 했던 것처럼 말을
질식시켜 죽이려고 말의 코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암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코에 매단 채 목동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산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엄마 여우가 애가 타서 아들을 불렀다.
"베니티요야, 말은 내버려두고 어서 돌아와."
하지만 베니티요는 말의 코에 이빨이 박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목동들이
달려나와 베니티요를 몽둥이로 때리는 광경을 보자 엄마 여우는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고, 내 아들 베니티요야! 그러길래 왜 그렇게 빨리 돌아왔니. 이제 사람들이
너를 죽일 텐데 이를 어쩌나. 그래 겨우 이 어미의 가슴에 못을 박으려고 일찍
돌아온 거니? 네 스승인 늑대의 말을 들었어야지."
* 완벽하게 배울 때까지는 겸손한 자세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보다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을 얕잡아봐서도 안 된다.@ff
스물여덟번째 이야기 몸집 작은 남자와 사자
몸집이 자그마한 남자가 힘들게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나무도 심고 논밭고
일구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막 근처에 사는 사자 한 마리가
그가 열심히 가꾸어놓은 곡식과 나무들을 망가뜨려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사자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남자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사자를 잡으려고 했다. 사자는 그
남자가 자기를 잡으려고 많은 덫과 함정들을 파놓아서 도무지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낫다는 생각에 새끼 사자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새끼 사자도 어느덧 성장하여 몸집도 제법 크고 기운도
세졌다. 어느날 새끼 사자가 아빠 사자에게 물었다.
"아빠, 여기가 우리 고향이에요? 아니면 고향이 따로 있나요?"
"우리는 이 고장 출신이 아니란다. 우리는 다른 지방에 살았었는데, 그곳에 사는
몸집이 조그마한 남자의 덫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온 거야."
아들이 아빠 사자에게 물었다.
"그 몸집 작은 남자가 대체 누구길래 아빠를 공포에 떨게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우리처럼 몸집도 크지 않고 기운도 세지 않단다. 하지만 굉장히
영리하고 속임수도 잘 써."
"그렇다면 내가 가서 우리가 당한 모욕을 되갚아주고 오겠어요."
아빠 사자는 아들을 만류했다.
"그 조그만 남자는 별의별 재주가 많단다. 넌 절대로 그곳에 가면 안 된다. 거기
갔다가는 그 사람의 꾀에 빠져 죽음을 당하고 말 거야."
"걱정마세요. 나도 영리하고 용기가 있어요. 아빠가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당하지는 않아요. 기필코 복수를 하고 말겠어요."
아빠 사자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아들을 말렸다.
"아들아, 가면 안 된다. 네가 내 말을 안 듣고 그렇게 고집을 피우다가는 곧
후회하게 될 거다."
하지만 새끼 사자는 아빠의 당부나 충고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남자를
찾아 길을 떠났다. 새끼 사자는 길을 가다가 등가죽이 벗겨지고 갈비뼈가 부러진
말이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누가 당신을 이렇게 흉측하게 만들어놓았어요?"
"몸집이 조그만 남자인데, 그 사람은 나를 끈으로 너무 세게 묶어요. 그리고는
내게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라고 채찍을 휘두르는 통에 이렇게 온몸이
멍투성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새끼 사자가 혼자 으르렁대며 중얼거렸다.
'아! 그 몸집 작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단 말인가! 내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동물들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단 말인가! 그놈에게 복수하겠다고 내 수염을
걸고 맹세하겠어.'
사자는 땅에 사람의 발자국이 나 있는 걸 보고는 황소에게 물었다.
"이 발자국은 누구 거예요?"
"그건 몸집이 작은 남자의 발자국이랍니다."
그러자 사자가 손바닥을 펴 그 남자의 발자국 크기를 재보고는 말했다.
"발도 정말 조그맣네. 그런데도 그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하다니. 황소 아저씨,
몸집 작은 남자가 누군지 가르쳐주겠어요."
황소가 발로 멀찌감치에 서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사자는 그 남자가 높은 산
위에서 곡괭이를 들고 밭을 일구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봐. 네가 우리 부자와 다른 동물들에게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않고
있느냐! 이제 네 잘못을 뉘우칠 때가 왔다. 내가 너를 혼내줄 테다."
그러자 몸집 작은 남자가 몽둥이와 도끼, 칼로 무장을 하고는 사자에게 호통을
쳤다.
"네가 여기로 올라오면 이 몽둥이로 너를 때려눕히고, 이 도끼로 네 살덩어리를
토막치고, 이 칼로 네 껍질을 벗기겠다고 신을 두고 맹세한다."
사자는 몸집 작은 남자의 기세등등한 행동을 보자 그만 주눅이 들었다.
"그곳으로 올라가 너를 따끔하게 벌을 주려고 했지만 네가 그리 완강히 거부하니,
그럼 나와 함께 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서 누가 더 힘이 세고 왕이 될 수
있는지 판가름을 해달라고 하자."
몸집 작은 남자가 대답했다.
"그럼 우리가 함께 길을 가면서 너는 내 몸에 손을 대지 않고, 나도 네 몸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맹세하자. 갈 때까지는 사이좋게 가자구."
이렇게 조건을 내세우고는 남자와 새끼 사자는 함께 길을 떠났다. 하지만 몸집
작은 남자는 큰 길을 내버려두고 덫과 함정들을 잔뜩 파놓은 샛길로 접어들었다.
사자가 그 남자에게 말했다.
"나도 너를 따라서 이 길로 갈 테다."
"네 마음대로 해."
그런데 남자 뒤를 바짝 쫓아가던 사자가 갑자기 덫에 걸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자가 큰 목소리로 몸집 작은 남자를 불러 도와달라며 사정을
했다. 남자가 사자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나도 몰라. 발이 묶여서 꼼짝할 수가 없어. 나 좀 풀어줘."
"네 아빠의 판결이 있을 때까지는 길을 가면서 서로의 몸에 손도 대지 않기로
맹세한 걸 벌써 잊어버렸니? 난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발이 묶인 채로 엉금엉금 기어서 길을 가던 사자는 또 다른 덫에
걸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손까지 꽁꽁 묶이게 되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사자가
도와달라며 큰 소리로 몸집 작은 남자를 불렀다. 하지만 몸집 작은 남자는 사자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몽둥이를 집어들고 사자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사자가
말했다.
"오, 몸집 작은 남자여. 나를 불쌍히 여기고 제발 나를 용서해줘. 내 머리나 등,
배는 때리지 말고 아버지의 충고를 제대로 듣지 않은 이 귀를 때려줘. 그리고 좋은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내 가슴을 때려줘. 아버지는 네가 영리하고 속임수도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거든.
아버지 말씀이 옳았어."
* 자기보다 나은 사람의 충고와 조언을 한쪽 귀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충고가 세상을 사는 지혜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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